# 164
< 내 언데드 100만 >
제164화 한성의 위기
“여기 있는 거 다 먹을 수 있겠지?”
한성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
한성의 말에 틴달로스는 웃는 얼굴로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이모티콘을 띄웠다.
“왜 그래?
[배탈 날 것 같아서요. ㅠ_ㅠ]
틴달로스는 기억하고 있었다.
카이진 항구도시에서 Lv140 라이프베슬을 먹고 배탈이 났던 적을.
그때 생명력 회복 포션을 마신 뒤 속을 비운 덕분에 간신히 복통에서 벗어났었다.
“아, 맞다. 레벨에 맞춰야지.”
[끄덕끄덕.]
‘귀엽네.’
자신의 그림자 위로 떠올라 있는 문자 메시지를 본 한성은 실소를 흘렸다.
“걱정하지 마라. 보관용이랑 섭식용은 구분지어 줄 테니까.”
틴달로스는 아공간 내부에 아이템을 보관할 수 있는 인벤토리가 있다.
어디 그뿐인가?
무려 소환수들까지 보관해서 수송할 수 있었다.
다만 흡수는 달랐다.
틴달로스가 안전하게 아이템을 먹기 위해서는 레벨에 맞춰서 줘야 했다.
현재 자기 레벨보다 높은 걸 먹이면 지난번 라이프베슬같이 배탈이 날 수 있었다.
‘흠. 이걸 다 챙겨 갈 수 있으려나?’
장비들 중에서는 인벤토리 칸을 많이 차지하는 것들도 있었다. 무기 같은 경우 한 개가 대부분 1~3칸을 차지한다.
현재 한성의 인벤토리 소지 한도 칸수는 120칸.
최대한도 무게는 약 100kg정도 된다.
철제 갑옷 하나가 1~20kg 정도 되고, 건틀렛이나 검 같은 것도 2~3kg 정도 되니 생각보다 많이 가지고 다닐 수 없었다.
거기다 한도까지 아이템을 들게 되면 이동속도나 움직임이 느려진다.
그래서 되도록 한성은 인벤토리를 가볍게 들고 다녔다.
그 때문에 부츠에 붙어 있는 무게 감소 옵션은 필수적이었다.
“마스터. 파카는 소환 안해영?”
‘헉!’
순간 옆에서 바지를 잡아당기는 루루의 말에 한성은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 녀석을 소환하는 걸 잊고 있었네.’
아무래도 흑풍도는 위험한 전장이다 보니 골드 알파카를 소환하는 걸 잊고 있었다.
한성은 인벤토리에서 골드 알파카를 꺼냈다.
[Lv135 골드 알파카가 소환됩니다.]
잠시 후 한성의 눈앞에 휘황찬란한 황금빛 털을 가진 고오급 레전드 등급 알파카가 모습을 드러냈다.
“파카야. 여기 있는 장비들 챙겨라.”
오래간만에 파카를 소환한 한성은 명령했다.
그러자.
메헹!
파카가 고개를 옆으로 휙 돌리는 게 아닌가?
‘뭐지? 이 녀석 미쳤나?’
생각지도 못한 파카의 행동에 한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파카에게 한 소리를 하려고 하는 찰나.
[당신의 애완동물 파카가 삐쳤습니다. 현재 친밀도가 대폭 하락한 상태이기 때문에 당신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현재 친밀도: 60/100]
‘헐?’
눈앞에 떠오른 안내 메시지 한성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소환 좀 안 해 줬다고 삐지다니.
하긴, 그동안 좀 파카를 잊고 지내긴 했었다.
요즘은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 관련 미션을 수행하느라 미처 파카를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이건 다 틴달로스 때문이네.’
한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틴달로스는 팔방미인이었다.
아이템 보관도, 소환수 수송도, 심지어 전투도 할 수 있었다.
어디 그뿐만 인가?
이모티콘 귀엽지, 문자도 귀엽지, 하는 짓도 귀여웠다.
거기다 파카가 할 수 있는 일은 틴달로스도 할 수 있었다.
성격만 놓고 봐도 파카보다 틴달로스가 나았다.
파카는 기분이 나빠지면 아무데나 침을 찍찍 내뱉으니까.
“야, 파카야. 너 삐졌냐?”
메헹!
한성의 말에 파카는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단단히 삐진 모양.
“마을 가면 맛있는 거 사 줄게. 기분 풀어라.”
메…….
순간 파카는 마음이 흔들렸다.
지금까지 강압적이거나 부려 먹듯이 거칠 굴리던 주인이 거의 처음으로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신을 불렀기 때문이다.
‘좋아. 먹히는군.’
역시 동물은 동물.
먹을 거에 약하다.
여기서 쐐기를 박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소환 좀 안 해 줬다고 삐지는 거 아니다? 너도 사내라면 그런 걸로 삐지면 되겠냐? 마을 가면 내가 너 좋아하는 최고급 풀밭 삼종 세트 사줄 테니까 지금은 내 말 좀 들어. 알았지?”
은근히 회유하는 어조로 말하며 한성은 알파카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 정도로 주인인 자신이 숙이고 들어갔는데 설마 펫이 거부를 하겠는가!
[애완동물 파카의 친밀도가 5 하락합니다.]
‘아니, 왜!!!’
한성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친밀도가 하락하다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사내답게 행동하고 알파카가 좋아하는 풀도 사 주겠다는데!
“마스터.”
그때 옆에서 루루가 한성의 바지를 잡아당기며 불렀다.
“파카. 남자 아니에영. 여자에영.”
“이런 미친…… 헙.”
루루의 설명에 욕이 튀어나올 뻔한 한성은 가까스로 입을 막았다.
옆에 루루가 있는데다가, 눈앞에 있는 파카가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처럼 글썽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구 파카는 풀보다 좋아하는 거 있어여. 고기에영.”
“아니 무슨 알파카가 고기를 왜 먹어! 풀을 뜯어야지! 알파카 초식계 아니야?”
“우리 파카는 육식계 여동생이에영.”
“크헉!”
순간 한성은 자기도 모르게 비틀거렸다.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원 놈들을 상대하면서도 비틀거린 적 한번 없었다.
하지만 지금 한성은 원투 더블 펀치를 다이렉트로 맞은 기분이었다.
파카가 육식계 여동생이라는 사실이 원 펀치.
그리고 그 말이 루루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에서 투 펀치.
원투 펀치에 KO가 될 것 같은 기분.
거기다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양손을 허리 뒤에 대고 온 몸을 좌우로 귀엽게 흔들며 루루는 한성을 다리 밑에서 올려다봤다.
파닥파닥.
등에 달린 귀여운 박쥐 날개도 움직이면서.
“그리구 루루도 육식계 여동생이에요. 앙!”
덥석.
순간 루루는 한성의 오른손을 작은 입으로 깨물었다.
우물우물.
루루는 한성의 손을 이리저리 깨물며 맛을 봤다.
‘크윽!’
귀여운 루루의 모습에 한성은 심쿵사 할 것 같았다.
“헤헤. 마스터. 마시쪄영.”
몇 초 후, 루루는 의미불명의 말을 남기며 뒤로 물러났다.
할짝할짝.
그리고 고양이처럼 혀로 손가락을 핥으며 한성을 바라봤다.
‘뭐, 뭐지?’
그 모습을 본 한성은 자기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루루에게서 디아나의 잔상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 일단.’
한성은 고개를 돌려 파카를 바라봤다.
우선은 삐진 파카보터 달래고 봐야 했다.
그래야 이곳에 있는 장비들을 다 챙겨 갈 수 있을 테니까.
“우리 귀여운 파카야?”
메에. 메에엑.
한성의 부름에 파카는 고개를 흔들었다.
“파카가 이야기하기 싫데요. 혼자 있고 있으니 나가 달래요, 마스터.”
옆에서 루루가 파카의 말을 번역해 주었다.
‘아이고, 머리야.’
한성은 이마에 손을 대며 골치 아픈 표정을 지었다.
설마 철석같이 수컷이라고 믿었던 파카가 암컷이었다니!
대체 어디서부터 달래 줘야 할지 막막했다.
마음 같아서는 디아나에게 도움을 구하고 싶을 정도.
“마스텅. 루루가 도와줄까영?”
그때 한성의 영원한 스피드 웨건, 흑기사, 구원투수가 등판했다.
다리 밑에서 들려온 구세주의 목소리에 한성은 루루를 바라봤다.
‘불안하다.’
그 직후 엄습해 오는 불안감.
한성의 눈앞에서 루루는 작고 붉은 혀로 입술을 핥으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순간 한성은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떠올랐다.
‘이거 완전 리틀 디아나네.’
루비처럼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루루에게서 한성은 점점 더 디아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 그럼 도와줄래?”
“네. 대신 나중에 루루 부탁 들어주셔야 돼영?”
붉은 루비 같은 눈을 빛내며 루루는 한성을 향해 귀여운 미소를 지었다.
‘아, 이거 위험한데?’
한성은 지금 루루가 짓고 있는 표정을 본 적이 있었다.
다름 아닌 디아나가 자신에게 무언가 위험한 부탁을 할 때 짓던 미소였으니까.
‘뭐 그래도 루룬데 괜찮겠지.’
한성은 애써 디아나의 잔상을 루루에게서 지워 냈다.
그리고 어차피 루루는 아직 아이였다.
마계의 하급 마족이고, 나이도 어리다.
아무리 디아나처럼 보인다고 해서 위험할 리는 없을 터!
“알았어. 무슨 부탁이든 들어줄게.”
“정말요? 정말 무슨 부탁이든 들어주실 거에영?”
한성의 대답에 루루는 환하게 웃었다.
“응. 루루 부탁이면 뭐든지.”
루루의 미소에 넘어간 한성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사실 한성에게 있어서 루루는 참 고마운 존재이지 않은가?
루루 덕분에 부가적으로 동영상 매출이 수백만 원 이상 나온 적도 있었으니까.
“루루 부탁 기대하고 계세요. 헤헷!”
마치 디아나가 빙의한 듯 한 미소를 지으며 루루는 한성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루루는 파카를 향해 다가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한성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괜찮겠지?’
무언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성은 고민을 날려 버렸다.
[당신의 애완 펫 알파카의 친밀도가 상승합니다.]
루루가 무슨 마법을 부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파카의 친밀도가 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 * *
삐진 파카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결국 한성의 의도대로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의 비밀 창고는 텅텅 비워지기 시작했다.
‘잘하고 있군.’
틴달로스는 그림자를 뻗어서 먹을 것(?)들을 선별하고 있었고, 루루에 의해 달래진 파카는 비밀 창고를 오가며 유니크 등급 장비들부터 인벤토리에 채워 넣고 있었다.
‘그럼 좀 더 요새를 탐험해 볼까? 찾아야 될 사람도 있고.’
“레이몬. 나 이제 지하로 가 볼 건데 넌 어쩔래?”
[나는 여기 남아서 장비를 좀 더 찾아보고 싶다. 보조로 쓸 무기가 있으면 좋을 것 같으니까.]
“그럼 루루는?”
한성은 루루를 돌아보며 말했다.
“루루는 마스터 따라 갈래여!”
다다다.
찰싹!
루루는 말하기 무섭게 부리나케 뛰어오더니 한성의 등에 거북이 등껍질처럼 들러붙었다.
루루를 등에 업은 한성은 레이몬을 바라봤다.
“그럼 넌 여기 남아서 쟤들 좀 지켜라. 특히 파카 좀.”
[맡겨 둬라.]
어두운 투구 안에서 레이몬의 눈이 살짝 휘어졌다.
[저 애완동물이 삐지지 않게 내가 잘 지키도록 하지. 누구와 다르게 말이야.]
“그러다 나한테 맞는 수가 있지…….”
[흥. 걱정은 필요 없다. 이제 더 이상 너와 볼일은 없을 것 같군. 그럼.]
레이몬은 한성에게서 쿨하게 몸을 돌리며 비밀 창고 내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저, 저, 싸가지 없는 거 보소.’
레이몬의 행동에 한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맞아도 저놈의 성격만큼은 고쳐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럼 우리끼리 나갈까?”
“네!”
한성은 루루를 데리고 비밀 창고를 나섰다.
“마스터. 우리 지하로 내려가영.”
“지하에? 왜?”
루루의 말에 한성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지하에서 루루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와서영.”
“지하에서?”
한성은 가만히 귀를 기울여봤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그러자 루루는 배시시 웃었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내려가 보시면 아실 거에영. 지하로 가면 루루가 힘을 많이많이 써야 될 것 같아요. 헤헤헤.”
해적선 카트리나의 선장실 문밖에서 루루가 했었던 일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