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
< 내 언데드 100만 >
제156화 쿠로네코
하지만 그건 무리였다.
외부에서 누군가가 구출하러 와준다니.
정말 꿈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곳은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의 거점.
흑풍도였다.
찾는 것조차 어려운 데다가, 설령 찾아낸다고 해도 요새성까지 침투하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자력으로 탈출하는 것 역시 불가능에 가까웠다.
곳곳에 감시대가 설치되어 있었으니까.
‘적어도 그녀들만이라도…….’
크리스티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에는 그녀를 비롯한 방문자들과 켈트인 여해적들이 붙잡혀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녀들만큼은 구하고 싶었다.
티르 나 노이에서 그녀들은 가족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크리스티나는 이를 악물고 감옥 문 앞까지 다가갔다.
철컥.
하지만 역시나 육중한 철문은 굳건하게 잠겨 있었다.
“…….”
크리스티나는 절망감에 주저앉았다.
철문이 잠겨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희망을 걸어 본 것이었지만 부질없는 행동이었다.
“……?”
순간 크리스티나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왜 입구 앞에 아무도 없지?’
철문에는 작은 쇠창살이 창문처럼 있는데 그곳을 통해 바깥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이전에는 그 쇠창살 사이로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원 두 놈이 항상 들여다봤었는데 지금은 없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지하감옥이 한번 크게 흔들리고 키라 히데키가 얼굴을 찌푸리며 나가던 것을 크리스티나는 기억해냈다.
아프로디지아 때문에 정신이 없던 상황이라 이제야 기억난 것이다.
쿠구구구구궁!
그 순간 크리스티나의 생각을 뒷받침하듯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지하감옥이 흔들거렸다.
“설마?”
갑작스럽게 생긴 이변에 크리스티나는 사라진 희망을 다시 가지기 시작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보면 흑풍도의 요새에 무슨 일이 생긴 건 확실해 보였으니까.
그 말은 곧 어쩌면 누군가가 구하러 와 줬을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그 생각에 크리스티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 * *
“뭐냐, 저건?”
한성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부활실 중앙에 있는 몬스터를 바라봤다.
Lv150 쿠로네코.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에서 레벨이 가장 높은 키라 히데키보다도 더 높다.
그리고 한눈에 봐도 굉장히 강해 보였다.
도저히 칭호처럼 귀여운 애완동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전체적인 생김새는 호랑이를 닮았다.
다만, 어깨 높이가 약 1미터 50센티나 되고 몸길이는 4미터나 되었다.
야생 호랑이보다도 훨씬 더 큰 크기다.
그뿐만이 아니다.
무려 50cm 길이를 가진 송곳니를 가지고 있었으며, 옆구리에는 둥근 칼날처럼 생긴 검은색 뼈가 돌출되어 있었다.
거기다 다리에도 검은색 뼈칼이 튀어나와 있어 굉장히 위험해 보였다.
쿠로네코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큰 데미지를 입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귀여운 애완동물이라니?
‘쿠로시마 놈들, 사기 치고 앉았네.’
눈앞에 있는 쿠로네코라는 웃기지도 않은 이름을 가진 몬스터를 노려보면서 한성은 속으로 혀를 찼다.
“마스터, 무서워여.”
그때 루루가 날개를 바들바들 떨며 한성의 다리 뒤로 숨었다. 귀여운 고양이 같지 않은 모습의 쿠로네코가 흘리고 있는 살기에 겁을 집어 먹은 것이다.
하긴, 그럴 수밖에.
현재 루루의 레벨은 130이었다.
처음 한성이 흑풍도에 상륙했을 때의 레벨은 125였지만 지금까지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원들을 때려잡으면서 수차례 레벨업을 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루루뿐만이 아니라 한성의 소환수들도 싸우는 와중에 강해졌다.
거기다 스텟 분배도 완료한 상황.
하지만 눈앞에 있는 쿠로네코의 레벨이 150이었기에 루루는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괜찮아.”
한성은 빙긋 웃으며 오들오들 떨고 있는 루루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쿠로네코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사이 한성의 얼굴은 무섭게 변했다.
‘감히 루루를 떨게 만들어?’
새까맣고 덩치 큰 고양이 주제에 루루를 무섭게 만들다니!
용서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부활실에는 쿠로네코만 있지 않았다.
“네놈이 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쿠로네코 너머로 이미 부활해 있는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원들이 있었던 것이다.
‘피라미들뿐이군.’
그들의 레벨은 대부분 130 초반.
140레벨에 근접해 있는 간부들은 보이지 않았다.
숫자도 열다섯 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들은 쿠로네코 뒤에서 한성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성의 손에 자신들의 클랜 마스터와 부마스터가 매장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거기다 한성의 앞에 서 있는 레이몬과 라이도 요주의였다.
‘그럼…….’
“틴달로스.”
[네! >_<]
한성의 그림자 위로 귀여운 문자와 이모티콘이 떠올랐다.
그 직후 한성의 앞으로 그림자가 쭉 뻗어 나가며 넓어졌다.
크르르.
그러자 쿠로네코가 한성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넓게 펼쳐진 그림자 속에서 해골 병사들이 푸른 안광을 빛내며 빠르게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본 아머로 무장하고 각각의 손에는 각 병과에 맞는 본 소드와 본 스피어로 무장한 해골 검병과 창병들.
해골 검병 20기와 해골 창병 10기였다.
그 뒤로 해골 궁병 10기가 본 애로우를 장전하며 전투 준비에 들어가고 있었다.
‘역시 미리 준비해 놓길 잘했군.’
부활실에 도착하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원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걸 보고 미리 해골 병사들을 틴달로스에 넣어서 수송해 왔던 것이다.
“쳐라.”
한성의 명령에 해골 검병들과 창병들이 각 병과에 맞는 구호를 외치며 쿠로네코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슈슈슈슉!
그 뒤로 해골 궁병들이 하얀 본 애로들을 날렸다.
크아아아아아앙!
해골 궁병들의 공격에 이름만 귀여워 보이는 쿠로네코가 포효를 길게 내질렀다.
그리고 지면을 박차며 뛰어올랐다.
카가가강!
공중에서 앞다리를 휘두르자 본 애로우들이 허공에서 나가떨어졌다.
그 직후 쿠로네코는 지면을 향해 낙하했다.
쿠우우우우우웅!
어마어마한 크기의 쿠로네코이기에 그저 펄쩍 뛰어 내려왔을 뿐인데도 수백 킬로그램이 넘어가는 몸무게 때문에 부활실 전체가 뒤흔들렸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쿠로네코가 낙하한 장소였다.
퍼서석!
눈 깜짝할 사이에 해골 검병과 창병 몇 마리가 골다공증에 걸린 것처럼 팔과 어깨가 부서지면서 튕겨져 날아갔다.
그래도 그놈들은 양호한 편이었다.
쿠로네코의 발밑에 깔린 해골 병사들은 아예 작살이 나 버렸으니까.
‘미친, 펫 주제에 뭐가 이리 세? 무슨 보스 몹이냐?’
한성은 기가 막혔다.
진짜 보스급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강했기 때문이다.
130레벨이 좀 넘는 해골 병사들로는 시간을 버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도 쿠로네코가 휘두르는 다리와 꼬리에 해골 병사들이 튕겨져 날아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모습을 본 한성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루루야. 시작해.”
“네.”
한성의 말에 루루는 귀여운 동물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언데드 소환수들에게 광역 버프를 걸기 시작한 것.
덕분에 해골 병사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공격력과 방어력도 올라갔다.
크아아아앙!
그때 쿠로네코가 포효하며 해골 병사들 속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러자 옆구리에 달려 있는 본 블레이드에 해골 병사들이 썰려져 나갔다.
“검검!”
“창창!”
하지만 해골 병사들은 악착같이 쿠로네코를 향해 달려들며 검을 휘두르고 창으로 찔렀다.
아무리 쿠로네코가 강력한 보스급 몬스터라고 해도 가랑비에 옷이 젖는 법이고 다굴에 장사가 없는 법이다.
쿠로네코는 조금씩 데미지를 입어갔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레이트 힐!
“퀵 힐!”
“힐링 워드!”
쿠로네코의 뒤에 있던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원들 중 힐러들이 회복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순간 회복을 비롯해서, 지속적으로 생명력을 회복시키는 마법까지.
해골 병사들이 애써서 깎아 놓은 생명력이 다시 쭉쭉 차오르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
그 결과 쿠로네코는 다시 날뛰기 시작했다.
“네놈의 해골 따위에게 우리 귀여운 쿠로네코가 당할 것 같으냐!”
“넌 이제 끝났어!”
힐러들의 생명력 회복 덕분에 쿠로네코가 해골 병사들을 쥐 잡듯이 때려잡자 클랜원들은 신이 났다.
클랜원들의 목표는 최대한 시간을 끌어서 동료들이 다시 부활하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부활실에 클랜원들이 전부 부활할 테고 레벨이 높은 간부급 인물들도 다시 나타날 테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부활 수정구를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했다.
그 때문에 섣불리 전투에 참가하지 않고 쿠로네코가 싸우는 모습을 뒤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지금처럼 생명력 회복 마법을 날리면 되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이다! 쿠로네코가 있으면 저 건방진 조센징을 때려잡을 수 있어!”
“해골 따위 우리 상대는 안 되지!”
“맞아! 지금이라면……!”
약 열 명 정도 되는 클랜원들은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으로 한성을 노려봤다. 한성이 소환한 언데드 몬스터들은 해골 병사 40기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쿠로네코가 압도하고 있는 상황.
물론 위험해 보이는 마계기사 레이몬과 라이가 있긴 했지만 어차피 둘뿐이었다.
“어차피 저놈들 여기까지 오느라 생명력이 꽤 소모되었을 거야.”
“맞아. 부활실 입구에는 나름 정예인 그 녀석들이 있었지.”
“그 녀석들을 상대로 싸웠으면 마나와 생명력이 상당히 빠져 있을 걸?”
클랜원들은 점점 앞으로 나섰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유리한 건 자신들이지 않은가?
아무리 한성이 강하다고 해도 부활실에 오기까지의 과정에서 지쳐 있을 게 틀림이 없었다.
‘이제야 눈치챘나?’
저들의 말에 한성은 속으로 피식 웃음을 흘렸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외성벽과 내성벽을 공략하면서 마나를 꽤 소비했다. 언데드 몬스터들을 소환하고, 클랜 마스터와 부마스터를 처치했었으니 말이다.
거기다 눈앞에 있는 클랜원들 말대로 부활실 앞에서 대기 중이던 여섯 놈들을 상대하느라 레이몬과 라이는 조용히 회복 중이었다.
“나가자!”
“우리가 잡을 수 있어!”
“조센징 한 놈 때문에 대일본제국의 신민인 우리가 이렇게 숨어 있을 수는 없지!”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원들은 부활 수정구에서 앞으로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원거리 딜러들이나 힐러들은 뒤에 남긴 했지만, 주력 탱커들이나 근거리 캐릭터들은 전부 앞으로 뛰쳐나온 것이다.
후방에는 힐러가 셋, 원딜이 둘 남았다.
그 나머지 열 명 정도 되는 사무라이들과 그 외 근접 직업을 가진 클랜원들은 쿠로네코가 싸우고 있는 곳을 향해 뛰쳐나왔다.
그 순간.
“함정 카드 발동! 체인 오브 바인드!”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한성은 손을 앞으로 내밀며 소리쳤다. 그런 한성의 얼굴에는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원들을 향한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