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언데드 100만-147화 (147/318)

# 147

< 내 언데드 100만 >

제147화  요새 공략전 (1)

쏴아아.

“이쯤이면 되겠네.”

흑풍도의 해변에 도착한 한성은 스펀지 잉여킹에서 내렸다.

짙은 어둠이 깔려 있고 인기척도 없는 으쓱한 곳이었다.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원들이 본거지로 삼고 있는 요새에서 좀 떨어져 있는 외곽지역이었기 때문에 들킬 리 없었다.

“그럼 시작하기전에 준비부터 해 볼까?”

한성은 흑풍도의 중심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불빛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       *       *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이 요새로 사용하고 있는 장소는 작은 성이었다.

외곽은 5미터가 넘는 담벼락으로 둘러 쌓여 있고, 입구는 정문과 후분이 있다. 정문은 육지와 이어져 있으며, 후문은 해로와 이어져 있었다.

정문을 통해 요새에서 흑풍도로 오가며, 후문을 통해 흑풍도에서 나가거나 들어온다.

그리고 성벽 위에 감시대가 있으며, 요새 밖에도 감시초소가 네 곳이 있다.

“야, 넌 왜 이런 감시초소가 있다고 생각하냐? 이거 있어 봤자잖아.”

“그러게 말이야. 이거 있어 봤자 지루하기만 하지 없어도 될 텐데.”

요새 밖의 감시 초소에는 최소 2명이 감시대에 올라 근무를 선다.

그 때문에 지금 레벨이 130대인 카미노케와 모히칸은 시시껄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감시초소 네 곳은 요새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 세워져 있는 감시대로 사실상 무의미했다.

애초에 흑풍도가 숨겨져 있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흑풍도 내에 있는 감시초소에 다른 방문자나 켈트인들이 올 리 없었다.

하지만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의 마스터인 키라 히데키는 용의주도한 인물이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보험으로 감시 초소를 만들었던 것이다.

“야, 닭대가리. 뭐 좀 재밌는 거 없냐?”

“아, 썅. 이 대머리 새끼가 또 시작이네. 모히칸이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 쳐들을 거야?”

“야, 인마. 나 대머리 아니라고. 카미노케라고 부르라고 했지?”

그들은 서로 별시답지 않은 이유로 말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닭대가리라고 불린 사내는 머리가 닭벼슬처럼 생긴 모히칸 헤어스타일이었다.

그리고 카미노케는 여자도 부러워할 정도로 바람에 부드럽게 찰랑거리는 긴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는 현실에선 대머리였다.

티르 나 노이에서 현금 캐쉬질을 해서 최고급 롱 헤어스타일의 가발을 샀던 것이다.

“아, 졸라 심심하네.”

“뭐 좀 재밌는 거 없나.”

서로 말싸움을 해 봐야 기력만 소진한다는 걸 깨달은 그들은 무료한 표정으로 감시대에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두운 밤하늘에는 하얗게 빛나는 달빛과 별빛만이 걸려 있을 뿐이었다.

파라락.

“응?”

그때 모히칸의 귀에 무언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모히칸은 감시대에서 바깥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카미노케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야, 왜 그래? 닭대가리라고 불러서 삐졌냐? 그렇다고 자살은 하는 거 아니다?”

“아, 이 문어대가리 새끼가 미쳤나. 내가 넌 줄 아냐? 자살을 하게. 그보다 너도 이리 와 봐. 아까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어.”

“이상한 소리는 무슨. 네 귓구멍이 이상한 거겠지.”

모히칸의 말에 카미노케는 피식 웃으며 감시대 외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주변을 살폈다.

“아무것도 없는데? 네가 뭐 잘못 들은 거 아니야?”

“그런가? 뭔가 날아다니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여전히 모히칸은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밑을 봤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제야 모히칸은 의심스러운 표정을 풀었다.

“아무래도 내가 잘못 들었는가 보네. 네가 자꾸 나보고 닭대가리라고 해서 환청을 들은 것 아니…….”

순간 모히칸은 입을 다물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카미노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건.

모히칸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눈앞을 바라봤다.

왜냐하면 그곳에 믿기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걱우걱.

모히칸의 눈앞에서 카미노케가 뼈밖에 없는 드래곤의 입안에서 씹혀 먹히고 있었다.

카미노케는 스켈레톤 드래곤의 입 안에서 죽어 갔다.

모히칸이 놀라지 않게 비명 소리조차 지르지 않았다.

밑도 끝도 없는 배려였다.

‘개새끼! 비명이라도 좀 지르고 죽지!’

카미노케가 비명이라도 지르면서 죽었으면 도망이라도 칠 수 있었을 터!

하지만 카미노케의 눈물 나는 배려에 모히칸은 도망칠 타이밍을 완전히 놓쳤다.

툭.

스켈레톤 드래곤은 입 안에서 씹고 있던 카미노케를 내뱉었다. 그리고 모히칸을 향해 입을 쩍 벌렸다.

키이이이잉.

“아, 잠…….”

그 모습을 본 모히칸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번쩍!

콰아아아아아아!

스켈레톤 드래곤의 입에서 발사된 푸른빛이 모히칸을 집어삼키고 그대로 감시대를 꿰뚫었다.

모히칸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빛이 되어 사라졌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의 Lv132 닭대가리 모히칸을 처치하셨습니다.]

“감시 초소를 처리했나?”

스켈레톤 드래곤이 날려 버린 감시 초소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공터.

그곳에서 한성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경고! 당신은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이 점령하고 있는 영지를 공격하셨습니다. 클랜전이 시작됩니다.]

[클랜 섬멸전]

당신은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이 점령하고 있는 영지를 침략하여 클랜전이 발동되었습니다. 제한 시간 안에 승리 조건을 달성하십시오.

1. 승리 조건:

1) 적 클랜원 전멸.

2) ???

2. 패배 조건:

1) 사망.

승리 시 보상: ???

패배 시 페널티: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에게 구속.

클랜전 제한 시간: 12시간.

“흠.”

한성은 눈앞에 떠올라 있는 클랜전 설명창을 바라봤다.

승리 조건은 두 가지.

하나는 적 클랜원들의 전멸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하나는 ???로 무엇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뭐, 대충 뭔지 감이 잡히지만 말이야.’

한성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요컨대, 당초 계획대로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원들을 전부 족치면 나머지 승리 조건도 클리어 할 수 있을 터였다.

거기다 클랜전 시간이 게임 속 기준으로 12시간이라면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그럼 시작해 볼까? 섬멸전을.”

공터에 있는 커다란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있던 한성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한성의 등 뒤에서 푸른 불빛이 어둠 속에서 도미노처럼 켜졌다.

한성의 등 뒤로 수많은 스켈레톤 병사들이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       *       *

한성은 눈앞에 펼쳐져 있는 광경을 바라봤다.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을 공격하기 전, 준비를 철저히 했다.

흑풍도에는 몬스터들이 없기 때문에 시체가 부족했다.

초반에는 오로지 시체 소환 스킬로 제물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현재 시체 소환 스킬 숙련도 레벨은 6이었다.

한 번 소환에 시체를 6구 소환할 수 있었다.

한성은 시체 소환의 쿨 타임을 기다리면서 여러 번 소환한 끝에 스켈레톤 병사들과 드래곤을 소환했다.

초반부터 강하게 밀어붙일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감시 초소에 있는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원들을 처리하면서 얻은 시체들을 제물로 해골 병사들을 더 소환했다.

그렇게 해서 현재 한성의 전력은 해골 병사들이 100기, 스켈레톤 배틀 커맨더 5기, 스켈레톤 드래곤 1기였다.

해골 병사들의 경우, 스킬 숙련도 레벨이 6이었기 때문에 시체 1구에서 6기를 소환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시체들의 소모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스켈레톤 드래곤을 소환하는 게 좀 빡시긴 했지만.’

한성은 성문을 공략 중인 스켈레톤 드래곤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 외에 루루, 라이, 레이몬, 틴달로스도 한성의 곁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특히 루루는 귀여운 동물과 맹수 춤을 추고 있었다.

[당신의 소환수 루루가 고양이 춤을 춥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30% 증가합니다.]

[루루가 강아지 춤을 춥니다. 공격속도가 30% 증가합니다.]

[루루가 호랑이 춤을 춥니다. 적들이 공포를 느낍니다. 공격력이 7% 하락합니다.]

[루루가 사자 춤을 춥니다. 적들이 공포를 느낍니다. 공격 속도가 7% 하락합니다.]

귀여운 동물 춤은 소환수들에게 버프를 걸어 주고, 무서운 맹수 춤은 적들에게 디버프를 걸어 준다.

예전부터 써왔던 기본적인 네 가지 동물과 맹수 춤을 춘 루루는 한성의 곁에 다가왔다.

“헥헥. 마스터 루루 힘들어요.”

네 가지 춤을 연달아 펼친 루루는 스태미너가 떨어졌는지 숨을 몰아쉬며 한성의 다리에 엉겨 붙었다.

“응. 수고했어.”

그런 루루에게 한성은 미소를 지으며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을 본 루루의 눈이 빛났다.

“와, 딸기맛 아이스크림이다!”

한성이 꺼낸 것은 다름 아닌 아이스크림.

티르 나 노이에서는 완성도 높은 요리에 버프가 붙기도 한다. 일정시간 생명력이 조금 증가한다던가, 마나 재생이 조금 더 늘어난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버프가 붙은 요리들은 상당히 비싸다.

‘하지만 루루한테는 안 비싸지.’

한성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딸기맛 아이스크림을 퍼먹고 있는 루루를 바라봤다.

미약하지만 딸기맛 아이스크림에는 스태미나와 마나를 회복시켜주는 버프가 붙어 있었다.

‘그럼…….’

소환수들에게 광역 버프를 걸어 준 다음, 뒤에서 루루가 행복한 표정으로 딸기맛 아이스크림을 할짝할짝거리고 있는 사이, 한성은 전방을 바라봤다.

한성의 소환수들은 지금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원들이 농성중인 성을 공략 중이었다.

하지만 해골 병사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원들이 성벽에서 화살이나 마법을 이용한 원거리 공격에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본 한성은 혀를 찼다.

‘방패병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만약 지금 해골 방패병들이 있었다면 피해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을 터.

그러나 해골 방패병은 스킬 숙련도 레벨이 8이 되어야 쓸 수 있었다.

크라라라라라락!

그나마 스켈레톤 드래곤이 앞에서 날뛰고 있어서 해골 병사들의 피해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해골 병사들을 보호하느라 스켈레톤 드래곤은 몸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요새 성문 앞에서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할 생각인가? 계약자여.]

그때 마계기사 레이몬이 입을 열었다.

그 말에 한성은 턱을 긁적이더니 이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일단 성문부터 박살 내러 가볼까?”

[좋지. 흐흐흐.]

한성과 레이몬은 서로 음산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잠시 후,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한성의 주력 소환수들이 움직였다.

*       *       *

쿠구구구궁!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의 요새성이 뒤흔들린다.

요새성뿐만이 아니라 지하에까지도 진동이 전해졌다.

“뭐지?”

한참 크리스티나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키라 히데키는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진동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하아하아…….”

그리고 그의 앞에서 붉게 달아오른 표정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던 크리스티나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운이 좋았군. 조금 더 했으면 끝났을 텐데.”

키라 히데키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크리스티나가 넘어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키라 히데키의 부드러운 손길에 크리스티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프로디지아의 효과로 작은 자극에도 크게 느껴버리기 때문이다.

“바, 반드시 네놈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크리스티나는 날카롭지만 어딘가 몽롱하게 풀려 있는 눈초리로 키라 히데키를 노려봤다.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군. 뭐, 좋아.”

크리스티나의 말에 키라 히데키는 그녀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댔다.

“내가 다시 돌아오면 기대하는 게 좋을 거다. 방금 전보다 훨씬 더 자극적인 걸 해 줄 테니까. 울면서 빌어도 멈추지 않을 거니까 각오하라고.”

“네놈…….”

크리스티나는 그저 키라 히데키를 노려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키라 히데키는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지하감옥을 나섰다.

요새성이 흔들릴 정도면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뜻하니까.

흑풍도에 지진이 있을 리 없으니 무슨 일인지 직접 확인해야 했다.

그렇게 키라 히데키가 사라진 지하감옥에서 크리스티나는 외로운 숨소리를 토하며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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