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 내 언데드 100만 >
제145화 달콤한 유혹
[카트리나 해적선 선장 에키드나가 당신에게 러브 모드를 허락하셨습니다.]
‘뭐냐, 이건?’
한성은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말없이 바라봤다.
러브 모드(Love Mode).
일명 고자 시스템이라고 까이면서도 가상현실 세계 티르 나 노이에서 연인들끼리 사랑을 나누게 해주는 고마운 시스템이지 않은가!
러브 모드가 무엇인지 당연히 한성도 알고 있었다.
‘이게 갑자기 왜?’
한성은 의아한 눈으로 에키드나를 바라봤다.
그녀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몸을 떨고 있었다.
마치 한성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는 듯이.
“무슨 수작이지?”
“그, 그걸 내 입으로 말하게 할 셈이냐?”
한성의 말에 에키드나는 부끄러움에 붉어진 얼굴로 한성을 바라봤다.
아마 셀라스틴이 조금 전 한성의 말을 들었다면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을 것이다.
‘실력이 안 되니 미인계라도 쓸 생각인가?’
한성은 에키드나가 자신을 유혹해서 상황 역전을 꾀하고 있는 걸로 판단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지금 이 상황에서 러브 모드를 걸어온단 말인가?
‘어디 고자 시스템 맛 좀 봐라.’
한성은 속으로 씩 웃었다.
[트레인 님이 러브 모드를 거절하셨습니다.]
“어, 어?”
생각지도 못한 안내 메시지에 에키드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 어째서?”
거의 120% 이상 한성이 몸을 원하는 거라 자신하고 있던 에키드나는 총 맞은 비둘기 같은 표정으로 한성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런 에키드나의 모습을 팔짱을 끼고 느긋하게 바라보고 있는 한성의 얼굴에는 조소가 떠올라 있었다.
‘표정 연기 봐라. 누가 보면 할리우드 배우인 줄 알겠네.’
자고로 여자관계는 조심해야 하는 법이다.
특히 아무 이유 없이 들이대는 여자는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까.
그래서 한성은 지금까지 디아나를 조심스레 대해 온 것이다.
“미리 말하는데 날 유혹해 봤자 역효과야. 내가 원하는 건 다른 거니까.”
“……!”
화아아악!
한성의 말에 에키드나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럼 지금까지 그의 말과 행동은 전부 뭐였단 말인가!
‘날 원하는 게 아니었다고?’
에키드나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에키드나의 마음 따위 알 바 없는 한성은 자신의 목적을 말했다.
“자, 그럼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에 대해 알고 있는 걸 전부 이야기해 보실까?”
그 순간 한성의 시야에 안내 메시지가 주르륵 떠올랐다.
* * *
“흥흥~”
해적선 카트리나의 선실 복도에서 흥겨운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선실 복도에는 푸른빛이 감도는 보라색 머리카락이 다리까지 내려오고, 머리카락 사이로 연보랏빛 뿔이 돋아나 있는 머리 위에 붉은 고깔 마녀 모자를 쓴 루루가 작은 지팡이를 붕붕 휘두르며 걷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검은색 로브 위에 붉은 망토를 두르고 있는 루루는 귀엽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이따금 망토 안에서 뻗어 나온 루루의 검은 날개가 파닥거리는 행동도 귀여웠다.
“마스터를 찾으러 산으로 갈까요? 마스터를 찾으러 바다로 갈까요?”
루루는 오른손에 쥐고 있는 작은 지팡이를 힘차게 휘두르며 선실 복도를 걸었다.
루루의 목적지는 선장실이었다.
여해적들의 감시는 레이몽몽이 맡고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다.
‘디아나 님! 루루, 마스터를 위해서 힘낼게요!’
레이몽몽에게 여해적들의 감시를 넘긴 루루는 왼손을 꽉 움켜쥐었다.
한성과 에키드나가 둘이서 조용한 장소로 갔다는 사실을 루루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성을 도와주기 위해 에키드나에게 마법을 걸어 줄 생각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서큐버스의 힘을 사용할 차례예요!’
지난번 한성이 디아나와 만났을 때 루루는 특명을 받았다.
기회가 생겼을 때 서큐버스의 힘으로 한성을 도와주라고.
바로 지금이 루루는 한성을 도와줄 기회라고 여겼다.
언제나 여자를 피해 다니던 한성이 해적 여선장과 단둘이서 보자고 했으니 말이다.
‘루루는 착해서 기회를 놓치지 않지요. 후후후.’
루루는 한성을 몰래 도와주겠다는 깜찍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바로 에키드나에게 마음이 솔직해지는 마법을 걸어줄 생각이었던 것이다.
‘디아나 님이 가르쳐 주신 마법을 걸어 주면 분명 마스터가 기뻐하실 거예요. 아, 빨리 마스터한테 칭찬 받고 싶다. 헤헤.’
벌써부터 한성에게 칭찬 받을 생각하며 루루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순진무구한 미소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서큐버스의 미소이기도 했다.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선실 복도를 걷고 있던 루루는 어느덧 카트리나 해적선의 선장실 앞에 도착했다.
선장실 앞에 도착한 루루는 조심스럽게 작은 지팡이를 빙글빙글 돌리며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마법의 주문을 외웠다.
“루루피~ 루루팡~ 루루 얍!”
그러자 루루를 중심으로 마법진이 전개되면서 서큐버스 고유 스킬이 시전되었다.
* * *
[당신의 소환수 루루가 서큐버스 고유 스킬 ‘엑스터시 드림’을 발동합니다.]
[카트리나 해적선의 선장 에키드나와 당신은 엑스터시 드림에 빠져듭니다.]
[엑스터시 드림의 효과로 에키드나가 매혹 상태에 빠집니다.]
[일시적으로 에키드나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호감도 MAX.]
[매혹 효과로 에키드나의 욕망이 상승합니다.]
‘헐?’
에키드나로부터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의 정보를 캐내려고 하던 한성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뜬금없는 메시지들이 갑자기 주르륵 떠올랐던 것이다.
그리고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들을 확인한 순간 한성은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며 잠시 눈을 감았다.
‘루루!’
하지만 이내 눈을 뜨며 재빨리 선장실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분명 근처에 루루가 있을 테니까.
“잠깐.”
탁!
순간 선장실 밖으로 나가려는 한성의 팔을 에키드나가 붙잡았다.
“무슨 짓이야?”
한성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뒤돌아봤다.
‘허억?’
뒤돌아본 한성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대로 그냥 갈 생각인 건 아니겠지?”
안 그래도 노출이 심한 에키드나의 선장복이 어깨 아래까지 흘러내려와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그녀의 아찔하고 풍만한 하얀 가슴이 반 정도 드러나 보였다.
하지만 아직 부끄러운 마음이 남아 있는지 왼팔로 가슴을 가리고 있었다.
그런다고 해서 풍만한 가슴을 전부 가릴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내 가슴에 불을 지른 책임은 지고 가.”
‘내가 안 질렀거든?’
참고로 불을 지른 건 루루다.
지금 에키드나는 루루가 시전한 고유 스킬 매혹 때문에 마음의 족쇄가 해방되어 있었다.
한성에게 완전히 반해 있는 상황.
그뿐만이 아니라 매혹에 걸리게 되면 마음속에서 상대에 대한 욕망이 솟구쳐 올라온다.
즉, 상대를 원하게 되는 것이다.
“그냥 보내 줄 생각은 없으니까.”
에키드나는 슬쩍 가슴을 보여 주며 한성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한성의 시야에 또 안내 메시지가 떠올랐다.
[에키드나가 러브 모드를 제안합니다. 동의하시겠습니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에키드나는 한성의 품속으로 파고들며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고자가 될래? 남자가 될래?”
* * *
카이진 항구 도시 근처에 거점이 존재하는 여성 해적 클랜, 그레이스 오 말리.
가상 현실 세계 티르 나 노이의 세계 배경은 중세시대다.
그로 인해 여성 평민 켈트인들이 남성들에게 핍박받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여성 켈트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한 여성 방문자가 해적 클랜을 만든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레이스 오 말리 해적 클랜은 방문자들과 켈트인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성들의 자유를 상징하는 단체가 되었다.
클랜원들은 남성들에게 속박 받지 않고 오로지 여성들 스스로가 미래를 개척해 나간다.
바다를 항해하면서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실상 그레이스 오 말리는 해적 클랜이라기보다 탐사단에 가까웠다.
바다에 숨겨져 있는 보물들을 찾거나, 신비한 바다 생물들을 조사하는 일이 많았으니까.
그뿐만이 아니라 그녀들은 다양한 일들을 한다.
해양 몬스터들을 사냥한다거나, 카이진 항구 도시 앞바다에서 골치를 썩이는 다른 해적들을 견제하기도 했다.
그런 이유들로 많은 수의 여성 켈트인들이 그레이스 오 말리에 몸을 맡겼으며, 미트리아 왕국으로부터 사략선 면허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그레이스 오 말리는 온갖 불법적인 일을 하는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에게 있어서 눈엣가시가 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 그레이스 오 말리 해적 클랜을 창설한 해적 여제 크리스티나 지슈카가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의 손에 붙잡혀 들어갔던 것이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다른 여해적들도 함께.
하지만 지금 에키드나와 한성은 한 가지 문제에 봉착해 있었다.
[엑스터시 드림이 해제되었습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길 바랍니다.]
“…….”
에키드나와 한성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색한 미소를 한 차례 지어 보였다.
“이, 이런 꿈은 처음이네.”
에키드나는 붉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바로 조금 전까지 그들은 루루의 고유 스킬인 엑스터시 드림으로 인해 꿈속에서 뜨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직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에키드나는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미안하게 됐다. 내 소환수 때문에…….”
한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성이 엑스터시 드림이 발동되었다는 안내 메시지를 확인하고 현기증을 느꼈을 때는 이미 꿈속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에키드나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게 된 것이다.
‘루루한테 주의를 줘야겠군.’
한성은 루루를 만나면 주의를 단단히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화제를 전환했다.
“그래서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이 숨어 있는 흑풍도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고?”
“응.”
한성의 질문에 에키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엑스터시 드림 속에서 한성과 에키드나는 뜨거운 사랑을 나누며 서로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 덕분에 한성과 에키드나는 서로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보다.”
하지만 에키드나는 한성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한성의 목에 팔을 감으며 안겨들었다.
부드러운 감촉과 달콤한 향기에 한성은 정신이 아찔해짐을 느꼈다.
“넌 어디서 살아?”
“현실에서?”
“응.”
“알아서 뭐하게?”
“그냥 어딘지 궁금해서. 참고로 나는 영국인이야.”
‘외국인이었냐!’
에키드나의 말에 한성은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어차피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가상 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는 서버 하나로 전 세계인들이 접속하는 월드 게임이었으니까.
참고로 한성에게 빅엿을 날린 블랙 레이븐 클랜의 마스터 슈타인은 독일인이었다.
“영국인? 아쉽네. 나는 한국인이거든.”
“한국? 코리아?”
“어.”
“나 한국 알고 있어. 여행도 여러 번 갔었지.”
‘헐.’
이번만큼은 놀란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자신과 살을 맞대고 있는 여인이 한국을 알고 있는 거야 그렇다 쳐도 여러 번 여행을 왔었다니!
“조만간 한국으로 여행갈 생각인데…….”
에키드나는 뜨거운 눈빛으로 한성을 바라보며 뺨에 키스마크를 남겼다.
그리고 한성의 귀에 입을 대고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라면 끊여 주지 않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