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언데드 100만-144화 (144/318)

# 144

< 내 언데드 100만 >

제144화  러브 모드 발동?

“일단 그거부터 벗고 시작하지?”

한성은 미소를 지으며 에키드나를 바라봤다.

그러자 에키드나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여기서 벗으라니?

이게 대첸 무슨 말이란 말인가!

“뭐, 뭘?”

“부츠에 두 개, 허벅지에 두 개. 내가 모를 줄 알았나?”

“……!”

한성의 말에 에키드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어떻게 알았지?’

에키드나의 부츠와 허벅지에 감아 놓은 가죽 띠 안에는 독이 묻어 있는 작은 칼이 숨겨져 있었다.

사실 그녀는 한성의 말을 들어주는 척을 하면서 뒤통수를 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포이즌 대거로 한성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죽일 수도 없었고.

포이즌 대거로 공격해 봐야 얼마나 데미지를 주겠는가?

다만 한성을 인질로 잡을 정도는 되었다.

그렇게 될 경우 여해적들을 해방시킬 수 있었다.

아니면 포이즌 대거로 공격해 마비 상태로 만들어서 바다에 던지는 방법도 있었다.

어떻게든 에키드나는 지금 상황을 역전시킬 생각이었던 것이다.

적어도 한성이 포이즌 대거를 눈치채기 전까지는.

“깜박했을 뿐이다.”

에키드나는 애써 침착한 모습을 보이며 부츠와 허벅지에 감아 놓은 가죽 띠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숨겨 놓은 작은 칼들을 꺼내 놓았다.

대거라고 하기에도 작은 칼들.

부츠에 숨겨 놓은 칼들은 독이 묻어 있지 않았으며, 허벅지에 숨겨 놓은 칼들은 독이 묻어 있었다.

애초에 적들을 위협하거나 감금되었을 때 묶어 놓은 밧줄을 풀기 위해 숨겨 놓은 칼들이었다.

전투용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럼 이제 가 볼까?”

이제야 완전 무장해제를 한 에키드나를 바라보며 한성은 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       *

해적선 카트리나의 선장실.

에키드나가 집무를 보기 위한 장소다.

그리고 선장실 옆에는 에키드나의 개인 침실이 붙어 있었다.

“좋은 취미를 가지고 있네?”

선장실 한쪽 벽 선반을 바라본 한성의 눈이 빛났다.

선반 위에 고급 와인이 늘어서 있었던 것이다.

‘이거 발렌타인 21년산 아니야? 헐. 이건 30년산이네? 완전 부르주아구만.’

선반에 있는 고급 와인들을 한성은 눈을 빛내며 바라봤다.

그리고 그중에서 작은 와인을 집어 들었다.

“자, 잠깐!”

그때 에키드나가 눈을 화등잔하게 뜨며 소리쳤다.

“왜?”

“그걸로 뭘 할 생각이냐?”

“뭘 하긴. 마실 건데?”

“마, 마신다고!”

순간 에키드나는 총 맞은 비둘기처럼 화들짝 놀라며 한성을 바라봤다.

“뭘 그렇게 놀라. 보니까 이건 얼마 안 하게 생겼는데.”

“차, 차라리 다른 걸 마시는 게 어때?”

“아니, 내가 그래도 양심은 있거든? 발렌타인 30년산같이 비싼 걸 마시자고 할 정도로 개념이 없지는 않다고.”

‘차라리 발렌타인 30년산을 마셔!’

한성의 말에 에키드나는 그렇게 외칠 뻔했다.

한성은 자기 나름대로 에키드나를 배려해서 와인병들 중에서 양이 절반 정도 남고 가격이 저렴해 보이는 걸 골랐다.

하지만 정작 한성이 고른 와인을 본 에키드나는 속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 그럼 내가 선심을 써 주지. 그거보다 좀 더 비싼 걸 고르는 게 어때?”

“아냐, 괜찮아. 고작 와인 가지고 뭘.”

와인 애호가들이 들으면 입에 거품을 물 것 같은 소리를 태연스럽게 말하며 한성은 에키드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실 한성은 와인에 대해 잘 모른다.

선반 위에는 여러 종류의 와인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그나마 좀 유명하다 싶은 발렌타인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유명하다기보다 와인들 중에서 그나마 발렌타인이 저렴한 축에 속해서 널리 알려져 있었기에 한성이 알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한성이 선택한 와인은 샤또 디켐 2001.

샤또 디켐은 황금색을 띤 액체로 풍부한 복숭아와 농밀한 꿀의 달콤함이 입안을 가득 채우는 고급 와인이다.

잘 숙성된 당도를 느낄 수 있는 와인으로 그 가격은 3백 만 원에 가깝다.

발렌타인 30년산보다 약 3배 이상 비싼 가격.

샤또 디켐 2001은 에키드나가 보유하고 있는 스위트 와인들 중에서 가장 비싸다.

그 때문에 에키드나가 평소 조금씩 아껴 가며 마시던 달달한 맛의 와인이었다.

그런데 그걸 지금 한성이 마시려 하고 있는 것이다.

에키드나 입장에서는 속이 타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퐁!

‘아!’

결국 한성이 샤또 디켐의 뚜껑을 따는 모습을 보며 에키드나는 체념했다.

‘다른 많은 와인들 중에서도 왜 하필!’

에키드나는 원망스러운 시선으로 한성을 바라봤다.

가상 현실 세계 티르 나 노이에 존재하는 술들 중 대부분은 현실 기반으로 만들어져 있다.

선장실 한쪽에 전시되어 있는 와인들 또한 실제 현실에서도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때문에 와인 애호가인 에키드나는 중앙 대륙 각국을 배를 타고 여행하면서 달달한 맛의 스위트 와인들을 수집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비싼 것들은 현질을 해야 했지만.

“한잔 받지?”

에키드나는 한성이 내미는 잔을 마지못해 받았다.

한성이 선택한 와인이 가장 비싼 거라고 말해 봤자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칼자루를 쥐고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한성이었으니까.

“무슨 짓을 할 생각이냐?”

“그냥 이야기 좀 하자고.”

“난 둘러말하는 건 싫어한다. 본론부터 말해. 날 어떻게 할 셈이지?”

이미 에키드나도 알 건 다 아는 나이다.

남녀 둘만 있는 방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술을 권하고 있는 상황.

그 뒤에 이어질 일은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그리고 에키드나는 자신이 남자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었다.

현실에서든, 게임에서든 자신의 미모와 몸을 보고 대시해 오던 늑대 같은 남자들을 많이 겪어 왔으니까.

‘어차피 남자들은 다 똑같아.’

에키드나는 속으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한성도 그런 부류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나도 빼지 않겠어.”

한성은 샤또 디켐 2001을 잔에 따랐다.

그리고 단숨에 원샷을 했다.

부들부들.

‘저게 얼마짜린데 원샷을…….’

에키드나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자고로 와인이란 먼저 향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마셔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무슨 소주 마시듯 원샷을 해 버리다니!

“긴장되나?”

‘큭.’

그녀의 속을 모르는 한성의 말에 에키드나는 이를 악물었다.

“원래 처음은 다 그런 법이야. 긴장할 거 없어.”

한성은 에키드나에게 샤또 디켐을 따르며 말했다.

에키드나는 자신의 잔에 와인이 차오르자 단숨에 마셨다.

평소 같았으면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서 마셨겠지만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조금 있으면 눈앞에 있는 사내에게 봉사를 해야 했으니까.

“그럼 이제 시작해 봐야지.”

역시나.

에키드나는 자신을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한성의 말에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래, 와라.’

에키드나는 눈을 감으며 스마트 밴드워치를 조작해 커맨드를 실행했다.

그와 함께 한성의 시야에 안내 메시지가 떠올랐다.

[카트리나 해적선 선장 에키드나가 당신에게 러브 모드를 허락하셨습니다.]

*       *       *

흑풍도 지하 감옥 안.

벽에 묶여 있는 크리스티나는 전신에 식은땀을 흘리며 뜨거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프로디지아의 중독현상 때문이었다.

‘이제 슬슬 한계…….’

그녀는 몽롱한 표정으로 지하 감옥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천장에서 내려와 있는 쇠사슬과 이어진 수갑에 손목이 묶여 있었으며, 발목에도 마찬가지로 바닥과 이어져 있는 쇠사슬과 연결된 족갑에 묶여 있는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쇠사슬이 느슨하게 이어져 있었기 때문에 팔 다리를 움직이는데 불편함은 없었다.

“키라 히데키…….”

크리스티나는 이를 갈며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클랜 마스터인 키라 히데키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크리스티나를 아프로디지아에 중독 시켰다.

하나는 크리스티나의 몸과 마음을 얻는 것.

다른 하나는 그녀가 이끌고 있는 해적 클랜 그레이스 오 말리를 손에 넣는 것이다.

아프로디지아는 키라 히데키의 입장에서 일석이조가 따로 없었다.

가상 현실 게임인 티르 나 노이에서 사랑을 나누려면 상호동의를 해야 한다.

하지만 남자든, 여자든 한쪽이 거부하면 사랑을 나눌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방문자들은 고자 시스템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남가족부에서는 가상 현실 게임에서 성인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는 걸 빌미로 태클을 걸어왔다.

게임에서 성인 콘텐츠를 즐기면 현실에서 실제 여성들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다는 논리로 말이다.

마치, 수십 년 전 문제가 많았던 가상 아청법과 같은 논리였다.

그 당시 아동청소년보호법은 실제 아동 청소년을 위한 법이 아니었다.

현실에서 실제 성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을 잡는 게 아니라, 성인 애니, 만화, 게임, 일본 AV 영상을 올린 사람들 위주로 잡았기 때문이다.

본래 아청법은 영상에 등장하는 실제 미성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실제 아동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법을 반대하는 미친놈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대한민국 아청법과 해외 아청법은 아주 많이 달랐다.

해외 아청법은 실제 아동 청소년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그 당시 대한민국은 거기에 더해서 작가들의 상상 속 가상 캐릭터들을 지키기 위한 조항이 더해졌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실제 피해자가 없는 이른바 가(假)아청물들 성인 애니, 만화, 게임, 일본 AV 영상물을 공유하거나 다운 받은 사람들이 붙잡혔다.

그리고 그 논리도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이해할 수 없었다.

일본 AV를 본 남성들이 밖으로 나가서, 일본 AV에 나온 영상처럼 실제 여성들을 성폭행할 거라는 논리로 시행했었으니까.

즉,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액션 영화를 보거나 FPS 총 게임을 하면 현실에서도 사람을 죽인다는 소리와 다를 바 없는 논리였다.

일반 상식을 가진 정상인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그 탓에 일각에서는 남성들을 잠재적 성범죄냐면서 반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논리로 여남가족부에서 가상현실 게임 티르 나노이의 개발사인 오딘 사에게 제재를 걸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오딘 사는 여남가족부에게 일침을 날렸다.

[성인이 게임에서 성인 콘텐츠를 즐기는데 무슨 문제입니까? 현실과 가상을 혼동하지 마십시오.]

오딘 사 대표의 이 한마디는 게임 업계에 길이 남을 명언이 되었다.

그리고 그 말대로였다.

어차피 게임은 게임일 뿐이다.

현실과 혼동하면 안 된다.

게임에서 사람들을 죽이고 다닌다고 해서 연쇄살인마가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 때문에 여남가족부는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집단으로 길이길이 욕을 먹었다.

“흐윽!”

순간 크리스티나의 몸이 활처럼 휘었다.

그리고 전신에서 땀을 흘리며 뜨거운 숨소리를 토해 냈다.

아프로디지아는 주기적으로 활동한다.

잠잠할 때가 있는가 하면 지금처럼 독 기운이 돌면서 전신을 뜨겁게 만든다.

크리스티나는 살짝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몸을 떨었다.

그럴 때마다 거의 드러나다시피 한 그녀의 풍만하고 아름다운 가슴이 매혹적으로 흔들렸다.

점점 한계에 달해 가고 있는 상황.

하지만 아프로디지아는 흥분 효과가 있는 마법 독약이었기 때문에 해독하려면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남자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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