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
< 내 언데드 100만 >
제142화 여해적들 (2)
‘와, 미친. 스펀지 크라켄 진짜 짱이다.’
한성은 눈앞에 펼쳐져 있는 광경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여해적들을 상대로 스펀지 크라켄은 대활약을 했다.
해적선에서 연신 쏘아 대고 있는 대포는 크라켄에게 별다른 데미지를 입히지 못했다.
거대화한 스펀지 크라켄은 머리와 몸통에 있는 경질화가 된 갑주 같은 피부 때문에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데미지를 입힐 수 없었다.
경질화가 되지 않은 유연한 몸체는 아예 공격을 튕겨 냈다.
결국 해적선의 대포로는 스펀지 크라켄에게 큰 데미지를 주지 못했다.
‘잉여킹하고는 천지 차이네.’
스펀지 잉여킹은 그저 고속이동이 가능한 쾌속 운반선 같은 특징밖에 없었다.
그에 반해 스펀지 크라켄은 어떠한가?
해적선에서 발사되는 대포들를 여유롭게 막으며 다가가 배를 여덟 개의 다리로 휘감고 있었다.
스펀지 크라켄의 상태창 설명에 나름 전투력이 있다고 했었는데 확실히 그런 모양이었다.
한편, 해적선의 여해적들은 지금 공황상태에 빠져 버렸다.
하긴, 문어처럼 생긴 거대 괴수가 배를 휘감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더 있었다.
한성이 스펀지 크라켄에게 내린 명령, 여해적들을 촉촉하게 만들어라는 말이 그녀들에게 크나큰 시련으로 다가왔다.
“꺄아아아아악!”
“이거 놔!”
“서, 선장님!”
해적선 카트리나의 갑판 위는 난리가 났다.
스펀지 크라켄의 다리 두 개가 갑판을 위를 점거한 채, 한성이 내린 명령을 열심히 이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스펀지 크라켄의 다리 두 개가 갑판 위를 헤집고 돌아다니면서 다리에 있는 흡판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먹물을 여해적들의 몸에 뿌려 댔다.
“이, 이게 뭐야?”
“아, 뭔가 달콤한 향기가…….”
스펀지 크라켄의 다리에서 흘러나오는 먹물은 다리로 휘감은 먹잇감이 반항하지 못하도록 기분을 살짝 좋아지게 하는 효능이 있었다.
스펀지 크라켄의 만행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꺅!”
“꺄악!”
해적선 카트리나의 갑판 위의 여해적들에게서 짤막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스펀지 크라켄의 다리가 여해적들의 몸을 휩쓸고 지나갔던 것이다.
“언제까지 비명만 지르고 있을 거냐! 반격해!”
여해적들 중에서 그나마 냉정함을 유지하던 에키드나가 허리에 차고 있던 두 자루의 검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스펀지 크라켄의 다리는 대포알 같은 타격 공격에는 강하지만 날카로운 무기에 의한 공격은 유효했다. 검이나, 창, 도 같은 무기로 충분히 견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 저녁은 문어회다!”
슈카각!
회 킬러인 미나도 싸울아비 장도를 번개같이 휘두르며 스펀지 크라켄을 공격했다.
싸울아비 장도와 두 자루의 쌍검에 스펀지 크라켄의 두터운 다리가 베이면서 안의 먹물들이 사방으로 뿌려졌다.
그녀들의 활약에 스펀지 크라켄은 주춤했다.
그 모습에 여해적들은 하나둘씩 패닉에서 벗어나 무기를 움켜잡았다.
여해적들은 스펀지 크라켄의 다리에 당한 수치심 때문인지 날카로운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크락?]
살기를 흘리며 반격을 준비하고 있는 여해적들의 모습에 스펀지 크라켄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여기서 여해적들에게 반격을 당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마스터인 한성이 스펀지 크라켄의 뒤에서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지금까지 스펀지 크라켄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다 된 밥에 재를 빠뜨릴 수 없었다.
스펀지 크라켄은 신속하게 다음 공격을 실행했다.
슈팟!
“꺄학!”
“시, 싫어!”
“아, 안 돼!”
“그, 그만…….”
갑작스러운 스펀지 크라켄의 공격에 여해적들은 놀란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비명 소리가 조금 이상했다.
어딘지 모르게 들뜬 목소리였다.
하긴, 그럴 수밖에.
스펀지 크라켄의 다리에서 돌기 같은 촉수가 튀어나와 여해적들의 몸을 꽉 묶었던 것이다.
스펀지 크라켄의 다리는 거대화된 지금 꽤 두꺼웠다.
직경 1미터는 족히 넘으니까.
그리고 지금 스펀지 크라켄의 다리에서 밧줄 두께 정도 되는 촉수가 튀어나와 여해적들을 유린하고 있었다.
에키드나와 미나의 활약에 여해적들도 곡선으로 휘어진 시미터를 들고 대항하려고 했지만 스펀지 크라켄의 달라진 공격에 하나둘 무릎을 꿇었다.
스펀지 크라켄의 촉수가 여해적들의 옷 밖으로 드러난 피부를 자극시켰을 뿐만이 아니라 촉수에서도 일전의 검은 먹물들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상황.
여해적들은 붉어진 얼굴로 뜨거운 숨을 토하며 스펀지 크라켄의 촉수에 몸을 맡겼다.
그러다 보니 벌써 반수 이상이 촉수에 포박되어 있었다.
“무슨 저런 음란한…….”
스펀지 크라켄의 노골적인 공격에 에키드나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여기저기서 여해적들의 들뜬 신음소리가 갑판 위를 가득 메웠다.
“이대로 당할 성 싶으냐!”
자신들은 바다를 주름잡는 여해적단 그레이스 오 말리.
미트리아 왕국에게서 사략함대로 인정받은 자랑스러운 해적단 이다.
저런 거대한 문어 따위에게 당할 수 없었다.
에키드나는 쌍검을 고쳐 잡으며 스펀지 크라켄을 향해 엑스 자로 교차하며 휘둘렀다.
“일루전 블레이드!”
그러자 에키드나의 쌍검에서 칼날이 분열되듯 튀어나오며 스펀지 크라켄의 다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쌔애액!
엑스 자의 칼날이 공기를 가르며 쇄도했다.
파파파팍!
에키드나가 시전한 일루전 블레이드가 스펀지 크라켄의 다리에서 튀어나온 촉수들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크라라라락!]
날카로운 스킬 공격에 스펀지 크라켄은 괴성을 내질렀다.
스펀지 크라켄의 촉수뿐만 아니라 다리도 공격을 받아서 상처를 입었던 것이다.
스펀지 크라켄의 유연한 다리도 에키드나의 일루전 블레이드 앞에서는 버틸 수 없었다.
일루전 블레이드는 공격력이 높은 스킬이었으니까.
‘좋아!’
자신의 공격을 맞고 몸부림치는 스펀지 크라켄의 모습에 에키드나는 희망의 빛이 보였다.
드디어 스펀지 크라켄에게 유효타를 먹였으니까.
어디 그뿐인가?
방금 전 공격으로 촉수에 묶여 있던 여해적들 중 절반을 구해 냈다.
반격의 때가 온 것이다.
“지금이다! 모두 공격해!”
에키드나의 외침에 미나를 시작으로 여해적들이 스킬을 시전하며 공격하기 시작했다.
쌔액!
슈아악!
스펀지 크라켄과의 전투에 적응하기 시작한 여해적들은 날카로운 검이나 도뿐만이 아니라 관통 능력이 있는 화살과 마법으로 원거리 공격도 날렸다.
푸푹! 콰콰쾅!
원거리 공격에 당한 스펀지 크라켄의 다리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키에에에엑!]
공격당한 스펀지 크라켄은 비명과도 같은 괴성을 내질렀다.
“손을 쉬지 마! 계속 공격해!”
그 모습을 본 에키드나는 부하들을 격려했다.
드디어 스펀지 크라켄에게 상당한 데미지를 입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대로만 간다면 이길 수 있다! 모두 힘내!”
에키드나와 여해적들은 스펀지 크라켄을 쓰러트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적어도 등 뒤에서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진짜 그렇게 생각하나?”
“헛?”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에키드나는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그녀의 눈앞에 하얀 망토를 눌러쓰고 세련된 디자인의 검은 갑주를 입고 있는 사내가 서 있었다.
사내의 옆에는 이제 열 살쯤 되어 보이는 귀여운 소녀가 아찔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며, 그 옆에는 2미터의 키를 가진 라이컨슬로프가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중이었다.
“누, 누구?”
갑작스러운 상황에 에키드나는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물음에 한성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 너희들이 싸우고 있는 저거 주인.”
그녀의 물음에 한성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뭐, 뭣?”
에키드나는 두 눈을 부릅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금 자신들이 싸우고 있는 크라켄의 주인이라는 소리였으니까.
‘그렇다는 건……!’
에키드나는 상황을 빠르게 판단했다.
요컨대 눈앞에 있는 사내를 잡으면 모든 게 끝난다는 소리였다. 두 자루의 검을 고쳐 잡은 에키드나는 한성을 노려봤다.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들을 건드린 건 실수한 거야.”
“그건 내가 할 소리야. 먼저 공격한 게 누군데?”
에키드나의 말에 맞대응한 한성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틴달로스.”
딱!
틴달로스를 부르며 손가락을 튕기는 한성.
그 직후,
“……!”
한성을 향해 달려들려고 했던 에키드나는 순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게 무슨……?”
* * *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의 거점인 흑풍도.
정확한 위치가 알려지지 않은 흑풍도는 직경이 약 10킬로미터도 안 되는 섬이었다.
그 중심에 요새화가 되어 있는 본거지가 있으며, 흑풍도 외곽에서 중심부로 들어가는 작은 물길이 하나 있다.
그것을 통해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은 본거지에서 바다로 배를 타고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다.
사실 흑풍도 내에는 몬스터가 존재하는 사냥터가 없다.
흑풍도에서 좀 떨어진 해역에 해양 몬스터들이 모여 있는 사냥터가 있긴 하지만 잡기가 까다로웠다.
일단 사냥을 하려면 배를 타고 가야 하는 데다가 공격을 하면 바다 속으로 숨어 버리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원들은 사냥을 하기 보다는 대부분 외부로 나가서 몬스터를 잡거나, 방문자들과 켈트인들을 상대로 골드를 벌고 있었다.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의 본거지인 흑풍도 요새 지하감옥.
작은 방 크기 정도 되는 지하감옥 안에 한 여인이 벽에 묶여 있다.
나이는 이제 20대 후반은 되었을까.
엉덩이까지 길게 내려오는 붉은 머리카락이 굉장히 인상적인 미녀였다. 그녀의 치렁치렁한 붉은 머리카락은 마치 불타오르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강렬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여인의 붉은 눈동자에서는 장소와 다르게 생기가 흘러넘쳤다.
하지만 그녀가 받은 모진 고초의 흔적은 몸 곳곳에 남아 있었다.
초콜릿 피부색을 가진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가 드러나 보이는 옷이 여기저기 찢겨져 있었던 것이다.
‘하아하아…….’
어디 그뿐인가?
남성의 시선을 확 끌어당기는 그녀의 탄력적인 몸은 이따금 떨리고 있었다.
‘비겁하게 약을 쓸 줄은…….’
붉어진 얼굴과 달아오르고 있는 몸을 억누르며 여인은 이를 악물었다.
지금 여인은 아프로디지아라는 독약에 중독된 상태였다.
그녀를 납치한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의 키라 히데키에 의해서.
‘크윽…….’
독약에 중독되어 있는 데다가 구속 상태 및 감금 모드였기 때문에 외부로 연락도 할 수 없었다.
현실과 다를 바 없는 상황.
뚜벅뚜벅.
그때 지하감옥 바깥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프로디지아에 중독된 여인은 전신에서 열기를 내뿜으며 몽롱한 표정으로 지하감옥 입구를 바라봤다.
끼이익.
잠시 후, 지하감옥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