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
< 내 언데드 100만 >
제137화 뜻밖의 인물
한성은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여관방 문 너머에 셀라스틴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세요?”
일단 한성은 그녀가 정말 셀라스틴인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트레인. 셀라스틴이다. 어서 문을 열어라.”
“모르는 사람 같은데?”
“크읏. 역시 그대는 트레인이 맞군.”
‘셀라스틴 맞네.’
문에 붙어 있는 수정구 너머로 셀라스틴의 표정을 살핀 한성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말에 몸을 배배 꼬며 얼굴을 붉히고 있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셀라스틴이었으니 말이다.
끼익.
한성은 말없이 문을 열었다.
복도에서 점점 숨소리가 거칠어져 가는 셀라스틴의 모습에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누군가가 셀라스틴을 보기라도 한다면 일이 복잡해질 수 있었으니까.
“트레인!”
문을 열자 셀라스틴이 반색하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여전해 보였다.
매끄럽게 빛나는 은색 머리카락과 맑게 빛나는 초록색 눈, 그리고 디아나와 마찬가지로 아찔하기 짝이 없는 아름다운 몸매.
그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은색 털로 뒤덮인 늑대 귀는 파닥파닥 거리고 있었으며, 은색 꼬리도 좌우로 살랑살랑 움직이고 있었다.
“무슨 일로 왔냐? 아니, 여긴 대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한성은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자신이 이 여관방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존재는 극소수였다.
정보 길드 블랙 캣츠 내에서도 이리아와 네리아, 사라와 세라 정도밖에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검은 고양이한테서 듣고 왔다.”
“블랙 캣츠?”
한성은 놀란 눈으로 셀라스틴을 바라봤다.
“네가 어떻게 블랙 캣츠를 알고 있는 거야?”
블랙 캣츠는 비밀 정보 길드다.
아무나 블랙 캣츠에 대해 알 수 없다.
같은 정보 상인들이나, 귀족들, 돈 많은 상인들이 블랙 캣츠에 대해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비밀리에 의뢰를 받기 때문에 블랙 캣츠의 실체에 대해 알고 있는 자들은 그야말로 소수였다.
네리아가 비밀 보안을 철통 같이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이리아를 구출하고 바로 아지트를 옮기는 용의주도한 행동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볼일이 있어서 왔어.”
방 안으로 들어온 셀라스틴은 자연스럽게 침대에 걸터앉았다.
“볼일? 블랙 캣츠에?”
끄덕.
한성의 반문에 셀라스틴은 고개를 끄덕였다.
‘블랙 캣츠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건가?’
셀라스틴의 태도를 보면 그렇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디아나 님께 부탁받은 일이 있어서. 블랙 캣츠 길드에 물건 좀 배달해 달라고 하더군.”
“물건?”
셀라스틴의 말에 한성은 식은땀을 흘렸다.
지금 이 시점에 블랙 캣츠로 물건 배달이라면 한성이 알고 있는 한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설마 그거 반지는 아니겠지?”
“정답.”
한성의 말에 셀라스틴은 늑대 귀를 쫑긋거리며 답했다.
그리고 한성은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믿을 수 있다는 인물이…… 설마 셀라스틴이었어?’
이리아가 자신만만하게 믿을 수 있다고 했었던 인물.
설마 그 인물이 눈앞에 있는 셀라스틴이었다니!
한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한성을 셀라스틴은 매끄럽게 빛나는 은색 머리카락을 흔들며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사실 이리아가 믿을 수 있다고 말한 인물은 셀라스틴이 아니다. 그렇다고 셀라스틴에게 부탁한 디아나도 정답은 아니었다.
이리아가 반지를 맞긴 사람은 어둠의 신봉자들과 적대관계에 있는 인물로, 직접 움직이기에는 부담스러워 친분이 있는 디아나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크리스토 백작가의 반지를 카이진 항구 도시에 있는 블랙 캣츠의 수장 네리아에게 운반해 달라고.
그래서 디아나가 한성이 3차 전직을 하기 위해 찾아 왔을 때 미리 말했었다.
조만간에 중앙 대륙에서 셀라스틴과 만나게 될 거라고.
“그럼 이미 블랙 캣츠에 갔다 온 거야?”
“오늘 새벽에 도착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못 만날 뻔했지만 말이야.”
블랙 캣츠 길드원들의 행동은 빨랐다.
사실 빠르다기보다 애당초 인원수 자체가 적은 데다가 짐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아지트를 옮기는데 시간은 그리 많이 걸리지 않았다.
그 때문에 셀라스틴이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텅텅 빈 건물만 보게 되었을지도 몰랐다.
셀라스틴이 도착했을 때는 한창 마무리 작업 중이었으니까.
하지만 다행히 길드원들이 남아 있었기에 셀라스틴은 이리아와 네리아를 만나 운반물품인 반지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있는 장소는 네리아에게 물어본 건가?”
“디아나 님이 안부를 전해 달라고 하시더군.”
“그래? 그럼 이제 얼굴도 봤으니 바로 가면 되겠네.”
“크흣!”
한성의 말에 셀라스틴의 귀와 꼬리가 꼿꼿이 섰다.
“역시 그대는 인정사정이 없구나. 그대를 만나기 위해 나는 바다를 헤엄쳐서 건너왔건만…….”
“뭐?”
셀라스틴의 말에 한성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바다를 헤엄쳐서 왔다니!
이건 대체 무슨 헛소리란 말인가?
“시작의 대륙에서 카이진 항구 도시까지 헤엄을 쳐서 왔다고? 아니 왜? 배가 있는데. 바보 아니야?”
“그, 그렇게 날 칭찬해서 어떻게 할 셈이냐! 트레인!”
“칭찬 아니야!”
하얀 침대 위에서 몸을 꼬며 붉은 얼굴로 기뻐하고 있는 셀라스틴의 모습에 한성은 뒷골이 아파왔다.
‘그리고 애초에 날 보러 온 게 아니라 반지를 전해 주러 온 거 아닌가?’
한성은 이마에 손을 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볼일 끝나면 그만 가는 게 어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뭐?”
한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블랙 캣츠 정보 길드에 반지를 넘겼으니 그녀의 볼일은 끝났을 터였다.
그런데 아직 끝나지 않았다니?
“디아나 님의 전언이다.”
“……!”
셀라스틴의 말에 한성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지금 이 시점에서 전언이라니!
‘나한테 또 뭐 시키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
한성은 가늘게 뜬 눈으로 셀라스틴을 바라봤다.
하얀 침대 위에 걸터앉아 있던 셀라스틴은 몸을 쭉 피면서 조금 전까지 한성이 누워 있던 곳에 드러누웠다.
“하, 따뜻하네.”
역시 늑대의 습성이 있는 것일까.
셀라스틴은 하얀 침대 위에서 혀로 손가락을 낼름낼름 핥으며 한성을 바라봤다.
거기다 평상복 차림인 셀라스틴의 옷은 상의와 하의 모두 옆이 트여 있었다.
그 탓에 하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셀라스틴의 섹시한 옆 라인이 살짝살짝 드러나 보였다.
특히 보일 듯 말 듯한 그녀의 하얀 옆가슴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아니, 매력적이라기보다 위험했다.
어디 그뿐인가?
하얀 침대 위에서 셀라스틴은 뜨거운 눈으로 한성을 바라보며 혀로 손가락을 낼름거리고 있었다.
‘어째 디아나 곁에 있는 여자들은 다 왜 이렇지?’
한성은 자기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눈앞에 있는 셀라스틴 뿐만이 아니라, 루루도 점점 디아나를 닮아 가고 있지 않은가?
“헛짓거리 하지 말고 일어나. 이불에 털 묻는다. 감히 나의 소중한 이불에 털을 묻히려고 하다니.”
한성은 셀라스틴이 누워 있는 하얀 침대 위의 이불을 붙잡고 힘껏 당겼다.
“크으읏!”
하지만 오히려 셀라스틴은 거친 숨을 내쉬며 팔로 몸을 감싸고 침대 위를 굴렀다.
그녀가 구를 때마다 하얀 옆가슴도 함께 흔들렸다.
“나는 이불보다 못한 존재라고 말하는 건가, 트레인!”
“응.”
당연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한성의 말에 셀라스틴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여, 역시 내가 인정한 그대답군. 디아나 님의 명령은 틀리지 않았어.”
“그건 무슨 소리지?”
셀라스틴의 말에 한성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러자 셀라스틴은 붉어진 얼굴 위로 부끄러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디아나 님은 나보고 그대 곁에 머물러 있으라고 하셨다.”
“뭐, 뭐라고?”
순간 한성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한성의 머릿속에서 이런 환청이 들려왔다.
[셀라스틴이 동료로 추가되었다.]
‘아, 안 돼!’
결국 한성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말았다.
* * *
결과적으로 셀라스틴의 말은 희망사항인 걸로 밝혀졌다.
확실히 디아나는 셀라스틴에게 한 가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건 한성의 곁에 있으라는 말이 아니라 블랙 캣츠 정보 길드에 있으라는 말이었다.
디아나와 블랙 캣츠는 어둠의 신봉자들과 적대적인 관계다.
그래서 디아나는 서로 돕기 위해 당분간 셀라스틴을 정보 길드 블랙 캣츠에 파견한 것이다.
그런데 그걸 셀라스틴은 오해했다.
한성이 블랙 캣츠 정보 길드와 함께 움직이는 걸로 착각한 것이다.
“좋은 시간을 방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한성의 눈앞에서 메이드 복을 입고 있는 세라가 표정 변화가 없는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셀라스틴이 방을 점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와 세라가 찾아왔다.
그녀들은 방안에서 침대 위에 잠들어 있는 셀라스틴을 보더니 한성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사라는 더 노골적이었다.
“세라야. 여기 변태가 있어.”
“바보 언니. 그런 말은 본인 앞에서 하는 거 아니에요. 본인이 없을 때 뒤에서 말해야죠.”
“아, 그렇구나. 미안해, 트레인.”
세라의 말에 사라는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표정으로 한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헛소리는 이리아랑 하고 여긴 무슨 일이야?”
“이동한 아지트 위치를 알려 드릴 겸, 셀라스틴 님을 데리러 왔어요. 설마 이런 상황일 줄은 몰랐지만.”
고양이 귀를 쫑긋 세우고 한성을 날카롭게 바라보고 있는 세라의 눈빛이 아프다.
한성의 침대를 점거한 셀라스틴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 빠져들었다.
아무래도 바다를 헤엄쳐서 건너왔다는 말이 농담만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침대에서 잠이 들어 버린 셀라스틴을 한성은 깨울 수도 없었다.
너무 곤히 잠들어 있었으니까.
“그럼 당분간 셀라스틴은 블랙 캣츠에 있는 건가?”
“네. 그렇게 되겠네요.”
한성의 물음에 세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흠.’
한성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난번 이리아 구출 미션을 클리어하면서 이제 급한 불은 꺼논 상태였다.
이리아가 파견 병력의 호위를 받으며 크리스토 백작가로 끌려가는 건 일단 막았으니까.
‘문제는…….’
아직 크리스토 백작가를 찬탈한 이리아의 백부 리차드가 아직 건재하고, 그와 연계되어 있는 어둠의 신봉자들의 목적을 밝혀 내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분명 자신의 손으로 죽였을 터인 레이몬드가 살아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까지 들었었다.
‘그뿐만이 아니지.’
한성은 히든 연계 미션창을 열어 내용을 다시 확인했다.
이리아를 구출하고 난 뒤, 히든 연계 미션이 갱신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