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언데드 100만-135화 (135/318)

# 135

< 내 언데드 100만 >

제135화  반지의 비밀

한바탕 소동이 지나갔다.

한성과 이리아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네리아는 섹시한 토끼 인형 옷을 입었다.

섹시한 토끼 인형 옷은 유니크 등급으로 누구나 입을 수 있었다. 거기다 착용자의 사이즈에 맞게 자동 조절되기 때문에 네리아가 입어도 아무 문제없었다.

“나, 나한테 이런 걸 입히다니…….”

네리아는 붉어진 얼굴로 이리아와 한성을 노려봤다.

“귀여워요, 언니.”

이번에는 이리아가 네리아에게 달라붙었다.

작은 네리아를 품에 꼭 안은 이리아는 조그맣게 속삭였다.

“고마워요.”

“…….”

그 한마디에 네리아는 화를 낼 기운이 사라졌다.

그리고 말없이 이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직 이리아의 나이는 어리다.

그런데 불과 얼마 전 가족이 죽고 집에서 쫓겨서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지금까지 어떤 고생을 해 왔을지 눈에 뻔했다.

그럼에도 이리아는 예전 그대로 웃음을 잃고 있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보이도록 노력하고 있는 거겠지.

“괜찮아. 이제부터는 혼자 놔두지 않을 테니까.”

이리아는 백부인 리차드 백작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카이진 항구 도시가 아닌 다른 루트를 통해 시작의 대륙으로 넘어갔다.

그때 네리아는 이리아를 도와줄 수 없었다.

크리스토 백작가의 전 가주인 라이먼 백작과 연줄이 있던 정보 길드 블랙 캣츠를 리차드 백작이 견제해 왔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어둠의 신봉자들까지 방해를 해 왔다.

그 때문에 네리아는 이리아에게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가 이리아가 카이진 항구 도시를 통해서 크리스토 백작가로 끌려가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이리아를 구할 계획을 세웠고, 그 와중에 한성의 도움을 아주 크게 받은 것이다.

이리아 입장에서는 생명의 은인이었고, 네리아 입장에서는 이리아를 구출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럼…….”

한성은 이리아와 네리아를 바라봤다.

이제 그녀들에게서 이야기를 들을 차례였다.

예전에 사라와 세라에게서 이야기를 듣긴 했었지만 구체적으로는 듣지 않았었다.

카이진 항구 도시에 도착했을 때도 네리아로부터 제대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이리아를 구출하기 위해 이래저래 바빴으니까.

“이제 이야기를 들어 볼까?”

*       *       *

이리아와 네리아로부터 한성은 크리스토 백작가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비극은 영지에서 조용히 지내던 리차드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시작되었다.

이리아의 백부인 리차드는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어둠의 신봉자들과 결탁을 맺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전(前) 가주인 라이먼을 몰아내기 위해 물밑에서 작업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리차드가 병사들을 이끌고 영주성을 뒤집어엎었던 날, 이리아의 부모인 라이먼 백작과 백작 부인은 사망했다.

그 와중에 가까스로 사라와 세라는 이리아를 데리고 영주성을 탈출했으며, 다른 가신들은 리차드에게 붙잡혀 처형당했고 잡히지 않은 몇 안 되는 가신들조차 뿔뿔이 흩어졌다.

그렇게 탈출한 이리아는 사라와 세라를 데리고 시작의 대륙으로 도망쳤다.

카이진 항구 도시에 있는 정보 길드 블랙 캣츠의 도움을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크리스토 백작가에서 추적자들을 파견했기 때문에 여의치 않았다.

백작가에서 가장 가까운 작은 항구 도시로 도망가서 바로 배를 타고 시작의 대륙으로 추적자들을 뿌리쳐야 할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 네리아도 리차드 백작의 견제 때문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리차드 백작의 입김이 닿아 있는 뒷세계 조직들이 싸움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때보다 지금은 뜸한 편이지만, 여전히 싸움을 걸어오고 있었다.

그중 듣고 한성이 놀랐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블랙 캣츠를 공격하던 뒷세계 조직 중 하나가 바로 쿠로시마 패밀리라는 사실이었다.

그 이후는 한성이 알고 있는 대로였다.

시작의 대륙으로 도망간 사라와 세라, 이리아는 매드니스 도적단에게 붙잡혔다.

그 후 사라와 세라는 매드니스 도적단의 지하 감옥에 남겨졌고, 이리아만 노예상인에게 넘겨졌던 것이다.

“과연.”

이리아와 네리아에게 이야기를 들은 한성은 턱을 쓰다듬으며 그녀들을 바라봤다.

“고생이 많았겠군.”

“그녀들이…… 있었으니까요.”

한성의 말에 이리아는 우물쭈물 거리며 사라와 세라를 바라봤다. 이리아가 여기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사라와 세라가 옆에 있어 주었고, 또한 자신을 구하러 올 거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리아의 말대로 사라와 세라가 없었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이리아. 언니는? 언니도 너 찾으려고 노력 많이 했다?”

“아, 알고 있어요!”

이리아는 옆에서 다시 달라붙기 시작하는 네리아를 손으로 밀쳤다.

“이리아가 차가워졌어.”

‘아니 그냥 달라붙지만 않으면 될 것 같은데…….’

네리아의 행동에 한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건 한성뿐만이 아니었다.

이리아와 세라도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직 사라만이 고양이 귀를 쫑긋 세우고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이리아와 네리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 듣지 못한 게 있는데.”

한성은 이리아와 세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왜 굳이 시작의 대륙으로 도망을 간 거지? 그리로 가지 않아도 다른 도망칠 장소는 많지 않나?”

크리스토 백작가에서 비교적 가까운 작은 항구 도시에서 바로 카이진 항구 도시로 갔었어도 되었을 것이다.

크리스토 백작가가 있는 지역은 거리적으로 시작의 대륙으로부터 멀리 있었다.

카이진 항구 도시에서 시작의 대륙은 가깝지만 말이다.

그 때문에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도 자이렌 항구 도시에서 곧장 가까운 카이진 항구 도시로 갔다.

그편이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 입장에서는 더 편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 그건…….”

한성의 질문에 세라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괜찮아.”

하지만 이리아가 손을 들며 제지했다.

“저희가 시작의 대륙으로 간 이유는 따로 있어요.”

“어떤?”

“반지를 숨기기 위해서요.”

“반지? 레이몬드가 찾던 거?”

“레이몬드 경을 아시나요?”

이리아는 살짝 놀란 눈으로 한성을 바라봤다.

레이몬드는 옴팔 기사단의 단장.

현재 크리스토 백작가의 기사들 중 가장 강한 자였으니까.

“응. 내가 그놈 들이박았거든. 죽음의 강을 넘어갈 정도로 말이야.”

한성은 얼마 전 만났던 레이몬드를 떠올렸다.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를 가지고 있던 제법 강한 놈이었다.

폭주한 수정구로 인해 끔찍한 모습으로 변이되었었고.

‘마수화된 놈은 상당히 강했었지.’

그때 기억이 떠오른 한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네. 그때 언니랑 제가 분명히 봤어요.”

한성의 말에 이어 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리아와 네리아의 눈이 커졌다.

“진짜? 레이몬드 그놈 성격이 좀 맛간 놈이긴 하지만 실력은 제법 강한데.”

“저, 정말로 레이몬드 경을?”

네리아와 이리아는 놀란 눈으로 한성을 바라봤다.

“뭘, 겨우 그놈 정도로.”

한성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자 그제야 이리아와 네리아는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눈앞에 있는 방문자 청년은 혼자서 크리스토 백작가에서 파견한 사병 40명과 기사 12명, 거기다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까지 혼자서 처리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에 비하면 레이몬드 하나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놈 살아 있다던데?”

“엑?”

“네?”

하지만 이어진 한성의 말에 사라와 세라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라는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으며, 어지간하면 무표정이던 세라도 눈을 살짝 치켜떴다.

“미드온인가 기드온인가 하는 놈이 그러더라고. 레이몬드가 영지에 있다고.”

“말도 안 돼. 어떻게 죽은 사람이 살아나요. 방문자도 아닌 켈트인이.”

사라는 손을 흔들었다.

레이몬드가 살아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녀는 자신의 눈으로 죽는 모습을 똑똑히 봤으니 말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미드온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어.”

“기드온.”

“기드온이나 미드온이나. 어쨌든.”

자랑스러운 가슴을 내밀며 기드온의 이름을 정정하는 사라의 말에 한성은 화제를 전환했다.

지금 중요한 건 레이몬드의 생사여부가 아니었다.

“그놈이 진짜 살아 있는지, 아닌지는 나중에 조사해 보면 될 일이지. 지금 여기서 이야기해 봤자 해답은 나오지 않을 테니까. 그보다 반지부터 이야기해 봐. 시작의 대륙으로 간 이유가 반지를 숨기기 위해서였다고?”

“네.”

한성의 말에 이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왜?”

“시작의 대륙에는 반지를 맡길 수 있는 믿을 만한 인물이 있어서요.”

“그게 누군데?”

“…….”

한성의 질문에 이리아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리고 이내 이리아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그건 말할 수 없어요.”

‘흠. 좀 의외네.’

한성은 팔짱을 낀 채 이리아를 내려다봤다.

이리아의 나이는 아무리 많이 봐줘도 10대 초반 정도였다.

하지만 그 나이대 소녀에 비하면 꽤 정신이 성숙한 것 같았다. 한성의 질문에 반지를 맡긴 인물에 대해 무의식중으로 대답할 법도 하건만 멈춘 것이다.

아니, 그 전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고 백부 리차드가 그녀를 노리고 있었음에도 이리아는 어딘가 모르게 담담한 구석이 있었다.

두려움에 떨고 있거나, 울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말이다.

‘충격적인 일들을 많이 당해서 정신이 성숙한 건가.’

아무리 티르 나 노이가 가상현실 게임 세계라고 해도 켈트인들의 성격을 일일이 결정하지 않는다.

현실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흐르거나, 자라난 환경에 따라 성격이 결정되어진다.

그런 사실을 봤을 때, 이리아는 꽤 조숙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아마 조만간 블랙 캣츠 길드로 반지가 운송될 거예요. 그분에게 맡길 때, 반지를 블랙 캣츠 길드로 보내 달라고 했었거든요.”

“블랙 캣츠 길드로?”

“네. 믿을 수 있는 운송업자를 소개시켜 주시더군요.”

그렇게 대답하는 이리아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상당히 ‘그분’을 신뢰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믿을 만한 사람인가?”

“어둠의 신봉자들과 적대적인 관계니까요.”

“과연.”

이리아의 대답에 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스토 백작가는 어둠의 신봉자들과 손을 잡았다.

그러니 어둠의 신봉자들과 적대적인 관계라면 이리아를 도와주는데 충분한 이유가 될 터.

“그럼 그 반지의 정체는 뭐지?”

한성은 이리아가 믿을 수 있는 인물에게 맡긴 반지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대충 크리스토 백작가에서 중요한 반지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리아가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시작의 대륙으로 가서 숨겨야 될 정도라니. 아니, 지난번 레이몬드의 발언을 보자면 리차드 쪽에서는 오히려 이리아보다 반지를 더 중요시 여기지 않았던가?

그때 레이몬드는 반지만 찾으면 이리아는 쓸모가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었다.

잠시 후, 굳은 표정으로 이리아의 입이 열렸다.

“그 반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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