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
< 내 언데드 100만 >
제129화 다크 메탈 골렘 (1)
남은 건 기드온과 리버뿐.
파견 병력 중 병사들과 기사들은 전멸했다.
해골 검병들과 데스나이트들이 마무리한 것이다.
“뭐야, 이 난장판은?”
그때 한성의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온 건가?’
한성은 자신의 뒤로 좀 떨어진 곳에서 이쪽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기척을 느꼈다.
“처리해.”
즉시 한성은 레이몬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기드온과 리버는 다급한 표정으로 한성을 올려다봤다.
“자, 잠깐!”
“사, 살려……!”
푹. 푹.
하지만 레이몬의 검은 용서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생명력이 바닥이었던 기드온과 리버는 레이몬이 가볍게 검을 두 번 찌르는 것만으로도 절명했다.
그 순간 한성의 시야에 기드온과 리버가 처치되었다는 안내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쉽네. 이럴 줄 알았으면 얼굴을 가리고 나타날 걸 그랬나?’
리버는 둘째치고 기드온은 옴팔 기사단의 부단장급인 인물이다.
시간을 들여서 족치면 크리스토 백작가에 대한 최신 정보나 운이 좋으면 어둠의 신봉자에 대해 정보를 캐낼 수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이 나타난 이상, 그럴 시간이 없었다.
거기다 무엇보다 기드온과 리버는 한성의 얼굴을 봤다.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과 접촉하는 놈들이다 보니 전부 처리하는 게 안전했다.
만약 그들을 살려 두었을 경우 한성의 인상착의나 얼굴이 알려질 위험성이 있었다.
그 때문에 한성은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이 나타나기 전에 기드온과 리버를 처리한 것이다.
[은빛 눈가면을 착용합니다. 지배력이 10 증가합니다.]
인벤토리에서 은빛 눈가면을 꺼내서 착용하자 한성의 시야에 지배력이 증가했다는 안내 메시지가 떠올랐다. 은빛 눈가면의 옵션은 착용자가 매력이나 지배력 스텟을 가지고 있을 경우 10포인트 증가였으니까.
“늦은 건가.”
이제 목소리는 거의 한성의 바로 등 뒤에서 들려올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은빛 눈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새롭게 구한 마나 회복 옵션이 붙어 있는 칠흑의 망토를 걸친 뒤 망토에 달린 후드를 깊게 눌러썼다.
어두운 숲속에서 후드까지 깊게 눌러쓰자 얼굴의 절반이 가려졌다.
‘아직 블랙 레이븐 클랜원 놈들에게 내가 알려져서는 안 되지.’
지금 만나야 될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 중에서 한성의 얼굴을 알고 있는 녀석이 있다면 일이 복잡해질 수 있었으니까.
설령 얼굴을 모른다고 해도 블랙 레이븐 클랜 전체로 인상착의가 퍼져 나갈 경우 한성의 정체가 들킬 위험성도 있었다.
몸을 돌리며 고개를 들자 블랙 레이븐 클랜의 클랜원으로 보이는 네 명이 보였다.
그들 중 대표로 보이는 덩치가 큰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네놈은 누구냐?”
사내의 질문에도 아랑곳없이 한성은 그들들 둘러봤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군.’
다행이라고 할지 한성이 모르는 얼굴들이었다.
그 말은 저들도 한성이 누군지 모른다는 뜻.
‘그래도 내 얼굴을 모른다고는 장담할 수 없지.’
한성은 망토의 후드를 깊게 눌러썼다.
여전히 블랙 레이븐 클랜에서는 한성을 찾기 위해 혈안이었다. 왜냐하면 블랙 레이븐 클랜에서 나올 때 한성이 창고 열쇠를 슬쩍해 나왔으니까.
그 이전부터 블랙 레이븐 클랜은 한성을 게임에서 말살할 생각이었지만.
‘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날 배신한 건지 반드시 밝혀내 주마.’
아무런 이유도 듣지 못하고 난데없이 자신이 믿었던 클랜으로부터 배신당했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블랙 레이븐 클랜에서 카슈발을 필두로 한성을 무한 PK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실제로 한성은 수십 번이 넘게 죽었었다.
하필 전승을 한 직후라, 레벨 1이 된 상태였긴 했지만……. 그렇게 1 레벨 때 수십 번 넘게 죽다 보니 마이너스 레벨이라는 개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던가?
하지만 한성은 그 상황에서도 도망을 쳤다.
적어도 블랙 레이븐 클랜에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그 때문에 블랙 레이븐 클랜에서는 한성의 신상착의를 클랜원들에게 뿌렸다.
한성을 발견하거든 즉시 포획 혹은 보고를 하라고.
아직 한성은 모르고 있지만 블랙 레이븐 클랜에서 수배서도 돌리고 있는 중이었다.
단지 그 수배서가 최소 레벨 200 이상인 지역에서 나돌고 있다는 게 문제였지만.
설마 블랙 레이븐 클랜에서도 한성이 시작의 대륙에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그리고 블랙 레이븐 클랜에서 오산하고 있는 점이 하나 더 있었다.
이번 임무를 시작하기 전 한성은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를 해 두었다.
눈가면을 쓰는 것뿐만이 아니라, 머리카락까지 염색한 것이다.
오딘 사에서 리얼리티를 추구하고 있기는 하지만 가상 현실 세계 티르 나 노이는 게임이었다.
머리카락이나 눈동자 색을 바꾸는 아이템도 당연히 팔고 있었다.
대한민국 게임 특징 중 하나인 캐시로.
한성은 머리카락을 염색할 수 있는 아이템을 현질했으며, 머리카락을 블루블랙으로 염색했다.
단지 머리카락 색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인상이 꽤 달라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블랙 레이븐 클랜에서는 아직까지 한성이 파이터 계열 4차 직업인 패왕인 줄 알고 있었다.
히든 클래스인 데스브링어로 전직하고, 지금은 히든 3차 직업 데스마스터가 된 한성은 패왕 때와 비교한다면 첫인상과 분위기가 좀 달라져 있었다.
‘뭐, 블랙 레이븐 클랜 놈들을 만나는데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한성은 눈앞에 있는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을 노려봤다.
예전에 비해 지금의 한성은 첫인상이 달라져 있었지만, 그래도 알아볼 경우가 있을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염색뿐만이 아니라 은빛 눈가면과 망토로 얼굴을 가린 것이고.
“네놈이 저지른 짓이냐?”
가장 먼저 한성에게 말을 걸었던 사내, 카드런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주변은 처참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자신들과 합류할 예정이었던 파견 병력들이 차가운 시체가 되어 바닥에 쓰러져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어쩔 건데?”
어차피 발뺌할 수도 없는 상황.
한성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역시.”
한성의 대답에 카드런을 비롯한 다른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은 무기에 손을 가져다 댔다.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군.”
카드런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자신들과 합류하기로 한 파견 병력 오십여 명이 무참하게 학살당했다.
만약을 위해서 정말 한성이 파견 병력들을 때려잡았는지 확인한 것이다.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긴 했지만.
“이 자식 방문자인가?”
“대체 뭐하는 놈이야?”
“보기엔 네크로맨서인 거 같은데…….”
카드런을 제외한 나머지 일행들 또한 한성을 노려보며 한마디씩 던졌다.
아직 주변에는 한성이 소환해 놓은 해골 검병들이 배회하고 있었으며, 바로 옆에는 데스나이트인 마계기사 레이몬도 있었다.
그 때문에 저들은 한성이 네크로맨서라는 사실을 단번에 눈치챘다.
그것도 상당히 강한 존재로.
한편, 한성 또한 눈앞에 있는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을 탐색 중이었다.
‘흠. 네 명뿐인가?’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을 바라본 한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네리아로부터 전해들은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의 숫자는 총 여덟 명.
하지만 지금 한성의 눈앞에는 네 명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미션을 클리어하는데 필요한 중요인물이 보이지 않았다.
이리아 폰 크리스토의 모습이.
“이리아는 어디 있지?”
한성은 단도직입적으로 카드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한성의 말에 카드런은 웃으며 시치미를 뗐다.
그 모습에 한성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지금 상황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이리아 어디 있어?”
“…….”
한성의 말에 카드런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마치 자신들이 이리아를 데리고 있는 걸 알고 있다는 말투.
그리고 크리스토 백작가에서 파견한 병력들을 몰살시킨 점을 봤을 때, 눈앞에 있는 정체불명의 놈은 자신들의 미션을 알고 있다고 봐야 했다.
“네놈이 알 필요는 없지.”
카드런은 자신의 무기를 뽑아들었다.
그의 무기는 미늘창, 핼버드(Halberd)였다.
핼버드의 창끝에는 도끼 모양의 넓은 날이 달려 있고, 그 반대편에는 작은 갈고리 모양의 돌기가 달려 있었다.
공격력에 특화되어 있다는 소리다.
스르릉. 챙!
그 뒤를 이어 나머지 세 명도 무기를 꺼내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와야지. 시간도 없는데.”
‘그 꼬마 예측이 완전 빗나갔잖아.’
한성은 정보길드 블랙캣츠의 수장인 네리아를 떠올리며 속으로 혀를 찼다.
이리아를 납치한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의 숫자는 여덟 명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성의 눈앞에는 네 명밖에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네리아가 예측한 파견 병력과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의 합류 시기는 내일이었다.
그런데 그 전날 밤인 지금 이 시간에 이미 합류하러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네리아의 예측이 빗나간 것이다.
‘토끼 옷 2호 확정.’
참고로 1호는 사라다.
한성은 이번 미션이 무사히 끝난다면 유니크 보물 상자를 열고 나온 섹시한 토끼 인형 옷을 네리아에게 입혀서 시내 한 바퀴형에 처할 생각이었다.
“무슨 시간?”
카드런은 한성을 향해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네놈들이 빼돌린 이리아를 찾아낼 시간. 뭐, 이 근처에 있을 거 아니야? 네놈들의 동료 네 명과 함께.”
한성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파견 병력과 합류하기 위해 저들 네 명만 왔을 리 없었다.
분명 이리아와 함께 왔을 터.
그럼에도 네 명만 접촉을 해왔다는 건 눈앞에 있는 사내가 꽤 용의주도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의미했다.
“눈치가 빠르군.”
“그쪽만 하겠어?”
서로 웃고 있는 카드런과 한성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스파크가 튀었다.
“네놈이 어째서 우리 미션을 방해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경고한다. 그냥 빠…….”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하던 카드런은 재빨리 핼버드를 앞에다 치켜들었다.
카앙!
“큭!”
카드런은 신음 소리를 삼켰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성이 카드런을 향해 블랙 레오파드 건틀렛으로 주먹을 휘둘렀던 것이다.
“무슨 짓이냐!”
카드런은 한성을 향해 소리치며 뒤로 살짝 물러났다.
“뭐래? 내가 아까 한 말 못 들었나? 내가 말했지? 시간이 없다고.”
한성은 피식 웃으며 재차 공격을 하려고 했다.
“자, 잠깐. 나는 할 말이…….”
“닥쳐! 말은 내가 한다. 넌 아무것도 하지 마라.”
한성은 카드런을 향해 다시 달려들면서 소환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눈앞에 있는 네 명을 처단하라고.
‘시간 끌려고 하는 게 다 보인다고.’
한성은 속으로 혀를 찼다.
어쩐지 눈앞에 있는 네 명이 바로 덤벼들지 않는다 싶었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다짜고짜 공격을 해 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있는 사내는 대화를 시도했다.
처음에는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이 네 명이고, 무엇보다 이리아가 없다는 사실에 한성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눈앞에 있는 네 명은 시간 벌기용이라고.
한성은 눈앞에 있는 카드런을 노려봤다.
그라면 이 근방에 숨어서 대기하고 있을 나머지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의 위치를 알고 있을 것이다.
혼자서 무작정 주변을 탐색하는 것보다 눈앞에 있는 놈들을 사로잡아서 이리아가 어디에 있는지 실토하게 만드는 게 더 빨리 찾을 수 있을 터.
그렇다면…….
‘속전속결이지.’
“나와라. 다크 메탈 골렘!”
한성은 카드런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 직후, 틴달로스 안에서 루루의 귀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 지금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