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
< 내 언데드 100만 >
제124화 괴력의 기사, 리버
“뭐, 뭣?”
사라의 대답에 네리아는 뒷목을 부여잡았다.
트레인이 없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설마 도망친 건……?”
“그건 아니야.”
“그건 아닐 거에요.”
네리아의 말에 사라와 세라는 즉시 고개를 흔들며 부정했다.
“그럼 대체 어디에 있다는 거야?”
네리아는 집무실 책상에서 머리를 감싸며 엎어졌다.
이리아를 데리고 있는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이 사라진 데 이어 자신들의 핵심 전력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한성까지 증발해 버렸다.
‘그가 없으면 안 되는데…….’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의 목적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트레인이었다.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이상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이번 구출 작전은 어디까지나 한성이 있었기에 실행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작전의 핵심 인물인 한성이 없으면 구출 작전의 성공률은 한없이 낮아진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네리아는 한성의 존재가 크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하, 이 상황을 대체 어쩌면 좋지?’
책상 위에 엎어져서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던 네리아는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있는 사라와 세라를 바라보던 네리아의 엘프 특유의 긴 귀가 위아래로 파닥거리기 시작했다.
네리아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 엘프의 숲으로 돌아가면 안 돼? 이제 고향으로 귀숲 할 때가 된 거 같은…….”
“응, 안 돼.”
“안 돼요.”
네리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라와 세라는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즉답했다.
“역시…….”
그녀들의 대답에 네리아는 다시 책상 위로 엎어졌다.
그리고 맹렬하게 머리를 돌렸다.
‘애물단지 같은 트레인은 어디 갔는지 알 수 없고, 검은 새대가리 녀석들은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구쳤는지 사라지고 없고. 아, 그냥 다 때려치우고 그리운 고향의 숲으로 돌아가고 싶다.’
책상 위에 엎어져 있는 네리아의 긴 귀가 힘없이 축 늘어졌다. 크리스토 백작가의 이전 가주였던 라이먼이 있었을 때, 정보 길드 블랙 캣츠는 크리스토 백작가와 교류가 많았다.
그 당시 네리아는 크리스토 백작가의 지원을 받아 길드를 성장시킬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리처드가 라이먼을 쳐내고 가주 자리에 앉자 상황은 역변했다.
크리스토 백작가에서 지원이 끊긴 것이다.
단지 그뿐이라면 크게 문제 되지 않았을 테지만, 크리스토 백작가의 권력을 손에 쥔 리처드 백작으로부터 갖가지 압력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규모가 크다고 볼 수 없는 정보 길드 블랙 캣츠는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길드를 운영하는 네리아의 입장을 떠나서 사적으로도 리처드 백작은 같이 할 수 없는 상대였다.
‘최소한 라이먼 백작에게 받은 은혜도 갚아야지.’
하프 엘프였던 네리아가 정보 길드 블랙 캣츠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라이먼 백작의 도움이 컸다.
특히 라이먼 백작의 부인인 메리와는 그 사이가 각별했기에 라이먼 백작과 메리의 딸인 이리아는 네리아에게 있어서 여동생과 다름없었다.
이리아라는 이름도 네리아에서 따왔으며, 이리아가 아기였을 때부터 네리아는 지켜봐왔었다.
그녀에게 있어 이리아는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라이먼 백작의 가족을 풍비박산되게 만든 리처드를 용서할 수 없었다.
‘망할 리처드 자식.’
리처드는 라이먼 백작뿐만이 아니라 이리아의 어머니인 메리 백작 부인까지 처형했다.
순식간에 이리아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은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지금은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에게 납치까지 당해 있는 상황.
‘적어도 이리아만큼은…….’
잠시 머릿속을 정리한 네리아는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 집무실 책상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구출 작전은 예정보다 앞당긴다. 그리고 트레인은…….”
말을 하던 도중에 네리아는 잠깐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트레인이 이번 구출 작전에서 중요한 인물이긴 했지만, 그가 없더라도 자신들끼리 어떻게 해볼 수밖에 없었다.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이 예상보다 먼저 움직인 탓에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으니까.
구출 작전을 성공시키려면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이 크리스토 백작가의 파견 병력과 합류하기 전에 쳐야 했다.
“트레인은 빼고 실행한다. 더 이상 늦출 수 없으니 말이야.”
네리아의 말에 사라와 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마음의 결정을 내렸으니 남은 건 행동뿐이다.
네리아는 트레인에게 정보를 전해 줄 최소 인원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을 쫓아갈 생각이었다.
“갈까?”
그렇게 네리아는 사라와 세라를 대동하면서 집무실을 나섰다.
* * *
“뭐라고?”
크리스토 백작가에서 파견 병력을 이끌고 온 기드온은 눈살을 찌푸리며 거만한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기드온은 리처드 백작이 신뢰하는 인물로 이번 파견 병력의 대장을 맡고 있었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크리스토 백작가의 옴팔 기사단 부단장을 맡은 실력자이기도 했다.
또한 지금 그를 제외한 다른 11명의 기사들 또한 옴팔 기사단의 일원으로 모두 쟁쟁한 실력자들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기드온의 눈앞에 갑자기 나타나 길을 막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청년이 건방진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게 아닌가?
“네놈은 누구냐? 곧 죽을 버러지라도 이름은 들어 주지.”
“싫은데?”
“이 새끼가…….”
시니컬한 한성의 대답에 기드온은 혈압이 살짝 올랐다.
“그냥 미친놈이었군.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버려라.”
크리토스 백작가의 주인인 리처드 백작을 알고 있었고, 혼자서 자신들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기에 무언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놈인 줄 알았다.
그래서 사실 한성이 나타났을 때부터, 기드온은 은밀히 뒤에 있는 부하 몇 명에게 주변을 살펴보라고 손짓을 했었다.
하지만 조금 전 부하들에게서 아무도 없다는 신호를 받았다.
즉, 그 말은 눈앞에 있는 놈은 혼자서 기사 12명과 병사 30명으로 이루어진 자신들을 막아서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있는 청년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자신들을 도발하고 있었다.
기드온 입장에서는 정말 미친놈이 아닐 수 없었다.
“리버. 저 자식 방문자다. 죽이면 근처 마을에서 다시 부활할 테니 그냥 제압해라. 저놈이 뭘 알고 있는지 캐내야 하니까. 부활 장소를 고정시켜서 죽이다 보면 알아서 불겠지.”
기드온은 한성의 정체에 대해 눈치챘다.
하긴, 혼자서 자신들의 앞을 막아선 시점에서부터 같은 켈트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켈트인들은 목숨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으니까.
그에 반해 방문자들은 켈트인들에 비해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방문자들은 죽어도 다시 부활하니 말이다.
‘뭐하는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수한 거야. 감히 우리 앞을 가로 막다니.’
기드온은 입가에 비웃음을 띄웠다.
“맡겨만 주십시오. 기드온 부단장님.”
기드온의 명령에 산적 같은 턱수염을 지닌 기사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옴팔 기사단의 기사답게 은색 갑주로 전신을 무장하고 있었으며, 키가 2미터에 달할 정도로 덩치가 컸다.
푸히힝!
그리고 기드온이 리버라고 부른 기사는 본인뿐만이 아니라 타고 있는 말도 상당히 컸다.
거기다 등에는 대형 양손검, 투 핸드 소드를 메고 있었다.
철컥. 스르릉.
리버는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등에 메고 있던 투 핸드 소드를 한 손으로 뽑아 들었다.
“단칼에 두 조각을 내 주마. 버러지 놈아.”
“지랄하고 자빠졌네. 생긴 건 꼭 산적같이 생긴 놈이.”
“뭐라고?”
피식 웃으며 대답하는 한성의 말에 리버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죽어라, 미친놈아!”
리버는 말위에서 한 손으로 투 핸드 소드를 치켜들며 소리쳤다. 그는 옴팔 기사단에서도 괴력의 소유자로 유명했다.
실력으로 꼽는다면 옴팔 기사단에서 세 손가락에 들 정도였다.
부웅!
리버가 휘두른 거대한 투 핸드 소드가 공기를 가르며 한성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방문자라면 이 정도에 죽지는 않겠지.’
기드온의 명령에 따라 리버는 말로만 죽인다고 엄포를 놓았지 실제로 한성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꽤 데미지를 입을 터.
“본 실드.”
순간 한성과 리버 사이에 하얀 뼈로 이루어진 본 실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직후, 리버의 투 핸드 소드와 본 실드가 충돌하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콰가가가각!
“하! 그냥 미친놈이 아니라 한 가락 하는 미친놈이었구나!”
한성이 자신의 공격을 막아 내자 리버는 덩치에 걸맞게 우렁찬 웃음소리를 흘리며 내려친 투 핸드 소드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그럼 이것도 어디 한번 막아 봐라!”
최초의 일격은 한 손만으로 내려쳤지만, 이번에는 양손으로 내려칠 모양이었다.
리버의 투 핸드 소드가 위로 크게 들려졌다.
그 틈을 노리고 한성은 오른손을 내밀었다.
“본 스피어.”
파아앗.
앞으로 내민 한성의 오른손에서 하얀빛이 터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뼈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성은 그대로 본 스피어를 앞으로 내질렀다.
푸욱!
푸히히히힝!
순간 리버가 타고 있던 전투마가 크게 울부짖으며 앞발을 치켜들었다.
한성의 본 스피어가 전투마의 가슴에 꽂혀 들어갔기 때문이다.
“헛!”
전투마가 앞발을 들어 올리며 뛰어오르자 리버는 당황하며 고삐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가슴에 치명적인 일격을 당한 전투마를 진정시킬 수 없었다.
가슴이 깊게 찔린 전투마는 이리저리 펄쩍펄쩍 뛰었다.
그사이 한성의 양손에 본 스피어가 두 개 더 생성되어 나타났다.
현재 본 스피어의 숙련도 레벨은 6.
본 리터레이션을 시전하지 않아도 최대 3개까지 본 스피어를 만들어낼 수 있었으니까.
한성은 투창과 흡사하게 생긴 본 스피어를 리버를 향해 내던졌다.
쌔애액!
한성의 손에서 시간차를 두고 본 스피어 두 개가 떠나갔다.
본 스피어 두 개는 날카로운 파공성을 내며 리버의 오른쪽과 왼쪽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이런 건방진!”
그 모습을 본 리버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누구던가?
자랑스러운 옴팔 기사단에서 손가락에 꼽는 실력을 가진 기사다.
그런데 눈앞에 허약해 보이는 방문자 놈을 상대로 쩔쩔매고 있는 꼴이라니.
리버는 자신의 프라이드에 금이 갔다.
“날 우습게 보지 마라!”
눈을 까뒤집으며 무너지기 시작하는 전투마 위에서 리버는 괴력을 발휘해 투 핸드 소드를 번개같이 휘둘렀다.
스캉!
빛살처럼 휘둘러진 투 핸드 소드가 날아오는 본 스피어들을 두 조각으로 만들었다.
그 순간.
딱!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한성이 손가락을 튕기며 소리쳤다.
“본 익스플로전!”
콰아아아앙!
조용히 어둠이 내려 있는 숲속에서 어마어마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