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 내 언데드 100만 >
제123화 새장 속에서 사라진 카나리아
[당신의 소환수 루루가 토끼 춤을 춥니다. 이동 속도가 상승합니다.]
[당신의 소환수 라이가 파이어 볼텍스를 시전합니다. 이동 속도가 상승합니다.]
“…….”
한성의 시야에 루루와 라이가 이동 속도를 상승시켜 주는 스킬을 시전했다는 메시지가 주르륵 떠올랐다.
깡충깡충 토끼처럼 뛰어가는 루루.
전방에 파이어 볼텍스를 전개하며 달리고 있는 라이.
‘얼마나 이기고 싶은 거냐, 너희들.’
루루와 라이를 바라보며 한성은 식은땀을 흘렸다.
루루의 토끼 춤은 원래 아군 버프 스킬이지만, 이번에는 시전자 자신에게만 효과를 걸었다.
그리고 파이어 볼텍스는 공격 스킬이지만 공격 대상을 지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파이어 볼텍스의 특징 중 하나인 이동 속도가 상승하는 점만 이용했으니까.
그렇게 루루와 라이는 어둠을 가르는 한 줄기 빛처럼 프리스비를 향해 몸을 날렸다.
콱! 콱!
거의 동시에 루루와 라이의 입이 양쪽에서 프리스비 원반을 물었다.
그 순간!
콰지직!
“……!”
프리스비 원반이 두 조각으로 쪼개지는 게 아닌가?
‘아, 맞다. 저거 싸구려 플라스틱 원반이지.’
한성은 두 조각이 나 버린 프리스비 원반을 바라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가상 현실 세계 티르 나 노이는 현대적인 요소가 가미 되어 있다. 그 때문에 중세 시대에 존재하지 않는 현대적인 카페나, 기타 여러 가게들과 물품들이 존재했다.
굳이 말하자면 옛날 중세 시대를 현대적인 느낌으로 컨버전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 덕분에 실제 중세 시대에서라면 존재하지 않을 현대적인 물품이 존재하고 있었다.
판타지와 마법이라는 이름하에서.
‘아, 운다.’
저 멀리서 두 조각이 난 프리스비 원반을 바라보며 루루가 울고 있는 모습이 한성의 눈에 보였다.
“내 소환수들은 손이 참 많이 간단 말이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성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래저래 손이 많이 가는 소환수들이지만 그만큼 귀여운 구석도 많이 있으니 말이다.
한성은 프리스비 원반을 붙잡고 울고 있는 루루와, 그런 루루를 보고 안절부절못하는 라이를 향해 작은 미소를 지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 * *
늦은 오후 시간.
카이진 항구 도시에서도 점점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오늘 하루 한성은 루루와 라이, 레이몬을 데리고 카이진 항구 도시를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필요한 물품들도 사면서 미션을 수행할 준비를 끝마쳤다.
이제 내일이면 크리스토 백작가에서 파견한 사병들이 카이진 항구 도시에 도착할 터.
‘과연 어떻게 나오려나?’
네리아의 예상으로는 이리아를 호송할 블랙 레이븐의 클랜원들과 합류하면 바로 귀환할 거라고 말했다.
거의 쉬지도 않고 말이다.
‘아무리 전원에게 말을 지원해 줬다고 해도 그렇지 설마 잠시도 안 쉬고 돌아갈까?’
물론 돌아갈 때 필요한 보급은 할 것이다.
하지만 네리아는 거의 즉시 돌아갈 거라고 내다봤다.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이리아의 백부인 리차드 백작이 초조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한시라도 빨리 이리아를 손에 넣고 가주의 증표라고 할 수 있는 반지를 얻고 싶어 한다는 걸 뜻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은 내일이 가장 기습하기 좋은 날이라는 것이었다.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은 둘째치고, 크리스토 백작가에서 파견한 병력들은 그동안의 강행군으로 지쳐 있을 테니까.
‘그럼 슬슬 때가 되었으려나?’
파견 병력이 도착할 예정 시간은 내일 오전이다.
하지만 실제 남은 거리는 하루가 채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밤새도록 달려서 올 정도로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기에 오늘 밤은 노숙을 할 터였다.
거기다 네리아가 예측한 합류지점은 카이진 항구 도시에서 좀 떨어진 장소였다.
그 말인즉슨,
‘파견 병력과 합류하기 전에 블랙 레이븐 클랜원 놈들만 있게 되는 타이밍이 생긴다는 말이지.’
카이진 항구 도시에서 나선 후, 합류 장소로 이동하는 짧은 시간 동안 말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기습하기 좋은 베스트 타이밍이었다.
그 때문에 지금 정보 길드 블랙 캣츠의 길드원들은 카이진 항구 도시의 출입구와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이 숙박하고 있는 호텔을 감시하고 있었다.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이 움직이는 순간, 정보 길드 블랙 캣츠와 한성 그리고 사라와 세라도 움직일 예정이었으니까.
“뭐, 계획대로 되면 좋겠지만 말이야.”
한성은 알고 있었다.
언제나 계획대로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경우는 없다는 사실을.
* * *
그날 저녁.
정보 길드 블랙 캣츠의 집무실에서 네리아의 새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새장 속의 카나리아가 사라졌다고?”
“사육사들도 사라졌답니다.”
“대체 지금까지 뭐하고 있었던 거야!”
부하의 보고에 네리아는 이를 악물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새장 속의 카나리아가 사라져 버렸다.
그 말은 그녀에게 빅 프라블럼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했다.
‘내일 움직일 예정이 아니었던 건가? 아니, 그 전에 대체 어떻게 사라진 거지?’
네리아는 집무실의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생각에 잠겼다.
혹시나 생길지 모를 비상사태에 대비해 전부 손을 써 놨다고 생각했다.
대비는 완벽에 가까웠다.
문제가 생길 경우 즉시 대책을 세울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대체 무슨 수로 우리 눈을 피한 거야?”
“모, 모르겠습니다.”
“모른다고 하면 다야? 대체 무슨 정신으로 감시하고 있었던 거야?
“죄, 죄송합니다.”
네리아의 말에, 블랙 캣츠 길드원 중 한 명인 소환술사 미아가 고개를 숙였다.
미아는 외눈박쥐를 전문으로 사용하는 블랙 캣츠의 감시 요원 중 한 명이었으며 나이는 10대 후반이었다.
그녀의 임무는 이리아가 묵고 있는 호텔의 감시.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과 이리아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외눈박쥐, 모노아이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래서 눈깔 하나짜리 박쥐는 쓰지 말랬잖아!”
“모노아이는 잘못한 거 없어요!”
“뭐야? 눈깔이 하나밖에 없는 게 어디서 잘했다고 대들어!”
“전 눈 두 개예요!”
“네 소환수는 눈깔이 하나잖아! 이 외눈박이야!”
“외, 외눈박…….”
네리아의 일갈에 미아는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아니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뀨…….
미아의 어깨위에 앉아 있던 외눈박쥐, 모노아이도 상처 입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사실 외눈박쥐들은 유능하다.
손바닥만 한 크기에 커다란 눈알 하나와 날개가 있기 때문에 감시와 정찰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파이나 정찰병들이 주로 쓰는 소환수였다.
외눈박쥐인 모노아이도 마찬가지.
모노아이는 미아가 애지중지하며 키운 소환수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함께 지내왔다.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미아는 모노아이와 함께했다.
그녀에게 모노아이는 가족과 다름없었다.
그런 모노아이에게 눈알이 하나밖에 없다고 면박을 주다니!
“마스터 너무해요!”
다다다. 쾅!
결국 미아는 모노아이를 품에 안고 집무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
상처 입은 표정으로 살짝 눈물을 흘리며 뛰어가는 미아의 모습에 네리아는 후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미 미아는 집무실 밖으로 뛰쳐나간 후였다.
“이번에는 마스터가 잘못했어요.”
“알고 있어.”
집무실 한쪽에서 조용히 서 있는 세라의 말에 네리아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네리아도 알고 있었다.
미아와 모노아이가 유능하다는 사실을.
그 때문에 미아의 나이가 아직 어린 편에 속했지만서도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이 묵고 있는 호텔을 감시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겼던 것이다.
그녀가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을 놓쳤다면, 다른 요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미아의 실력은 노련한 감시 요원과 비슷했으니까.
“이리아의 행방은?”
“아직 정보가 들어오지 않았어요.”
네리아의 물음에 세라는 고개를 흔들었다.
블랙 캣츠에 도착하고 나서 그녀는 네리아의 비서가 되어 있었다.
“도시를 빠져나갔을까?”
“몰라요. 다만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해 둬야겠죠.”
“으…….”
네리아의 작은 얼굴에 시름이 생겨났다.
감시 중인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과 이리아가 사라졌다.
대체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이변을 알아챈 것도 사실 우연이었다.
미아를 비롯한 감시자들은 기본적으로 멀리서 관찰한다.
특히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은 방문자들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조심해야 했다.
멀리서 조심스럽게 감지하지 않으면 들키기 쉬웠으니까.
그런데 해가 지고 나서 이리아가 묵고 있는 호텔방에 불이 켜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미아는 깨달았다.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모노아이를 가깝게 접근시켰다.
그 결과 이미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과 이리아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어쩔 수 없지. 그에게 연락해 둬. 일정을 앞당겨야 할 것 같아.”
원래 계획은 내일 오전에 구출 작전을 감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과 이리아의 행방을 알 수 없는 현재로서는 그 계획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해 뒀어요. 바보 언니가 트레인 님을 부르러 갔거든요.”
“역시 세라. 내 비서답군.”
네리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현재 이리아의 행방을 알 수 없었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이리아를 데리고 있는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이 움직였다면 오늘 오후쯤일 것이다.
아직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
그리고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이 갈 곳은 사실 뻔했다.
‘크리스토 영지에서 파견한 병력과 합류하려고 하겠지. 그렇다면 장소는 금방 나와.’
최악의 경우,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이 카이진 항구 도시를 빠져나갔다고 해도 파견 병력들이 오고 있는 길을 역추적해서 가면 될 일이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이 항구도시를 빠져나가서 파견 병력들과 합류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네리아의 예측으로는 아무리 빨라도 내일 새벽은 되어야 했다.
‘아직 승산은 있어.’
지금 당장 뒤쫓아 간다면 파견 병력과 합류하기 전에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벌컥!
그때 네리아의 집무실 문이 열리며 사라가 들어왔다.
“바보 언니. 트레인 님은요?”
세라는 사라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사라는 고양이 귀와 꼬리를 축 늘어뜨리며 대답했다.
“없어.”
* * *
그 시각.
카이진 항구 도시에서 꽤 떨어져 있는 장소.
어둠이 완연히 내려 있는 숲속 공터에 팔짱을 낀 한성이 미소를 짓고 서 있었다.
심연의 심판자 흉갑과 오늘 낮에 도시에서 구한 장비들로 완전 무장을 한 상태였다.
그런 한성의 눈앞에는 일련의 무리들이 있었다.
전투마(馬)를 타고 한성을 내려다보고 있는 약 마흔 명의 기사들과 병사들.
마흔 명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말을 타고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은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성은 그들 앞에서 피식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크리스토 백작가의 리처드라는 놈이 보낸 쓰레기들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