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
< 내 언데드 100만 >
제118화 시크릿 가든
우리동네꽃돼지: 아, 진짜 짜증나! 나 집에 가면 각오해라. 아주 그냥 두들겨 패 버릴 테니까.
나: 헐. 살려 주세요. 님 족발에 맞으면 저 죽어요.
우리동네꽃돼지: 아오, 씨. 한 번만 더 족발이라고 해 봐. 진짜 죽어!
나: 닥치고 올 때 먹을 거나 사와. 그럼 소고기 사 줄게.
우리동네꽃돼지: 소녀, 오늘 라면과 닥터페이커를 푸짐하게 사들고 가겠습니다.
나: ㅇㅇ. 야, 근데 너 스무 살 넘었잖아. 어디서 소녀 드립이야?
우리동네꽃돼지: 내 마음이 그렇다고, 내 마음이!
나: 어…… 그래.
그 말을 끝으로 한성은 카톡을 껐다.
“소녀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나이가 몇 살인데 소녀라니.
한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루루의 동영상으로 짭짤한 수입을 거둔 한성에게 소고기 값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늘 오후에 이재영과 만난 후, 소고기를 잔뜩 사들고 집에 올 생각이었다.
‘오랜만에 고기 파티 좀 하겠군.’
그동안 어머니의 풀밭 세트 채식 식단으로 밥을 먹다가 오랜만에 고기를 먹을 생각에 한성은 벌써부터 군침이 돌았다.
여동생인 최한빛의 태세변환이 빠른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한성과 최한빛 모두 고기를 먹은 지 좀 되었으니까.
꼬르륵.
“아 그 전에 뭐 좀 먹어야겠네.”
결국 한성은 오늘도 어머니의 풀밭 식단을 반찬으로 밥을 먹기 시작했다.
* * *
늦은 오후 시간.
이재영과 만나기로 약속한 술집에 한성은 도착했다.
“여기야.”
술집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이재영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이야? 네가 전화를 다하고.”
한성은 의자를 빼고 앉으며 질문을 던졌다.
“우리 사이에 이유가 있어야 보냐?”
“하긴.”
이재영의 대답에 한성은 피식 웃어 보였다.
그리고 한성과 이재영은 삼겹살과 소주를 한 병 시켰다.
“글은 잘 되어 가냐?”
“흐흐.”
한성의 말에 이재영은 갑자기 웃음을 흘렸다.
그 모습에 한성은 무언가를 직감했다.
“올. 대박이라도 터트렸냐?”
“대박은 무슨. 그냥 좀 잘 됐지.”
이재영은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지난번에는 연재 사이트에서 연락도 안 오고 스토리도 막힌다면서 둘이서 거하게 술을 마셨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꽤 잘 된 모양이었다.
“나 연재 사이트랑 독점 계약했다. 이번에 마케팅도 받기로 했어.”
“진짜?”
이재영의 대답에 한성의 얼굴에서도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이재영으로부터 장르 소설 시장에 대해 종종 이야기를 듣고 있던 탓에 마케팅을 받는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잘 됐네. 네가 연재하는 카오카오 북스 사이트에서 마케팅 받기 힘들다며? 근데 마케팅 받기로 했으면 잘 된 거 아니냐?”
최근 이재영이 연재하고 있는 카오카오 북스 사이트에는 작가들과 작품들 숫자가 많았다.
그에 반해 마케팅을 할 수 있는 작품들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카오카오 북스 사이트에서 마케팅을 받기란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재영이 쓴 작품이 마케팅을 받기로 했다는 게 아닌가?
“그렇긴 하지.”
애써 얼굴에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모양이었지만 이재영은 자꾸만 실실 웃음을 흘렸다.
마케팅을 받는 작품들의 매출이 얼마정도인지 대충이나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까지 이재영이 소설을 쓰면서 받은 금액에 몇 배나 되는 원고료를 한 달만에 벌 수도 있었다.
“그래서 너 잘 됐다고 이 형님을 부른 거냐?”
“그것도 있고.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거도 있고.”
“나한테? 뭐가 알고 싶은데?”
이재영의 말에 한성은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게 게임 판타지잖아.”
“어.”
“그래서 너 인터뷰 좀 하려고.”
“인터뷰는 무슨…….”
한성은 실소를 흘렸다.
지금 이재영이 쓰고 있는 작품은 장르가 게임 판타지 소설이었다.
그래서 이전에도 종종 게임에 대해 이재영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재영이 게임 판타지 소설을 쓰고 있을 때, 한성은 가상 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를 하고 있었으니까.
‘뭐, 좀 바빠서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지만.’
기본적인 정보나 그런 건 초기에 이야기를 해 주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한성도 캐릭터를 키우느라 바빴다.
이재영을 도와주고 싶었지만 한성에게도 목적이 있었다.
게임으로 성공한다는 목적이 말이다.
그래서 생각만큼 자주 이재영과 연락을 하지 못했다.
이재영 또한 소설을 쓰는 작업에 들어가면 보기 힘들었다.
이재영이 한성에게 연락을 할 때는 게임 중이었으며, 한성이 이재영에게 연락했을 때는 작업 중이었으니까.
그렇게 서로 바쁘다 보니 가끔 연락을 주고받았던 것이다.
“이번에 독점 계약을 하고 마케팅을 받기로 하니까 이제 좀 여유가 생기더라고. 그 전에는 좀 힘들었거든.”
아무래도 이제 이재영은 조금 여유가 생긴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마 나 앞으로 좀 많이 바빠질 것 같아. 그 전에 네 얼굴이나 보고 스토리 좀 받아가게.”
“그럼 오늘은 네가 쏘냐? 콜?”
“오키, 콜.”
그렇게 한성은 이재영에게 한턱 받기로 하고 가상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야, 근데 너 시크릿 가든이라고 아냐?”
“아니. 뭐냐 그건?”
“뭐? 티르 나 노이를 하면서 시크릿 가든을 몰라?”
한성의 대답에 이재영은 기가 막힌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스마트 폰을 두들기더니 한성에게 화면을 보여줬다.
“얘네들이 시크릿 가든이야.”
이재영이 내민 스마트 폰 안에는 걸그룹 네 명이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화려하게 빛나고 있는 조명 아래에서 현란하게 움직이며 춤을 추고 있는 아름다운 미녀들.
스마트폰 안에서 화려하게 빛나고 있는 그녀들의 모습에 한성은 넋 놓은 바라봤다.
‘아, 예쁘다.’
특히 네 명의 걸그룹 멤버들의 중심에서 보컬을 맡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한 여성에게서 한성은 시선을 뗄 줄 몰랐다.
“어떠냐? 예쁘지.”
“어? 어, 그러네.”
기습적인 이재영의 물음에 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네 명다 예뻤다.
특히 멤버들 가운데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여가수가 더.
“그런데 갑자기 왜 이걸 보여 준거야?”
“뭔가 이상한 점이 안 느껴지냐?”
“이상한 점? 뭐가?”
한성은 다시 스마트 폰 화면을 바라봤다.
화면 속에서 보이는 무대는 아이돌 콘서트 현장이었다.
이상한 점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어?”
순간 한성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화려한 조명에 가려서 미처 보지 못한 이상한 점을 발견한 것이다.
“야. 이거 설마?”
“그 설마다.”
이재영은 씩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차 보였다.
“티르 나 노이를 하고 있다는 놈이 설마 시크릿 가든을 모르고 있었을 줄이야.”
“…….”
한성은 입을 다물었다.
스마트 폰 화면 속에서 보이고 있는 무대는 현실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가상 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였던 것이다.
콘서트 무대에서 보이는 방청객들은 하나같이 갑주나 로브를 입고 있었다.
그들은 티르 나 노이의 방문자들과 켈트인들이었다.
“실화냐 이거?”
“어. 실화다, 이거.”
한성은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방청객들의 숫자는 어마어마했다.
이 정도 규모의 행사였다면 자신이 모를 리 없었다.
“언제 한 거야?”
“이틀 전에. 그때 이후로 쟤들 완전 떴어. 예전부터 티르 나 노이에서 무대를 열겠다고 했었는데 완전 대박 났지.”
“어디서 했는데.”
“중앙 대륙이지, 어디긴 어디야.”
“그러냐?”
한성은 납득했다.
시크릿 가든이라는 걸그룹이 티르 나 노이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 자신은 시작의 대륙에서 한창 정신이 없을 때였다.
전승을 하고 나서 레벨을 올리고 미션을 수행하느라 바쁘던 때였으니까.
“오딘 사에서 시크릿 가든 얘네들 섭외하겠다고 그렇게 난리를 치더니 결국 된 모양이더라고.”
“오딘 사에서?”
“어. 그리고 이건 소문인데 시크릿 가든 멤버들도 티르 나 노이를 한다고 하더라.”
“걸그룹 아이돌이 말이야?”
“어.”
한성의 말에 이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걸그룹 아이돌이 티르 나 노이를 한다니?
한성은 새삼 티르 나 노이의 인기를 실감했다.
하긴, 티르 나 노이를 즐기고 있는 연예인들이 어디 한둘일까?
외국 할리우드 스타들도 티르 나 노이를 플레이하고 있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니 말이다.
한성은 멤버들 중심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보컬을 유심히 바라봤다.
걸그룹 멤버 네 명 중에서 한성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
나이는 이제 2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웨이브가 진 검은색 머리카락이 안무에 따라 허공에 흩날리고 있었으며, 하얀 피부에 서글서글한 인상이 매력적인 미녀였다.
“왜 관심 있냐?”
한성의 눈앞에서 이재영이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관심은 무슨…….”
한성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여전히 시선은 보컬 여가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네가 보는 눈은 있구나. 얘 우리랑 동갑이야. 이름은 신유선. 시크릿 가든의 리더지. 멤버들이 가장 잘 따르는데다가 성격도 좋아서 팬들이 많아. 그리고 무엇보다 예쁘지.”
“…….”
이재영의 말을 들으며 한성은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그러니까 얘네들이 티르 나 노이를 한단 말이지?”
“어.”
“그럼 다음 공연 일정은 없냐?”
한성의 질문에 이재영은 말없이 실실 웃음을 흘렸다.
“시크릿 가든 팬클럽에 온 걸 환영한다.”
“팬클럽은 무슨.”
한성은 관심이 없는 것처럼 스마트 폰에서 시선을 떼며 고개를 돌려 창문 밖으로 내다봤다.
그런 한성의 행동에 이재영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속이려면 귀신을 속여라. 내가 너랑 같이 지낸 지가 몇 년인데. 벌써 십 년은 넘었구만. 너도 그냥 나랑 같이 시크릿 가든 덕질 하자. 나 요즘 얘네들한테 완전 빠져 산다니까.”
“야! 쓰라는 글은 안 쓰고 아이돌 덕질이나 하고 있냐?”
“응. 괜찮아. 너도 곧 빠져들 거야.”
“지랄.”
한성은 이재영과 티격태격 거리며 대화를 나눴다.
그 사이 주문한 소주와 안주가 나와서 그들은 서로 술을 한잔씩 마셨다.
‘그런데…….’
이재영과 함께 소주를 마시며 한성은 속으로 의아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신유선 옆에 있던 여자애.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데.’
시크릿 가든의 리더이자 메인 보컬인 신유선의 오른쪽 옆에서 열심히 춤을 추고 있는 멤버.
짧은 단발머리 덕분에 상당히 활동적으로 보이는 미녀였다.
‘왜 이렇게 낯이 익은 거 같지?’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일 텐데도 한성은 그녀가 왜인지 친숙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한성의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재영이 자꾸 술을 권하면서 서로 소주를 퍼마시기 시작했으니까.
* * *
그날 밤.
매운 맛이 일품인 쎈라면과 닥터페이커를 푸짐하게 사놓고 소고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던 여동생에게 한성은 등짝 스매시를 맞았다.
깜박하고 소고기를 안 사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한성은 족발에 등짝 스매시를 처맞는 악몽을 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