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
< 내 언데드 100만 >
제116화 변경된 작전
“경비병들이군.”
“맞아.”
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각 도시에는 치안 유지를 위한 경비병들이 있었다.
그들은 도시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사건들과 문제들을 해결한다.
특히 방문자들이 개입되어 있는 사건들이 많기 때문에 각 도시의 경비병들은 상당히 강하다.
도시나 마을 안에서 경비병들은 방문자들을 상대할 때 강력한 버프를 받는다.
그에 반해 경비병들과 조우하고 싸우게 되는 방문자들은 능력치가 하락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방문자들은 도시 안에 존재하는 경비병들을 이길 수 없었다.
‘이런 부분은 게임 같단 말이야.’
한성은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디까지나 오딘 사는 리얼리티를 추구할 뿐이다.
가능하면 현실과 다를 바 없는 세계를 만들려고 하지만, 티르 나 노이는 태생이 게임이었다.
그러니 게임 시스템적인 요소가 있을 수밖에.
“도시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경비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그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군.”
한성의 눈앞에서 네리아의 연두빛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네리아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던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한성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럼 이런 건 어때? 차라리 우리가 경비병들을 움직이는 거지.”
“경비병들을?”
네리아는 고개를 들고 한성을 바라봤다.
한성을 바라보는 호수 같은 푸른 눈에서 흥미로운 빛이 스쳐지나갔다.
“경비병들에게 신고를 하는 거지. 호텔에 어린 소녀가 감금되어 있다고 말이야.”
“과연.”
한성의 말에 네리아는 테이블 위에 있는 커피잔을 들어올렸다.
“좋은 계획이야. 일반적인 납치 상황이라는 가정하에서지만.”
“무슨 문제가 있나?”
“우리도 그걸 생각하지 못한 건 아니야. 다만, 경비병들을 움직이려면 명확한 신분 확인과 증거가 필요해. 그리고 중요한 건 우리에겐 명분이 없지.”
“명분?”
“그래. 명분.”
한성의 말에 대답한 네리아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한성을 바라보며 재차 입을 열었다.
“상대는 너희들 방문자들 중에서 꽤 규모가 큰 클랜이야. 거기다 표면적으로는 가출한 조카를 백부가 클랜에 의뢰해서 데려오는 것이니까. 여기에 경비병들을 끌어들일 수 없어.”
“표면적으로는 말이지.”
“그래. 표면적으로는 말이지.”
네리아의 대답에 한성은 입 안이 썼다.
사실 한성의 계획은 나쁘지 않았다.
잘하면 편하게 이리아를 구출 할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리아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복잡했다.
현재 백부인 리처드가 실종된 자신의 조카, 이리아를 찾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경비병들을 움직이는 건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거짓 신고로 한성 쪽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신고를 하려면 명확한 신분을 밝혀야 했다.
하지만 블랙 캣츠 정보 길드에서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며 신고할 수 없었다.
현 크리스토 백작가의 가주인 리처드의 눈을 피하려면 자신들의 정체를 숨겨야 하니 말이다.
어디 그뿐만인가?
그들이 다루는 것은 다름 아닌 정보다.
그중에는 불법적인 정보들도 있었다.
그런데 경비병들에게 자신들의 정체를 밝힌다?
그것만큼 멍청한 짓은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설령 블랙 캣츠 대신 한성이 방문자로서 신고를 한다고 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었다.
네리아의 말처럼 표면적으로는 백부가 조카를 찾기 위해 방문자들의 클랜에 일을 의뢰한 것처럼 되어 있었으니까.
까닭 잘못하면 한성이 경비병들에게 의심을 살 수도 있는 일이었다.
거기다 블랙 레이븐 클랜이 개입되어 있는 상황.
블랙 레이븐 클랜에게서 정체를 숨기고 있어야 하는 한성으로서는 앞에 나서서 정체를 드러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한성은 네리아를 바라봤다.
네리아의 말대로라면 카이진 항구도시에서 이리아를 구출하기 힘들었다.
‘남은 건 그럼 항구 도시에서 나갔을 때이긴 한데…….’
하지만 그것도 문제였다.
애초에 한성이나 블랙 캣츠 길드원들을 비롯한 사라와 세라가 지금 이때 이리아를 구출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크리스토 백작가에서 증원 병력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이리아가 항구 도시를 나갔을 때 구출한다는 건 크리스토 백작가의 증원 병력들도 함께 상대해야 된다는 소리였다.
“경비병들을 상대할 것인가, 아니면 크리스토 백작가의 사병들을 상대할 것인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된다는 말이지.”
한성과 네리아는 둘 다 골치 아픈 표정을 지었다.
어느 쪽이든 이리아를 구출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의미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역시 크리스토 백작가에서 보낸 병력과 싸우는 게 나았다.
하지만 그 전에 물어볼 것이 있었다.
“크리스토 백작가에서 증원한 병력은 어느 정도나 돼?”
“병사 30명에 기사가 12명이야.”
“고작 한 명 호위하는 데 많이도 보내네.”
한성은 혀를 찼다.
숫자만 보면 1개 소대 병력이었다.
“실력은?”
“사병들의 평균 레벨은 약 100 정도 되고, 기사들 평균 레벨은 약 120 정도 되지.”
“100레벨 초반이라…….”
한성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럼 도착 예정일은?”
“대략 이틀 뒤다. 말을 타고 이동 중이니까.”
“병사들도?”
“그래.”
“하. 병사 전원에게 말을 지급할 줄이야.”
‘리처드라는 놈. 똥줄 좀 탔나보군.’
한성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리처드는 굉장히 다급한 모양이었다.
기사들은 둘째치더라도 병사들에게까지 말을 지급해서 카이진 항구 도시에 보낼 정도였으니까.
네리아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한성에게 물었다.
“정말 크리스토 백작가의 사병들을 상대할 생각이야?”
“그 수밖에 없잖아. 아무리 그래도 도시 안에서 경비병들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낫지.”
한성은 그녀의 질문에 즉답했다.
도시 안에 존재하는 경비병들은 방문자들에게 있어 천적과도 같았다.
그에 반해 크리스토 백작가의 사병들은 비교적 상대하기 편했다. 도시 안에서 경비병들을 상대하게 되면 발생하는 제약들이 생기지 않으니까.
그 이유는 명백했다.
도시 안은 전투 금지 지역이기 때문이다.
지난 번, 한성이 카이진 항구 도시에 도착했을 때 습격 받았을 때는 외곽지역이었다.
전투 금지 구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경비병들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그때 한성이 있던 곳이 전투 금지 구역이었다면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 일어났을 수 있었다. 물론 그걸 알고 거기서 습격을 했겠지만.
“작전은 이틀 뒤로 연기다. 그때 움직이도록 하지.”
“…….”
그 말에 네리아는 물끄러미 한성을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에는 신기하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정말 이틀 뒤에 이리아를 구출할 생각이야?”
“그럼? 언제 구할 생각인데?”
네리아의 말에 한성은 오히려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한성에게 있어서 가장 베스트는 이리아가 항구 도시를 벗어나 크리스토 백작가로 이동할 때였다.
그때가 아니면 이리아를 구출할 수 없었다.
“상황이 변했다고? 처음에는 블랙 레이븐 클랜원 몇 명만 상대하면 되겠지만 지금은 수십 명이 넘어. 그에 비해서 우리는 숫자도 적지. 그래도 이리아를 구출하겠다는 건가?”
그랬다.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이번 작전에서 블랙 캣츠 정보 길드가 투입할 수 있는 인원은 아주 적었다.
기껏해야 몇 명 정도였으며 레벨도 100레벨 초반이었다.
메인 멤버는 한성을 포함한 사라와 세라, 그리고 네리아였다. 그 외에도 블랙 캣츠 길드에서 3명 정도 멤버가 더 추가될 예정이긴 했다.
처음에 한성을 습격했던 멤버 세 명이 말이다.
비록 이렇게 블랙 캣츠 정보 길드에서 인원을 지원해 준다고 해도, 상황은 굉장히 불리해져 있었다.
애초에 그들이 상대할 작자들은 이리아를 호송 중인 블랙 레이븐 클랜원 놈들이었다.
네리아의 조사에 의하면 그들은 대략 열 명 안팎이었으며, 레벨은 대부분 100레벨 초반으로 추측하고 있었다.
네리아는 한성이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을 상대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그런데 이제 크리스토 백작가에서 파견한 병사 30명과 기사 12명까지 상대해야 할 판이었다.
이리아를 구출하기 위한 난이도가 상승한 것이다.
아무리 한성이 강하다고 해도, 아무리 자신들이 도움을 준다고 해도 그들 전부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이 청년의 태도는 무엇이란 말인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건만 눈앞의 청년은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자신의 질문에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이나 하고 있지 않은가?
“난 포기할 생각이 없어. 아무리 어려워도 그녀는 내가 구한다.”
한성은 네리아의 푸른 호수 같은 눈동자를 직시하며 자신감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네리아는 잠시 한성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알겠다. 널 믿어 보지.”
결국 네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황이 변한 만큼 한성이 발을 뺀다고 해도 자신들은 할 말이 없었다.
애초에 자신들은 한성에게 부탁을 한 것이었으니까.
“맡겨 두라고.”
한성은 네리아를 바라보며 씩 미소를 지었다.
‘뭐, 확실히 이 중에서 네리아를 제외하고 가장 도움이 될 만한 인물은 그 노인뿐이긴 하지.’
이리아를 구출하기 위한 작전에 한 명 더 합류할 예정인 인물이 있었다.
알프레드 윈체스터.
크리스토 백작가에서 탈출한 가신들 중 한 명으로 지금 블랙 캣츠 정보 길드에 있었던 것이다.
나이는 육십 대로 하얗게 샌 머리카락과 짧은 흰 턱수염이 특징인 노기사였다.
추정 레벨은 약 150으로 한성의 실제 레벨보다 좀 낮은 수준이었다.
아마 한성과 네리아를 제외하고 가장 강한 켈트인일 것이다.
‘네리아도 상당히 강하지만 말이야.’
네리아 또한 노기사와 마찬가지로 150 레벨 정도 되었다.
직업도 상당히 인상적으로 이리아 구출 작전에 꽤 도움이 될 거라고 한성은 생각했다.
‘뭐, 준비를 착실히 한다면 혼자서 어떻게 해볼 수도 있지만.’
한성은 아무도 모르게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불과 하루 전이었다면 한성도 무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 한성은 히든 3차 직업 데스마스터가 되었다.
3차 전직을 한 이후부터는 가히 1인 군단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강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한성은 자신감을 비춰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이틀 뒤에 보자고.”
한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정과는 달라지긴 했지만 블랙 캣츠 정보 길드에서 볼일은 끝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한성은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루루의 너머에 있는 인물을 발견했다.
볼륨감 넘치는 스타일의 몸매와 타오를 것 같은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메이드 복 미소녀, 사라.
그녀를 발견한 한성은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그녀에게 줄 선물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녀에게 너무너무 잘 어울릴 것 같은 아찔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금기의 옷을 말이다.
한성은 루루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루루야. 쟤 잡아.”
바야흐로 사라의 수난이 시작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