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언데드 100만-94화 (94/318)

# 94

< 내 언데드 100만 >

제94화  상자 개봉

[경고! 이 소환수를 소환하려면 물이 필요합니다. 물이 없는 장소에서는 소환을 자제하여 주십시오.]

“엥?”

작은 상자를 개봉해서 소환수를 확인해 보려고 했던 한성은 갑작스럽게 떠오른 안내 메시지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 맞다. 이 녀석 물이 없으면 소환하지 말라고 했었지. 수상이동 전문이니까.”

한성은 뒤늦게 디아나가 소환수 상자를 주면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런 한성에게 사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게 뭔데? 안 열리면 내가 한 번 폭파시켜 볼까?”

“넌 일단 뭐든지 폭파시키겠다는 생각부터 버려.”

“그럴 수는 없지. 폭염마법은 나의 아트니까!”

“아트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그냥 네 머릿속이 폭탄으로 가득 차 있는 거겠지.”

“그 말 그대로예요. 바보 언니.”

한성에 이어 세라도 사라의 말이 어이가 없는지 옆에서 한 소리 덧붙였다.

“세라! 내가 항상 바보라고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세라의 잔소리까지 더해지자 사라는 허리에 손을 척 올리며 몸을 돌렸다.

“…….”

순간 세라의 표정이 경직됐다.

세라의 눈앞에서 몸을 돌린 사라의 가슴이 한 차례 출렁거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세라는 평정을 되찾았다.

“정말 신은 공평하다고 생각해요.”

끄덕끄덕.

세라의 말에 한성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금 사라는 항구 도시답게 시원해 보이는 옷차림이었다.

날씨도 따뜻한 탓에 평소보다 노출이 있는 메이드 복을 커스텀 마이징해서 입고 있었다.

그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사라를 힐끔힐끔 돌아봤다.

타오를 것 같은 정열적인 붉은 머리카락과 붉은 눈, 그리고 팔다리는 물론 어깨와 풍만한 가슴이 반쯤 드러나 보이는 메이드 복 덕분에 사라의 아찔한 몸매가 주변 남성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폭열 바보지.’

아름다운 미모와 여유로운 가슴을 가진 완벽에 가까운 몸매의 소유자였지만, 사라는 바보였다.

한성은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사라의 가슴을 물끄러미 보다가 세라를 바라봤다.

세라의 가슴을 보는 순간 무언가 마음 깊은 곳에서 안쓰러움이 울컥 올라왔다.

턱.

한성은 세라의 어깨에 왼손을 올리고, 오른손으로는 엄지를 척 치켜세워 보였다.

“힘내.”

“네…….”

한성의 말에 평소와 다름없는 무표정한 세라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이는 건 왜 일까?

“그럼 빨리 가자. 시간을 많이 지체했어.”

“네.”

한성은 사라와 세라를 데리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 덕분에 예상했던 시간보다 많이 늦었다.

‘그래도 내일 새벽에는 도착할 수 있겠지.’

범선을 타고 간다고 가정하면 내일 오후나 되어서 도착할 것이다. 하지만 한성에게는 빠른 이동 수단이 있었다.

‘쿠로시마 패밀리 놈들만 아니었어도…….’

쿠로시마 패밀리의 클랜에 대해 떠올린 한성은 속으로 살며시 눈살을 찌푸렸다.

온갖 불법적인 일들을 저지르면서도 오딘 사의 방침에 따라 처벌을 받지 않고 있는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

한 서버에서 전 세계인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오딘 사에서도 섣불리 손을 델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이라고 해도 해외에서는 합법인 것들이 있고, 해외에서는 불법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합법인 것들도 있으니 말이다.

각 국가마다 동일한 상황이나 사건을 놓고도 다르게 처벌한다.

법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현실 세계의 법을 가상현실 세계인 티르 나 노이에 적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가상현실 세계 티르 나 노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가상현실 세계에서 해결하자였다.

‘문제는 그걸 교묘하게 피하고 있다는 사실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서 이익을 얻는 자들이 존재한다.

비리, 횡령, 뇌물, 배임 등등.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법을 피해서 이익을 얻는 기업인들 혹은 정치가들이 종종 있으니 말이다.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리고 그건 현실 세계뿐만이 아니라 가상현실세계인 티르 나 노이도 마찬가지였다.

쿠로시마 패밀리는 티르 나 노이 세계에 존재하는 국가들의 법망을 피해 불법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요컨대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 설령 걸린다고 해도 꼬리 자르기 식으로 빠져나가면 끝나는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쿠로시마 패밀리는 지금까지 여러 불법적인 사업들을 해 왔다.

방문자나 켈트인들을 납치해서 새우잡이 어선이나, 꽃게잡이 어선에 팔아버리고, 광산에 광부로 쓰기 위해 팔아버리는 일은 예사였다.

그 외에도 노예, 도박, 마약 등등 현실세계였다면 불법인 사업들을 마구 벌이고 있었다.

문제는 티르 나 노이 세계의 각 국법이 다양하다는 사실이었다. 쿠로시마 패밀리가 활동하고 있는 미트리아 왕국은 노예 거래는 합법이다.

하지만 도박이나 마약은 불법으로 규정짓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노예 사업이 번성했다.

특히 아인종 노예들은 값어치가 뛰어났다.

인간보다 신체 능력이 좋았기 때문에 몸 쓰는 일에 제격이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미트리아 왕국에서는 아인종 사냥이 빈번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왕국으로 가서 납치를 해 오기도 했다.

이번에 쿠로시마 패밀리가 아르센 왕국의 자이렌 항구 도시에 거점을 구축하려고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자이렌 항구 도시에 거점을 구축해서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를 유통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노예로 쓸 만한 종족들을 납치할 계획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분간은 못 움직이겠지.’

쿠로시마 패밀리의 선발대는 한성의 손에 전멸했다.

지금 그들은 엔젤스타 카페가 있는 건물 지하에 갇혀 있었다. 그들이 그곳에서 탈출하거나 혹은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에 연락을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기절한 상태에서 수면 마법까지 여러 번 중첩해서 걸어 두었으니까.

그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레일라는 남아 있는 부하들과 한성이 데리고 온 아인종 노예들을 데리고 철수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자이렌 항구 도시의 경비대에 익명으로 신고를 하기로 했다. 쿠로시마 패밀리 클랜원들이 저지른 범죄들을 고발해서 붙잡아 둔다면 어느 정도 시간을 더 벌 수 있을 테니까.

‘어찌 되었든 중요한 건 중앙 대륙에 가야 돼.’

시작의 대륙에서 어둠의 신봉자들이 활동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주체는 중앙 대륙이었다.

중앙 대륙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의 여파가 시작의 대륙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월드 히든 미션을 갱신하기 위해서라도.’

지금까지 한성은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에 대한 정보를 붙잡아 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월드 히든 미션은 갱신되지 않고 있었다. 사라와 세라로부터 안드로마리우스의 대한 정보를 듣고, 쿠로시마 패밀리 놈들에게서 정보를 캤지만 역시 말단이라 그런지 이렇다 할 정보는 없었다.

비슷비슷한 정보들밖에 없었으며, 배후에 어둠의 신봉자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직접 중앙 대륙에 가서 정보를 얻지 않는 이상 월드 히든 미션을 클리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쯤이면 좋겠군.”

자이렌 항구 도시의 거리를 걸으며 머리를 정리하는 동안 한성은 자신이 가려고 했던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 여기는…….”

세라는 주변을 둘러봤다.

바로 눈앞에 망망대해와도 같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그들이 지금 있는 곳은 해안가였다.

그곳에서 넓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세라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물…… 무서워.”

그녀는 묘인족. 즉 고양이의 속성을 가진 인간이다.

그리고 고양이는 물을 싫어한다.

즉, 사라와 세라는 물을 싫어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아무 것도 없잖아!”

하지만 사라는 눈앞에 있는 바다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었다. 오히려 지금 자신들이 있는 장소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더 신경 쓰고 있었다.

“배도 없고, 항구도 없는데 어떻게 바다를 건널 생각이야? 설마 헤엄쳐서 간다고 하지는 않겠지?”

“넌 물이 안 무섭냐?”

“물이 왜 무서워?”

“아니, 됐다.”

자신의 질문에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라의 모습에 한성은 그냥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아무래도 사라는 머릿속이 폭열마법으로 가득 차 있는 탓에 묘인족으로서의 본능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모양이었다.

꾹.

“……?”

순간 한성은 누군가가 자신의 소매를 잡아당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성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그곳에 양손으로 소매를 붙잡고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세라를 볼 수 있었다.

“정말 헤엄쳐서 갈 생각인가요?”

언제나처럼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한성은 밝은 미소로 답했다.

“응.”

“아…….”

세라는 고양이 귀와 꼬리를 축 늘어뜨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헤, 헤엄을 쳐서 가야 한다니…….”

‘어지간히도 물이 싫은가 보네.’

세라의 새로운 면모에 한성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농담이었어. 우린 이걸 타고 갈 거야.”

한성은 축 처져 있는 세라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디아나에게서 받은 작은 상자를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절 속이신 건가요?”

세라는 고양이 귀를 파닥파닥거리며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은 채 한성을 올려다봤다.

그런 세라의 고양이 꼬리는 하늘 높이 치켜 올라가 있었다.

“헤엄쳐서 안 가서 다행이지?”

“으…….”

한성의 웃는 말에 세라의 꼬리가 슬그머니 내려갔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나기엔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럼 범선을 타고 가면…….”

“범선 타고 가면 늦을 텐데? 아가씨를 놓쳐도 괜찮아?”

“우…….”

그 말에 결국 세라는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뭐, 애초에 헤엄쳐서 간다는 건 무리지만 말이야.’

한성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자이렌 항구 도시에서 바다 건너편에 있는 카이진 항구 도시까지 헤엄쳐서 가는 건 불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도 헤엄쳐서 가는 건 미친 짓에 가깝지만, 이 세계는 검과 마법이 존재하는 판타지 세상이었다.

포션이나, 마나가 있는 세상이었기 때문에 거리가 좀 멀다고 해도 헤엄쳐서 바다를 건너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았다.

단, 이번 경우는 제외였다.

‘이미 몸소 실천한 인간들이 있으니까.’

세상은 넓고 희한한 인간들은 많다.

방문자들 중에서 이미 헤엄을 쳐서 바다를 건너려고 한 도전 정신이 투철한 인간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이렌 항구 도시에서 카이진 항구 도시까지 헤엄쳐서 건너는 장대한 도전을 시작했다.

헤엄을 치면서 떨어지는 체력이나 스태미나는 회복 마법과 물약으로 버텼다.

하지만 그 도전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여기는 검과 마법만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라고.’

검과 마법이 존재하는 가상 현실 세계 티르 나 노이.

하지만 검과 마법만이 아니라 몬스터들도 존재한다.

그들은 바다에서 살고 있는 거대 해양 몬스터들의 한 입거리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몇 차례 도전을 했다.

그 덕분에 해양 몬스터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루트를 알아내긴 했지만, 그 다음에 기다리고 있던 것은 해적들이었다.

해양 몬스터들과 다르게 지능적으로 움직이는 해적들을 방문자들은 당해 낼 수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중간에 태풍, 소용돌이에 휘말려 물속에 빠져 죽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무려 열 번이나 되는 도전 끝에 그들은 포기했다.

아무도 헤엄을 쳐서 자이렌 항구 도시에서 카이진 항구 도시로 갈 수 없다고 하면서 말이다.

“뭐, 걱정하지 마라. 이 녀석이라면 한나절 만에 갈 수 있을 테니까.”

한성은 손안에 있는 작은 상자를 바라봤다.

이 상자를 디아나에게서 받았을 때, 이동 전문 소환수라고 들었었다.

먼 거리를 빠르게 이동할 수 있으며, 특히 바다를 빠르게 건널 수 있다고 디아나는 말했다.

‘지금 상황을 알고 준 건지 모르고 준 건지.’

어찌되었든 지금 한성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범선보다 무려 4배나 더 빠른 스피드를 가졌으니까.

즉, 범선으로 24시간 걸리는 거리를 이 소환수는 6시간 만에 갈 수 있었다.

‘이번에는 열리겠지.’

지금 한성이 있는 장소는 바다 근처였다.

즉, 물이 있다.

이번에는 상자를 열 수 있을 터.

한성은 작은 상자를 개봉했다.

[축하합니다. 검은 숲의 은자 디아나에게서 받은 상자를 오픈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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