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언데드 100만-90화 (90/318)

# 90

< 내 언데드 100만 >

제90화  함정

그날 오후.

한성은 사라와 세라를 데리고 자이렌 항구 도시에 도착했다.

그리고 바로 디아나의 부하들이 있는 아지트를 찾아갔다.

자이렌 항구 도시에서 디아나의 부하들이 은신처로 사용하고 있는 장소는 한성의 의표를 찌르는 곳이었다.

엔젤스타 카페.

커피를 전문으로 팔고 있는 아담한 크기의 가게였던 것이다.

‘설마 진짜 카페를 아지트로 삼고 있었을 줄이야.’

네로폴리스에서 디아나가 아지트로 삼은 장소는 주점이었다.

그래서 한성은 자이렌 항구 도시에서도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그런데 주점이 아니라 카페였다니.

거기다 맛집으로 소문까지 나서 가게 안에는 손님들도 제법 있었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주문하시겠습니까?”

한성이 카운터로 다가가자 여점원이 응대를 해 왔다.

여점원의 말에 한성은 발밑에서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루루를 붙잡아 올렸다.

“루루, 주문해.”

“보라색 맛 주세요!”

“예?”

순간 여점원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알겠다는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루루가 여점원에게 디아나의 조직 사이에서 통하는 암호를 말했던 것이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루루의 주문을 받은 여점원은 카운터 뒤에 있는 문을 통해 사라졌다.

그녀 외에도 엔젤스타 카페에는 여점원들이 서너 명 더 있었다. 한성은 그녀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메리카노 열두 잔에 화이트 초코 모카 하나, 오렌지 주스 하나 주세요.”

그래도 카페에 온 김에 한성은 커피와 루루가 마실 주스를 주문했다.

“고객님 주문 받았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가상 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 세계의 기본 시대적 배경은 중세였지만, 식당이나 술집, 카페 등등 현대적인 요소가 어우러져 있었다.

그렇게 주문을 완료한 한성은 루루를 데리고 몸을 돌려 일행들이 있는 장소로 돌아왔다.

“이야기는 잘 되었나요?”

사라와 세라는 카페에서 가장 큰 테이블이 있는 장소에 있었다. 그녀들뿐만이 아니라 노예 열 명도 함께였다.

지금 노예들은 마차에 있을 때처럼 남루하지 않았다.

물수건으로 대충 씻기고, 깨끗한 싸구려 천옷들을 입혀 두었기 때문이다.

“좀 기다려야 될 것 같아. 방금 점원이 이곳 보스를 만나러 간 모양이니까.”

한성은 루루와 함께 의자에 앉았다.

이제 이곳 책임자에게 노예들을 넘기고 나면 바로 중앙 대륙에 있는 카이진 항구 도시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그 전에 커피 한 잔 정도는 마셔 둬야지.’

어젯밤부터 한성을 비롯한 사라와 세라는 제대로 쉬지 못했다. 한시 바삐 이리아를 따라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휴식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시간에 늦지 않게 이리아를 따라잡았는데 모든 기력을 소진해서, 납치자들에게 되레 당한다면 지나가던 셀라스틴이 웃을 노릇이었으니까.

“커피 시켰으니까 좀 쉬어 두라고.”

사라와 세라를 바라보며 한마디 한 한성은 의자에 몸을 깊게 기댔다.

“그럼 사양하지 않고.”

“본의는 아니지만 조금 쉬도록 할 게요.”

한성의 말에 사라와 세라는 서로 머리를 맞대며 눈을 감았다. 그나마 한성은 마차에서 좀 쉬었지만 사라와 세라는 둘이서 교대로 마차를 몰았기 때문에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 탓에 피곤함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너희들도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있어.”

“예, 예”

노예였던 수인족 켈트인들은 한성의 눈치를 보면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구해 준 한성과 사라, 세라에게 고맙다는 말을 계속해 왔다.

저들에겐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혹은 디아나의 조직에 남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해 두었다.

‘저들 중 대부분은 디아나의 조직에 남겠지.’

사실 저들은 시골이라고 할 수 있는 고향에서 성공하겠다는 꿈을 안고 대도시로 나온 거였다.

하지만 문제는 세상 물정에 어두웠다는 사실이었다.

그 결과, 한몫 잡게 해 준다는 피루드의 말에 속아 노예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뭐, 셀라스틴을 비롯한 수인족들이 많은 디아나의 조직이라면 어떻게든 도움을 주겠지.’

사실 저들을 노예 상인 피루드로부터 구출한 시점에서 한성이 더 이상 신경을 써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냥 도시에 있는 경비대에 넘기면 끝날 일이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의 경우에도 대비를 해 두어야 했다.

저들 중 누군가가 이리아를 납치한 자들에게 한성을 비롯한 사라와 세라에 대한 정보를 알릴 수도 있었으니까.

‘뭐, 저들에 한해서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 그리고 디아나에게 빚을 지워 두는 것도 나쁘지 않지.’

디아나의 조직은 지금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한성은 겸사겸사 노예였던 수인족 켈트인들을 디아나의 조직에 맡기려고 한 것이다.

수인족 켈트인들은 일자리가 생겨서 좋고, 인력난에 시달리는 디아나의 조직은 인원이 생겨서 좋고.

그리고 한성의 경우 만약 수인족 켈트인들 중에 스파이가 있다면 디아나의 조직에서 바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에 좋았다.

적어도 한성이 이리아를 따라잡을 때까지만 수인족 켈트인들을 감시해 줘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일석 삼조로군.’

한성은 속으로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수인족 켈트인들을 디아나의 조직에 맡기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비실비실해 보이지만, 수인족들은 일반 인간족보다 우월한 신체 능력을 가졌다.

적당히 먹이고 훈련을 좀 시킨다면, 지금 당장은 그냥저냥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꽤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럼…….’

한성은 카페 내부를 바라봤다.

‘별로 문제될 건 없어 보이는데.’

디아나의 부탁은 별거 아니었다.

최근 3일간 자이렌 항구 도시의 지부인 엔젤스타 카페에서 연락이 오질 않았다고 한다.

일이 바빠서 그럴 수도 있었기에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엔젤스타 카페의 점장인 레일라는 깐깐한 성격으로 3일 이상 상황 보고를 하지 않는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다.

그 때문에 디아나는 겸사겸사 한성에게 자이렌 항구 도시에 갔을 때 엔젤스타 카페의 상태가 어떤지 알아봐 달라고 했던 것이다.

한성이 중앙 대륙으로 가기 위해 자이렌 항구 도시에 갈 거라는 걸 예측하고 있었으니까.

‘뭐, 이곳 점장을 만나 보면 알 수 있겠지.’

심드렁한 표정으로 한성은 다시 한 번 카페 내부를 살펴봤다.

아늑한 느낌의 카페 안에 한성처럼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 플레이어 방문자들이 눈에 띄었다. 친구들끼리 온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커플들끼리 온 사람들도 보였다.

그리고 이제 막 주문한 커피가 나오고 있는 모양인지 엔젤스타 여점원들이 손님들에게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카발로네 고객님!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로닌 고객님! 주문하신 카라멜 마끼아토 나왔습니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없었다.

하지만 이후 여점원의 외침에 한성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숨겨왔던나의 고객님!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달려오세요 고객님! 주문하신 카페모카 나왔습니다!”

“약물주문한 고객님! 주문하신 카페라떼 나왔습니다!”

“받자마자흘릴 고객님! 주문하신 핫초코 나왔습니다!”

“나의배고픈 고객님!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꼭꼬고고 고객님…….”

‘…….’

한성은 할 말을 잃은 표정을 지었다.

플레이어들로 추정되는 방문자들의 이름이 기가 막혔기 때문이다.

‘나, 참. 아직도 닉네임을 변경 안 한 인간들도 있네.’

한성은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티르 나 노이 초기, 플레이어들인 방문자들은 온갖 닉네임으로 캐릭터 이름을 지었다.

문제는 아무 생각 없이 닉네임을 지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엄마는 내가 도서관에 있는 줄 알겠지>

<티르나노이에 접속하라고 사 준 캡슐이 아닐 텐데>

<닉네임이 너무 길어서 나무 뒤에 숨어도 들키는 닉네임>

<마누라가 잠들면 티르 나 노이가 열린다>

<어머니가 바라시던 공무원은 되지 못했지만 저 인도네시아 게임 TV BJ가 되었어요>

<이거 닉네임 최대 몇 글자까지 되나요? 그리고 시작의 대륙에서 저 좀 죽이지 말고 살려주>

이 같은 닉네임들도 있었다.

클랜명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처음에는 재미로 캐릭터를 만들어서 플레이했지만, 결국 문제가 생겨났다.

가상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에서는 캐릭터를 하나밖에 만들 수 없으니까.

그리고 게임을 점점 진행해 나가다 보면 미션을 주는 켈트인들이 방문자들의 이름(닉네임)을 보고 비웃는 일이 빈번하다는 사실이었다.

오딘 사에서 추구하는 리얼리티 때문에 NPC라고 할 수 있는 켈트인들은 인간과 다를 바 없는 고도의 인공지능을 가졌다.

그 탓에 이상하게 캐릭터 이름을 지은 방문자들을 보고 켈트인들이 자꾸 웃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예를 들어 켈트인과 함께 위험한 미션을 수행하고 있을 때, 몬스터에게 습격당하는 심각한 상황에서 켈트인이 플레이어 방문자에게 도와 달라고 웃기는 이름을 부른다고 생각해 보라.

분위기가 깨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러한 이유들로 뒤늦게 방문자들이 닉네임을 바꾸려고 했지만, 한 번 이름을 정하면 바꿀 수 없었다.

유일한 방법은 기존에 있던 캐릭터를 삭제해서 새롭게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도 레벨이 낮을 때나 가능하지, 만약 레벨이 높다면 삭제를 하기가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방문자들은 오딘 사에 캐릭터 닉네임을 바꿀 수 있도록 캐시 아이템이든 뭐든 패치를 해 달라고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티르 나 노이를 오픈하고 아직 한두 달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던 시점이라 오딘 사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한국 게임 회사답지 않게 무려 최대 두 번까지 변경 가능한 캐릭터 닉네임과 클랜명 변경권을 지급한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이후 티르 나 노이를 처음 하는 사람들에게까지 기본적으로 지급했다.

다른 한국 게임 회사였다면 비싼 캐시 템으로 팔아먹기 좋은 수단이 되었을 테지만 오딘 사는 그러지 않았다.

그 결과 현재와 같은 전 세계인이 즐기는 게임이 될 수 있었다고, 국내 및 해외 게임 평론가들이 말하며 오딘사의 운영을 매우 좋게 평가했다.

‘그런데 아직도 저런 닉네임을 쓰고 있네.’

엔젤스타 카페 안에서 특이한 닉네임을 가지고 있는 방문자들을 바라보며 한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트레인 고객님!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그때 드디어 한성이 주문한 커피들이 나온 모양이었다.

한성은 수인족 켈트인들 몇 명과 함께 커피를 받아 다시 돌아왔다.

“와~ 오렌지 맛 날 거 같아요!”

한성이 가지고 온 커피와 오렌지 주스를 보며 루루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본 한성은 쓴웃음을 지었다.

‘오렌지 주스니까 오렌지 맛이 나지.’

귀여운 루루를 한 번 보고 자신이 마시기 위해 주문한 화이트 초코 모카를 바라봤다.

그리고 달콤한 향기를 맡으며 한성은 화이트 초코 모카에 입을 가져다 댔다.

그 순간 한성의 눈이 크게 떠졌다.

“잠깐! 모두 마시지 마!”

하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

한성의 눈에 한 모금씩 아메리카노를 마신 수인족 켈트인들이 보였으니까.

‘이런!’

한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이 받아온 음료에 무언가 문제가 생겼음을 뒤늦게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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