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
< 내 언데드 100만 >
제87화 변이한 레이몬드
크워어어어어어!
폭주한 레이몬드가 괴성을 내질렀다.
“이런 미친…….”
눈살을 살짝 찌푸린 한성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한성의 눈앞에 있는 존재는 더 이상 레이몬드라고 하기 힘들었다.
그의 눈은 붉은 빛을 내고 있었으며, 입가에서 침을 질질 흘리는 것으로 보아 이성도 날아간 것처럼 보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레이몬드는 버서커화된 것이다.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가 폭주하면서 레이몬드를 변이시켰습니다. 레이몬드가 마수화되었습니다.]
‘2차 각성에 이어 이번에는 마수화라고?’
그래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게임 시스템에 반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적어도 변이한 레이몬드의 정보가 시스템에서는 표시되고 있었으니까.
에르네스트 산의 히든 던전에서 보았던 거미처럼 생긴 고대 마도병기는 아무런 표시가 뜨지 않았으니 말이다.
‘일단 시스템에 정보가 나오는 거 보니 버그는 아닌 것 같고.’
인터넷 게시판에서 떠돌아다니는 정체불명의 몬스터에 관련된 글들을 보면 공통점은 하나였다.
정체불명의 몬스터에 대한 정보와 붙잡아도 아무런 알림 표시가 뜨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에 반해 레이몬드는 그래도 정보가 표시되고 있었다.
‘하. 참 진짜 가지가지 하네.’
전체적으로 레이몬드는 몸이 부풀어 올랐다.
특히 오른쪽 어깨와 팔은 비정상적으로 커졌고, 왼쪽 눈도 커지면서 약간 돌출되어 있었으며, 팔다리의 근육은 터질 듯이 팽팽해져 있었다.
레이몬드가 착용하고 있던 갑옷은 터져 나간 지 오래였다.
부풀어 오른 근육을 버티지 못하고 부서진 것이다.
지금 레이몬드는 약 2미터 키에 다부진 근육을 가진 라이보다도 덩치가 훨씬 커졌다.
키가 4미터에 가까울 정도로 덩치가 커져 있었으니까.
그 모습은 정체불명의 괴생명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스팟!
순간 변이한 레이몬드가 잔상을 남기며 움직였다.
공기가 찢어지는 파열음이 숲속에 울려 퍼진다.
변이를 한 만큼 엄청나게 빨라진 모양이었다.
레이몬드가 움직인 직후, 한성의 앞을 막아선 라이의 몸 위로 레이몬드의 거대한 오른팔이 휘둘러져 왔다.
콰앙!
크허어어엉!
단 한 방에 라이는 수 미터 이상 튕겨져 날았다.
라이의 생명력이 단번에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게 한성의 눈에 보였다.
“라, 라이!”
한성은 다급한 목소리로 라이를 불렀다.
크르르르.
바닥에 쓰러진 라이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거리며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당분간 전투에 참가할 수 없어 보였다.
상당한 데미지를 입고 말았으니까.
“무슨 2차 각성에 실패했다면서 뭐가 이렇게 세?”
한성은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레이몬드에게서 멀찍이 물러나며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변이한 레이몬드는 끈질겼다.
한성의 뒤를 쫓아왔던 것이다.
쌔액!
변이하기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스피드.
눈 깜짝할 사이에 레이몬드의 거대한 오른팔이 한성의 배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마치 야구 선수가 배트를 풀 스윙하는 모양새였다.
“아이언 스킨!”
한성은 재빨리 직업 특전 패왕 계승 스킬 중 하나인 아이언 스킬을 시전하며 양팔을 교차했다.
까앙!
그 직후, 레이몬드의 거대한 오른팔이 한성을 강타했다.
“큭!”
레이몬드의 강력한 일격에 한성 또한 라이와 마찬가지로 뒤로 날려졌다.
하지만 라이와는 다르게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패왕 계승 스킬 중 하나인 아이언 스킨의 효능은 다름 아닌 방어력 증가였으니까.
피부를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아이언 스킬은 패왕의 주력 스킬 중 하나로 제법 괜찮은 방어력과 공격력까지 올려준다.
전신이 강철처럼 단단해진 파이터의 주먹은 말 그대로 강철 주먹이었으니 말이다.
바닥을 끌며 뒤로 밀려난 한성은 고개를 치켜들었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
전방에서 레이몬드가 비명 같은 괴성을 내질렀다.
그 틈을 타 한성은 재빨리 주변을 둘러봤다.
사라와 세라는 전투에 끼어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번 미션 목표인 피루드만큼은 확실히 포박하고 있었다.
라이는 몸을 회복 중이었으며, 루루는 라이 곁에서 레이몬드가 무서운지 오들오들 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이대로 몸을 빼는 건 힘들려나?’
미션 목표인 피루드는 이미 확보 완료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피루드를 통해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와 어둠의 신봉자들, 이리아에 대한 정보를 캐내면 된다.
하지만 문제는 레이몬드였다.
기형적인 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스피드가 빨랐으니까.
한성과 소환수들은 제외하더라도 사라와 세라, 그리고 피루드는 따라잡힐 수밖에 없었다.
“결국 끝가지 가는 수밖에 없다 이거지?”
그렇다면…….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한 번 달려 보자 괴물 자식아!”
한성은 눈 깜짝할 사이에 코앞까지 다가온 레이몬드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소리쳤다.
콰앙!
레이몬드는 다짜고짜 한성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어마어마한 일격이 다시 한 번 한성을 강타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데미지를 줄 수 없었다.
[힘들어요, 마스터. ㅠ_ㅠ]
한성을 감싸고 있는 검은 막 안에서 틴달로스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잘했어, 틴달로스. 이번 미션 끝나면 사료 말고 고기 파티다.”
[>_<]
한성의 말에 틴달로스는 자신의 마음을 귀엽게 이모티콘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한성은 레이몬드를 상대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주위에는 시체들이 많이 있지.’
틴달로스의 보호막 안에서 한성은 씩 미소를 지었다.
젠킨스 용병단 시체 열 세구, 피루드를 제외한 상인들 시체 아홉 구, 그리고 아직 살아남아 바닥에서 덜덜덜 떨고 있는 옴팔 기사 두 명을 제외한 시체 여덟 구.
도합 30구의 시체들.
시체가 많으면 많을수록 네크로맨서는 강해진다.
“해골 검병 소환! 해골 궁병 소환! 프로즌 좀비 울프 소환! 데스나이트 3기 소환!”
한성은 30구의 시체들을 매개로 언데드 소환수들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펑! 펑! 퍼버버벙!
눈 깜짝할 사이에 시체 30구에서 한성의 주력 언데드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골 검병이 20기, 해골 궁병이 60기, 프로즌 좀비 울프가 14마리, 데스나이트가 3기였다.
틴달로스의 보호막을 해제한 한성은 레이몬드를 노려봤다.
틴달로스를 통해서 소환한 해골 검병 50기와는 차원이 다른 전력.
“히, 히이익…….”
“마, 말도 안 돼.”
그 모습에 피루드를 비롯한 살아남은 옴팔 기사 2명은 기가 질린 표정으로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특히 피루드는 옴팔 기사 2명을 미끼로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성의 언데드 소환수들을 보고 도망치는 걸 포기했다.
“꽤, 꽤 하잖아. 그, 그래도 내 예술인 폭발마법보다는 못하지만.”
“다리가 떨리고 있어요, 바보 언니.”
강한 척하는 사라의 말에 세라가 핀잔을 줬다.
하지만 그런 세라의 얼굴에도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설마 저 정도까지 언데드들을 다룰 줄은…….’
매드니스 도적단에서 단장 카엘을 쓰러트렸다는 말에 한성이 상당히 강력한 네크로맨서라고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직접 이렇게 한성이 대규모 언데드 몬스터들을 한 번에 소환해 내는 것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해골 검병 50기를 띄엄띄엄 소환할 때와는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쓸어라.”
한성은 레이몬드를 향해 가볍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크아아아앙!
“검검.”
“궁궁.”
쿵쿵쿵.
한성의 명령에 각각의 언데드 몬스터들이 레이몬드를 향해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남아 있는 적은 레이몬드 하나뿐이었기에 전술이고 뭐고 필요 없었다.
가지고 있는 전 병력으로 상대를 압살할 뿐.
슈슈슈슈슉!
가장 먼저 해골 궁병 60기가 본 애로우를 날렸다.
수도 없이 많은 하얀 뼈로 이루어진 화살비가 어두운 밤하늘을 가르며 레이몬드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파바바박!
크아아아아아!
넓게 퍼져서 날아드는 화살비를 레이몬드는 피할 수 없었다.
거대한 오른팔과 몸통, 다리에 본 애로우가 박혀 들어갔다.
하지만 변이한 레이몬드의 피부는 강철처럼 단단했다.
본 애로우는 레이몬드의 피부 표면에만 박혔을 뿐이었다.
크르릉! 컹컹!
그 뒤를 이어 프로즌 좀비 울프 14마리가 달려들었다.
싸늘한 한기를 내뿜으며 달려드는 프로즌 좀비 울프들.
프로즌 좀비 울프 한 마리 한 마리는 해골 병사들보다 강하다. 거기다 몸에서 내뿜는 한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적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든다.
상태이상 빙결을 일으키는 것이다.
프로즌 좀비 울프들은 날카로운 앞발로 레이몬드를 할퀴고 지나거나 혹은 팔다리를 물고 늘어졌다.
크아아아아!
그러자 레이몬드는 비명 같은 괴성을 내지르며 팔을 마구 휘둘렀다.
깨갱! 깽! 깽! 깽!
무지막지한 힘으로 휘두르는 레이몬드의 괴력에 프로즌 좀비 울프들은 나가떨어지거나 혹은 지면에 내동댕이쳐졌다.
하지만 그 뒤를 이어 남은 프로즌 좀비 울프들이 계속 달려들면서 레이몬드를 괴롭혔다.
프로즌 좀비 울프들은 10마리가 넘었으니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쿵쿵쿵!
육중한 칠흑의 갑옷으로 무장한 데스나이트 3기가 세 방향에서 레이몬드를 향해 다가와 대검을 내려쳤다.
깡! 까강!
프로즌 좀비 울프들에게 물린 채로 잡혀 있던 레이몬드는 데스나이트들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그대로 공격을 허용한 레이몬드의 어깨와 몸통에 데스나이트의 대검이 사정없이 내려쳐지면서 박혀 들어갔다.
크아아아아아!
본 애로우와는 차원이 다른 공격격을 가진 데스나이트의 대검들.
강철처럼 단단한 레이몬드의 피부를 데스나이트의 대검은 그대로 베어 냈다.
비록 완전히 베지는 못했지만, 본 애로우보다는 깊은 상처를 입힌 것이다.
끄아아아! 끄아아아아아아아!
2차 각성 실패로 인한 폭주로 이성이 날아가 버린 레이몬드였지만, 고통 때문인지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거대화한 오른팔을 마구 휘두르고, 근처에 있는 프로즌 좀비 울프를 손으로 잡아서 집어던졌다.
그런가 하면 다리를 공격하고 있던 해골 검병들을 뻥뻥 걷어차며 저항했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릴 수 없는 법.
레이몬드가 언데드 몬스터들을 날려 버리는 수만큼, 아니 그보다 많은 숫자의 언데드 몬스터들이 달려들었다.
아직 해골 검병과 궁병, 그리고 프로즌 좀비 울프들이 많이 남아 있었으니까.
“다구리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지.”
한성은 씩 미소를 지었다.
언데드 몬스터들이 레이몬드에게 달려들고 있는 와중에도 한성의 앞에서는 착실하게 시체들이 쌓여 가고 있었다.
쿨 타임이 돌아올 때마다 시체 소환 스킬을 시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모든 걸 끝낼 시간이 다가왔다.
한성은 옆에서 열심히 귀여운 동물 춤을 추고 있는 루루를 향해 한마디 했다.
“루루야. 궁극기 준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