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
< 내 언데드 100만 >
제83화 옴팔 기사단 (1)
“어떻게 당신이…….”
사라와 세라는 믿을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중년 사내는 그녀들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강자였다.
크리스토 백작가의 기사단을 이끄는 기사단장이었으니까.
“레이몬드 경! 당신이 왜 이곳에 있는 거죠?”
그의 레벨은 약 130 이상.
크리스토 백작가의 현 가주이자 이리아 폰 크리스토의 백부인 리차드 폰 크리스토의 측근 인물 중 한 명이었다.
리차드의 호위를 맡고 있어야 할 인물이 어째서인지 지금 사라와 세라의 눈앞에 있었다.
거기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미 사라와 세라가 노예 상인 피루드를 습격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투로 들리지 않는가?
“내가 왜 이곳에 있냐고? 그건 너희들도 잘 알고 있을 텐데.”
레이몬드는 싸늘한 목소리로 사라와 세라에게 말했다.
“아가씨는? 아가씨는 무사한가요?”
“그건 너희 대답에 달려 있지.”
“…….”
레이몬드의 말에 사라와 세라는 입술을 꼭 깨물며 메이드복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는군.’
그리고 한성은 속으로 혀를 차며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리차드의 등장과 함께 덮개로 내부를 가리고 있던 마차에서 은빛 광택이 빛나는 갑주를 입은 기사들이 자신을 비롯한 사라와 세라를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다.
인원은 약 열 명 정도였다.
젠킨스 용병단보다 두 명 적었지만 문제는 양보다 질이었다.
그들은 전원 레벨이 약 110에서 120 사이였으며, 젠킨스 용병단과 다르게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크리스토 백작가의 엠팔 기사단 단장, Lv136 레이몬드>
‘하, 레벨이 136이라니. 136이라니!’
한성은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매드니스 도적단의 단장 카엘이 2차 각성 후, 120 레벨이 되었을 때도 상대하기가 굉장히 힘들었었다.
언데드 소환수들의 물량 공격이 아니었다면 처치하기가 곤란했었으리라.
그런데 지금 자신들의 눈앞에는 레벨 110에서 120 사이 켈트인 기사들이 즐비하고, 그들의 보스 격인 레벨 136짜리 레이몬드 단장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매드니스 도적단을 상대했을 때는 한성 혼자에 레벨이 90 후반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사들 레벨과 비슷한 100 레벨 초반인 사라와 세라가 있었고, 현재 한성의 레벨도 112 정도 되었다.
노예 상인을 습격하는 날이 되기 전까지, 필드에서 몹을 사냥하며 레벨을 조금이나마 더 올려 두었던 것이다.
“크리스토 백작가의 반지는 어디에 있지?”
레이몬드는 사라와 세라를 노려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역시 당신의 목적은…….”
“당연히 반지지. 가주께서는 너희들과 이리아 아가씨가 훔쳐간 가문의 상징인 반지를 찾고 계신다. 그래도 설마 매드니스 도적단 놈들을 괴멸시키고 도망칠 줄이야. 원래라면 이곳이 아니라 매드니스 도적단의 지하 심문실에서 너희들과 마주보고 있었을 텐데 말이야.”
레이몬드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사라와, 사라를, 사라만 집중적으로 바라봤다.
울컥.
노골적으로 사라의 가슴을 바라보는 레이몬드의 눈빛에 세라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서러움과 분노가 가슴속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저희는 훔친 게 아니에요. 오히려 당신들이 훔치려고 하는 거죠!”
“흥. 지금의 가주는 리처드 님이다. 예전에 너희가 따르던 라이먼 백작이 아니라. 그럼 당연히 가문의 상징인 반지도 리처드 님의 것이 아닌가?”
레이몬드는 비웃음을 흘렸다.
“뭐, 됐어. 중요한 건 네년들이 숨겨 놓은 반지의 위치를 알아내면 되는 일이니까. 그보다 아쉽군. 지하 심문실이었으면 네 몸을 통해 반지에 대해 캐낼 수 있었을 텐데.”
레이몬드는 탐욕스러운 눈길로 사라를 노려봤다.
그 눈빛에 사라는 소름끼친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성의 등 뒤로 숨어 버렸다.
그리고 그 앞에서 세라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유감이지만 그런 일은 앞으로 없을 거예요.”
“그렇겠지. 너한테는 앞으로 없을 거야. 이전에도 이후로. 앞으로 영원히. 절벽은 내 취향이 아니니까.”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몬드.
울컥.
레이몬드의 말에 세라는 고개를 돌려 한성을 노려봤다.
언제나와 같은 무표정하고 차가운 얼굴이었지만 눈빛 속에 감춰진 분노와 슬픔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아니, 왜 날 그런 눈으로……?’
잠시 당황한 한성은 양손과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뭐,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았지. 너희들을 제압하고 심문실에서 천천히 뜨거운 대화를 나누면 될 테니까.”
레이몬드는 기분 나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리차드 백작의 측근인 레이몬드는 특명을 받고 직접 중앙 대륙에서 시작의 대륙으로 믿을 수 있는 심복 기사들을 데리고 왔다.
크리스토 백작가의 상징인 반지를 찾기 위해, 반지의 행방을 알고 있는 두 명의 메이드들과 만나기 위해서 말이다.
원래 계획은 매드니스 도적단에 잡혀 있던 사라와 세라를 인계받아 정보를 캐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 걸음 늦고 말았다.
레이몬드가 매드니스 도적단 아지트에 가기 전, 사라와 세라가 자력으로 탈출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레이몬드는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라와 세라의 목적은 명확했다.
바로 현 가주인 리차드의 동생인 라이먼 폰 크리스토의 딸, 이리아를 찾는 것일 터.
그녀들이 마지막으로 알고 있는 정보는 이리아가 노예 상인 피루드의 손에 넘어갔다는 사실이었다.
피루드는 리차드 백작의 입김을 강하게 받고 있는 노예 상인이었으니까.
‘그년들이 매드니스 도적단을 탈출했다면 가장 먼저 노리는 건 피루드, 그 돼지 상인이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몬드는 함정을 팠다.
피루드는 이전부터 노예들을 데리고 오늘 항구 도시 자이렌으로 갈 계획이었다.
그리고 매드니스 도적단을 탈출한 사라와 세라라면 바로 그때를 노릴 거라 판단했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피루드가 도시 바깥으로 나가는 때를 알거라 생각했으니까.
레이몬드의 생각에 피루드는 반신반의 했지만.
그래도 레이몬드는 그녀들이 반드시 올 거라 생각했다.
그녀들은 단순한 메이드들이 아니었으니까.
이리아의 호위이며, 친구이기도한 그녀들은 어지간한 기사들보다 더 강하니 말이다.
“그럼…….”
레이몬드는 허리에서 장검을 빼들었다.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각오는 되어 있겠지?”
사실 다섯 개의 마차 중 두 개만 피루드의 상업용 마차였으며, 나머지 세 개는 레이몬드가 이끌고 온 기사들이 타고 있었다.
애초부터 젠킨스 용병단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죽든지 말든지 알바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해야 할 일을 확실히 해 주었다.
사라와 세라를 유인하는 일을 말이다.
“남자는 죽여도 상관없다. 단, 그녀들은 무조건 생포해라.”
“알겠습니다!”
“충!”
레이몬드의 명령에, 그를 따르는 옴팔 기사단의 기사 열 명이 한성을 비롯한 사라와 세라를 향해 동시에 달려들기 시작했다.
세 명을 포위하고 동시에 몸을 날리며 달려드는 기사들.
그들에게 포위된 한성, 사라, 세라는 서로 등을 맞댄 채 각자 무기를 꽉 움켜쥐었다.
셋 중에서 가장 먼저 움직인 사람은 역시나 한성이었다.
“본 월!”
콰가가가가각!
사라와 세라, 한성을 중심으로 하얀 뼈로 된 원형 방벽이 지면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까강! 콰가각! 콰가가가각!
“뭐, 뭐야 이건?”
“마법사인가?”
“이거 뼈 아니야?”
한성을 감싸듯 솟구쳐 올라온 본 월은 기사들의 공격을 한 차례 막아 냈다.
자신들의 공격을 막아 낸 한성의 본 월에 기사들의 놀란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한성은 바로 사라와 세라를 돌아봤다.
“준비해.”
“…….”
그녀들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격 자세를 취했다.
“지금!”
한성은 사라와 세라를 향해 소리치면서 본 월을 해제했다.
그러자 본 월 때문에 시야가 막혀 있던 기사들이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표정이 보였다.
“플래시 익스플로전(Flash Explosion)!”
펑! 펑펑! 펑펑펑!
본 월이 사라진 직후, 먼저 견제용으로 사라가 화염계 섬광 폭발 마법 플래시 익스플로전을 기사들을 향해 시전했다.
플래시 익스플로전은 폭발 위력이 낮았다.
다만 익스플로전처럼 대규모로 한 번 크게 폭발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약 20센티 내외의 작은 구체들이 연속적으로 나타나 소규모 폭발을 일으킨다.
그때 섬광과도 같은 빛이 터져 나오며 붉은 화염이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크악!”
“아, 안 돼! 거리를 벌리지 마!”
“달라붙어야 돼!”
기사들 사이에서 터지기 시작하는 플래시 익스플로전.
그 때문에 기사들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뒤로 뺐다.
시야를 뺏으며 위협적으로 빛나는 섬광과, 사방으로 터져 나오는 붉은 화염에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뒤로 물러난 것이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세라가 쏜살같이 기사들 사이로 튀어나갔다.
그녀는 메이드 복 위에 경갑 차림으로 찌르기에 특화된 레이피어를 장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라는 메이드 복 위에 로브를 입고 있었으며 붉은 수정구가 박혀 있는 화염 속성 공격력을 증가시켜 주는 지팡이로 무장하고 있는 중이었다.
“파이어 레인(Fire Rain)!”
익스플로전에 이어 준비 중이었던 마지막 공격 파이어 레인까지 사라는 뒤로 물러난 기사들을 향해 시전했다.
화륵! 화르륵!
“이런 젠장!”
“모두 피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화염에 기사들은 사방팔방으로 움직였다.
파이어 레인이 몸에 붙으면 일정 시간 동안 지속으로 데미지를 입힌다.
몸에 붙은 불을 끄려고 해도 일정 시간이 지날 때까지 끌 수 없었다.
그렇게 기사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슈와아아악.
싸늘한 한기를 전신에 흘리며 독한 표정으로 기사들을 향해 달려드는 여인이 있었다.
“프로즌웨이(Frozen Way).”
쩌저적!
세라의 발이 닿는 지면이 그녀의 마음처럼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세라가 들고 있는 레이피어에서도 차가운 한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챙! 쩌적! 챙챙! 쩌저적!
“크윽!”
세라의 공격을 받은 기사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뒤로 더더욱 물러났다.
싸늘한 한기가 흘러나오는 세라의 레이피어와 부딪친 장검들이 얼어붙어 갔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옴팔 기사단이다!”
“절대 물러나지 않는다!”
그중 독한 놈들은 얼어붙어 가는 검을 놓지 않았다.
그 결과 장검을 붙잡고 있는 손과 팔까지 얼어붙은 기사들도 나왔다.
하지만 그들은 그대로 세라를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멍청하군요. 그대로 놔둔다면 팔이 동사해서 두 번 다시 쓸 수 없게 될 거예요.”
“상관없다! 건방진 아인종아!”
“죽여 주마!”
“큭!”
어떻게 보면 광기에 차 있어 보이는 옴팔 기사단의 모습에 세라는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때,
“내가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곤란하지.”
뒤로 물러나고 있는 세라의 곁에 어느 틈엔가 레이몬드가 따라와 붙어 있었다.
그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섬광과도 속도로 세라를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