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 내 언데드 100만 >
제 70 화 사라와 세라
“꺅!”
카엘이 서 있던 자리 너머로 벽돌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툭 튀어나왔다.
고양이처럼 생긴 뾰족한 귀와 꼬리, 그리고 메이드 복을 입은 소녀였다.
그녀는 숨겨진 방의 문을 열기 위해 온몸으로 밀고 있었는지, 문이 열리자마자 슬라이딩을 하듯 바닥에 쓰러졌다.
“사라 언니!”
그리고 숨겨진 방에서 누군가가 또 튀어 나왔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소녀와 마찬가지로, 귀여운 고양이 귀와 꼬리를 가진 메이드 복 소녀였다.
두 소녀의 다른 점은 머리카락이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소녀는 붉은 머리카락을 왼쪽으로 묶어 올린 사이드 포니테일 스타일이었으며, 방금 전에 숨겨진 방에서 튀어나온 소녀는 푸른 머리카락을 오른쪽으로 묶어 올린 사이드 포니테일 스타일이었다.
그녀들은 다름 아닌 사라와 세라였다.
“바보 언니 괜찮아요?”
세라는 사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응, 괜찮아. 그리고 바보라고 하지 마!”
사라는 세라의 손을 붙잡고 일어서며 투정 부리듯 말했다.
그렇게 숨겨진 방에서 튀어나온 사라와 세라는 서로 티격태격 싸우며 주위를 둘러봤다.
“…….”
순간 사라와 세라는 입을 다물었다.
이변을 눈치챈 것이다.
자신의 주위에 포진해 있는 존재들을 본 사라는 재빨리 마력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익스플……!”
“언니, 입 닥쳐요!”
그런 사라의 입을 세라가 손으로 틀어막았다.
“읍읍!”
다짜고짜 상급 화염계 폭발 마법 익스플로전을 시전하려던 사라는 항의하는 눈빛으로 세라를 바라봤다.
하지만 세라는 사라를 무시하며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바보 언니가 바보 같은 짓을 해서 죄송합니다.”
세라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다름 아닌 한성을 향해서.
한성이 매드니스 도적단의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챈 것이다.
“너희들은 누구지?”
한성은 갑작스럽게 나타나서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있는 소녀들을 바라봤다.
손목에 스마트 밴드워치가 없는 것으로 보아 켈트인으로 보였으며, 고양이 귀와 꼬리로 보아 아인종 중에서 묘인족인 것 같았다.
겉모습은 10대 중후반 정도로 보였지만, 인간이 아닌 묘인족이니 실제 나이는 30살은 넘었을 것이다.
묘인족은 인간보다 수명이 약 2배 정도 기니까.
“저희들은 메이드예요.”
매드니스 도적단 아지트에서 온갖 고초를 겪었는지 사라와 세라의 메이드 복은 여기저기 찢어져 있었고, 그것을 보강하기 위해 어디서 구했는지 허름한 천으로 몸을 가리고 있었다.
“어디 메이드?”
한성은 세라를 바라보며 반문했다.
화륵.
그런 한성의 등 뒤로 라이가 스윽 나타났다.
2미터나 되는 거구의 라이컨슬로프가 푸른 화염을 피어 올리며 사라와 세라를 내려다봤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고양이 귀 메이드들에게 위압감을 보이는 라이.
라이는 거만한 표정으로 사라와 세라를 내려다봤다.
그러자 세라에게서 해방된 사라가 손목을 걷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역시 익스플로전으로…….”
“바보 언니는 닥치고 있어요!”
“왜, 왜 나만 가지고 그래?”
세라의 태도에 사라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바라봤다.
지금 상황만 보면 눈앞에 있는 개 같은 늑대가 자신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지금 당장이라도 사라는 자신의 장기인 화염 마법을 날리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그런데 자꾸 여동생인 세라가 막고 있었던 것이다.
‘언니는 함부로 행동하지 마요.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화염 마법을 펑펑 날렸다가 일이 복잡해진 적이 한두 번이에요?’
‘으우…….’
세라의 귓속말에 쫑긋쫑긋하게 세워져 있던 사라의 고양이 귀가 축 처졌다.
세라의 말이 틀리지 않았으니까.
“난 별로 기다리는 걸 싫어하는데.”
눈앞에서 들려오는 중저음의 목소리에 세라는 다시 한성을 바라봤다.
“죄송해요. 저희들은 미트리아 왕국의 크리스토 백작가의 사용인들이에요.”
“미트리아 왕국?”
세라의 말에 한성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현재 한성이 시작의 대륙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가는 아르센 왕국이다.
그리고 미트리아 왕국은 아르센 왕국에서 바다 건너에 있는 국가였다.
“미트리아 왕국의 백작가 메이드들이 이곳엔 무슨 일이지?”
“그건…….”
한성의 질문에 세라는 말꼬리를 흐렸다.
백작가의 위신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흠.’
한성은 사라와 세라를 가만히 바라봤다.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갔다.
“납치라도 당한 건가?”
“……!”
한성의 말에 사라는 고양이 귀를 팔락팔락거렸으며, 세라는 고양이 귀를 파르르 떨었다.
“바다 건너에 있는 왕국의 백작가 메이드들이 어쩌다가 이런 곳까지 납치를 당한 거지? 백작가에서 버림이라도 받았나?”
“아니야!”
“아니에요!”
사라와 세라는 동시에 소리쳤다.
사실 붙잡힌 게 맞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지?”
한성은 날카로운 눈으로 그녀들을 바라봤다.
미트리아 왕국의 백작가 메이드들이 아르센 왕국의 도적 집단에게 붙잡혀 있다니.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거기다 버림받아서 팔린 것도 아니라고 하지 않는가?
‘뭐, 나와는 상관없나.’
어찌되었든 눈앞에 있는 메이드 소녀들은 매드니스 도적단이 납치한 인질들일 것이다.
그녀들이 어떤 사정을 갖고 있는지는 한성과 상관없었다.
‘다만…….’
한성은 사라와 세라를 바라봤다.
그녀들은 한성의 질문에 안절부절못하며 눈치를 계속 살피고 있었다.
“그건…… 말할 수 없어요.”
세라는 한성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자신들이 미트리아 왕국에서 이곳 아르센 왕국으로 온 이유.
그것만큼은 밝힐 수 없었다.
그 이유야말로 크리스토 백작가의 위신이 걸려 있었으니까.
“뭐, 좋아.”
세라의 말에 한성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비교적 세라보다 자신의 근처에 있는 사라의 머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후냑!”
그러자 사라는 화들짝 놀랐다.
한성이 사라의 머리를 쓰다듬었기 때문이다.
깜짝 놀란 사라의 고양이 귀는 쫑긋 세워져 있고, 꼬리도 마찬가지였다.
쓰담쓰담.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의 표정이 풀리면서 꼬리가 좌우로 살랑살랑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마스텅!”
그때 등 뒤에 매달려 있던 루루가 한성의 어깨 위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그리고 한성의 얼굴을 향해 뿔이 나 있는 자신의 머리를 들이댔다.
자기 머리도 쓰다듬어 달라는 모양이었다.
“하여간 루루는 어리광쟁이라니까.”
“헤헤.”
한성은 남은 손으로 루루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다가 세라를 바라봤다.
“너도 해 줄까?”
“거절할게요.”
한성의 말에 세라는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고양이 귀가 살짝 떨렸을 뿐, 세라는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여전히 무표정했다.
다만 무표정한 얼굴과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귀와는 다르게 꼬리는 한없이 높게 치켜 올려가 있었지만.
“그보다 당신은 누구시죠? 매드니스 도적단을 토벌하러 온 방문자님이신가요?”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럼 카엘은…….”
“이미 처리했다.”
“혼자서 말인가요?”
세라의 반문에 한성은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던 세라의 얼굴에 살짝 놀란 빛이 스쳐 지나갔다.
매드니스 도적단의 단장, 카엘.
그가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물건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를 가진 카엘을 혼자서 처리했다니…….”
세라의 중얼거림에 한성은 흠칫했다.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에 대해 알고 있나?”
“방문자님도 알고 계시나 보군요.”
세라의 대답을 들으며 한성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눈앞에 있는 묘인족 메이드 소녀가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에 대해 알고 있었을 줄이야.
“그럼 어둠의 신봉자들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겠군.”
“네…….”
세라는 말꼬리를 흐리며 대답했다.
한성의 말대로였기 때문이다.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는 어둠의 신봉자 단체에서 누군가가 유통시키고 있는 아이템이었다.
그 효과는 천차만별이다.
한성이 네로폴리스 도시에서 어둠의 신봉자들과 싸웠을 때, 간부들이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를 사용했었다.
하지만 카엘만큼 강해지지 않았다.
그때 어둠의 신봉자들은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에 깃들어 있는 흑마력의 대부분을 언데드 몬스터들을 소환하기 위해 사용했었으니까.
“너희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한성은 사라와 세라를 바라봤다.
그녀들에게서 몇 가지 알아볼 사항이 있었다.
어둠의 신봉자들과 안드로말리우스의 수정구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들을 캐낼 생각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녀들의 몰골을 보면 꽤 오랫동안 매드니스 도적단에게 잡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매드니스 도적단이 무슨 일을 벌여 왔는지 알고 있을 터.
데이지의 행방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뭐죠?”
“매드니스 도적단에게 납치당한 소녀들은 어떻게 되었지?”
“…….”
한성의 질문에 세라는 잠시 침묵했다.
그런 그녀에게 한성은 계속 말을 이었다.
“나는 플로렌스의 빈민가에 살고 있는 데이지라는 소녀의 행방을 찾고 있다. 마지막으로 알아낸 게 매드니스 도적단에게 납치당했다는 사실이지.”
“데이지라는 이름의 소녀는 처음 들어보네요.”
“역시 그런가……. 뭐, 그녀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을 테니까.”
눈앞에 있는 묘인족 메이드 소녀들이 데이지에 대해 알고 있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데이지가 죽은 지 시일이 꽤 지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행방 정도는 알아낼 수 있었다.
‘그래도 어떻게 되었는지 행방 정도는 알아낼 수 있겠지.’
매드니스 도적단에 납치된 소녀들과 데이지는 같은 운명이었을 것이다.
그 말은 지금까지 매드니스 도적단에 납치된 소녀들이 어떻게 됐는지만 알아내도 데이지의 행방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매드니스 도적단에 납치된 소녀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나?”
한성은 세라를 바라봤다.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이었지만 고양이 귀 끝이 살짝 늘어져 있었다.
“……알고 있어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세라는 한성을 바라봤다.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게 낫겠죠. 이쪽으로…….”
세라는 한성을 데리고 비밀의 방으로 향했다.
한성은 등에 매달려 있는 루루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매드니스 도적단의 아지트에 존재하는 단원들은 대부분 전멸했다. 거기다 단장과 부단장까지 죽은 상황이었다.
더 이상의 습격은 없을 테고, 설령 아직 살아남은 도적 단원들이 있어도 상관없었다.
보스룸에는 아직 해골 병사들과 스켈레톤 커맨더들, 그리고 프로즌 좀비 울프들과 데스나이트들도 상당수 남아 있었으니까.
끝없는 재소환의 결과였다.
“라이.”
크르릉.
한성은 호위로 라이만 불렀다.
“사라 언니도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나 혼자 여기 있으라고?”
세라의 말에 사라는 주변을 둘러보며 꼬리를 말아 내렸다.
어떤 험난한 국면이라도 세라가 있으면 사라는 견뎌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세라가 없으면 그렇지 못하다.
“금방 갔다 올 테니까, 문제 일으키지 마요.”
“으, 응.”
그렇게 한성은 라이를 데리고 세라와 함께 비밀의 방과 연결되어 있는 계단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