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 내 언데드 100만 >
제 69 화 비밀 장소
“저놈은 대체 뭐지? 변태인가?”
이 대리는 턱을 쓰다듬으며 진지한 눈빛으로 모니터 화면 속에서 안내 메시지들을 확인하고 있는 한성을 바라봤다.
“설마요. 그럴 리…… 없겠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니터 화면 속에서 기뻐하고 있는 한성을 바라보며 박 주임은 말꼬리를 의문형으로 끝냈다.
다시 생각해 보니 한성의 행동이 의문스러웠던 것이다.
가상 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에서 초반 레벨업은 조금 과장하자면 몸만 움직이어도 경험치가 들어온다.
처음 시작하는 마을 수련장에서 허수아비만 몇 대 툭툭 쳐도 레벨 업을 할 수 있었으니까.
“마이너스 1레벨이 되려면 최소 10번은 죽어야 되지. 아무리 전승을 해서 레벨이 초기화되었다고 해도 한 번 죽으면 마을에서 부활이 가능하잖아? 그런데 저놈은 마이너스 레벨을 10까지 찍었단 말이야.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지?”
이 대리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게임이라고 해도 죽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한성은 수도 없이 죽은 끝에 마이너스 레벨이 되었다.
이 대리와 박 주임은 한성이 블랙 레이븐 클랜원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해 마이너스 레벨이 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니까.
가상 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를 즐기고 있는 플레이어들의 숫자는 어마어마하다.
그중 한 명인 한성이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인원적인 문제도 있고, 전체 플레이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하기에는 기술적으로도 무리가 있었다.
거기다 개인 프라이버시 문제도 있으니 말이다.
티르 나 노이에서 중요한 아이템을 누가 먹었는지 정도만 파악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리고 문제는 실제로는 마이너스 레벨을 10이 아니라 20까지 찍었다는 사실이지요.”
“지금 내 말이 그 말이라니까.”
박 주임의 말에 맞장구치며 이 대리는 혀를 찼다.
마이너스 1레벨 자체도 만들기 어려운데 한성은 마이너스 레벨 10을 찍었다.
어디 그뿐인가?
데스브링어의 최소 전직 조건인 마이너스 10레벨을 넘어서 20레벨까지 찍은 것이다.
이 대리와 박 주임 입장으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들이 지금 사태를 알게 된 것은 이시스가 2차 각성을 한 카엘이 쓰러졌다는 보고를 하면서부터였다.
본래라면 2차 각성한 카엘에게 방문자가 쓰러져야 하지만 반대 상황이 되면서 이시스로부터 보고가 온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 대리는 한성에 대해 종종 알아보고 있었다. 지난번 세이란과 함께한 던전 탐사 임무에 대한 보상을 줘야 했으니까.
그런데 설마 이런 일이 생겨 버릴 줄이야.
“하다못해 마이너스 레벨을 20까지 찍지 않았어도…….”
“장비와 칭호 추가 스텟도 받지 않았으면…….”
이 대리와 박 주임은 모니터 화면 속에 있는 한성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2차 각성을 한 카엘의 레벨은 120.
그런 카엘을 상대할 때 한성의 레벨은 98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한성이 전승 및 마이너스 레벨 특전을 더하면 본래 레벨에서 약 +55 레벨을 더해야 한다. 마이너스 레벨은 스텟과 스킬 포인트를 2배씩 받으니 말이다.
그 상태에서 순수 스텟만 놓고 본다면 한성의 레벨은 2차 각성을 한 카엘보다 높았으며, 장비와 칭호에 붙어 있는 추가 스텟까지 합하면 훨씬 더 높았다.
하지만 문제는 카엘이 보스 몬스터라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보스 몬스터는 같은 레벨의 플레이어 방문자가 여섯 명은 모여야 잡을 수 있다.
그렇다고 꼭 보스 레벨과 동일해야 되는 건 아니다.
플러스마이너스 오차로 5레벨 안팎이면 그럭저럭 보스 몬스터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런 보스몹을 솔플로 잡으려면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성은 전승 및 마이너스 레벨 특전 스텟을 비롯해서 칭호와 장비에 붙어 있는 추가 스텟으로 혼자 카엘을 잡아 버렸다.
그것도 2차 각성을 하면서 본체 스펙뿐만이 아니라 장비까지 강화된 카엘을 말이다.
“정말 운이 좋은 녀석이군.”
“그러게 말입니다.”
이 대리의 말에 박 주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승을 한 데다가 마이너스 레벨을 20까지 만들어서 추가 스텟을 얻었으며, 성능이 제법 좋은 장비와 칭호까지 얻었다.
그런 한성을 이 대리와 박 주임은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장비와 칭호뿐만이 아니다.
매드니스 도적단 아지트에서, 가상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 최초로 한성은 단장 카엘과 만났다.
매드니스 도적단 아지트에서 처음으로 단장 카엘이 등장하게 설정된 것은 사실 지난번 대규모 업데이트부터였다.
특정 조건을 만족시키면, 매드니스 도적단의 단장인 카엘이 등장하면서 2차 각성을 하도록 말이다.
그 특정 조건이란 다름 아닌 빈민가의 소녀 데이지다.
히든 퀘스트인 빈민가의 소녀를 수행 중이었기 때문에 한성의 앞에 매드니스 도적단의 단장인 카엘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애초에 히든 퀘스트인 빈민가의 소녀를 찾는 건 까다로웠다.
가장 먼저 서브 퀘스트 데이지의 부탁을 클리어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방문자들은 그냥 넘어가기 일쑤였으니까.
서브 퀘스트의 보상이 있으나마나 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에르네스트 산 정상 보스인 드로이얀은 방문자들이 기피하는 보스 몬스터로 잘 가지 않았다.
그나마 드로이얀을 공략하러 가는 방문자들도 데이지의 부탁이라는 서브 퀘스트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으며, 보상이 없다시피 했기에 그냥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한성은 그러지 않았다.
데이지의 부탁 서브 퀘스트를 클리어하면서 숨겨진 히든 퀘스트인 빈민가의 소녀를 발견한 것이다.
게다가 히든 퀘스트 빈민가의 소녀는 최대 레벨 제한이 있었다.
그 때문에 100레벨이 넘으면 히든 퀘스트 자체를 받지 못하고, 그럴 경우 매드니스 도적단 아지트에 입장해도 카엘이 2차 각성하는 이벤트는 발동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이벤트는 2차 각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패배하는 것까지 한 세트였다.
즉, 플레이어 방문자가 2차 각성한 카엘에게 패배하는 상황까지가 강제 이벤트였던 것이다.
레벨을 떠나, 가상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에서 시나리오 진행을 위해서 필요한 이벤트였다.
2차 각성을 한 카엘에게 패배하면, 또 다른 숨겨진 이벤트가 드러나게 된다.
그 때문에 2차 각성을 한 카엘은 비록 레벨이 120이었지만, 플레이어 방문자를 상대로 이겨야 한다는 강제성 이벤트가 있기 때문에 실제 레벨보다 좀 더 강하다.
굳이 중앙 대륙의 보스 몬스터와 비교하자면 대략 150레벨 수준 정도는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처구니없게도 한성은 여러 가지 요인으로 100레벨 이하에서 2차 각성을 카엘을 쓰러트리고 말았다.
그로 인해 이후 진행될 시나리오가 꼬여 버린 데다가, 시스템 프로그램이 오류를 일으키면서 본래 시나리오에는 없는 일이 발생했다.
카엘이 미쳐 가면서 자해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가상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의 서버 통합 관리 유그드라실 인텔리전스 시스템인 이시스가 재빠르게 대처했다는 사실이었다.
그 결과가 카엘의 자결이었다.
다행히 원래 시나리오대로 카엘이 독약으로 자결을 한 것이다.
다만 원래 예정보다 시기가 일렀다.
하지만 만약 카엘을 그대로 나뒀다면 어떤 버그가 발생했을지 알 수 없었다.
만약 이번처럼 시나리오가 정해져 있는 강제 이벤트가 아닌 경우였다면,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흘러갔을 것이다.
현실과 마찬가지로 인과의 법칙에 따라서 말이다.
“일단 위에다 보고부터 해야겠군. 위에서 어떻게 할지 결정이 내려오기 전까진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지금으로서는 그 수밖에 없겠죠.”
이 대리와 박 주임은 한숨을 내쉬며 대화를 나눴다.
사실 이 대리가 윗선에다 보고 한다고 해도, 위에서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한성은 버그 플레이어가 아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지난번 임무 보상을 아직 주지 않았지?”
“지난번이요?”
“지금 일어나고 있는 미스터리 사건 말이야. 고대 마도 병기랑 비슷하게 생긴 몬스터 사건.”
“아, 그 일 말이군요.”
이 대리의 말에 박 주임은 한성이 세이란과 함께 특수 대응 전담 프로젝트 팀의 부탁을 들어 주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거 아직 위에서 보상을 뭐로 줄지 결정을 미루고 있다면서요? 그거 때문에 매일 한 번씩 랭킹 9위인 세이란 님이 보상 내놓으라고 메일이 날아오고 있다던데…….”
“그냥 적당한 거 던져 주면 될 걸 왜 차일피일 미뤄서는…….”
박 주임의 말을 들은 이 대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방문자 명, 세이란과 트레인(한성)에게 양해를 구해 보상을 뒤로 미뤘다.
본래라면 임무가 끝나고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보상을 줘야 했지만, 뒤처리라던가 이런저런 이유로 바빴기 때문에 보상이 미뤄지고 있었다.
“게임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납득할 만한 보상으로 뭐 괜찮은 거 없을까?”
“게임에 영향을 주지 않는 걸로요? 게임 아이템으로 지급 안 하고요?”
“야, 지금 저 트레인이라는 인간 보면 견적이 안 나오냐? 저기서 장비 좋은 걸 줘 봐라. 무슨 일이 생기겠냐?”
“무슨 일이라니…….”
이 대리의 말에 넉살 좋게 대답하려던 박 주임은 순간 등줄기로 오한이 달렸다.
뒤늦게 이 대리의 말뜻을 이해한 것이다.
“에이, 설마요. 설마 또 지금 같은 일이 생기려고…….”
“내가 장담하건데 더 생기면 더 생겼지, 안 생기진 않을 거다.”
“…….”
이 대리의 대답에 박 주임은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아무튼 그럼 난 팀장님한테 보고하고 올게.”
그렇게 말한 이 대리는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팀장님 머리카락이 민들레처럼 빠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릴 거 같네.”
“발모제 하나 사 드려야 할 듯.”
“내 말이…….”
이 대리와 박 주임의 대화에 사무실 분위기가 축 처지는 느낌은 과연 기분 탓일까.
* * *
[축하합니다. 당신은 매드니스 도적단의 아지트를 공략했습니다. 보상으로 9500 골드와 Lv90 레어 보물 상자를 지급합니다.]
[전승 특전 효과로 보상을 세 배로 받습니다.]
‘공략 완료인가.’
2차 각성을 한 카엘을 쓰러트렸다는 안내 메시지가 올라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매드니스 도적단 아지트를 공략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당초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레벨도 어마어마하게 올랐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히든 연계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한 조건은 충족을 못 시켰다.
데이지가 어떻게 되었는지 행방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사실 히든 퀘스트는 한 번 실패하면 재도전을 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한성이 죽을 둥 살 둥 하면서 언데드 소환수들을 부려서 카엘을 때려잡은 것이다.
정작 죽어라 고생한 건 언데드 소환수들이었지만.
‘어쩐다?’
한성은 주위를 둘러봤다.
카엘과 싸우고 겨우 살아남은 언데드 몬스터들이 보스룸에서 대기 중이었다.
라이는 한성의 뒤에서 주변을 경계 중이었으며, 루루는 거북이 등껍질처럼 한성의 등에 매달려 있었다.
그렇게 한성이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했다.
“아직 퀘스트는 끝나지 않았어. 만약 실패했다면 실패 메시지가 떠오르면서 퀘스트 자체가 소멸 해 버릴 테니까.
그럼에도 아직 히든 연계 퀘스트 빈민가의 소녀가 남아 있다는 말은 아직 끝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혹시?’
한성은 보스룸 내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히든 연계 퀘스트를 깰 수 있는 힌트가 숨겨져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그 순간.
스르르렁.
카엘이 처음 있었던 자리 뒤에 있는 벽이 열리기 시작했다.
‘역시!’
한성은 놀란 표정으로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는 비밀 통로를 노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