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
< 내 언데드 100만 >
제67화 카엘의 최후
콰아아아앙!
“크으윽!”
칠흑의 대검 옆면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카엘은 신음을 흘렸다. 어마어마한 기세로 상공에서 거대한 흑검이 내려쳤던 것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무려 세 개나.
크오오오오오!
심연에서 울려 퍼질 것 같은 괴성이 칠흑의 기사들에게서 터져 나왔다.
“이, 이놈들은?”
갑작스러운 공격을 힘겹게 막아 낸 카엘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자신을 세 방향에서 포위하고 있는 칠흑의 갑주로 무장한 거대한 흑기사들을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언데드 몬스터들과는 차원이 다른 위압감을 가진 존재들.
데스나이트(Death Knight).
3미터에 달하는 키를 가진 죽음의 기사 세 기가 카엘을 향해 칠흑의 거검을 내려쳤던 것이다.
콰가가가강!
칠흑의 대검을 밀어 올리며 데스나이트들의 거검을 쳐낸 카엘은 재빠르게 몸을 뺐다.
“내가 이런 놈들 따위에게 당할 것 같으냐!”
뒤로 한 차례 물러났던 카엘은 데스나이트들을 향해 칠흑의 대검을 앞세우고 달려들었다.
카앙!
데스나이트의 거검과 카엘의 대검이 맞부딪쳤다.
쿵쿵!
카엘의 일격을 막은 데스나이트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캉캉캉!
이어서 묵직한 쇳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눈부신 속도로 카엘이 대검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역시 어림도 없네.’
한성은 카엘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데스나이트를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한성이 소환할 수 있는 언데드 몬스터들 중에서 틀림없이 상위에 들어가는 데스나이트였지만 카엘의 상대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콰앙!
그때 카엘의 대검을 힘겹게 막아 내면서 데스나이트의 팔이 크게 위로 튕겨져 올라갔다.
그 때문에 데스나이트의 가슴이 훤히 드러났다.
“죽어라!”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카엘의 대검이 날카롭게 공기를 찢으며 쇄도했다.
하지만.
콰가가가가각!
“이놈……!”
카엘은 고개를 돌리며 한성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그곳에 씨익 웃고 있는 한성이 있었다.
지금 카엘의 대검은 데스나이트 2기의 거검에 막혀 있었다.
카엘과 싸우던 데스나이트가 위험해지자 한성이 나머지도 개입시켰던 것이다.
“설마 네놈 상대가 데스나이트뿐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한성은 카엘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리고 그런 카엘의 주위에는 한성이 소환한 언데드 몬스터들이 조금씩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흥. 이딴 조잡한 언데드들 따위로 날 이겨 보겠다고?”
카엘은 코웃음을 쳤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지금까지 전투만 봐도 카엘이 압도적으로 우세했으니까.
“물량 앞에 장사 없다는 말도 몰라?”
그렇게 말한 한성은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 직후, 해골 검병들과 프로존 좀비 울프들을 비롯한 데스나이트들이 카엘을 향해 달려들었으며, 해골 궁병들이 원거리에서 화살을 비처럼 쏘아 대기 시작했다.
“과연 네놈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언데드 몬스터들이 카엘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성은 진한 미소를 지었다.
* * *
“허억허억.”
카엘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저 빌어먹을 놈을 너무 우습게 봤나…….’
카엘의 주변에는 쓰러져 있는 언데드 몬스터들로 즐비했다.
아니, 즐비한 정도가 아니라 보스 룸 곳곳에 언데드 몬스터들이 작은 동산처럼 쌓여져 있었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언데드 몬스터들을 쓰러트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엘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크르르.
덜그럭덜그럭.
여전히 카엘의 주변에는 한성이 소환한 언데드 몬스터들이 포위하고 있었으니까.
“이제 그만 포기하지 그래?
“징글징글한 놈.”
카엘은 한성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흑마력이 깃들어 있는 칠흑의 대검으로 수도 없이 언데드 몬스터들을 쓰러트렸다.
하지만 그러자마자 거의 바로 한성이 재소환을 했다.
카엘이 언데드 몬스터들을 쓰러트리는 게 빠른지, 한성이 다시 소환하는 게 빠른지 승부였다.
사실 카엘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한성을 처리하는 것이다.
문제는 한성이 있는 최후방으로 가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수많은 언데드 몬스터들을 뚫어야 하는데다가 한성을 호위하는 존재들도 있었으니까.
가장 먼저 세부적으로 언데드 몬스터들을 지휘하는 오색빛깔 스켈레톤 커맨더들이 한성의 앞에 있었다.
그리고 한성의 왼쪽에는 융합 몬스터인 라이가 언제나 카엘을 주시하며 팔짱을 낀 채 서 있었으며, 한성의 오른쪽에는 루루가 귀여운 동물 춤을 추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성의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정체불명의 몬스터도 있다는 사실을 카엘은 인지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저놈들을 쳐 죽여 버리고 싶지만…….’
카엘은 주위를 둘러봤다.
이전에 비하면 확실히 언데드 몬스터들의 숫자가 줄어들어 있었지만, 그만큼 카엘도 지쳐 있는 상황이었다.
이제 끝이 멀지 않았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조금만 더 기다려 주마.’
지금은 착실히 언데드 몬스터들의 숫자를 줄여 가면서 한성을 향해 다가가는 게 베스트였다.
적어도 지금 카엘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
“라이트닝 드라이브(Lightning Drive).”
한성이 움직였다.
레벨 50이 되었을 때, 개방된 전승 특전 스킬 라이트닝 드라이브.
이전 직업인 패왕 스킬을 시전한 한성은 빛살처럼 카엘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헉!”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언데드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있던 카엘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대검을 들어 올렸다.
콰아앙!
제법 묵직한 일격이 대검에서부터 느껴졌다.
한성의 블랙 레오파드 건틀렛이 카엘의 대검을 후려친 것이다.
“이 자식!”
카엘은 재빨리 대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미 한성은 공격 범위에서 떨어져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언데드 몬스터하고만 놀면 심심하거 아니야. 가끔은 나하고도 놀아야지. 그리고…….”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는 한성의 눈에서 위험한 빛이 났다.
“이제 끝내 주마.”
“이 시건방진 자식이!”
한성의 말에 카엘은 눈썹을 실룩이며 대검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한성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쳐 죽여 주마!”
“누가 할 소릴!”
그렇게 한성과 카엘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크헉!”
카엘의 입에서 붉은 피가 허공에 흩뿌려졌다.
털썩.
카엘은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었다.
“지긋지긋한 놈.”
그런 그를 바라보며 한성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2차 각성을 한 카엘은 엄청 강했다.
그 때문에 제압하기까지 꽤 오래 걸렸던 것이다.
‘이거 정말 솔플로 깰 수 있는 거 맞아?’
카엘을 내려다보며 한성은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히든 연계 퀘스트인 빈민가의 소녀, 데이지를 클리어 하는 조건은 솔플로 매드니스 도적단 아지트를 공략하는 것이다.
하지만 100 레벨을 찍은 방문자 여섯 명이 모여도 클리어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그만큼 2차 각성한 카엘은 더럽게 강했다.
‘어쨌든 클리어했으니 됐지.’
언데드 몬스터들을 죽어라 소환하면서 물량으로 밀어 붙이고, 이따금 자신과 틴달로스, 라이로 공격해가며 카엘을 밀어 붙였다.
그 끝에 결국 카엘을 쓰러트렸던 것이다.
“죽여라.”
카엘은 핏발이 선 눈으로 한성을 노려봤다.
그 모습에 한성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죽을 때 죽더라도 이야기는 하고 죽어야지.”
“무슨 이야기?”
퍼억!
한성은 무릎을 꿇고 있는 카엘의 얼굴을 발로 찼다.
하지만 카엘은 움직일 수 없었다.
등 뒤에서 데스나이트 2기가 카엘의 어깨를 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놈이 납치한 빈민가의 소녀. 그녀를 어쨌지?”
“빈민가 소녀?”
나직한 목소리로 묻는 한성의 말에 카엘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고작 그 따위 이유 때문에 혼자서 날 찾아온 거냐?”
“닥치고, 내 질문에 답이나 말해. 망할 자식아!”
“크크크. 크하하하하핫!”
순간 카엘이 광소를 터트리며 온 몸을 들썩였다.
우둑! 우두두둑!
어찌나 몸을 뒤흔들어 대는지 데스나이트에게 붙잡혀 있는 카엘의 어깨가 기괴한 모습으로 꺾이며 탈골되었다.
“키키킥!”
쾅쾅쾅!
그뿐만이 아니었다.
급기야 카엘은 미친 듯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땅바닥에 머리를 쳐 박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놈 왜 이래? 미쳤나?”
영문을 알 수 없는 카엘의 행동에 한성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데스나이트들에게 손짓을 보냈다.
그제야 데스나이트들은 카엘의 자해 행위를 막기 위해 몸을 붙잡았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어마어마한 힘으로 카엘은 지면에 머리를 박아 댔다.
바닥까지 내려가 있는 카엘의 빨간색 생명력의 바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모습이 보일 정도였다.
“아, 안 돼!”
그 행동에 한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재빨리 카엘을 향해 다가갔다.
자신은 아직 데이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사실 매드니스 도적단의 보스룸까지 오는 도중에도 도적단원들에게 납치한 소녀에 대해 물었었다.
하지만 도적단원들은 자신들은 모른다고 답하며 단장이나 부단장, 그리고 간부급들만 알고 있다고 정보를 불었다.
그래서 보스룸에서 카엘을 제압한 후, 느긋하게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었는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대체 뭐야 이건? 무슨 이벤트 같은 건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전부 처음 있는 일들이었다.
매드니스 도적단 아지트에서 단장과 부단장이 동시에 나타났다는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다.
만약 이런 경우가 있었다면 이미 인터넷에서 정보가 공유 되었을 테니까.
즉, 지금 한성이 겪고 있는 상황들은 전부 최초라는 소리였다.
“멍청한 짓은 그만둬! 난 네놈한테서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다고!”
“흥. 네놈 따위에게 도움이 될 바에 내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
카엘은 한성을 죽일 듯이 노려보더니 이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우득!
“이, 이런!”
한성은 독약을 깨문 카엘의 입을 벌리려고 했다.
하지만…….
“끄르륵.”
얼마 지나지 않아 카엘은 입에서 게거품을 물며 쓰러졌다.
[축하합니다. Lv120 매드니스 도적단의 보스, 흑화한 카엘을 처치하셨습니다. 보상으로 12000 골드를 지급합니다.]
“아……”
눈앞에서 떠오르는 메시지를 바라보며 한성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 * *
“…….”
가상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를 개발한 게임 회사 오딘.
그곳의 특수 대응 전담 프로젝트팀 사무실에서 이성식 대리는 깍지를 낀 손 위에 턱을 대고 눈앞에 있는 모니터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 화면만을 바라보고 있는 이성식 대리.
그리고 특수 대응 전담 프로젝트팀 사무실에 있는 팀원들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이 대리를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폭풍 전야와 같은 긴장감이 이성식 대리를 중심으로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이윽고 이성식 대리의 입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