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언데드 100만-55화 (55/318)

# 55

< 내 언데드 100만 >

제 55화  이변(異變)

“안내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는군.”

고대 마도병기를 쓰러트리고 난 후, 세이란도 이변을 눈치챘다. 몬스터를 잡았는데 안내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기본적인 게임 시스템이 먹통이 되어 버린 것이다.

“오딘 사에서 연락 온 건 없나?”

“아까부터 연락하고 있는데 대답이 없어.”

“흠…….”

세이란의 말에 한성은 생각에 잠겼다.

한성은 오딘 사의 개발자들이 고대 마도병기를 히든 던전 잊혀진 유적에 추가한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딘 사에서 답변이 없는 것을 보니 저쪽도 고대 마도병기의 등장이 뜻밖의 상황이었던 모양이었다.

‘설마 잊혀진 유적을 조사하라고 한 이유가 고대 마도병기 때문인 걸까?’

티르 나 노이 세계에서 설정상으로 존재하는 고대 마도병기.

어떻게 쓰러트릴 수 있었지만, 골드도 안 나오고 아이템도 안 나왔다.

어디 그뿐인가?

경험치조차 나오지 않았다.

마치 게임 시스템과 관계가 없는 것처럼.

‘관계가 없다?’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생각에 한성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일단 가상 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에서 지금처럼 몬스터를 처치했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는 큰 버그는 있을 수 없다.

유그드라실 인텔리전스 시스템 인터페이스 유닛(Yggdrasil Intelligence System Interface Unit).

통칭 이시스라 불리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통합 관리하고 있으니까.

물론 자잘한 버그는 존재한다.

일반적인 게임에선 그런 자잘한 버그들이 여러 개 생겨나 한꺼번에 오류를 일으켰을 때 중대한 버그가 발생하곤 한다.

하지만 이시스는 자잘한 버그들이 발생한 즉시 수정에 들어간다.

그 때문에 작은 버그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조차 적었다.

즉, 가상 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에서 큰 버그가 발생하는 일은 없었다는 소리다.

개발자가 약 빨고 가상 현실 시스템 프로그램에 손대지 않는 이상 큰 버그가 발생하는 일은 없었다.

그럼 대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설마 게임 시스템과 관계없는 몬스터라고?’

한성은 소름이 돋았다.

가상 현실 세계 티르 나 노이의 기본적인 기반은 게임 시스템이다. 티르 나 노이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들은 게임 시스템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리고 그 게임 시스템을 관리하는 게 오딘 사의 운영자들과 개발자들이고 인공지능 시스템 이시스가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게임 시스템의 영향을 받지 않는 몬스터라니?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한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야말로 고대 마도병기는 이레귤러가 아닐 수 없었다.

“아직도 연락 없어?”

“응. 대답이 안 와.”

세이란은 자신의 고운 눈을 일그러뜨렸다.

지금까지 자신이 연락을 씹으면 씹었지, 오딘 사의 운영 측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답변을 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연락을 보내면 적어도 몇 분 이내로 답장이 왔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수십 분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확실히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네.”

고대 마도병기를 쓰러트린 것과 별개로 한성과 세이란은 오딘 사의 부탁을 수행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상을 약속받았다.

부탁을 수행한 지금, 약속된 보상을 받으려면 오딘 사와 연락이 되어야 하는데 이쪽에서 불러도 깜깜무소식이었다.

“이거 오딘 사에서 입을 싹 닦는 건 아니야?”

“설마.”

한성의 말에 세이란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한성을 바라봤다.

“그보다 이제 내놔.”

세이란은 한성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뭘?”

“네가 무단으로 촬영한 동영상 말이야.”

“안 잊어 먹고 있었네.”

“당연하지!”

잊어 먹을 리 없었다.

한성이 촬영한 동영상은 세이란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최대의 흑역사가 기록되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넌 지금 상황보다 동영상이 더 중요하냐?”

“두말하면 잔소리지.”

어째서 고대 마도병기가 게임 시스템의 영향을 받지 않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세이란에게 있어서 중요한 건 동영상이었다.

가상 현실 게임에 무슨 문제가 생겼다면 오딘 사와 이시스가 알아서 수정을 할 테니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번 일은 그녀의 관심 밖이었다.

“좋아. 약속은 약속이니까.”

스마트 밴드워치를 조작하며 한성은 순순히 세이란에게 동영상 파일을 넘겼다.

“진짜?”

세이란은 놀란 표정으로 한성을 바라봤다.

설마 진짜로 동영상 파일을 넘겨줄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한성과 한바탕 실랑이를 해야 겨우겨우 동영상 파일을 받을 줄 알았던 세이란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가짜게?”

피식 웃으며 한성은 세이란을 슬쩍 바라봤다.

사실 지금 상황은 애매했다.

왜냐하면 한성과 세이란의 연결고리 2가지가 사라진 상황이었으니까.

바로 히든 던전 잊혀진 유적을 조사하는 일과 오딘 사의 운영진들이었다.

잊혀진 유적을 조사하는 일은 끝났다.

오딘 사에서 조사하라고 한 이유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고대 마도병기일 터였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인 오딘 사의 운영진들은 지금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한성이 가지고 있던 비장의 수단인 동영상 파일이 세이란의 손에 넘어간 것이다.

‘자, 이제 어쩔 거냐?’

막말로 세이란이 한성의 목을 날려도 아무 말할 수 없는 상황.

“파일은 확실한 거 같네. 이걸로 내 볼일은 끝났어.”

동영상 파일을 확인한 세이란은 한성을 바라봤다.

“보수와 관련해서는 나중에 오딘 사에 연락해 봐. 여기 연락처.”

세이란은 한성에게 이성식 대리의 연락처를 보내 주었다.

그녀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한성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뭐야? 이걸로 끝?”

“그럼?”

세이란은 ‘왜 그러냐?’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녀에게 한성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나한테 원한이 있었던 거 아니야?”

“당연히 있지.”

한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이란은 손톱을 맞부딪치며 대답했다.

마치 챙챙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럼 왜?”

“약속은 약속이니까. 이번에는 넘어가 주지만 다음에 만났을 때는 가만두지 않을 거야.”

한성은 그녀와 약속을 지켰다.

그래서 때문인지 그녀도 나름 한성과 한 약속을 지키려고 한 모양이었다.

“본심은?”

“다음에 만나면 일단 맞고 시작하자.”

“잘 됐네. 우리 이제 두 번 다시 안 볼 거니까.”

“왜? 난 다시 보고 싶은데? 넌 싫어?”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한성을 바라보는 세이란.

티르 나 노이에서 스타로 군림하는 미녀가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만자고 하는데 안 좋아할 남자가 어디 있을까?

“응. 싫어.”

‘네 실체를 알기 전이었으면 또 모르겠지만.’

그녀의 말에 즉답한 한성은 차마 마지막 말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 성검 엑스칼리버가 날아들지도 모르니까.

‘그나저나 운이 좋군.’

한성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세이란은 모를 것이다.

한성이 ‘복사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사실 한성은 동영상 파일을 넘겨주면 세이란이 가만있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녀의 프라이드에 상처를 입혔으니 말이다.

원하는 동영상 파일을 손에 넣었으니 한성에게 분풀이를 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이란은 그냥 물러났다.

자기도 모르게 위기에서 벗어난 셈이다.

만약 그냥 물러나지 않았다면 한성이 동영상 파일 복사본을 인터넷이나 티르 나 노이 안에서 유출시켜 버렸을 테니까.

그렇게 되면 세이란은 어마어마한 스캔들에 휘말려 들었을 것이다.

[메시지가 왔습니다.]

“어? 뭔가 메시지가 왔네.”

“오딘 사에서?”

“잠시만.”

세이란은 자신에게 날아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야?”

“응.”

“그럼 누군데?”

“우리 언니.”

“언니도 있었어?”

세이란의 말에 한성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에게 언니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아는 언니야.”

한성의 반문에 세이란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녀는 티르 나 노이에서 스타와 같은 존재다.

그러니 그녀의 팬들이라면 세이란에 대해 알고 싶어 할 것이다. 가족관계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인간관계까지.

그렇기에 그녀의 가족 관계는 팬들에게 있어서 귀중한 정보 중에 하나였다.

“그럼 난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아. 언니가 보자고 하네.”

조금 전 연락은 세이란이 알고 지내는 언니가 보자고 한 모양이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한성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의미에서…….”

세이란은 한성을 바라봤다.

그런 그녀의 얼굴에는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뭐야? 설마 이제 와서?’

어딘가 꺼림칙한 느낌이 드는 그녀의 미소에 한성은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세이란을 바라봤다.

*       *       *

“대, 대리님?”

특수 대응 전담 프로젝트팀의 사무실.

박상철 주임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이성식 대리를 바라봤다. 그건 이성식 대리도 마찬가지.

절대 있을 리 없는 일이 티르 나 노이에서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고대 마도병기인건가?”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이시스도 같은 대답을 하네요.”

관리자 프로그램에 접속한 박상철 주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성과 세이란이 상대한 정체불명의 몬스터는 고대 마도병기가 맞았다.

그렇다면 문제가 생긴다.

이성식 대리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저거 추가한 적이 있었던가?”

“아니요. 그런 적 없습니다. 저건 설정상으로만 존재하는 거예요.”

“정말이야? 확신할 수 있어?”

“네.”

이성식 대리의 질문에 박상철 주임은 단호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다른 부서에서 추가했을 가능성은?”

“그럼 이시스가 알고 있겠죠. 그런데 이시스도 저거 추가된 적이 없다고 하는데요?”

“…….”

박상철 주임의 대답에 이성식 대리는 갑자기 등줄기에 소름이 끼쳤다.

가상 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에 존재하는 모든 몬스터는 운영자들 및 개발자들, 그리고 이시스가 관리한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운영자들과 개발자들이 정보 전달 미스로 모른다고 해도 이시스가 모르는 일은 없었다.

최종적으로는 이시스에게 모든 관리 정보가 전달되니까.

그런데 이시스도 모르는 몬스터가 등장하다니?

“그럼 저건 대체 누가 구현시킨 거야?”

창백한 표정으로 이성식 대리는 모니터 안에서 한성과 세이란이 처치한 고대 마도병기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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