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 내 언데드 100만 >
제54화 계속되는 의문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고대 마도병기를 향해 해골들이 끊임없이 달려든다. 한성은 쿨타임이 끝나는 대로 시체들을 소환해서 해골 병사들을 소환하고 있었다.
세이란의 공격에 왼쪽 다리가 날아가고, 라이의 강렬한 일격이 적중한 순간 이미 고대 마도병기는 끝나 있었다.
왼쪽 다리가 날아갔기 때문에 기동력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저 애처롭게 나머지 다리들을 버둥거리며 저항하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한 마리를 쳐내면 두 마리가 달려들었고, 푸른 화염과 녹색 바람에 감싸여 있는 라이가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세하지 않아도 괜찮아?”
“어.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겠는데? 다리를 날린 것만으로도 충분해.”
세이란의 말에 한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세이란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해골 검병들을 보더니 혀를 내두르며 다시 한성을 바라봤다.
“그런데 네가 네크로맨서였을 줄이야. 나는 마법사이거나 소환사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평범한 직업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발키리였을 줄이야. 거기다 레벨이 250이 넘다니…….”
서로 파티를 맺었을 때 한성과 세이란은 각자 레벨과 직업을 알 수 있었다.
이미 한성은 세이란이 일반 직업이 아니라는 것쯤은 예상하고 있었다.
일반 평범한 직업으로 랭킹 10위 안에 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분명 히든 직업일 터.
하지만 그녀의 직업이 발키리였을 줄은 몰랐다.
히든 직업도 다양하게 있기는 하지만, 설마 신화 속에서 존재하는 직업이었을 줄이야.
거기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이미 그녀가 250레벨을 넘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최대 제한 레벨이 300으로 풀린 지 아직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세이란의 레벨은 253이었던 것이다.
철컹.
“온다.”
그때 고대 마도병기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고대 마도병기의 등에서 포신이 또다시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일정 시간마다 한 번씩 마도포를 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쩌억.
“……?”
순간 한성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한성과 세이란을 향해 고대 마도병기가 입을 벌렸던 것이다.
“저놈 저거 설마?”
키이이이잉!
말이 씨가 되기라도 한 걸까?
고대 마도병기 입에서 불길한 붉은빛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벌린 입 앞에서 마력을 집속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등 위에 달린 포신을 포함한 광범위 직선 공격!
피하기에는 이미 늦어 있었다.
불과 몇 초 후, 붉은 마도포가 날아들 테니까.
“내 뒤에 물러서 있어.”
한성은 옆에 있던 세이란에게 한마디 하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스킬을 하나 시전했다.
“본 실드!”
고대 마도병기와 한성 사이에 뼈로 이루어진 하얀 오각 방패가 나타났다.
“본 월!”
파바바바박!
이어서 한성과 세이란 앞에 하얀 뼈로 이루어진 그로테스크한 방벽이 지면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더블 본 리터레이션!”
90레벨이 되면서 새롭게 활성화된 2차 직업 데스메이커의 전용스킬.
리터레이션은 본이라고 이름 붙여진 스킬을 중첩시켜 준다.
본 실드, 본 월뿐만이 아니라 본 스피어까지 리터레이션 스킬로 중첩시킬 수 있었다.
현재 한성은 모든 본 시리즈 스킬을 4레벨까지 찍었다.
본 시리즈 스킬의 숙련도 레벨은 4였다.
아직 100레벨이 되지 않아 현재 한성이 찍을 수 있는 스킬 숙련도 최대치는 4레벨이었으니 말이다.
본 리터레이션 스킬은 레벨 2당 본 스킬 하나를 중첩할 수 있다.
가령 예를 들어 본 실드를 중첩시킬 경우 레벨 1에서는 50%의 성능을 가진 본 실드 하나를 만들 수 있다는 소리다.
레벨 2에서는 100%의 본 실드를 생성해 낼 수 있으며, 레벨 3에서는 50%의 성능을 가진 본 실드 2개를 생성할 수 있었다.
본 월, 본 스피어도 마찬가지다.
다만, 본 스피어는 본 실드, 본 월보다 2배 숫자를 중첩시킬 수 있었다.
스킬 자체적으로 레벨 2당 본 스피어를 하나 더 추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본 스피어는 2개까지 소환할 수 있으며, 여기에 본 리터레이션을 더하면 최대 4개까지 가능했다.
고대 마도병기와 한성 사이에 본 실드 3개가 나타나고, 본 월도 3배의 두께로 솟구쳐 올라왔다.
쯔아아아아앙!
그 순간 고대 마도병기에게서 붉은 마력포가 한성과 세이란을 향해 쇄도해 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고대 마도병기의 등에서 나타난 포신은 광선 공격이 아니라 포탄을 내쏘기 시작한 것이다.
고대 마도병기의 입에서 발사된 직경 3미터의 붉은 마도포와 사방에서 무차별적으로 포격하듯 떨어져 내리는 붉은 포탄들.
마력 집속을 시작한 지 불과 몇 초 지나지 않은 순간에 일어난 광범위 공격이었다.
슈와아아아아아악!
이윽고 공기 중의 수분을 불태우며 붉은 마도포가 첫 번째 본 실드와 맞부딪쳤다.
콰콰콰쾅!
첫 번째 본 실드는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그 뒤를 이어 붉은 마도포는 두 번째 본 실드와 충돌했으며, 이내 세 번째 본 실드까지 집어삼켰다.
“큭!”
순식간에 본 실드가 증발하며 사라지자 한성은 이를 악물었다. 이제 남은 건 본 월 세 개뿐.
콰아아아앙!
붉은 마도포가 본 월과 부딪치며 어마어마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콰가가가각!
하얀 뼈로 이루어진 방벽을 조금씩 갉아먹으며 다가오는 붉은 마도포.
한성과 세이란 주위로 뜨거운 열풍이 몰아쳤다.
마도포로 과열된 공기가 덮친 것이다.
아니, 실제로 초고열을 내뿜고 있는 붉은 마도포의 마력이 본 월과 충돌하면서 사방에 퍼지고 있었다.
콰앙!
붉은 마도포를 버티지 못한 첫 번째 본 월이 터져 나갔다.
‘조, 조금만 더.’
한성은 이를 악물었다.
붉은 마도포의 위력이 처음보다 확연하게 줄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막아 낼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스킬을 한 번 시전하면서 마나를 소모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본 월도 마찬가지.
하지만 한성은 지속적으로 본 월을 갉아먹으며 다가오는 붉은 마도포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마나를 쏟아부었다.
속성 능력치인 마나 컨트롤로 마나를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본 월이 강화됩니다.]
‘어?’
갑작스럽게 떠오른 메시지에 한성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지속적으로 공격해 오는 마도포를 막기 위해 한성은 본 월에 마나를 쏟아부었다.
거의 무의식중에 행한 일이었다.
그랬더니 본 월이 강화되었다는 메시지가 뜨는 게 아닌가?
‘나한테 강화 스킬이나 능력은 없을 텐데?’
강화는 대장장이들이 사용하는 스킬이다.
주로 장비를 강화시킬 때 사용한다.
하지만 본 월은 스킬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스킬 강화가 되었다는 말이 아닌가?
슈우우우욱.
그때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본 월과 부딪친 붉은 마도포가 서서히 사라졌다.
고대 마도병기의 브레스를 막아 낸 것이다.
‘생각은 나중이야.’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은 눈앞에 있는 고대 마도병기를 쓰러트리는 일이다.
한성은 블랙 레오파드 건틀렛을 꽉 움켜쥐었다.
펑펑!
한성의 주위에 또다시 시체들이 생겨나며 해골 검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덜그럭덜그럭!
새롭게 나타난 해골 검병들은 고대 마도병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조금 전 고대 마도병기의 공격은 한성과 세이란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 덕분에 한성이 소환한 소환수들은 피해를 크게 입지 않았다.
고대 마도병기가 마도포를 쏘기 직전 해골 검병들은 거미 새끼들처럼 사방으로 흩어졌으며, 라이는 루루를 들고 황급히 대피했으니까.
고대 마도병기가 마도포를 쏜 직후, 해골 병사들과 라이가 다시 달려들었다.
이전보다 해골 병사들의 숫자는 더 늘어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해골 검병들의 숫자는 늘어만 갔다.
“이제 끝날 때가 됐군.”
계속되는 공격에 고대 마도병기의 생명력은 이제 반 이하까지 내려갔다.
해골 병사들의 숫자는 약 100마리 정도.
한성은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
“라이, 이제 뒤로 빠져!”
한성은 푸른 화염을 전신에 걸친 채 고대 마도병기를 공격하던 라이를 불렀다.
그러자 라이는 잽싸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해골 병사들은 고대 마도병기를 향해 몸을 날렸다.
뼈칼로 공격하다 말고 고대 마도병기의 몸에 달라붙었던 것이다.
“본 익스플로전!”
콰아아아아앙!
고대 마도병기의 몸을 덮다시피 한 해골 병사들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콥스 익스플로전보다 한 단계 위의 파괴를 가지고 있는 본 익스플로전.
지금까지 해골 병사들을 소재로 콥스 익스플로전을 사용해 왔다. 하지만 본 익스플로전으로도 해골 병사들을 폭발시킬 수 있었다.
시체들은 본 익스플로전을 사용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쾅! 콰쾅! 콰콰쾅!
고대 마도병기와 밀착하다시피 한 약 100개체의 해골 병사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했다.
키에에에엑!
해골 병사들이 폭발할 때마다 고대 마도병기는 몸을 들썩이며 비명 같은 괴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얼마 후, 고대 마도병기는 조용히 에르네스트 산 위에서 쓰러졌다.
“해치웠나?”
“세이란. 너 앞으로 그 말 금지다.”
“왜?”
“그거 부활 주문이라고. 다시는 하지 마.”
“하?”
한성의 말에 세이란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한성은 눈앞에 쓰러져 있는 고대 마도병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이걸로 안 죽으면 진짜 말도 안 되는 건데…….’
생명력이 반 이하에서 약 백 마리에 달하는 해골 병사들이 연쇄폭발을 일으켰다.
100레벨 보스라고 해도 절반에 가까운 피해를 입을 것이다.
아무리 고대 마도병기라고 해도 그만한 데미지를 받고 파괴되지 않을 리 없었다.
‘왜 안내 메시지가 안 뜨는 거지?’
눈앞에 있는 고대 마도병기는 약 절반가량이 소실된 채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안내 메시지가 떠올라야 한다.
일반 몬스터든, 보스 몬스터든 쓰러트리면 안내 메시지가 방문자들의 시야에 떠오르니 말이다.
안내 메시지는 가상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의 가장 기본적인 게임 시스템이었다.
스스스슥.
“뭐야 저거?”
순간 한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고대 마도병기가 죽은 건지 살은 건지 경계하며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데 마치 검은 연기가 흩뿌려지듯이 고대 마도병기가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처치했다는 안내 메시지가 떠오르지도 않았는데…….”
그뿐만이 아니다.
몬스터를 잡고 주는 기본적인 보상도 없었다.
그 말인즉슨,
“이거 설마 버그 아니야?”
인공지능 관리 시스템 이시스에 의해 거의 완벽하다고 할 만큼 운영되고 있는 가상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
그렇다고 해서 버그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큰 버그는 있을 수 없었다.
인공지능 시스템 이시스가 운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 * *
특수 대응 전담 프로젝트팀의 사무실.
그곳에서 이성식 대리는 창백한 표정으로 고대 마도병기가 떠올라 있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대체 저건 누가 구현시킨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