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
< 내 언데드 100만 >
제53화 언노운 (2)
‘뭐지, 저 몬스터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한성은 잊혀진 던전 입구에서 튀어나온 정체불명의 몬스터를 노려봤다.
전반적으로 타란튤라 거미처럼 생겼다.
그리고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몸길이만 약 8미터에 달했기 때문이다.
몸통에서 내려오는 8개의 굵은 다리는 굳건하게 지면 위에 서 있었으며, 피부 표면은 금속처럼 반들반들 빛나고 있었다.
‘강철 종류의 몬스터인가? 하지만 저 모습은…….’
거대한 거미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어딘가 이질적인 느낌인 언노운 몬스터.
왜냐하면…….
철컥!
키이이잉!
너무 기계적이었으니까.
“서, 설마?”
한성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몬스터의 등에서 긴 막대 같은 물체가 나타났다. 그리고 막대 끝에서 어마어마한 마나가 휘몰아치면서 모여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썅! 저거 고대 마도병기 아니야? 저게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 거야?”
“고대 마도병기라고?”
한성의 말에 세이란은 놀란 표정으로 거미처럼 생긴 정체불명의 몬스터를 바라봤다.
마도병기.
초고대 마도 문명이 남긴 유산 중의 하나다.
티르 나 노이 세계에서는 설정상으로 존재하지만, 마도병기의 잔재 같은 파츠가 발견될 뿐 온전하게 남아 있는 건 없었다.
오딘 사에서도 고대 마도 시대의 마도병기는 설정으로만 존재할 뿐, 실제로는 등장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었다.
단, 등장하지 않는 건 어디까지나 고대 마도병기에 한해서다.
현재 시대의 티르 나 노이에서도 마도병기가 만들어진다.
그 숫자가 제한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거기다 고대 마도시대의 마도병기에 비하면 성능이 꽤 떨어지는 편이고 종류도 몇 되지 않았다.
거의 대부분이 인간 형태의 탑승형 골렘이었고, 간혹 동물 형태의 마도병기가 존재하기도 했다.
그에 반해 지금 한성과 세이란의 눈앞에 나타난 마도병기는 거미처럼 생겼다.
어디 그뿐인가?
고대 마도병기와 현재 마도병기의 큰 차이점은 외형뿐만이 아니다.
고대 마도병기는 자율 독립 행동이 가능하다는 설정이지만, 현재 마도병기는 대부분 탑승형이었다.
지금 한성의 눈앞에 나타난 곤충형 자율기동 마도병기 같은 것은 현재 시대에 존재하지 않는다.
즉, 소거법에 따라 지금 눈앞에 있는 정체불명의 거대 몬스터가 고대 마도병기라는 소리였다.
슈와아아아악!
“우아아아악!”
하지만 생각은 짧았다.
포신에서 마나를 빨아들인 고대 마도병기가 붉은 마력포를 한성과 세이란을 향해 날렸던 것이다.
공기 중의 수분을 증발시키며 쇄도해 오는 불길한 붉은 빛줄기.
“피, 피해!”
한성을 비롯한 세이란과 소환수들은 다급하게 사방으로 몸을 날렸다.
콰가가가가각!
그 직후, 붉은 빛줄기가 지면을 불태우며 날카롭게 할퀴면서 지나갔다.
“무, 무슨 위력이…….”
가까스로 공격을 피한 한성은 놀란 표정으로 붉은 빛이 지나간 자리를 바라봤다.
날카롭게 파인 지면 위에 고열로 녹은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이 자리에 있던 모두는 놀란 표정으로 고대 마도병기를 바라봤다.
메르르르륵.
그리고 심장이 약한 파카는 초토화가 된 지면과 징그럽게 생긴 고대 마도병기를 보고 입에 게거품을 물며 쓰러졌다.
“돌아와라.”
그 모습을 본 한성은 바로 파카를 소환 해제했다.
어차피 파카는 짐 운반을 시키거나 인벤토리 칸을 늘리기 위한 이동하는 창고 같은 존재였다.
전투에서까지 써먹을 생각은 없었다.
남은 소환수는 라이와 루루, 틴달로스뿐이었다.
크르르르.
라이는 한성의 옆에서 하얀 이를 드러내며 고대 마도병기를 노려보고 있었으며, 루루는 어느 샌가 한성의 다리를 꼭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세이란은 이를 악문 채 고대 마도병기를 노려보고 있는 중이었다.
쿠궁쿠궁쿠궁.
고대 마도병기는 묵직한 다리를 부지런히 놀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컥!
한성과 세이란의 정면을 향해 고대 마도병기의 등에 또 다른 포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번이나 같은 수에 당할 것 같냐! 본 스피어!”
한성은 하얀 뼈로 이루어진 창을 소환했다.
그러자 한성의 머리 위로 두 개의 뼈창이 나타났다.
슈와아악!
이윽고 뼈창은 빠른 속도로 고대 마도병기의 등 위에 나타난 포신을 향해 날아갔다.
콰각!
“쳇!
순간 한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표면이 금속이었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뼈창이 관통하지 못했던 것이다.
뼈창이 고대 마도병기의 포신에 부딪쳐 튕겨 나오기 직전 한성은 다음 스킬을 시전했다.
“본 익스플로전!”
콰콰콰콰쾅!
포신의 좌우에서 뼛조각들이 폭발하면서 박혀 들어갔다.
쿠궁쿠궁.
이번에는 그래도 타격을 줬는지 고대 마도병기가 비틀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고대 마도병기는 이내 자세를 고쳐 잡았다.
키잉. 키잉.
고대 마도병기의 눈으로 생각되는 렌즈가 빙글빙글 돌며 한성의 위치를 쫓았다.
콰가가가강!
순간 고대 마도병기가 여덟 개의 다리를 움직이며 한성을 향해 달려드는 게 아닌가?
눈 깜짝할 사이에 한성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고대 마도병기는 앞다리 하나를 번쩍 치켜들었다.
쉬익!
공기를 날카롭게 가르며 떨어져 내리는 금속 재질의 다리.
마치 잘 벼른 검과 같았다.
까앙!
고대 마도병기의 앞다리가 한성을 향해 떨어져 내리기 직전, 검은 막이 생성되었다.
항상 한성을 보호하고 있는 틴달로스가 몸을 던져 막아 낸 것이다.
[아파요. >_<]
언제나 한성의 그림자 속에서 숨어 지내며 자유자재로 형체를 변형할 수 있는 틴달로스는 모든 위협을 배제한다.
몸을 던져 방어막처럼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잘했어!”
틴달로스가 몸을 던져 공격을 막아 준 덕분에 한성은 뒤로 빠질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마력포는 위협적이지만 기본 공격력은 그렇게 쌔지는 않아.’
방금 전 일격으로 한성은 고대 마도병기가 얼마나 강한지 대충 감이 왔다.
‘역시 레벨로 친다면 100은 되지 않겠군.’
한성은 눈앞에 있는 고대 마도병기의 머리 위를 바라봤다.
기본적으로 티르 나 노이 세계의 몬스터들은 머리 위에 레벨과 이름, 생명력 바가 표시된다.
반면 방문자들과 켈트인들의 머리 위에는 아무것도 뜨지 않는다. 서로 파티를 맺던가, 친구 등록을 하지 않는 이상 레벨이나 이름 같은 기본 정보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고대 마도병기의 머리 위에는 레벨과 이름 표시가 제대로 나와 있지 않았다.
하지만 레벨 표시 부분에는 물음표가 두 개가 떠올라 있었다.
즉, 어쩌면 고대 마도병기의 레벨이 두 자리 수라는 걸 의미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만약 그렇다면…….
“시체 소환!”
한성의 발밑에 시체 4구가 소환되었다.
이후 한성은 해골 병사들까지도 소환했다.
“검검.”
“궁궁.”
해골 검병이 12마리, 해골 궁병이 4마리였다.
“가라!”
한성의 명령에 해골 검병들이 넓게 퍼지면서 고대 마도병기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키잉키잉!
고대 마도병기의 눈이 복잡하게 움직이며 주위를 맴도는 해골 검병들을 쫓았다.
순간 고대 마도병기의 옆다리 중 하나가 솟구쳐 올라왔다.
주변을 돌아다니는 해골 검병 한 마리를 작살내려 하고 있는 것이다.
쉬익!
날카롭게 공기를 가르며 떨어져 내리는 다리 하나.
바로 그 순간,
슈카가가각!
한 줄기 황금빛이 고대 마도병기의 왼쪽 옆다리들 사이사이를 맴돌면서 스치고 지나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지면을 향해 떨어지던 고대 마도병기의 다리가 멈췄다.
스르릉.
어느 틈엔가 세이란이 고대 마도병기 앞에서 성검 엑스칼리버를 검집에 집어넣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고대 마도병기는 가만히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고대 마도병기는 등을 보이고 있는 세이란을 향해 왼쪽 앞다리를 치켜들었다.
탁!
그 순간 성검 엑스칼리버가 완전히 검집에 수납되었다.
그리고…….
서컹!
고대 마도병기의 왼쪽 다리 네 개에 하얀 실선 같은 금이 가더니 갈라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샤아아아악!
성검 엑스칼리버에 베여진 고대 마도병기의 왼쪽 다리들은 하얀빛이 되어 바스러지며 사라졌다.
키에에에엑!
그러자 고대 마도병기는 비명과도 같은 괴성을 내지르며 왼쪽으로 쓰러졌다.
왼쪽 다리들이 빛이 되어 전부 없어졌기 때문이다.
“역시 검성.”
그 모습을 본 한성은 혀를 내둘렀다.
‘제대로 보이지 않았어.’
마치 섬광과 같은 움직임으로 세이란은 고대 마도병기의 왼쪽 다리를 전부 베면서 스쳐 지나갔다.
그 모습을 한성은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레벨 차가 너무 많이 났기 때문이다.
‘아, 빨리 예전 레벨까지 올리고 싶다.’
다시 한 번 레벨업에 대한 욕망을 느끼며 한성은 고대 마도병기를 바라봤다.
쿠우우웅!
왼쪽 다리를 모두 잃은 고대 마도병기는 균형을 잡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라이! GO!”
크허어어엉!
한성의 외침에 라이가 지면을 박찼다.
그리고 쏜살같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고대 마도병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화르륵!
라이의 다리에서 푸른 화염과 녹색 바람이 터져 나왔다.
[융합 몬스터 라이가 고유스킬 파이어 스톰 볼텍스(Fire Storm Vortex)를 시전합니다.]
푸른 화염과 녹색 바람이 소용돌이치면서 라이의 다리를 감쌌다.
이윽고 라이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고대 마도병기 앞에 도달했다.
까아아아아앙!
키에에에엑!
고대 마도병기 앞에 도착하자마자 라이는 머리를 걷어찼다.
그러자 믿기지 않게도 둔탁한 쇳소리와 함께 8미터나 되는 고대 마도병기의 몸이 지면에서 떠올랐다.
콰지직! 콰가가가가각!
고대 마도병기는 수십 미터나 되는 허공을 낮게 날며 에르네스트 산의 나무들을 넘어뜨리며 나가떨어졌다.
“헐…….”
그 모습을 한성은 놀란 표정으로 바라봤다.
‘생각보다 좀 강한 것 같네.’
한성은 고대 마도병기를 대략 90레벨 후반대의 보스급 정도로 보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라이가 발차기 한 방으로 고대 마도병기를 저렇게 내동댕이칠 줄은 몰랐다.
물론 고대 마도병기가 왼쪽다리를 전부 잃은 게 한몫하긴 했다. 균형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에 라이의 일격을 다이렉트로 받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라이가 고대 마도병기를 날려 버린 건 놀라운 일이었다. 아니 한성 입장에서는 뜻밖의 횡재라고 할 수 있었다.
융합 몬스터의 힘이 상상 이상으로 강했으니까.
키에엑! 키에에에엑!
라이에게 머리을 걷어차이고 지면에 나가떨어진 고대 마도병기는 땅 위에서 버둥거리며 괴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런 고대 마도병기를 바라보며 한성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어째서 고대 마도병기가 갑자기 잊혀진 유적에서 튀어나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사실은…….
‘넌 이미 끝나 있다.’
한성은 씩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