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언데드 100만-50화 (50/318)

# 50

< 내 언데드 100만 >

제50화  일단 벗고 시작하자

“히든 던전 입장제한 해제 완료했습니다!”

오딘 사에서 상당히 큰 개발팀 사무실에 위치한 특수 대응 전담 프로젝트팀.

그곳 사무실에서 박상철 주임이 다 죽어 가는 표정이었지만, 이성식 대리를 바라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잘했다.”

이성식 대리의 대답에 박상철 주임을 비롯한 사원 몇 명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책상 위로 뻗었다.

어수선한 사무실 내부에는 각종 모니터들이 비치되어 있었으며, 각 모니터에는 가상 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가 실시간으로 보여 지고 있었다.

특히 그중에서 이성식 대리는 박상철 주임이 작업하고 있던 모니터를 바라봤다.

모니터에서 히든 던전 잊혀진 유적의 입구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던전 입장제한이 풀렸다는 메시지가 모니터 화면에 떠올라 있었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군.’

이성식 대리의 기분도 박상철 주임과 다르지 않았다.

특수 대응 전담 프로젝트팀은 히든 던전 잊혀진 유적을 모니터링 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던전 내부까지는 탐색할 수 없었다.

참고로 모니터링은 해당 영상만 녹화되며 음성은 녹음되지 않는다. 거기다 보관 기간도 짧았다.

그 때문에 세이란에게 직접 던전에 가서 조사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원래는 특수 대응 전담 프로젝트팀 자체에서 인원을 차출해 직접 조사를 하려고 했었지만, 중요한 그 인원이 없었다.

전부 자기 할 일들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바빴던 것이다.

거기다 티르 나 노이의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이시스가 이번 일을 완벽히 수행할 수 있는 인물로 세이란을 추천했다.

지금까지 이시스의 판단이 틀린 적이 없었기에 특수 대응 전담 프로젝트 팀은 세이란에게 일을 부탁했다.

물론 모든 정보를 알려 주지는 않았다.

내부 기밀 상황은 이야기하지 않고, 히든 던전 안에 무슨 일이 있는지 조사만 해 달라고 의뢰를 한 것이다.

‘그런데 설마 이런 문제가 생길 줄이야…….’

히든 던전 잊혀진 유적을 모니터링 하던 중 주변에 얼쩡거리는 방문자 하나를 발견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성식 대리는 가상 현실 개발팀 주임과 사원 네 명을 굴렸다.

만에 하나 문제가 생겼을 때 대비를 하기 위해 프로그램 수정을 시킨 것이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

한성을 발견했을 때부터 수정을 시켰지만, 프로그램을 수정한다는 일이 간단하지 않았으니까.

기본적으로 게임 개발은 버그와의 전쟁이다.

버그 하나를 해결 하면 다른 버그 열 개가 생긴다고 보면 된다. 바퀴벌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그럼에도 이성식 대리는 바로 프로그램 수정을 지시했다.

수정이 잘못 돼서 버그라도 생기는 날에는 초비상이 걸릴 수 있었지만, 티르 나 노이에는 유능한 운영자가 있었다.

유그드라실 인텔리전스 시스템 인터페이스 유닛(Yggdrasil Intelligence System Interface Unit), 통칭 이시스.

그녀가 있었으니까.

이시스의 도움으로 박상철 주임과 사원 4명은 정말 베스트 타이밍에 프로그램을 수정 완료했다.

아마 이 사실을 한성이 알았으면 길길이 날뛰었을 것이다.

세이란의 입장에서는 베스트 타이밍이었지만, 한성의 입장에서는 베드 타이밍이었으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이성식 대리는 굳은 표정을 지었다.

원래라면 지금 같이 운영자들이 게임에 개입을 하면 안 된다.

회사에 알려지면 중징계 처분이었다.

까닥 잘못하면 목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비상사태였다.

가상 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에서 발생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세이란을 파견했다.

그런데 거기에 한성이라는 이레귤러가 나타나 임무에 차질이 생기려고 한 것이다.

그 때문에 운영진 차원에서 게임에 개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세이란이 아니라 한성이 던전에 들어가게 되면 대체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징계는 못 피하려나?’

이성식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

그로 인한 회사의 징계처분은 불가피할 터.

상황이 상황인 만큼 정상참작은 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번 임무가 끝나면 한성에게는 섭섭하지 않은 보상을 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뒤를 부탁합니다.’

그렇게 모든 일을 마친 이성식 대리는 세이란에게 뒤를 맡겼다.

*       *       *

고오오오오.

“…….”

한성은 자기도 모르게 긴장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아, 진짜 뭐야 이거? 미친 거 아니야? 왜 갑자기 입장제한이 풀려?’

한성이 세이란에게 강하게 나갔던 이유는 하나였다.

잊혀진 유적은 솔로 던전이었기 때문에 세이란이 절대 이곳까지 들어올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던전 입장제한이 해제되었다고 메시지가 뜨는 게 아닌가?

‘이건 분명 운영자 놈들의 농간이다!’

한성은 바로 눈앞까지 다가오고 있는 세이란을 바라봤다.

여자의 한은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다.

자신을 향해 검붉은 오러를 전신에서 뭉게뭉게 피어 올리며 다가오고 있는 세이란의 모습에 한성은 서늘한 한기를 느꼈다.

‘와, 씨발. 분노의 오러 임팩트 보소. 근데 이거 진짜 어떻게 해야 하지?’

시전자를 광기에 물들게 만들어서 공격력과 공속을 미친 듯이 올려 주는 분노의 오러를 사용 중인 세이란의 모습에 한성은 식은땀을 흘렸다.

“각오는 되어 있겠지?”

스르릉.

세이란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며 검을 뽑아들었다.

맑고 청명한 소리와 함께 황금색 빛을 흘리며 서서히 뽑혀져 나오기 시작하는 장검.

사상무장병기(思想武裝兵器),

성검(聖劍) 엑스칼리버(Excalibur).

세이란의 이름과도 같은 신화 등급의 무기다.

엑스칼리버를 본 한성의 표정이 핼쑥해졌다.

“아니, 잠깐만! 기다려봐! 이야기는 한번 들어보고 그거 휘두르세요!”

고고하게 빛나고 있는 황금빛 성검 엑스칼리버를 바라보며 한성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잠꼬대는…….”

서서히 치켜져 올라가는 황금빛 검날.

그 상태에서 세이란은 엑스칼리버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자면서 해라!”

“그럼 동영상 유포해 버린다!”

멈칫!

반쯤 휘둘러지던 엑스칼리버가 멈췄다.

엑스칼리버를 쥐고 있는 세이란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렇다.

동영상 녹화 파일.

빌어먹게도 그게 남아 있었다.

한성의 입장에서는 구명줄이나 다름없지만, 세이란에게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폭탄과도 파일.

‘머, 먹힌 건가?’

엑스칼리버가 멈춘 것을 본 한성은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셨다. 지금 상황은 한성이 불리하다.

상대는 추정 레벨 250에 가깝고 티르 나 노이 전체 랭킹 9위인 빛의 검성, 세이란이다.

아무리 한성이 전승을 하고 히든 전직을 했다고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레벨이 다르고, 장비도 다르며, 스텟도 다르니까.

남은 건, 한성이 녹화한 동영상 이었다.

“내놔.”

세이란은 엑스칼리버를 꽉 움켜쥐며 쥐어짜 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간단히는 못 주지.”

톡!

한성의 말이 끝나자마자 세이란은 엑스칼리버로 옆 지면을 톡 건드렸다.

쩌저저저적!

순식간에 지면이 부끄러운 속살을 드러내며 갈라져 간다.

어디 그뿐인가?

지면에 생긴 틈은 수십 미터나 되었으며, 그 사이에 있던 나무나 거대한 바위들은 전부 틈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미친. 그냥 툭 쳤을 뿐인데 저런 위력이라고?’

한성은 식은땀을 흘렸다.

무슨 저런 말도 안 되는 위력이란 말인가.

그냥 툭 치니 지면이 쩍 갈라졌다.

만약 세이란이 전심전력으로 자신에게 엑스칼리버를 휘두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빛이 되어 사라지고 말 것이다.

“내놔.”

“내 안전을 보장해줘.”

“그냥 이대로 묻힐래? 아니면 그냥 줄래?”

“그냥 주면? 나 죽이겠다고 달려들 거 아냐. 내가 왜 그런 미친 짓을 해야 하는데?”

“아니야. 살려는 줄게. 응. 안 죽여.”

숨만 붙여 놔 주마.

입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지금 세이란의 눈빛이 딱 그랬다.

‘뭐야. 얘? 무서워.’

영혼이 없는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세이란의 모습에 한성은 주춤 물러났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주도권은 한성에게 있었다.

그 사실을 한성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일단 지금 해야 되는 건 두 가지야.’

히든 던전, 잊혀진 유적을 클리어하는 것과 세이란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는 일이다.

이 두 가지를 모두 해결 하는 게 가장 베스트였다.

‘아니면 그냥 도망쳐 버릴까?’

한성이 잊혀진 유적을 공략하려고 한 이유는 숨겨진 보상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히든 던전 잊혀진 유적은 티르 나 노이 랭킹 9위인 빛의 검성이 직접 공략을 하려고 온 장소다.

분명 기존의 히든 던전보다 더 좋은 보상을 주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이다.

그런데 상황을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오딘 사의 운영자들이 개입한 흔적이 있었으니까.

즉, 한성이 생각했던 월드 히든 미션과는 관계가 없다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굳이 이 자리에서 세이란과 말다툼을 벌이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문제는…….’

한성은 세이란을 바라봤다.

여전히 자신을 향해 불길한 붉은 오러와 살기를 뿌리고 있는 빛의 검성, 세이란.

‘과연 내가 도망칠 수 있을까?’

세이란에게서 거리를 벌린 후, 귀환 스크롤을 재빨리 찢으면 된다.

그러나 한성은 그녀에게서 거리를 벌릴 자신이 없었다.

히든 던전 잊혀진 유적의 입구로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은 단거리인데다가 세이란의 허를 찔렀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분명 두 번은 통하지 않을 터.

그렇다면…….

“제안이 있다.”

빠르게 생각을 마친 한성은 세이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뭔데?”

“우리 손잡지 않을래?”

“하?”

한성의 말에 세이란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코웃음을 쳤다.

“내가 왜 너랑 손을 잡아야 되는데?”

“이거 때문에?”

한성은 세이란의 눈앞에서 손목에 차고 있는 스마트 밴드워치를 흔들었다.

“큭!”

세이란의 실태가 적나라하게 녹화된 동영상 파일.

저 동영상에는 그동안 알려져 있던 세이란과는 대조적인 모습이 녹화되어 있었다.

“참고로 나 녹화 계속하고 있었다는 것만 알아 두었으면 좋겠군.”

한성은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세이란을 바라봤다.

동영상에는 세이란이 한성을 유혹하려고 했던 장면과 말싸움을 하는 장면까지 전부 찍혀져 있었다.

“아…….”

그 생각에 세이란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자신의 치부가 남김없이 녹화되어 있었으니까.

‘끝났다.’

세이란에게 있어 한성이 녹화한 영상은 핵폭탄이나 다름없었다.

지금까지 세이란은 청순가련하면서도 강인하고 상냥한 이미지를 유지해왔었다.

그 때문에 그녀를 따르는 팬들도 장난 아니게 많았다.

그런데 그동안 자신이 숨기고 있던 성격이나 실태가 눈앞에 있는 방문자에게 들키고 만 것이다.

단지 그뿐이라면 상관이 없었다.

문제는 동영상 녹화까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걱정 마라. 내 말을 들어준다면 이 동영상을 넘겨줄 테니까.”

“뭐?”

한성의 말에 세이란은 구원의 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지금 칼자루는 한성이 쥐고 있다.

만약 수가 틀어져서 한성이 동영상을 유포시킬 경우, 세이란은 지금까지 키워 온 캐릭터를 삭제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될지도 몰랐다.

그에 반해 눈앞의 방문자는 어떤가?

아직 100레벨도 되지 않았다.

그동안 키운 게 아깝기는 하지만 새로 다시 키우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세이란은 4차 전직까지 했으며 레벨도 250에 가까웠다. 거기다 만에 하나 한성의 동영상을 보고 배신감에 분노한 팬들이 그녀의 개인 신상까지 털어 버리는 일이 생긴다면…….

‘진짜 끝장날 수 있어.’

세이란은 하얗게 질린 표정을 지었다.

게임에서든, 현실에서든 양쪽 다 끝장날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현실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정체를 들켜서는 안 되었다.

세이란은 이를 악물며 굳은 표정으로 한성을 바라봤다.

“뭐, 뭐가 알고 싶은데.”

주저주저하며 입을 여는 세이란.

그 모습을 본 한성은 자신의 승리를 직감했다.

지금까지 보아온 그녀답지 않게 어딘가 순종적인 모습이었던 것이다.

한성은 세이란을 향해 씩 미소를 지으며 세이란에게 있어 충격적인 말을 한마디 던졌다.

“일단 벗고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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