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
< 내 언데드 100만 >
제 37 화 사냥터 싸움 (1)
“뭐?”
한성의 말에 테일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어디서 반말이야. 말로 할 때 그냥 가라? 괜히 깝치다 뒤지지 말고.”
테일런은 한성을 향해 으름장을 놓으며 말했다.
“웃기는군. 그 말 그대로 돌려 주지.”
“뭐라고?”
도발적인 한성의 말에 테일런을 비롯한 여섯 명의 파티원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건방진 새끼. 하여간 이놈의 게임은 익명성 때문에 나대는 놈들이 많다니까.”
“혼자 주제에 대체 뭘 믿고 깝치는 건지, 원.”
“병신인가 보지.”
“아니면 게임만 하는 진따 새끼든가.”
파티원 여섯 명은 저마다 한마디씩 말을 내뱉으며 한성을 바라봤다.
비웃음이 가득한 얼굴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파티원들은 전원 레벨이 80 후반대로 90에 가까웠다.
거기다 장비도 나름 유니크와 레어 등급으로 맞췄으며, 무엇보다 여섯 명이나 되었다.
그들의 목적은 에르네스트 산 중턱에서 비조르들을 상대로 몰이사냥을 하다가 레벨 90을 찍으면 중간 보스들을 잡고 최종적으로는 라스트 보스 드로이얀을 잡을 계획이었다.
그에 비해 눈앞에 있는 20대 초반의 청년은 어떤가?
장비는 뭐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다.
몸 전체에 두르고 있는 검은 망토와 검은 건틀렛은 제법 등급이 있어 보였으니까.
‘레벨 90 이상이 에르네스트 산에 있을 리 없을 테고.’
테일런은 매의 눈으로 한성을 바라봤다.
에르네스트 산에 90레벨이 넘는 방문자가 올 이유는 없었다.
에르네스트 산은 90레벨까지 닥사를 하기에 좋은 필드였으니까.
즉, 눈앞에 있는 청년은 아직 레벨이 80레벨대라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성질이 급한 놈이라는 건데…….’
테일런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에르네스트 산은 파티를 맺어서 입장해야 하는 위험한 필드다. 혼자서 사냥을 하려고 한다면 못할 것도 없지만 그만큼 죽을 위험이 높았다.
기본적으로 에르네스트 산의 몬스터들은 최소 3마리 이상 몰려다니는 데다가 언제 어디서 산 중턱을 배회하는 중간 보스와 마주칠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산 밑 안전지대에서 파티를 맺고 입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성질이 급한 사람들은 파티를 맺는데 걸리는 시간을 참지 못하고 에르네스트 산에 오른다.
일단 그냥 가 보자는 주의로 무작정 필드에 진입하는 것이다.
테일런은 한성을 그런 부류 중에 한 명으로 봤다.
“네가 자초한 일이다. 원망은 하지 마라.”
탱커인 테일런을 필두로 여섯 명의 파티원들이 슬금슬금 한성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파티원들의 구성은 탱커 2명과 딜러가 2명, 그리고 힐러가 2명으로 가장 기본적인 파티 구성원이었다. 남자 4명이 탱커와 딜러였으며, 나머지 여자 2명은 힐러였다.
“그러니까 지금 나를 상대로 PK를 하시겠다?”
그들의 행동에 한성은 헛웃음을 흘렸다.
PK. 일명 플레이어 킬링(Player Killing).
가상 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는 PK에 대해 관대하다.
아니, 정확히는 현실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만약 도시에서 PK행위가 일어난다면 바로 경비병들이 나타나 제재를 가한다.
도시의 경비병들에게 PK범으로 낙인을 찍히는 순간 패널티가 생긴다.
캐릭터의 머리 위에 PK범을 상징하는 표시가 뜨고, 도시에서 물약이나 장비 같은 아이템을 상점에서 살 수 없어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도시 같은 경우는 정문에서 경비병들의 제재를 받아 들어갈 수조차 없게 되며, 다른 방문자들에게 공격을 받아 죽을 수도 있었다.
PK범들을 죽여도 패널티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도시에서 플레이어 킬링 행위를 하고 경비병들에게 PK범, 즉 살인자라는 낙인을 찍혔을 때 이야기다.
하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으슥한 장소라면?
몬스터들만 출몰하는 아무도 없는 산속이나 숲속에서 PK 행위가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살인자라고 낙인찍을 경비병 혹은 켈트인이 존재하지 않으면 PK범이 되지 않는다.
즉, 걸리지만 않으면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다는 소리였다.
더군다나 지금 한성이 있는 장소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산 중턱에 있는 숲속에서 사냥을 하고 있는 방문자들이 있는 장소와 약간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숲속에서 띄엄띄엄 떨어져 사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방문자들과 마주칠 확률은 크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한성과 테일런을 비롯한 파티원들만 있는 상황.
이런 절호의 기회를 테일런과 그의 파티원들은 놓칠 생각이 없었다.
화르륵!
딜러 중 한 명 주위로 파이어 볼들이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지팡이와 로브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법사인 모양이었다. 나머지 딜러 한 명은 활시위를 먹이고 한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프로보케이션(Provocation)!”
한 손 검과 한 손 방패를 장비한 테일런이 한성을 향해 달려오며 도발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한성의 시선이 테일런을 향해 쏠렸다.
“죽어라, 건방진 자식아!”
테일런이 한성의 시선을 붙잡고 있는 사이, 원거리 딜러들인 카일과 크란이 파이어 볼과 피어싱 애로우를 날렸다.
쌔애액!
사람 머리통만 한 파이어볼 세 개와 강철 화살 하나가 파공성을 내며 날아들었다.
지금 한성은 테일런의 도발 스킬에 묶여 있는 상태였다.
약 3초 정도 뒤라면 도발 스킬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그땐 이미 파이어 볼들과 강철 화살이 도달한다.
그 말은 곧 원거리 딜러들의 공격을 피할 수 없다는 소리였다.
“시체 소환!”
파이어 볼들과 강철 화살이 가까이 다가오자 한성은 스킬을 시전했다.
콰콰콰쾅!
콰아아악!
상당한 규모의 폭발과 함께 강철 화살이 무언가에 가로막혔다.
“뭐, 뭐야?”
잠시 후, 눈앞의 상황에 테일런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성의 앞에 시체 4구가 나타나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건 대체?”
테일런을 비롯한 파티원들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오딘 사. 게임이지만 게임 같지 않단 말이야.’
한성은 피식 웃었다.
언데드 몬스터들을 소환하기 위한 매개체인 시체들로 원거리 공격을 막아 냈던 것이다.
파이어 볼 세 개는 시체 3구로 막아 냈으며, 방어 무시 공격 스킬인 피어싱 애로우는 시체 1구로 막아 냈다.
그리고…….
“해골 병사 소환.”
펑펑펑!
3구의 시체에서 12기의 해골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병이 4마리, 궁병이 8마리였다.
“무, 무슨……?”
테일런은 경악한 표정으로 한성과 해골 병사들을 바라봤다.
“파이터가 아니었어?”
“네크로맨서인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테일런과 파티원들은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먼저 테일런이 소리쳤다.
“다들 정신 차려! 네크로맨서는 우리 상대가 아니야!”
“그, 그렇지.”
“네크로맨서는 최약체 직업이니까.”
테일런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파티원들은 한성을 노려봤다.
“해골 병사 따위 허세일 뿐이지.”
이제는 아예 비웃는 눈으로 한성을 바라본다.
하지만 지금 그들 앞에 나타난 해골 병사들은 뭔가 있어 보였다.
하얀 백골에 검은 갑주를 걸치고 장검을 들고 있는 해골 검병과 검은 가죽 갑옷과 뼈활로 무장한 해골 궁병의 모습은 상당히 강해 보였으니까.
“내가 부숴 주마!”
테일런과 같은 탱커 계열 직업을 가진 사내, 에릭이 해골 검병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에릭은 자신 있었다.
그의 직업은 다름 아닌 성기사.
언데드 몬스터를 잡는데 특화된 직업이었으니 말이다.
“홀리 소드!”
성스러운 하얀 빛이 에릭의 장검에서 흘러나왔다.
호기롭게 소리친 에릭은 장검을 해골 검병 한 마리에게 내려쳤다.
퍼서서석!
단 일격에 해골 검병은 뼈가 부서지면서 사라졌다.
“언데드 따위 내 상대가 아니…….”
푸푸푸푹!
“크헉!”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소리치던 에릭은 순간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자신의 몸을 관통하고 있는 네 개의 뼈로 이루어진 장검이 보였다.
“뭐, 뭐야…… 이것들?”
에릭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멍청한 놈. 해골 병사가 몇 마리인데 겨우 한 마리 쓰러트리고 폼 잡냐?”
해골 검병 네 마리에게 공격당해 장검이 꽂혀 있는 에릭을 바라보며 한성은 피식 웃었다.
한성이 소환한 시체는 총 4구.
하지만 한성은 3구로 해골 병사들을 12마리 소환했다.
지금 한성의 해골 병사 소환 스킬 레벨은 4였다.
시체 하나당 4마리의 해골 병사들을 소환할 수 있었다.
한성은 에릭이 해골 병사 한 마리를 처치하고 방심한 순간 나머지 시체 1구로 해골 검병 4마리를 소환했다.
그것도 에릭 바로 근처에.
그리고 소환된 해골 검병 네 마리는 주저 없이 바로 에릭을 찌른 것이다.
“젠장…….”
에릭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기습과도 공격에 에릭의 피통이 절반가량 깎였다.
“그레이트 힐!”
그때 파티원들 중 힐러인 시스테아가 회복 스킬을 시전했다.
그러자 에릭의 몸에서 하얀 빛이 번쩍이며 생명력이 조금씩 차올랐다.
“그렇게는 안 되지.”
드디어 전체 해골 병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한 놈부터…….’
슈슈슈슈슈슉!
한성의 등 뒤에서 전개되어 있던 해골 궁병들이 에릭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하지만 에릭도 그냥 당하기만 하지 않았다.
“실드 디펜스!”
한 손 방패를 치켜 올리며 방어 스킬을 시전 한 것이다.
방패를 중심으로 투명한 막이 넓게 퍼졌다.
이윽고 투명한 막을 향해 해골 궁병들의 화살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투타타타탁!
둔탁한 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크, 크윽.”
에릭은 신음 소리를 흘리며 실드 디펜스로 화살 공격을 받아 내고 있었다.
‘화살 공격만 끝나면 작살을 내주마!’
힐러들의 회복 스킬 덕분에 생명력을 반 이상 회복한 에릭은 이를 갈았다.
화살 공격만 아니었으면 당장 자신을 공격한 해골 검병 네 마리를 순삭하고 한성을 때려잡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해골 검병 네 마리는 순식간에 자신에게서 이탈했다.
거기에 맞춰서 강철 화살들이 날아든 것이다.
눈살을 찌푸리며 에릭은 한성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어?’
순간 에릭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방에 있던 네 마리의 해골 검병들 너머에 한성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사이 해골 궁병들의 화살 공격이 끝났다.
“이 자식!”
에릭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한성을 찾기 위함이었다.
“위에다!”
“뭐?”
테일런의 다급한 목소리에 에릭은 고개를 치켜들었다.
머리 위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오, ㅤㅅㅞㅅ!”
에릭은 다급히 방패를 치켜 올렸다.
그 순간,
콰아아아아앙!
에릭의 방패 위로 한성의 발뒤꿈치가 내려찍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