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
< 내 언데드 100만 >
제36화 에르네스트 산
“역시 사람들이 좀 있네.”
산 중턱의 평지 구역은 숲이었다.
꽤 많은 수의 나무들 사이로 파티를 맺은 방문자들이 비조르들을 사냥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에르네스트 산에서 서식하는 수컷 비조르는 3미터의 몸길이를 가진 산양이다.
거기다 살짝 안으로 휘어진 뿔은 1미터가 넘는다.
레벨은 85에서 88 사이.
뿔을 앞세우고 달려드는 몸통 박치기가 위협적인 몬스터다.
한성은 산 중턱의 숲속으로 좀 더 들어갔다.
방문자들이 적은 장소를 찾기 위함이었다.
“여기가 좋겠군.”
산 중턱의 평지 구역은 그리 크지 않았다.
거기다 생각보다 방문자들이 좀 있어서 한성은 꽤 한참을 찾아다녀야 했다.
그리고 숲속의 끝에서 겨우 방문자들이 없는 사냥터를 확보할 수 있었다.
“참 빠르게도 오네.”
한성은 씩 미소를 지었다.
눈앞에서 수컷 비조르 세 마리가 붉은 눈을 빛내며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셋 다 레벨은 85.
본격적으로 사냥을 시작하기 전 몸 풀기에 딱 적당했다.
“와라.”
이미 블랙 레오파드 건틀렛으로 무장해 있던 한성은 비조르들을 노려보며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비조르들은 선공 몬스터였기 때문이다.
메에에에!
두두두두두두!
비조르 세 마리가 지면을 이리저리 박차며 한성을 향해 동시에 달려들었다.
쉬이익!
날카롭고 단단한 뿔이 공기를 찢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속도였다.
겉보기에는 산양이지만 신체 능력은 몬스터라고 할만 했다.
한성은 왼쪽으로 몸을 날리며 오른 주먹을 휘둘렀다.
콰앙!
캐앵!
한성의 블랙 레오파트 건틀렛이 왼쪽에서 달려들던 비조르의 뿔과 머리를 후려쳤다.
그 일격에 왼쪽 비조르는 비명을 지르며 앞다리가 풀썩 꺾였다. 거기다 붉은 빛이 희번덕이던 눈은 흰자위를 드러내고 있었다.
[크리티컬 데미지가 들어갔습니다. Lv85 비조르가 기절했습니다.]
한성의 시야에 게임 시스템 안내 메시지가 떠올랐다.
‘우선 한 마리.’
아직 왼쪽 비조르는 죽지 않았다.
생명력이 바닥 상태였지만 살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무리 추가타를 날릴 수 없었다.
아직 두 마리의 비조르들이 남아 있었으니까.
메에에엑!
한 마리가 당하자, 나머지 두 마리들이 괴성에 가까운 포효를 토하며 한성을 향해 진로를 급선회했다.
이번에는 좌우 양옆에서 비조르 두 마리가 협공을 해 왔다.
비조르들과의 거리가 점점 더 좁혀져 온다.
3미터. 2미터.
바로 지척까지 달려드는 비조르들의 거친 숨소리와 땅을 박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한성과 비조르들의 거리가 1미터에 들어섰다.
번쩍!
순간 한성의 몸이 사라졌다.
전승 특전 직업 스킬.
4차 직업 패왕 스킬 중 하나인 라이트닝 드라이브가 시전 된 것이다.
메에에에에엑!
갑자기 중앙에 있던 한성이 사라지자 비조르들은 포효하며 발을 멈췄다.
하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
거리가 너무 가까웠으니까.
투콰앙!
어마어마한 기세로 뿔과 머리가 충돌한 비조르들.
푸확!
머리에서 전해진 엄청난 충격에 비조르 두 마리는 눈과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빠각!
어디 그뿐인가?
비조르들의 자랑이기도 한 날렵한 뿔까지 금이 가면서 부러졌다.
메에에에에엑!
비조르들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포효했다.
그래도 막판에 몸을 멈추려고 한 덕분에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지 않았다.
비조르들은 옆으로 슬쩍 몸을 뺀 한성을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노려봤다.
퍼억!
메엑!
순간 비조르 한 마리가 비명을 지르며 고개가 꺾였다.
블랙 레오파드 건틀렛이 비조르의 얼굴을 힘껏 후려쳤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퍼버버버버벅!
어마어마한 속도로 블랙 레오파드 건틀렛이 허공에서 춤을 추며 비조르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비조르는 신나게 얻어터졌다.
메엑.
털썩.
결국 후들거리던 비조르의 앞다리가 꺾이면서 앞으로 쓰러졌다.
메엑?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나머지 비조르 한 마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지금 한성은 공속과 이속을 500% 올려 주는 라이트닝 드라이브 상태였으니까.
‘스킬 지속 시간은 유용하게 써먹어야 하는 법이지.’
메에에에엑!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비조르는 괴성과 같은 포효를 지르며 한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성을 물어뜯기 위해 입을 크게 벌리면서.
산양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날카로운 삼각 이빨이 보였다.
마치 상어 이빨 같았다.
한성은 그런 비조르를 향해 마주 달려 나갔다.
서로의 사정거리에 들어선 순간, 비조르의 입이 한성의 목을 물어뜯기 위해 쑥 뻗어 나왔다.
퍽!
하지만 왼쪽 손등으로 한성은 비조르의 입을 쳐냈다.
그러자 비조르의 턱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한성의 오른발이 비조르의 앞다리를 향해 쏘아졌다.
빡!
앞다리를 공격당한 비조르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거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한성은 재빨리 몸을 옆으로 비켰다.
바로 눈앞에 비조르의 몸이 지나간다.
한성은 비조르의 옆구리를 향해 정권을 내질렀다.
블랙 레오파드 건틀렛이 비조르의 옆구리를 깊숙이 찔러져 들어갔다.
투쾅!
비조르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튕겨져 날아갔다.
어디 그뿐인가?
튕겨 날아간 비조르는 십 미터가 넘어가는 커다란 나무와 부딪쳤다.
그리고 쿵 소리를 내며 지면에 떨어졌다.
[축하합니다. Lv85 비조르를 처치하셨습니다. 보상으로 850 골드와 비조르의 털 1개를 획득합니다.]
[전승 특전의 효과에 의해 보상을 세 배로 받습니다.]
비조르를 처리하자 한성의 시야에 안내 메시지가 떠올랐다.
전승 특전으로 인해 한성은 2550 골드와 비조르의 털 3개를 획득했다.
이제 남은 건 기절해 있는 비조르 2마리뿐.
한성은 나머지 비조르 2마리도 끝을 냈다.
“흠. 역시 건틀렛을 착용하니 근접 전투가 한결 수월해진 거 같네.”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한성은 블랙 레오파드 건틀렛을 바라봤다.
일부러 데스메이커의 스킬을 쓰지 않고, 순수 격투 스타일로 비조르들을 상대했다.
지금까지는 만인 앞에 평등한 대나무 창과 +12강 암흑멸천검으로 근접 전투를 했었지만, 역시 전승을 하기 전 격투 스타일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비조르들은 레벨이 85에 세 마리나 되었다.
일반적인 레벨 80의 방문자라면 혼자서 상대할 수 없을 터.
하지만 한성은 전승 특전으로 스텟 총합이 레벨보다 높다.
순수 스텟 총합만 해도 120레벨에 가까우며, 장비나 칭호로 붙은 스텟까지 합하면 150레벨 정도 되었으니까.
비조르 정도 되는 몬스터는 여유롭게 상대할 수 있었다.
‘역시 티르 나 노이는 템빨도 중요하단 말이야.’
한성은 다시 한 번 장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리고…….
‘중앙 대륙에 가서 어느 정도 레벨을 올린 후에는…….’
자신을 배신한 블랙 레이븐 클랜놈들에게 일단 한 방 제대로 먹일 계획이었다. 한성에게는 블랙 레이븐 클랜에서 빼돌린 황금 창고 열쇠가 있으니 말이다.
한성이 빼돌린 열쇠의 창고에는 최소 200 레벨이 넘어가는 유니크급에서 레전드급의 무기나 방어구들이 있으며, 그 외에도 돈 값 하는 장비들이 꽤 있었다.
가장 먼저 블랙 레이븐 클랜의 창고를 털어 버리고 준비를 단단히 한 다음 본격적으로 싸울 걸 것이다.
‘개처럼 물고 늘어져 주지.’
다시 한 번 복수를 다짐하며 한성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마 카슈발을 중심으로 블랙 레이븐 클랜의 추적대 놈들은 개 까였을 것이다.
자신을 놓친 것도 모자라 도리어 자기들이 죽기까지 했으니까.
거기다 추적대 놈들은 중앙 대륙에서 신나게 뻘짓을 하고 있을 터. 한성이 전승을 하면서 레벨이 초기화되어 시작의 대륙으로 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럼 이왕 온 김에 비조르의 털이나 모아 볼까?”
땅 타입 동물 상자를 열려면 비조르의 털 30개가 필요하다.
지금 한성이 있는 장소는 다름 아닌 비조르의 서식지.
거기다 에르네스트 산은 흔히 닥치고 사냥하는 필드, 즉 닥사존이었다.
레벨업을 하기에 괜찮은 사냥터였다.
한성은 다음 비조르를 잡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한성이 있는 장소로 다가오고 있는 방문자들이 있었다.
“여기가 괜찮겠는데?”
“몰이사냥을 하기에도 좋아 보이는군.”
“오빠 그냥 여기서 하자. 나 다리 아파.”
파티를 맺을 수 있는 최대 인원인 총 여섯 명의 방문자들.
“어? 여기 사람 있나 본데?”
“어디?”
그들은 한성을 보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이곳에서 비조르 사냥을 시작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한성이 있는 걸 보고 잠시 당황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기본적으로 에르네스트 산에서 사냥하는 사람들은 파티 사냥이 원칙이었다.
몬스터들이 무리를 이루고 다니는데다가 중간 보스 몬스터들이 산 중턱에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뭐야?”
“혼자잖아?”
이내 여섯 명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한성을 바라봤다.
주위를 둘러봐도 한성밖에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저씨. 혼자예요?”
여섯 명의 파티원 중에 나이가 어려 보이는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평일 낮 시간에 중, 고등학생이 게임을 하고 있을 리 없을 테니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여대생인 모양이었다.
“혼잔데?”
여대생으로 보이는 방문자의 말에 한성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자신과 나이 차가 얼마 되어 보이지 않는 여성이 아저씨라고 부르자 섬세한 마음에 상처를 입었던 것이다.
“혼자라고?”
한성의 말에 파티원들은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기껏 찾은 최적의 사냥터를 사용하지 못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럼 여길 우리가 사용해도 아무 문제 없겠군.”
파티원들의 리더이자 탱커인 테일런은 씩 웃으며 한성을 바라봤다.
그 말에 한성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지금 이 장소는 한성이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테일런을 비롯한 파티원들이 한성을 우습게 보고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파티에 넣어 주고 싶어도 최대 인원이니 넣어 줄 수도 없고, 혼자니까 장소가 좀 좁아져도 안으로 더 들어가면 될 것 같은데……?”
테일런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거기다 미묘하게 말도 놓고 있었다.
지금 있는 장소는 몬스터 리젠이 괜찮은데다 지형적으로도 사냥을 하는데 유리한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여러모로 힘들어진다.
커다란 바위나 나무들이 많아 움직이기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비조르들은 좁은 곳을 자유자재로 뛰어다닌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곳처럼 손쉽게 비조르들을 상대할 수 없었다. 즉, 사냥 시간이 길어진다는 소리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한성은 피식 웃으며 한마디 툭 던졌다.
“내가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