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 내 언데드 100만 >
제 33 화 친구 (2)
“난 재밌던데. 내가 말했잖아. 지금 쓰고 있는 건 대박 날 삘이라니까.”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던 한성은 이내 씩 웃으며 말했다.
“연락 좀 늦게 오는 거 갖고 걱정 하지 마라. 잘 될 거야.”
한성은 이재영의 어깨를 두들겨 줬다.
그때 감자탕 집 종업원이 소주 한 병을 가져왔다.
잠깐 종업원에게 인사를 하며 소주를 받아든 한성은 이재영을 바라봤다.
“야, 감자탕 나오기 전에 한잔하자.”
“그, 그래.”
한성과 이재영은 서로 소주잔을 따르며 한 잔씩 마셨다.
“그런데 너는 요즘 잘 되고 있냐?”
소주를 한 잔 마신 이재영은 한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
이재영의 말에 한성은 한숨부터 나왔다.
“뭐야? 왜 그래?”
“야, 한 잔 더 줘.”
대답을 미루며 한성은 이재영에게 소주를 한 잔 더 받아 마셨다.
“크.”
빈속에 차가운 소주가 들어가자 속이 시원해졌다.
머리는 아팠지만.
“무슨 일 있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오는 이재영.
“나 블랙 레이븐 클랜에서 탈퇴했다. 그리고 레벨도 초기화됐어.”
“뭐?”
한성의 말에 이재영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재영은 한성이 가상 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성을 통해서 티르 나 노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다.
그 때문에 한성이 4차 전직을 할 정도로 레벨이 높다거나, 티르 나 노이에서 제법 큰 클랜에 들어갔다거나 하는 사실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전 한성의 말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하는 이재영에게 한성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자초지종 이야기해 주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이재영은 말없이 한성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나보다 네가 오늘 소주 좀 마셔야겠네.”
이재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한성에게 소주잔을 따랐다.
“뭐, 그래도 히든 직업으로 전직도 했고 이제 2차 전직까지 했으니 죽어라 레벨업 해야지.”
“그러냐.”
한성과 이재영은 서로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리고 감자탕이 나오자 그걸 안주로 또 소주를 마셔 댔다.
이재영과 한성은 부랄친구다.
거기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함께 다녔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서로 각자 갈 길을 갔다.
그때 한성은 고민을 많이 했다.
약 2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할 당시 한성에게 놓여진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직을 할 것인지, 아니면 대학교에 진학을 할 것인지.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는 한성에게 제3의 선택지가 나타났다.
가상 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
지구를 열광하게 만들 세계 최초 가상 현실 게임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한성은 직감했다.
가상 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는 돈이 될 것이라고.
예전부터 한성은 게임에 관심이 많았다.
그 때문에 게임이 가지는 파급력을 잘 알고 있었다.
인기가 많은 한국 게임들은 아이템을 현금으로 어마어마하게 사고팔기 때문이다.
N사의 L게임은 검 하나 가격이 어지간한 회사원의 연봉 수준이었다.
일반 온라인 게임이 그 정도인데 가상 현실이 접목된 티르 나 노이는 과연 어떻겠는가?
그야말로 엄청난 현금 거래가 이루어질 것이다.
실제로 티르 나 노이의 아이템이나 골드는 어마어마하게 현금으로 거래되었다.
하지만 티르 나 노이가 처음 나왔을 때는 알 수 없었다.
예측은 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한성은 취직을 할지, 진학을 할지, 아니면 게임을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한 가지를 선택했다.
바로 가상 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를 하기로 말이다.
당연히 주변 사람들은 한성의 선택을 이해하기 힘든 눈으로 바라봤다.
특히 부모님의 반대가 가장 심했다.
게임으로 돈을 벌겠다니?
한성의 부모 세대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백보 양보해서 가상 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가 돈이 된다고 치자.
과연 한성이 거기서 돈을 벌 수 있을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주변 지인들은 한성을 회의적으로 바라봤다.
‘네가 무슨 재주로 게임을 통해서 돈을 벌려고 하느냐?
‘네가 과연 할 수 있겠느냐?’
‘너보다 더 게임을 잘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이걸로 벌어먹고 살 수 있겠느냐?’
이와 같은 소리를 한성에게 했던 것이다.
그들은 게임으로 무슨 돈을 버냐면서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설령 게임으로 돈을 벌 수 있어도 그걸 네가 할 수 있겠느냐며 비웃었다.
그들은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고 공부를 하든가, 아니면 일을 하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한성은 포기 하지 않았다.
꿋꿋하게 게임을 하겠다고 밀어붙였던 것이다.
“진짜 우리 성공해 보자.”
“그래야지.”
한성과 이재영은 소주잔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한성이 돈을 벌기 위해 티르 나 노이를 하겠다고 했을 때, 이재영은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이재영 또한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지인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한성과 마찬가지 취급을 당한 것이다.
부모님처럼 한성과 이재영이 걱정되어서 말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비웃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한성과 이재영은 포기하지 않았다.
서로의 꿈을 존중하고 응원했다.
한성은 게임으로, 이재영은 소설가로.
둘은 서로 성공을 약속하며 각자의 길을 걸었다.
언젠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유명해지기를 바라면서.
실제로 한성과 이재영은 그럭저럭 잘해 나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한성은 티르 노 나이에서 제법 규모가 큰 클랜의 행동 대장이 되었으며 나름 유명세를 탔다.
이재영도 아직 이름을 날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착실히 작품 활동을 하며 글을 써 나가고 있었다.
앞으로 조금만 더.
한성은 자신을 무시하고 비웃던 사람들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었다.
분명 그랬었는데…….
‘빌어먹을 슈타인 새끼…….’
블랙 레이븐 클랜 마스터인 슈타인이 자신을 배신했다.
그 결과가 도미노처럼 한성을 찾아왔다.
블랙 레이븐 클랜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전승을 했더니 레벨과 직업이 초기화가 되지를 않나, 마이너스 레벨이 되어 히든 직업으로 전직을 하게 되지를 않나.
다시 예전 레벨로 돌아가서 자신을 엿 먹인 슈타인 자식을 한 방 먹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블랙 레이븐 클랜이 있는 한 한성은 티르 나 노이에서 마음껏 행동할 수 없었다.
‘반드시 한 방 먹여 주마.’
자신이 얻은 전승 특전 효과와 히든 직업이면 충분히 먹일 수 있을 터.
“자, 여기 잔 받아라.”
“어.”
한성은 이재영이 주는 잔을 받았다.
그리고 이재영은 한성이 주는 잔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야. 오늘은 내가 쏜다.”
“역시 내가 믿을 사람은 너밖에 없다니까.”
이재영의 말에 한성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한성의 말은 정말이었다.
게임으로 돈을 벌겠다고 선언한지 약 2년이 좀 넘었다.
처음에는 반대하던 부모님도 지금은 조용했다.
조금이지만 티르 나 노이에서 한성이 돈을 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봐야 일반 직장인보다 적은 돈이었지만.
거기다 앞으로는 더 힘들었다.
전승을 하면서 레벨이 초기화되었기 때문이다.
한성이 레벨을 올리려고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블랙 레이븐 클랜에게 복수하는 것도 있지만, 그와 함께 티르 나 노이에서 돈을 벌어야 했다.
레벨이 높아야 고가의 장비나 아이템, 골드를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승 보상 특전은 굉장히 좋지.’
일단 레벨만 올릴 수 있으면 여러모로 유리해진다.
문제는 전승하기 전의 레벨이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었다.
그때까지 블랙 레이븐의 눈을 피해야 했으며, 최소한 생활비나 티르 나 노이의 계정비를 스스로 벌어야 했다.
그 때문에 언데드 군단과 싸우는 장면이나, 루루의 귀여운 모습을 녹화해서 방송하려고 한 것이다.
‘돈이 없다고 하면 부모님들이 가만히 안 계실 테니까.’
당장 취직하라고 난리가 날 터.
거기다 가끔 한 번씩 한성과 마주칠 때마다 부모님은 취직을 하는 게 더 낫지 않냐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판국이었다.
한성은 속으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재영의 사정도 한성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럭저럭 먹고 살 만한 정도의 돈을 벌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야. 형이 감자탕 쏜다는데 표정이 왜 그러냐. 맛없냐?”
“아냐. 근데 야, 1차로 되겠냐? 오늘 2차는 내가 쏜다!”
“그럼 나야 좋지!”
호쾌한 한성의 선언에 이재영은 웃으며 콜을 외쳤다.
어차피 둘이서 마셔 봐야 몇 만 원 정도 밖에 안 나올 테고 그 정도 돈은 있었다.
그리고 티르 나 노이에서 블랙 레이븐 클랜에게 배신을 경험한 한성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았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이재영이었다.
이재영과 한성은 서로 꿈과 성공을 약속한 친구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감자탕 집에서 대충 밥을 먹고 나온 한성과 이재영은 2차로 술집에 갔다.
* * *
집에 돌아오니 가족들이 전부 있었다.
토요일 저녁이니 당연했다.
“아들. 이제 와?”
“예. 저 왔어요.”
이재영과 술을 마시긴 했지만 그렇다고 취해서 필름이 끊길 정도는 아니었다.
적당히 마셨기에 그냥 살짝 어지러운 정도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안방에 계셨고, 어머니는 부엌일을 하고 있었다. 여동생인 최한빛은 방에서 뭘 하고 있는 건지 문을 꼭 닫은 채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밥은?”
“먹고 왔어요.”
부엌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말에 대답을 하며 한성은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 오면서 사 온 게 있기 때문이다.
“아니 왜 또 라면을 이렇게 사 왔어?”
역시나 어머니는 한성이 사 들고 온 봉지를 보더니 눈살을 살짝 찌푸리셨다.
집에 오기 전 한성은 마트에 들려 라면을 사 온 것이다.
바로 이럴 때 한성은 여동생이 있는 거라 생각했다.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 최한빛이 사 오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한성은 여동생인 최한빛을 팔았다.
그리고 거짓말은 아니지 않은가?
카톡으로 최한빛이 신라면 매운맛을 사 오라고 했으니 말이다.
“뭐? 한빛이가 사 오라고 했다고? 이놈의 기집애를 그냥!”
한성의 말에 어머니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어머니는 라면을 싫어하신다.
왜냐하면 밥을 한 솥 가득 해 놓으면, 먹으라는 밥은 안 먹고 온 가족이 라면만 먹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제외하고 모든 가족이 라면을 좋아하니까.
“에이, 참으세요. 겨우 라면 가지고…….”
“찬장 한 번 열어 봐라.”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말에 한성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찬장을 열어 봤다.
“…….”
한성은 잠깐 침묵했다.
분명 점심을 넘었을 때는 텅텅 비어 있던 찬장이 지금은 신라면 매운맛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뭐야? 한빛이 녀석, 라면을 사 왔었네?’
낮에 카톡을 했을 때는 죽어도 라면을 안 사 올 기세였더니만 결국 사 온 모양이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여동생의 귀여운 행동에 한성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뭐, 밥도 잘 먹을 테니 봐 주세요.”
한성은 자신이 사 온 라면 봉지들을 찬장 안에 밀어 넣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열었다.
“에휴. 내가 이놈의 라면 귀신들 때문에 못 살지 못 살아.”
어머니의 한숨 섞인 말에 한성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일찍 자고 내일 티르 나 노이에 접속해야겠군.’
술기운이 올라 있는 상태라 침대에 드러누운 한성은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캡슐에 들어간 한성은 가상 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에 접속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