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언데드 100만-13화 (13/318)

# 13

< 내 언데드 100만 >

제 13 화  서큐버스 소녀, 루루.

“거기 앉아서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있지? 여기 일 끝나면 내가 물어볼 게 좀 있거든?”

“우, 우린 바빠서…….”

“별로 오래 안 걸리니까, 그냥 기다려 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한성은 눈에 힘을 팍 주며 셀라스틴을 바라봤다.

가지 마라. 가면 죽는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눈빛이 그러했다. 지금 눈빛에 비하면 조금 전 한성의 말은 온화하기 그지없었다.

‘무슨 눈빛이 저래?’

셀라스틴은 등 뒤로 식은땀을 흘렸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다.

‘셀라스틴 님. 우리 여기 왜 온 건가요?’

‘안 왔어도 될 것 같았는데 괜히 온 거 아닙니까?’

‘셀라스틴 님. 저 집에 가고 싶어요!’

“…….”

자신을 바라보는 부하들의 눈빛에 셀라스틴은 마음의 눈물이 흘러넘쳤다.

“미안. 내가 술 살게. 우리 술이나 마시고 가자.”

“셀라스틴 님!”

셀라스틴의 말에 부하들이 그녀를 소리쳐 불렀다.

하지만 셀라스틴은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그리고 홀로 스케빈져 클랜인 페스틸렌스와 그 협력자들과 싸우고 있는 한성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디아나 님을 찾고 있다고 했었지?’

눈앞에 있는 사내는 어째서 디아나 님을 찾고 있는 것일까?

한성이 셀라스틴에게 묻고 싶은 게 있는 것처럼, 셀라스틴도 한성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마스터! 여기 스위트 문 한 병이랑 칵테일 세 병!”

부하들을 데리고 적당한 자리에 앉은 셀라스틴은 술을 주문했다.

덜그럭덜그럭.

그러자 산만 한 덩치의 해골이 쟁반에 술병을 올리고 다가왔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술병이 든 쟁반을 내려놓았다.

탁.

“술술.”

산만 한 덩치의 해골, 드미트리는 허리를 한 차례 숙인 후 주점 카운터 자리로 돌아갔다.

비록 한성의 손에 의해 해골이 되었지만 생전의 버릇대로 드미트리는 손님의 주문에 완벽히 대응했다.

애초에 셀라스틴 일행을 접대하라는 한성의 명령이 있었지만 말이다.

“…….”

덩치가 듬직한 해골 하나가 웨이터복 차림으로 술병을 내려놓고 가는 모습을 본 셀라스틴과 부하들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셀라스틴 님. 여기 술집 마스터가 언제부터 해골이 된 거죠?”

“방금 전에 됐겠지.”

셀라스틴은 골치 아픈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분명 주점 마스터가 저기서 혼자 날뛰고 있는 청년을 어떻게 해 보려다가 오히려 당한 것일 터.

그렇게 셀라스틴과 부하들은 한성이 페스틸렌스 클랜의 잔당들을 처리하는 모습을 안주 삼아 술을 퍼마시기 시작했다.

*       *       *

“그러니까 디아나라는 인물이 누군지 모른다고?”

“그, 그렇다.”

한성은 턱을 쓰다듬었다.

페스틸렌스 클랜원들은 전원 처리했다.

즉시 부활로 몇 번 더 덤벼들던 놈들도 있었지만, 결국 한성의 근접 전투력과 해골 병사들의 물량에 무너졌다.

다시 티르 나 노이에 접속하려면 현실 시간으로 3일은 기다려야 할 터.

페스틸렌스 클랜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물은 칼스텐이었다.

그에게서 들어야 할 것이 있었으니까.

그 외에 페스틸렌스 클랜에 협력하는 켈트인 몇 놈도 붙잡아서 구속시켜 놨으며, 자신을 도와주려고 찾아온 정체불명의 인물들도 주점 구석에 앉아 술을 퍼마시고 있었다.

단지 문제는 테이블 밑에 술병이 10개가 넘게 굴러다니고 있다는 사실이었지만.

한성은 눈앞에 있는 칼스텐을 내려다봤다.

“그럼 왜 날 노린 건데?”

“…….”

한성의 질문에 고개를 돌리며 입을 꾹 다무는 칼스텐.

‘허허. 이 자식이?’

칼스텐은 무언가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칼스텐이라고 했지? 부모님은 건강하시냐?”

“뭐라고?”

대번에 칼스텐의 성난 얼굴이 한성에게로 향했다.

“왜 그렇게 화를 내려고 그래? 부모님 잘 계시냐고 물어 봤을 뿐인데.”

히죽 웃으며 한성은 칼스텐을 바라봤다.

슬슬 입질이 오기 시작했다.

“네놈 사무실에 들어가 보니까 좋더라? 이게 네 취미인가 보지?”

칼스텐의 앞에서 한성은 작은 상자를 하나 꺼내 보였다.

그러자 페스틸렌스 클랜 협력자들인 켈트인들을 비롯해서 셀라스틴과 부하들의 시선이 상자로 향했다.

“서, 설마?”

굳건한 얼굴로 한마디도 뻥긋하지 않을 것 같던 칼스텐의 표정에 금이 갔다.

대체 상자 안에 뭐가 들어 있는 것일까?

“그냥 말할래? 아니면 이거 공개되고 말할래? 참고로 지금 녹화 중이다.”

티르 나 노이에서는 스마트 밴드워치를 이용해서 동영상도 찍을 수 있었다.

일부 방문자들은 자신의 게임 플레이를 녹화해서 인터넷 방송으로 돈을 벌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TV에 방송하면 조회수가 좀 오를 것 같은데?”

“이, 이 자식이……!”

이를 악물며 칼스텐은 한성을 노려봤다.

‘씨발! 피도 눈물도 새끼!’

이제야 한성의 본질을 파악한 칼스텐.

지금이라도 지킬 것은 지켜야할 터.

“저놈들에게 물어보면 알 거다.”

칼스텐은 턱짓으로 페스틸렌스 클랜의 협력자들을 가리켰다.

“칼스텐 님! 저희를 배신하겠다는 겁니까?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까?”

“닥쳐! 네놈들보다 저 상자가 더 중요하다고! 그리고 방문자들이 죽는 걸 무서워하는 거 봤냐?”

“…….”

칼스텐의 일갈에 협력자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죽음은 켈트인들이나 두려워하지 방문자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만 죽을 때, 떨어지는 경험치와 아이템이 아까울 뿐.

“현명한 선택이다.”

한성은 씩 미소를 지었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조금 전 방송 어쩌고는 블러프였다.

현재 한성은 블랙 레이븐 클랜에게 쫓기고 있었다.

그런데 방송 같은 걸해서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어리석은 짓을 왜 한단 말인가?

칼스텐으로부터 디아나에 대한 실마리를 잡은 한성은 기둥에 묶여 있는 켈트인들에게로 향했다.

그런 한성의 발치에 칼스텐이 협력자들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상자가 있었다.

“어이쿠! 발이 미끄러졌네!”

순간 한성은 상자를 향해 발을 힘차게 뻗었다.

퍽!

한성의 발에 차인 상자가 천장 높이 솟구쳐 오른다.

그리고 공중에서 내용물을 게워 내기 시작했다.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상자 속에서 하늘하늘 떨어져 내리기 시작하는 칼스텐의 소중한 물건들.

“아, 안 돼!”

비명 같은 칼스텐의 외침과 함께 상자 속 내용물들이 떨어져 내렸다.

“이, 이게 뭐야?”

“속옷 아니야?”

“왜 속옷이……?

상자 속에서 떨어져 내린 물건들은 다름 아닌 여성용 속옷이었다. 갖가지 종류와 색상을 가진 속옷들이 주점 바닥에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히이이이익!”

천장에서 떨어져 내리는 속옷을 본 셀라스틴과 그녀의 부하들 중 여성 켈트인들은 비명을 내질렀다.

“내, 내 콜렉션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칼스텐은 바닥에 깔린 속옷들을 바라봤다. 숨겨 왔던 비밀스러운 취미가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네로폴리스 도시에서 여성 속옷 도난 사건들이 많이 늘어났다던데 설마……?”

셀라스틴의 여성 부하들은 징그러운 눈빛으로 칼스텐을 바라봤다.

“아, 아니야! 내가 한 게 아니야!”

칼스텐은 즉시 부정했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이곳에 페스틸렌스 클랜의 클랜원들이 없다는 사실일까?

“이거 참 미안하게 됐네. 바닥이 미끄러워서 그만.”

바닥이 미끄럽긴 개뿔.

고의적으로 있는 힘껏 상자를 발로 찼다.

칼스텐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한성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한성은 칼스텐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대며 속삭였다.

“나중에 허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만약 페스틸렌스 클랜 때문에 날 귀찮게 만드는 일이 생기면 네놈의 비밀 콜렉션이 인터넷 전체에 퍼지게 될 테니까.”

“크, 크윽……!”

한성의 말에 칼스텐은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게슈탈트 붕괴 중인 칼스텐을 뒤로 하고 한성은 기둥에 묶여 있는 켈트인들을 향해 다가갔다.

“네놈들이냐? 나를 노린 놈들이.”

한성은 켈트인들을 노려봤다.

그들은 한성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네놈들의 정체는 뭐지? 날 노린 이유는?”

“죽여라.”

켈트인들은 확고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금방 결정하는 건 좋지 않지. 너희 켈트인들은 죽으면 끝이잖아? 목숨은 소중히 여겨야지.”

“망할 놈…….”

일그러진 얼굴로 켈트인들은 이를 갈았다.

“그러니까 말해. 왜 날 노렸는지, 디아나와는 어떤 관계인지. 순순히 말해 주면 죽이지는 않겠다. 하지만…….”

한성은 손짓했다.

덜그럭 덜그럭.

한성의 손짓에 달빛 속에서 술 한 잔 주점의 마스터 드미트리 해골이 다가왔다.

“끝까지 묵비권을 행사하겠다면 이놈처럼 만들어 주마.”

“어, 언데드 몬스터…….”

켈트인들은 숨을 들이켰다.

방문자들과 켈트인들의 가장 큰 차이.

방문자들은 죽어도 죽는 게 아니다.

그에 반해 켈트인들은 죽으면 끝이다.

그런데 죽이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언데드로 만들겠다니!

피도 눈물도 없는 사악한 놈이 아닌가!

“그건 내가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 한성의 등 뒤에서 매혹적인 미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한성의 눈에 셀라스틴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너희들도 있었지.”

페스틸렌스 클랜원들을 처리한 다음 이야기를 해 보려고 했던 정체불명의 인물들.

그들에게서도 한성은 정보를 얻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몰래 주점을 빠져나가려는 걸 붙잡았다.

만약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도망치려 했다면 실력 행사도 불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에게 적대적이지도 않았으며, 상황을 보니 도와주려고 온 것 같았다.

그 때문에 한성은 그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하지만 단지 그뿐.

인간관계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거기다 한성은 믿었던 인물들에게 배신당하지 않았던가?

“저놈들은 어둠의 신봉자들이다. 디아나 님의 적들이지.”

“어둠의 신봉자들?”

한성은 기둥에 묶여 있는 켈트인들을 바라봤다.

“디아나 님은 30년 전에 행방불명되셨다. 어둠의 신봉자들 때문에.”

“뭐라고?”

디아나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니?

아무래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다고 한성은 생각했다.

*       *       *

어두운 숲속에서 손바닥만 한 크기의 소녀가 조심조심 풀숲을 걷고 있었다.

머리에는 뾰족 모자를 쓰고, 다리까지 내려오는 웨이브가 진 긴 보라색 머리카락과 붉은 색 눈을 가진 귀여운 소녀였다.

어두운 숲에서 소녀는 손에 나뭇가지를 하나 들고 혼자 씩씩 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코!”

순간 무언가에 발이 걸렸는지 소녀는 발라당 앞으로 넘어졌다.

“우으…….”

작고 귀여운 붉은 눈망울에 물방울이 아른아른 맺힌다.

‘루루는 도시로…… 도시로 가야 해요.’

귀여운 소녀, 아니 루루는 용기를 냈다.

손으로 눈을 쓱쓱 문지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실 어두운 숲속은 두렵고 무서웠다.

하지만 루루는 다시 씩씩하게 숲길을 걷기 시작했다.

중요한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루루는 마스터를 구해야 해요.’

마스터를 구하기 위해서는 도시로 가야 한다.

어두운 숲 너머에 루루가 가야 할 도시가 있었다.

아우우우우-----!

“히익!”

갑작스럽게 들려온 늑대의 포효에 화들짝 놀란 루루는 뾰족 모자를 깊게 눌러쓰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마스터. 도와줘요, 마스터.’

꼭 감은 눈 끝에서 눈물이 방울져 흘러내리고, 몸은 오들오들 떨린다.

그 상태로 한참을 있던 루루는 뾰족 모자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다행히 주변에 몬스터들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루루는 포기하지 않아요.’

당찬 표정으로 루루는 다시 일어섰다.

여기서 포기 할 수 없었다.

앞으로 조금.

조금만 더 가면 도시가 나온다.

파닥파닥.

허리에 달려 있는 작고 귀여운 박쥐 날개를 루루는 흔들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루루의 날개는 지쳐 있었다.

그 때문에 루루는 숲속 길을 아장아장 걷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지쳤던 날개가 회복을 끝냈다.

루루는 한성이 있는 네오폴리스를 향해 힘차게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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