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 내 언데드 100만 >
제 12 화 은색의 마수, 실버 울프 (2)
셀라스틴은 주점 내부를 둘러보다가 한성과 눈을 마주쳤다.
- 그는 장비가 허름합니다. 그를 보면 바로 호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진짜 그 말대로네.’
셀라스틴은 자신에게 정보를 준 인물의 말대로 호구처럼 생긴 한성을 보고 속으로 실소했다.
정확히는 장비 때문이었지만.
한성의 무기를 보라.
대나무 창이다.
레어 등급의 50레벨 무기지만, 겉모습은 그냥 평범한 대나무 창처럼 보일 뿐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한성이 입고 있는 가죽 갑옷은 매직 등급으로 50레벨조차 되지 않는다.
그리고 가죽 갑옷 위에는 허름하기 짝이 없는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진짜 망토 하나만 놓고 앞에서 보고, 뒤에서 보면 딱 호구처럼 보였다.
그런가 하면 팔찌는 화려했다.
마빈스가 드랍한 걸 한성이 주워서 쓰고 있는 거지만, 그 사실까지 셀라스틴이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지금 한성의 모습은 딱 돈 많은 호구 이미지였다.
“이쪽으로 와라!”
셀라스틴은 다급한 목소리로 한성에게 소리쳤다.
그녀의 목적은 한성을 구출하는 일이다.
주점 안에는 그녀뿐만이 아니라 검은색 암행복을 입은 정체불명의 인물들이 몇 명 더 들어와 있었다.
‘운이 좋아.’
다행히 그녀들의 목표는 아직 건재했다.
거기다 1층에서 딱 마주쳤다.
남은 건, 한성을 데리고 주점에서 빠져나가면 된다.
이번 임무가 쉬워졌다고 셀라스틴은 생각했다.
적어도 한성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싫은데?”
“……?”
셀라스틴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늑대 귀가 쫑긋 서고, 꼬리의 털이 바짝 일어섰다.
싫어? 싫다고?
이건 대체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와라! 죽고 싶은 거냐?”
“댁이 누군지 알고 따라가? 그리고 난 아직 볼일 안 끝났어.”
한성은 피식 웃으며 다시 페스틸렌스 클랜원들과 그 협력자들을 바라봤다.
양아치 3인방들과 켈트인들이 한성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중에서 카이센이 악에 받친 얼굴로 소리쳤다.
“야, 이 호구 자식아! 내 암흑멸천검 내놔!”
“응.”
스마트 밴드워치를 조작하며 인벤토리에서 한성은 +12강 암흑멸천검을 소환했다.
“아!”
그 모습에 셀라스틴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려 +12강 무기다.
어떤 무기든지 강에 +12강을 하려면 어마어마한 재료와 골드가 들어간다.
거기다 위력도 두말할 필요 없었다.
“자, 여기.”
카이센을 향해 한성은 +12강 암흑멸천검을 내밀었다.
뜻하지 않게 한성이 +12강 암흑멸천검을 돌려주자 카이센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오, 고맙…….”
푸욱!
“어? 미안.”
“아, 이런 개새…….”
한성의 영혼 없는 사과에 카이센은 미처 할 말도 다 끝내지 못하고 빛이 되어 사라졌다.
+12강 암흑멸천검이 카이센의 가슴을 정확하게 찔러 들어갔던 것이다.
“줘도 못 먹네. 병신인가?”
“네가 냅다 찌른 거잖아, 미친놈아!”
한성의 행동에 라이칸이 참지 못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럼 진짜로 줄줄 알았냐?”
한성은 피식 웃으며 +12강 암흑멸천검을 한 손으로 들어 올리며 어깨 위에 척 걸쳤다.
오른손에는 +12강 암흑멸천검을, 왼손에는 만인 앞에 평등한 죽창을.
지금 이 순간 주점 안에서 한성을 막을 자는 없었다.
살며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한성은 죽창을 까닥거렸다.
“덤벼.”
* * *
일방적인 전투였다.
만인 앞에 평등한 죽창과 +12강 암흑멸천검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가상 현실 게임 티르 나 노이는 무기나 방어구 장착에 대한 제한이 없었다.
물론 자기 직업에 어울리지 않는 장비들을 장착하면 페널티를 받지만 말이다.
‘이, 이게 뭐야?’
셀라스틴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한성을 바라봤다.
그녀의 자랑인 늑대 귀는 축 늘어져 있었다.
그녀를 비롯한 암행복을 입은 인물들은 한성을 구출하러 왔다가 그냥 구경만 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
한성 혼자서 +12강 암흑멸천검으로 베고, 죽창으로 한 번씩 푹 찌르니 다들 억! 거리면서 쓰러졌던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펑!
바닥에 쌓여 있던 시체에서 해골 병사들이 소환되었다.
“헛!”
그 모습에 셀라스틴과 그녀의 부하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크로…… 맨서?’
셀라스틴은 한성이 무기 두 개를 양손에 들고 페스틴렌스 클랜원들을 때려잡는 모습을 보고 전사계열 직업인줄 알았다.
그런데 네크로맨서였을 줄이야!
‘전혀 호구가 아니잖아!’
네크로맨서면서 페스틸렌스 클랜원들을 맨몸으로 때려잡고 있었다는 사실에 셀라스틴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한성에 대한 잘못된 이야기를 전해 준 정보원의 뒤통수를 후려치기로 마음먹었다.
또한, 놀라고 있는 건 페스틸렌스 클랜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젠장!”
“마, 막아!”
푸른 안광을 빛내며 해골 병사들이 뼈칼을 들고 달려들자 페스틸렌스 클랜원들과 협력자들은 당황했다.
혼자 있는 한성을 상대하는 것도 벅찬 마당에 해골 병사들까지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네크로맨서의 소환수들이 약골이라고 해도 지금 상황에서 해골 병사들까지 추가되면 아무래도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캉! 캉캉캉!
“큭!”
“뭐, 뭐야?”
“이, 이것들 왜 이렇게 강해?”
라이칸과 마빈스를 비롯한 페스틸렌스 클랜원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네크로맨서의 해골 병사들은 약하다.
한 대 툭 치면 부서질 만큼.
그런데 지금 그들이 상대하고 있는 해골 병사들은 강했던 것이다.
자신들의 공격을 쉽게쉽게 막아 내고 있었으니까.
거기다 해골 병사들의 숫자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페스틸렌스 클랜원들과 협력자들의 숫자가 많아 버티고 있었지만 머지않아 역전 될 것이다.
그리고 셀라스틴 일행들도 조금이나마 전투에 참가해 거들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페스틸렌스 클랜원들과 켈트인들은 착실히 숫자가 줄어 갔다.
‘음?’
눈앞에서 자신의 공격을 요리조리 막아 내는 라이칸을 처리하기 위해 +12강 암흑멸천검을 치켜든 한성은 멈칫했다.
위쪽에서 안 좋은 낌새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민첩 스텟이 높은 한성만이 느낀 기척이었다.
한성은 위를 올려다봤다.
2층 계단과 이어진 난간에서 덩치가 산만 한 사내가 대형 도끼를 들고 뛰어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한성은 재빨리 +12강 암흑멸천검의 검면과 죽창을 교차했다.
그 순간 2층에서 뛰어내린 사내의 대형 도끼가 +12강 암흑멸천검의 검면을 강타했다.
콰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한성의 발이 지면에 움푹 파고 들어갔다.
그뿐만이 아니라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한성을 중심으로 직경 5미터가 넘는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꽤 하는군.”
대형 도끼를 든 사내, 칼스텐은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한성을 바라봤다.
칼스텐은 주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개입하지 않았다.
한성이 허점을 보였을 때 기습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보기 좋게 막히고 말았다.
“인사치고는 거친데?”
한성은 +12강 암흑멸천검으로 대형 도끼를 강하게 쳐냈다.
깡!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한성과 칼스텐은 서로 물러났다.
‘이런 위력이라니…….’
그리고 셀라스틴은 놀란 표정으로 한성과 칼스텐을 바라봤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이 주점에 있는 모든 자들은 괴물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한성과 칼스텐을 바라봤다.
+12강 암흑멸천검과 대형 도끼가 한차례 충돌했을 뿐인데 주점에 있던 모든 자들이 충격파에 휩쓸려 나가떨어졌으니까.
오직 은색의 마수, 셀라스틴을 제외하고.
“감히 내 클랜을 건드리다니 간땡이가 부었군. 그리고 그거 우리 클랜에서 만든 무기 맞지?”
“아마도?”
칼스텐의 말에 한성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네놈이 카이센이 말한 호구 놈이었군.”
주점 중앙에서 한성과 칼스텐은 서로 웃으며 노려봤다.
스팟.
순간 칼스텐이 먼저 한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부우웅!
대형 도끼가 바람을 가르며 쇄도한다.
쾅! 쾅! 쾅!
제법 빠른 속도로 내려쳐지는 대형 도끼를 한성은 슬쩍슬쩍 물 흐르듯 움직이며 피해 냈다.
“쥐새끼처럼 잘도 피하는 구나!”
한성을 도발하는 칼스텐.
하지만 한성은 넘어가지 않았다.
‘파워 중시형에 민첩도 그럭저럭 좋은 편이군.’
칼스텐의 움직임을 한성은 끊임없이 관찰했다.
블랙 레이븐 클랜에서 1군 공격대 대장을 맡을 수 있었던 건 전투에서 한성이 냉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성을 그저 미친개처럼 저돌적으로 달려든다고만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한성은 싸움을 좋아하는 호전적인 성격이었으니까.
‘이놈 꽤 강하다.’
한성은 입꼬리를 슬쩍 말아 올렸다.
전승을 하고 나서 처음으로 가슴이 끓는 기분이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전승을 하고 나서 만난 적 중에서 칼스텐이 가장 강했다.
그의 레벨은 74였으니까.
그 때문에 칼스텐은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졌다.
‘왜 안 맞지? 레벨도 나보다 한참 낮은 것 같은데…….’
암흑멸천검을 장비한 걸 보면 레벨이 50은 된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뿐.
그 이외에 장비는 칼스텐이 보기에 허접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칼스텐은 무기뿐만이 아니라 방어구도 65레벨제로 한성보다 더 높다.
그런데 왜 이놈은 자신의 공격을 계속 피하고 있는 것일까?
Miss, Miss, Miss.
“으아아아아악! 이 빌어먹을 놈이!”
결국 다혈질인 칼스텐은 폭발하고 말았다.
키이잉!
별안간 대형 도끼가 진동하기 시작한다.
후우우웅!
“어디 이것도 피할 수 있나 보자!”
칼스텐은 대형 도끼를 머리 위까지 치켜들며 소리쳤다.
“뭐하냐? 달밤에 체조하냐?”
“뭐? 이 빌어먹을 자식이!”
한성의 비웃음에 칼스텐은 머리끝까지 열이 뻗쳐올랐다.
그리고 지금 당장이라도 대형 도끼를 내려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한성이 더 빨랐다.
“라이트닝 드라이브(Lightning Drive).”
번쩍!
한성의 몸에서 황금빛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한성은 한 줄기 빛살처럼 칼스텐을 향해 달려들었다.
슈카가가각!
대형 도끼를 머리끝까지 치켜든 칼스텐의 앞에서 한성은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12강 암흑멸천검이 무방비 상태인 칼스텐의 몸을 수차례 가르고 지나갔다.
라이트닝 드라이브는 전승 특전으로 한성이 계승한 파이터 계열 스킬이었다.
그 능력은 10초 동안 공격 속도와 이동 속도가 500% 증가한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능력.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전승 특전으로 계승한 스킬들은 전부 마스터 레벨이었기 때문이다.
“크어어어…….”
쿵.
라이트닝 드라이브의 지속 시간이 끝나자 칼스텐은 들고 있던 대형 도끼를 등 너머로 떨어뜨렸다.
대형 도끼를 쥐고 있을 힘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칼스텐의 몸도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아직 칼스텐은 죽지 않았다.
최후의 일격을 한성은 일부러 가하지 않았다.
‘디아나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야.’
칼스텐에게서 알아볼 것들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거기!”
“……!”
한성의 외침에 셀라스틴과, 그녀의 부하들은 화들짝 놀랐다.
얼마나 놀랐느냐 하면 셀라스틴의 늑대 꼬리가 바짝 설 정도였다.
그녀들은 한성이 혼자서 상황을 정리할 것 같자 조용히 몸을 빼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을 보낼 줄 생각이 한성에게는 없었다.
한성은 그녀들을 바라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