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202화 (완결) (201/202)

202. 에필로그 (完).

강남에 자리한 국제 워프 게이트 터미널.

입국과 출국, 그리고 환승을 하기 위한 인파로 북적거리는 터미널 내부.

입국 게이트를 빠져나온 노신사가 물기 젖은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돌아왔구나…. 돌아왔어.”

회한이 서린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백발의 노신사는 이내 양손으로 소중히 들고 있던 목함을 바닥에 내려놓고 절을 했다.

“돌아왔습니다. 아버님. 아버님이 꿈에도 그리시던 고향 땅에 돌아왔어요…. 끅…….”

감정이 격해져 말을 잊지 못하는 노신사.

그는 새하얀 천으로 싸여있는 목함을 그러안고 주름 가득한 두 눈에서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흐어어어…. 흐으으으…….”

무엇이 그리도 절절했을까.

제대로 된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한 나직한 흐느낌이 입국 게이트 앞을 채우기 시작하자 울음소리에 놀라 노신사를 바라보던 이들의 눈시울 또한 붉게 물들어갔다.

마치 노신사의 절절한 슬픔이 전이되기라도 한 것처럼.

“흑…….”

“큼, 크-흠. 눈에 먼지가….”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리던 입국 게이트 앞이 짙은 슬픔으로 물들어갈 때였다.

슥.

소리죽여 흐느끼고 있던 노신사의 눈앞으로 작고 앙증맞은 손 하나가 내밀어졌다.

분홍색 토끼가 그려진 손수건을 쥐고 있는 작은 손.

노신사가 고개를 들어 손의 주인을 바라보자 똘망똘망한 눈망울 두 개가 그를 맞이했다.

“할아버지 왜 우러요? 울지 마라요.”

이제 여섯 살쯤 되었을까?

머리를 양 갈래로 곱게 땋은 귀여운 얼굴의 소녀가 눈시울을 붉힌 채 노신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큼…. 내게 주는 것이냐?”

“네에.”

“고맙구나.”

노신사가 손수건을 받아들자 소녀는 배시시 웃어 보이곤 부모로 보이는 젊은 남녀를 향해 종종걸음으로 뛰어갔다.

그제야 주변을 둘러본 노신사가 모두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음을 알아채곤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윽고 정중히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노신사.

“이 늙은이가 살아생전 처음 밟아보는 조국 땅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주책을 부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뭐…. 오랜만에 고국 땅을 밟으면 그러실 수도 있죠. 이해합니다.”

“어르신 저희가 어떻게 어르신의 마음을 백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는 저도 조금 이해합니다. 그러니 너무 괘념치 마세요.”

주변 사람들의 위로에 노인의 눈시울이 다시 붉어졌다.

그간 쌓여왔던 가슴속의 한(恨)이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노신사의 이름은 박현창.

재일한인회의 회장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일제의 강제징용에 끌려왔던 피해자로 고국의 해방 이후에도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 땅에서 눈을 감아야만 했다.

그리고 오늘.

박현창은 수십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골함을 품에 안고 그분이 그토록 그리워하시던 대한민국의 땅을 밟았다.

주륵.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그의 눈에서 시작된 눈물이 다시 주름진 볼을 따라 흘러내렸다.

그 순간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지금은 사업가로 이름이 높지만 지독하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

고국은 독립했지만, 일본인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조선인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착취와 멸시는 더욱 거세져 갔다.

노예와 다를 게 없는 삶.

그런 삶 속에서도 아버지는 그저 고국을 그리워하며 독립한 조국의 발전을 위해 후원금을 보내셨었다.

어린 박현창은 그런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돌아왔습니다. 아버지. 이젠 편하게 쉬세요….’

박현창의 볼을 따라 흘러내린 눈물방울이 떨어져 내려 바닥을 적셨다.

그것은 오래된 한과 슬픔을 녹여낸 기쁨의 눈물이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박현창만은 아니었다.

그간 교단과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한 군사 목적으로만 사용되던 워프 게이트가 민간에 개방된 첫날.

조국의 광복을 바라며 세계로 뻗어 나갔던 숨겨진 영웅들이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

이제는 UN 센터라 불리는 각성자 센터.

예전엔 10대 길드 길드장들을 위한 사무실이 있던 154층엔 이제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고급스러운 원목 책상 위에 놓인 명패.

세계 각성자 협회. 협회장 도연우.

신들과의 전쟁이 끝나고 각국을 대표하는 각성자들의 동의하에 만들어진 세계 각성자 협회.

만장일치로 초대 협회장에 추대된 도연우는 불퉁한 얼굴로 말했다.

“이거 뭐 게임을 할 시간이 없네. 무슨 일이 이렇게 끝도 없는 거지?”

전 세계 각성자들의 수장이나 다름없는 명예로운 자리였지만 도연우에겐 귀찮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래서 내가 은퇴하려고 했는데. 젠장.”

도연우가 연신 투덜거리고 있을 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다 조직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지. 길드장씩이나 했던 놈이 여즉 그런 것도 모르고 있었누?”

“저놈이 쌈박질이나 할 줄 알지 서류 업무를 해 봤겠어? 부 길드장이 다 했겠지.”

고급스러운 가죽 소파에 몸을 묻은 채 차를 마시고 있는 두 노인.

서태촌과 구정철이었다.

두 사람의 말에 팔자에도 없는 협회장 일을 하고 있던 도연우가 발끈하며 소리쳤다.

“이게 다 두 분 때문이잖아요!!”

“우리? 우리가 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천연덕스러운 구정철의 물음에 도연우의 이마엔 혈관이 ‘빠직’ 솟아났다.

“영감님들이 저를 협회장으로 추대만 하지 않았어도 제가 이 고생은 안 하죠!!”

“젤 센놈이 대장 되는 게 당연하지 뭘 그런 걸 가지고 열을 내고 그래?”

그 말을 들은 도연우가 벌떡 일어서며 사무실 한쪽을 가리켰다.

“그러니까 젤 센놈은 저기 있는데 왜 제가 협회장을 해야 하냐고요!”

창가에 서서 도시를 내려다보던 강현이 그 말에 고개를 돌렸다.

“음? 저요?”

“그래 너! 솔직히 네가 나보다 세잖아! 근데 왜 내가 협회장을 해야 하냐고!”

도연우가 세계 각성자 협회 협회장 자리에 앉은 지 고작 한 달.

그 한 달 동안 받은 스트레스가 드디어 임계점을 넘어 폭발했다.

트리거는 일에 치여 게임을 할 시간도 없는 자신과는 다르게 여유롭기 그지없는 세 사람.

그중에서도.

“음…. 형이 영웅이라서요?”

천연덕스럽게 자신을 향해 영웅이란 말을 내뱉는 강현의 공이 가장 컸다.

“영웅? 여엉우웅-??”

영웅이란 말을 반복하는 도연우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야! 신계를 없앤 것도 너고! 그 파편을 소멸시킨 것도 넌데 왜 내가 영웅이야?!”

“그걸 사람들이 모르잖아요.”

“내가 알잖아! 내가!!”

“에이- 그 말을 누가 믿어요. 형이 협회장 하기 싫다고 거짓말하는 거로 생각하지.”

빠드득.

순간, 도연우의 입에서 이빨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물론 반신급에 이른 몸뚱이니 이빨이 부러지거나 하지 않았겠지만.

“그게 다 형이 협회장 하기 싫다고 하도 구라를 치셔서 생긴 업보예요. 그냥 받아들이세요.”

“허…….”

말을 마친 강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려다봤다.

***

오후 2시.

8월의 햇살이 도시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내가 창밖을 내려다보는 이유?

별거 없다.

그저 확인하고 싶은 것일 뿐.

대한민국 수도 서울.

무려 이천만의 인구가 살아가는 메가시티.

“아깝지 않냐? 지구를 구한 영웅은 넌데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게?”

연우 형이었다.

얼굴이 벌게져서 고래고래 소리를 치던 사람이 어느새 침착함을 되찾았다.

“전혀요. 아홉 개의 권능을 사용하던 무신 백오를 막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건 제가 아니라 형이잖아요.”

“그래도…….”

미안함이 가득한 목소리.

나는 연우 형이 왜 이러는지 잘 알고 있다.

영웅.

지구를 구한 구원자.

지금 연우 형을 향한 대중들의 찬사. 연우 형은 그것을 미안해하고 있는 거였다.

정작 나는 그런 것 따윈 신경 쓰고 있지도 않은데 말이다.

“그런데 아까부터 뭘 보고 있는 거야?”

“아…. 경치가 좋아서요.”

“그래? 여기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좋긴 하지. 네가 협회장 하면 매일매일 이 풍경을 볼 수….”

“아니요. 안 해요.”

이 형이 어디서 약을 팔려고?

“…쩝.”

아쉬워하는 연우 형을 두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그래도 확실히 멋지기는 하네요.”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정말 멋이 있었다.

황홀할 정도로.

황금색 빛으로 빛나는 찬란한 세상.

처음엔 재벌이 되고자 했었다.

내 목숨을 저울추 위에 올려놓고 무게를 재는 그들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들의 머리 위에 올라서고 싶었었다.

그랬던 것이 어느 순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청심원에서 아이들 몸속을 들락날락하던 황금색 빛을 본 이후부터였는지 아니면 훈민정음 주영본을 세상에 공개한 후부터였는지….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 안의 무언가는 변화하기 시작했고 내 목표 또한 변화했다.

언젠가 계좌에서 썩어가던 돈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난 후 떠올렸던 생각처럼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은 온통 황금빛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따뜻하고 맑은 기운을 뿜어내는 황금색 빛.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몸속에서.

그들이 딛고 있는 대지에서.

나무와 바람과 구름에서.

따뜻하고 맑은 그 빛이 뿜어져 나와 세상을 가득 채웠다.

마치 구해줘서, 이 세계의 멸망을 막아줘서 고맙다는 듯이.

사람들이 보내는 찬사가 아깝지 않냐고?

전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풍경이 내겐 그 어떤 찬사보다 훌륭한 보상이다.

내가 사랑하는,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숨 쉬는 세상.

‘그거면 충분하지.’

정말 그거면 충분했다.

“그나저나 ‘그건’ 어떻게 할 생각이야?”

“그거요?”

“왜 있잖아.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거.”

“아. 이거요?”

연우 형의 말에 나는 인벤토리에서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작은 병 하나를 꺼내 들었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디자인의 용기에 담겨 영롱한 보라색 빛을 내뿜는 포션.

신급 퀘스트 ‘지구를 구하시오.’를 클리어하고 받은 보상.

창조주의 엘릭서였다.

[아이템: 창조주의 엘릭서]

[등급: 신(神)급]

[설명: 전(全) 우주를 창조한 창조주가 만들어낸 엘릭서. 필멸자가 복용 시 불로불사, 무병장수, 만독불침, 한서불침, 금강불괴, 천무지체, 무한의 마나홀의 특성을 모두 얻을 수 있다. 격(格)을 갖춘 존재가 복용 시 신성(神聖)을 얻을 수 있다.]

1조 포인트짜리 아이템.

무려 일곱 개의 개사기급 특성과 신성까지 주는 아이템이지만 지금 내겐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아이템이었다.

내가 격(格)을 갖췄는지도 의문이고 부족한 신성은 미약한 신성의 샘 권능으로 느리지만 확실하게 증가하는 중이니까.

“이건 나중에…. 정말 필요할 때 쓰려고요. 지금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니라서….”

내 말에 연우 형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려다.

“하긴, 이제 지구상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고만고만하니까…. 갑자기 지 주제도 모르는 외계 신이 침공하는 거 아니면 쓸 일이 없긴 하겠다.”

순간, 사무실 내에 기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던 두 영감님은 도끼눈이 되어 연우 형을 노려봤고 나도 조금 어이없는 눈으로 형을 바라봤다.

이 양반은 말이 씨가 된다는 말도 모르나?

“응? 왜? 뭐?”

정말…. 이 형은 눈치가 없는 건지 뇌가 순수한 건지 모르겠다.

대체 어떻게 깨달음을 얻어서 반신급 각성자가 된 거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때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서 영감님이 내게 걸어왔다.

“그래. 자네는 이제 뭘 할 생각인가?”

“음…. 글쎄요….”

재단은 지아가 길드는 해찬이가 알아서 잘 굴리고 있고. 경매장은 기적 형님이 대표이사로 잘 운영하고 있었다.

굳이 내가 끼어들 필요도 없이 완벽하게.

계좌의 돈은 이젠 단위를 세는 게 힘들 정도로 늘어나 있으니 굳이 일해야 할 필요성이 없었다.

그래도 사람이 마냥 놀 수는 없으니….

“…농사나 지어볼까 합니다.”

“음?”

“엥?”

“뭐???”

세 사람의 반응이 찰지다.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놀고 있는 땅도 있으니 그곳에서 농사 좀 지어 보려구요.”

내 인벤토리에 잠자고 있는 대륙급 땅덩어리.

거기에 농사를 지으면 잘되지 않을까?

아프리카 쪽엔 아직도 기아에 허덕이는 나라들이 많다던데 농사를 지어 그곳에 식량을 공급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공간지배로 인공태양도 만들고 기후 같은 것도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으니 잘될 것 같은데?

뭐.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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