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201화 (200/202)

201. 추락 (3).

두 영감님과 원정대를 설득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단지 내게 이 상황을 타개할 계획이 있다는 말 한마디만 필요했을 뿐.

신성과 권능을 지니게 된 사람이 무려 여덟 명이나 되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권능을 발현해 신계의 추락을 막아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걸 그들도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뭐, 연우 형이야 이미 권능 사용에 익숙한 사람이니 알아서 살아남겠지.

연락하기엔 거리도 멀었고.

지금도 떨어져 내리는 신계의 파편을 처리하느라 바쁜 모양인데 굳이 방해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다.

그렇게 홀로 남게 된 신계.

쩌저적.

잘 익은 수박이 쪼개지는 것 같은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지구 중력에 이끌려 붕괴하는 대지는 지금도 수만 개의 균열이 만들어지고 있었고.

신계의 외곽부는 이미 신계에서 떨어져 나가 수천만 개의 조각으로 갈라져 지구를 향해 낙하하고 있었다.

퍼-퍼퍼퍼펑!

지금 연우 형이 처리하고 있는 것들이 바로 그 조각들이고.

“나도 시작해 볼까?”

쿠르르릉.

쪄-적. 쩌저적.

신계의 외곽에서 시작된 균열은 내가 서 있는 중심을 향해 빠르게 번져오고 있었다.

여기서 시간을 더 지체하면 신계가 아니라 수천억 개로 분열된 땅덩어리를 하나하나 인벤토리에 집어넣어야 할 판이었다.

‘동원할 수 있는 건 모두 동원한다.’

어차피 뒤가 없는 상황.

실패하면 지구는 멸망한다.

뭔갈 아끼고 자시고 할 상황이 아니란 소리였다.

25년 만에 찾은 동생 지아. 여전히 친형처럼 나를 챙겨주는 기적 형님. 청심원 어머니와 정혜 누나.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강 회장님. 부족한 길드장을 대신해 길드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해찬이와 길드원들. 나를 지옥의 악마라 부르지만 그만큼 정이 든 연구소 직원들.

내가 아끼고 사랑하며 지켜야 할 모든 이들이 지구에 있었다.

물론, 뇌신일체를 사용한 지금이라면 신계가 지구와 굿바이키스를 하기 전 이들 모두를 구할 수 있다.

아공간 하나 떼어내 그 안으로 모두 피신시키면 될 일이니까.

하지만 그래서 될 일이 아니다.

멸망한 세계에서 우리만 살아남아서 뭘 하겠는가?

신세계의 신이 되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것도 아니고.

따라서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일단 공간지배와 공간창조 권능을 발현하고 아공간 계열 특성을 모조리 사용하면 어찌 되겠지.’

공간지배의 권능을 발현해 붕괴해 떨어져 내리는 신계를 붙들었다.

내가 딛고 있는 대지를 중심으로 거대한 신성의 파동이 번져 나가며 신계를 뒤덮었다.

“크억!!”

푸확-!

순간 둔중한 충격과 함께 코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석가모니에게 여래 신장이라도 맞은 듯한 느낌.

씨발.

하나의 대륙이 지구 중력에 끌려가는 것을 혼자서 막은 샘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도.

“해볼 만한데?”

해볼 만하다고 느껴졌다.

이미 떨어져 나간 땅덩어리들까지 지배할 수는 없었지만, 신계의 본체가 낙하하는 것은 멈춰 세운 셈이니까.

남은 건 이걸 인벤토리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

퍼엉-!

퍼퍼펑!

시리고도 뜨거운 빛이 연신 허공을 누비며 떨어져 내리는 파편들을 터트렸다.

찰나의 순간 터져나간 집채만 한 파편의 개수만 수천 개.

“끝이 없네….”

하지만 낙하하고 있는 파편의 양은 그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어림잡아 수천만 개의 파편이 낙하하고 있는 상황.

도연우는 바쁘게 움직이며 나직하게 한숨을 내뱉었다.

“하…. 이러다 정말 지구 멸망하겠네. 젠장.”

노력한다고 했는데 결과가 참담했기 때문이다.

파편만 막아낸다고 끝날 일이 아니었으니까.

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한눈에 담기지 않는 압도적인 크기를 가진 저것.

실시간으로 수만 개의 파편을 떨어트리고 있는 ‘신계’가 지구에 떨어져 내리면 어떤 일이 펼쳐질지, 도연우는 굳이 말로 내뱉고 싶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신성도 간당간당한 상황.

앞으로 얼마나 이 사태를 유지하며 파편을 막아낼 수 있을지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

“하아….”

도연우가 암담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짙은 한숨을 내쉬던 그때.

우뚝.

지구를 향해 떨어져 내리던 신계가 허공에 멈춰 섰다.

“…에?”

본체에서 분리돼 나오던 파편들까지 모조리 무언가에 붙잡히기라도 한 것처럼 허공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의아하게 그것을 바라보던 도연우는 곧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와아- 이 미친 새끼!!”

신계의 대지 한가운데에서 느껴지는 강대한 존재감.

강현의 기운을 느낀 도연우는 이 기현상이 누구 때문에 일어났는지를 깨달았다.

“이게 된다고? 정말? 이 미친 새끼 대체 얼마나 성장한 거야?!!”

그의 입에선 쉬지 않고 욕설이 터져 나왔지만, 그것은 기쁨에 찬 환호성과 닮아 있었다.

“근데 현아. 이거 이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 거냐?”

그의 물음이 들리기라도 한 걸까?

그의 망막을 한가득 채우고 있던 거대한 대지.

하나의 대륙으로 불려도 무방할 그것이 순식간에 그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어…?”

순간 도연우는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게, 이렇게 쉽게 사라진다고?”

강현이 무언가를 하려 한다는 건 그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쉽게 그 거대한 땅덩어리를 없애버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그때 신계가 사라지고 모습을 드러낸 강현이 무언가 말을 하는 것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어…. 뭐?”

그 목소리가 들리진 않았지만.

“뭘 멍하니 있어요? 나머지도 빨리 처리해야지!”

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새끼…. 나도 놀고 있던 건 아닌데. 거, 너무하네….”

강현을 향해 투덜거리는 도연우의 목소리에는 기쁨이 묻어 나왔다.

지구 멸망을 막아냈다는 기쁨이.

휘오오오오-.

물론, 아직 수천만 개의 똥 덩어리가 지구를 향해 자유낙하를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가장 큰 숙제를 해결했으니까.

번-쩍!

퍼-퍼퍼퍼퍼펑-!

빛의 속도로 터져나가는 파편 덩어리들.

허공을 유영하는 도연우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

죽을 것 같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죽을 것 같다.

공간지배로 ‘신계’를 붙들고 공간창조로 인벤토리의 입구를 넓혔다.

이게 너무 커서 기존의 인벤토리 입구로는 집어넣을 수가 없더라고.

그렇게 한 번에 두 개의 권능을 발현하는 순간, 나는 오랜만에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아내야만 했다.

몸속에 있는 피란 피는 모조리 빠져나가는 느낌이랄까?

정신이 몽롱해지고 찰나였지만 내가 누군지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도 망각할 정도였다.

그 짧다면 짧은 일련의 과정 동안 내가 지니고 있던 신성 스탯이 거의 모두 소모됐다.

그래도 신도 아닌 놈이 권능을 두 개나 한꺼번에 발현했는데 이 정도 부작용이면 선방한 게 맞는 것 같았다.

‘남은 신성은 100 정도이려나?’

솔직히 아깝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지구 멸망급 재앙을 막아냈으니 남는 장사였다.

분명 남는 장산데….

‘왜 퀘스트 완료가 안 되지?’

특수 퀘스트 지구를 구하시오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라는 것.

시선을 돌려 주변을 훑었다.

‘설마 저것들까지 다 치워야 한다는 거야?’

신계에서 떨어져 나온 부스러기들.

신계라는 ‘빅 똥’에 가려져 존재감이 약했던 수천만 개는 될 법한 유성들이 새카만 열기를 꼬리에 달고 자유낙하를 하며 ‘나 여기 있어요.’하고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긴, 저것들이 모조리 지구와 키스를 하면 그것도 재앙이긴 하겠다.’

한마디로 재앙은 현재진행형이란 뜻이었다.

‘신성력도 간당간당한데…. 저것들은 무슨 수로 치우지?’

저 아래에서 연우 형이 분전하고 있지만 모든 유성을 막아낸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연우 형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형은 아직 권능 사용이 나보다 미숙하다.

아직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느낌이랄까?

‘저걸 저렇게 펼치니까 느리지….’

빛이라는 힘을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아직 근접 전투를 했던 습관이 남아 있어 꼭 직접 다가가서 타격으로 깨부순다.

그러니 속도가 나지 않을 수밖에.

‘권능을 사용하긴 힘들 것 같고….’

신성 스탯이 바닥이니 당장 권능을 발현할 수는 없었다.

‘믿을 만한 건 뇌신일체뿐인가?’

생각을 정리한 나는 뇌기를 끌어올렸다.

빠지지지직-!

순간 방전이 일어나며 허공에 스파크가 튀었다.

나는 그렇게 튀어 오른 스파크 하나하나에 의념을 실었다.

뇌신일체(雷身一體).

직역하면 뇌전과 몸이 하나라는 뜻이었다.

그 뜻 그대로 뇌전을 내 몸처럼 사용할 수 있고, 내 몸을 뇌전으로 분화할 수 있다.

그리고 난 지금껏 그렇게 뇌신일체를 사용해 왔다.

뇌기를 끌어올리자 주변에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꽈르르르릉.

‘더.’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이 정도 힘으론 저 똥 부스러기들을 한번에 치울 수 없다.

‘내가 번개고 번개가 나다….’

두 번뿐이지만 전뢰화 권능을 사용해본 적이 있어서일까?

감각을 끌어올리고 활성화된 뇌기의 양이 늘어날수록 주변에서 느껴지는 것들이 더욱 선명해졌다.

방전되는 전류 하나하나가 나의 신경세포가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더….’

그렇게 끌어올린 뇌기를 두 손 사이에 응축하고 응축했다.

죽음의 권능을 발현할 신성 스탯이 없어 원래의 푸르름을 되찾은 뇌기가 압축되고 압축되다가 떠질 것처럼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지이이이이---잉.

미약한 전자기적 공명음이 허공을 울리고.

‘지금!’

나는 응축했던 뇌기를 아래로 흩뿌렸다.

쩌-저-저-저----적!

내 손을 떠난 뇌기가 싹을 틔우고 가지를 뻗었다.

마치 전뢰수(電雷樹) 라그라주처럼.

뇌신 울티아의 정원에서 자란다는 라그라주.

순간, 작은 씨앗에서 자라난 낙뢰의 나무가 수천만 개의 가지를 만들어내며 하늘을 뒤덮었고.

나는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꽈-------!!!

뒤이어 거대한 천둥이 터져 나왔지만, 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단지 온몸을 뒤흔드는 충격파가 느껴졌을 뿐.

그리고 그 순간 나는 한 차원 높은 세계로 도약하고 있었다.

거대한 번개의 기둥에서 뻗어 나온 수천만 개의 가지.

그 작은 가지 하나하나가 모두 나였다.

그 말은.

‘터트려버려.’

그 모든 것을 내 손처럼 움직일 수 있다는 의미였다.

펑.

작은 폭음을 시작으로.

퍼-퍼-퍼-퍼-퍼-------!!

크고 작은 폭발음이 연쇄적으로 울리며 하늘은 천둥소리와 폭음으로 가득 채워졌다.

“끄아악! 야 이 미친놈아! 미리 말이라도 하던가아아아아---.”

…중간에 얼핏 사람의 비명이 섞인 것 같았지만.

뭐, 기분 탓이겠지.

영겁의 시간처럼 느리게 흘러가던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끝났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나는 시선을 내려 아래를 내려다봤다.

희뿌연 분진으로 뒤덮인 하늘.

자질구레한 유성 몇 개가 여전히 낙하하고 있었지만,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던 대부분의 유성들은 모두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당분간 분진 때문에 골머리를 앓겠지만, 멸망을 피한 게 어딘가?

띠링.

맑은 종소리가 울리며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특수 퀘스트: 지구를 구하시오’가 완료되었습니다. 퀘스트창을 열어 보상을 수령하세요.

“끝났구나….”

그 메시지를 확인하자 온몸에 힘이 빠졌다.

내 몸은 신계를 인벤토리에 집어넣는 순간부터 한계에 달해 있던 상태.

거기에 무리해서 낙하하던 유성들마저 처리해야 했으니 지금 내 상태가 정상일 리 없었다.

‘다행…이다…….’

그렇게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나는 안도감에 정신을 놓아 버렸고.

휘이이잉-.

지구를 향해 자유낙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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