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추락 (2).
같은 시각.
이변을 깨달은 것은 강현만이 아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강대한 신성으로 원정대를 압살하고 있던 백오도.
그런 백오의 손속에서 치명상만을 피하며 아귀처럼 달려들던 원정대도.
모두 움직임을 멈춘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거…. 태양인가?”
“…별?”
새하얀 하늘 위로 갑작스럽게 생겨난 태양과 별.
두웅-.
드드드드드.
그리고 둔중한 울림과 함께 진동하는 신계.
우주를 올려다보던 백오는 조금 전 사라져 버린 에리아의 존재감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하-. 혼자 죽지는 않겠다는 거냐. 에리아?”
백오는 현 상황을 이해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신과 필멸자들 간의 싸움.
자신의 승리 시 에리아의 소멸은 기정사실이고 반대로 필멸자들이 승리해도 그녀가 살아남을 확률은 현저히 낮았다.
놀랍게도 필멸자들은 아홉 개의 권능과 강대한 신성을 가진 자신을 상대로도 아무도 죽지 않고 버티고 있었으니까.
그중 자신도 얼굴을 알고 있는 도연우라는 놈과 두 늙은것은 버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따금 자신을 향해 섬찟한 일격을 쏘아 보내기도 했다.
공간의 신인 에리아는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을 터.
그리고 한 가지 결론을 내렸을 거다.
아주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존재인 신(神)답게 공멸(共滅)이란 결론을.
“빌어먹을 년. 자기가 가지지 못하면 아무도 갖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거군….”
아차원의 공간에 존재해야 할 신계를 소환해 지구로 추락시킨다.
공간의 신이기에 떠올릴 수 있는 방법.
덕분에 시스템 권역 안으로 들어와 버린 백오는 실시간으로 권능과 신성을 제약당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살아남는 건 힘들게 됐군.’
생존을 위해 동료들의 뒤통수를 쳤지만 결국 백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소멸이었다.
“쩝.”
그가 입맛을 다시고 있을 때였다.
번-쩍!!
한 줄기 섬광이 번뜩이며 날아와.
서걱!
습관처럼 그것을 막기 위해 들어 올린 백오의 팔을 잘라냈다.
“큭!!”
원정대 최초로 백오의 몸에 상처를 남기는 순간.
백오의 팔을 잘라낸 서태촌이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이게 뭐 하는 짓거리냐. 이 빌어먹을 신아.”
서태촌도 본 것이다.
붕괴하는 신계의 대지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푸른 별.
신계가 붕괴하며 추락하고 있고 그 아래엔 지구가 있다는 것을.
신계의 크기는 호주대륙을 상회할 정도로 거대했다.
이것이 지구 위로 떨어져 내린다면 남은 것은 종말(終末).
지구의 마도 과학 기술을 총동원한다 해도 대륙 크기의 운석이 낙하하는 것을 막아 낼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원정대의 분노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죽여.”
상황을 인지한 누군가가 나직하게 읊조리자 원정대원들은 광기가 일렁이는 붉은 눈을 빛내며 백오를 노려봤다.
“죽여어어어---!!!”
괴성과 같은 외침이 울려 퍼지고, 순간 수십 개의 스킬이 백오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이곳이 시스템의 간섭을 받지 않는 아차원 공간이었다면 손짓 몇 번으로 막아 낼 수 있는 공격.
“하. 씨발….”
하지만 이미 시스템에 의해 제약당한 백오의 육체는 그 모든 공격을 막아낼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퍼퍼퍽!
서거거거걱!
팔다리가 터지고 육신이 갈가리 찢겨나갔다.
“쿠, 쿨럭.”
밭은기침과 함께 핏물이 분수처럼 허공을 향해 솟구쳤다.
털썩.
순식간에 고깃덩어리로 변해버린 백오의 육신이, 권능을 잃고 무너져 내리는 신계의 대지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런 백오의 앞.
시퍼런 예기가 번뜩이는 환두대도를 손에 쥔 서태촌이 그를 내려다봤다.
“나, 난. 그저…사, 살고…….”
서걱!
들어줄 리 없는 유언을 남기던 백오의 목이 서태촌의 칼에 잘려나가고.
“유언은 지옥에나 가서 남기거라.”
데구루루.
퍼석.
생을 잃은 백오의 육신이 먼지 더미처럼 부서지며 무너져 내렸다.
“그곳에 네 유언을 들어줄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수천만 년을 신으로 살아왔고, 마지막까지 생을 갈구했던 무신 백오.
그의 허망한 최후였다.
샤아아아.
먼지 더미로 화한 백오의 육신에서 떠오른 아홉 개의 빛 덩어리가 원정대의 사이로 파고들었다.
서태촌, 구정철, 도연우, 아서 게일, 저스티나 로셀, 호세 카를로스…….
원정대의 중심이라 불리는 이들이 신성과 권능을 얻어 신으로 향하는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빛 덩어리를 흡수한 이들은 찰나에 불과한 그 순간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깨달았다.
인류의 적이었던 반신.
그들이 가지고 있던 권능과 신성이 자신들에게 전해졌다는 것도.
“…….”
“…….”
하지만 환호성은 없었다.
신이 되면 뭘 하겠는가?
지구가 멸망해 사라질 판인데.
모두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지구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일단 뭐라도 해보죠.”
도연우가 신성으로 이루어진 빛을 온몸으로 뿜어내며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낙하하고 있는 파편들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신성을 뿜어내며 허공을 유영하는 도연우.
퍼퍼퍼퍼펑!
그의 신성에 닿은 대지의 파편들이 잘게 분쇄되며 허공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도연우 혼자 감당하기엔 떨어져 내리는 파편의 수가 너무 많았다.
“우리도 움직이도록 하지.”
대륙 크기의 운석이 낙하하는 우주 재해급 재앙.
“일단 잘게 쪼개보도록 하지. 서가야 칼질 좀 해봐라.”
어찌 보면 지구 멸망은 기정사실이 된 상황이지만 원정대의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포기하면 남은 것은 멸망밖에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번-쩍!
후웅-.
콰가가가가각!!!
서태촌의 멸천세가 지름 100m는 넘을 듯한 거대한 파편을 분쇄하고 이어 구정철의 풍신퇴가 그것을 잘게 가루로 만들었다.
다른 이들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허공으로 몸을 날린 이들이 스킬을 뿜어내며 떨어져 내리는 다른 파편들을 요격했다.
콰앙!
퍼버벙!!
절망적인 상황임에도 이들은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 순간.
쩌저저적-!
한 줄기 뇌전이 바닥에서 솟구쳐 올랐다.
우르르릉.
뒤이어 울리는 천둥소리.
“모두 멈추세요!!”
에리아의 신지를 빠져나온 강현이었다.
***
호주대륙.
밤도 아닌데 때아닌 어둠이 나타나 주변을 집어삼켰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어둠에 놀란 것도 잠시.
“저게…. 뭐야?”
하늘을 올려다본 이들은 전투 상황인 것도 잊은 채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그 소요사태는 수십만의 정벌군과 그들을 에워싸고 있던 수십억의 몬스터 사이에서 동시에 벌어졌다.
괴성과 비명, 폭발음과 고함으로 가득했던 전장에 침묵이 찾아왔다.
그리고 잠시 후.
휘이이이잉-.
콰앙!!
붉게 달궈진 돌덩어리 하나가 긴 연기를 꼬리처럼 매달고 전장의 한복판에 떨어져 내렸다.
축구공만 한 크기의 물체가 떨어지며 만들어낸 크레이터.
그곳에 자리하고 있던 몬스터들은 곤죽이 되어 죽음을 맞이한 상태였다.
몬스터와 인간. 종족을 불문하고 그 광경을 목격한 이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같았다.
‘아. X 됐구나.’
긴 꼬리를 남기고 낙하하는 수천만 개의 유성, 그리고 그 뒤에 자리한 거대한 무언가.
“저거…. 지금 떨어지는 거지?”
그것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그들을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고.
그것을 확인한 순간 항거할 수 없는 공포와 절망이 순식간에 호주대륙에 있던 모든 생명체를 침습해 들어왔다.
후우우웅-쾅!!
쏟아져 내리는 운석의 비와.
키에에엑!
크롸롸롸롸!
혼란에 빠져 무차별적인 공격을 시작한 몬스터 무리.
압도적인 절망을 마주한 정벌군은 탄식조차 내뱉지 못한 채 패닉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모두가 절망한 것은 아니었다.
“전 정벌군에게 명령한다! 속히 전함으로 귀환하라! 다시 한번 전달한다. 전 정벌군은 지금 즉시 전함으로 귀환하라!!”
귓가를 울리는 귀환 명령과 함께 전함의 함포들이 포격의 방향을 바꿨다.
퓨퓨퓨퓽-!!!!
60대의 우주 전함에서 초당 수천 발의 마나 레이저가 하늘을 향해 쏘아지며 떨어지는 운석들을 하나하나 요격하기 시작했다.
물론, 하늘을 가득 메운 수천만 개의 운석 모두를 요격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함대와 정벌군이 몬스터와 대치 중인 영역만큼은 방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구 대기를 뚫고 떨어져 내리는 운석이 향한 곳이 호주뿐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
에리아가 소멸하고 신계가 붕괴하며 지구를 향한 낙하를 시작한 그 시점.
“이런…. 미친…….”
띠링.
나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고 있는 와중 맑은 종소리와 함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특수 퀘스트: 지구를 구하시오]
[등급: 신(神)]
[내용: 영락한 ‘공간의 신 에리아’ 그녀는 최후의 최후까지 신다운 선택을 해, 지구 인류에게 ‘빅 똥’을 선사했습니다. 그녀의 선택은 공멸(共滅). 신계를 지구 대기권 근처에 소환해 낙하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과 동료들의 뒤통수를 때린 무신 백오와 자신의 계획을 망가트린 지구 행성의 생명체들이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진정한 헬피엔딩이죠. 에리아가 싸지른 빅 똥을 치우고 지구 인류를 구원하세요.]
[보상: 창조주의 엘릭서.]
[실패 시: 지구 멸망.]
*해당 퀘스트는 강제 퀘스트입니다.
시스템이 쐐기를 박았다.
이것을 막지 못하면 지구가 멸망한다고.
설마 싶었던 일이 현실로 다가오자 정말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살아 나오기는 개뿔.
“이걸 내가 무슨 수로 막아?”
지름 수천 킬로미터짜리 땅덩어리가 떨어져 내리는데 내가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다고 이걸 막는단 말인가?
나는 일단 무너져 내리려는 멘탈을 수습하기 위해 눈을 감고 심호홉을 했다.
흐흡, 후우-.
잠시 후.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되는 것을 느낀 나는 감았던 눈을 뜨곤 다시 한번 암담함을 느껴야 했다.
뇌신일체로 인해 느려진 시간 속.
긴 연기를 꼬리처럼 휘날리며 떨어져 내리는 수천 개의 유성우.
이게 지금 당장은 수천 개지만 잠시만 시간이 지나도 수만 개가 될 것이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수천만 개가 될 것이다.
‘그보다 문제는 신계 그 자체지.’
거대한 질량을 가진 수천 킬로미터짜리 땅덩어리가 지구 대기를 파고드는 순간 지구상엔 어떤 재앙이 일어날까?
압도적인 질량에 눌린 공기가 주변으로 터져나가며 거대한 폭풍을 만들 것이고 그 뒤를 이어 해일과 지진이 지구를 뒤흔들 것이다.
그냥 단편적으로 떠올린 것만 이 정도다.
충돌 후 발생하는 충격파와 먼지구름, 열기 폭풍 따위는 집어넣지 않았다.
그때쯤이면 지구상에 살아있는 인류는 0.1%도 되지 않을 테니까.
“방법을 생각해야 해. 방법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쥐어 짜봐도 선뜻 떠오르는 방법이 없었다.
에리아의 권능?
내가 흡수한 에리아의 권능은 공간창조에 가까운 권능이었다.
신계를 만들고 던전을 만들어 지구를 침공한 것 모두 에리아의 권능이 기반이었다.
숙련조차 되지 않아 자유로운 발현이 불가능할뿐더러 그 권능이 지금 상황에 도움이 될지 알 수 없었다.
공간지배?
에리아의 권능보단 가능성이 크지만, 이것도 패스.
왜냐고?
에리아에게 사망 선고 권능을 사용해 날려버린 신성 스탯이 있었을 때라면 모르지만 겨우 5만 정도 남은 스탯으론 신계 전체에 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다.
“하…. 씨발. 이걸 어디 주머니 같은 데 집어넣을 수도 없고.”
답답함에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나는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집어넣어? 이 커다란 걸?”
예전이었다면 미친 소리라며 흘려넘겼을 생각.
하지만 지금이라면 왠지 가능할 것도 같았다.
“될 것…같은데?”
신계의 넓이는 하나의 대륙을 방불케 할 정도로 거대하다.
그리고 그것은 SSS급 던전도 마찬가지다.
처음 포식을 했던 미루의 던전을 비롯해 내가 흡수한 열 개의 SSS급 던전 모두가 하나의 대륙과 비슷한 넓이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부피와 넓이가 다르다는 기초적인 상식은 나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신계를 내 인벤토리에 집어넣는 게 가능할 것 같았다.
‘해보자.’
결정을 내린 나는 무너져가는 에리아의 신지를 박차고 위로 솟구쳤다.
신계를 인벤토리에 집어넣기 전에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쩌저저적-!
우르르릉.
그렇게 돌아온 전장.
떨어져 내리는 파편을 요격하기 위해 흩어지려는 원정대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다급한 마음에 소리쳤다.
“모두 멈추세요!!”
이들을 모두 피신시켜야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