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 복수의 계절 (3).
광활한 호주 대륙의 하늘 위로 60대의 우주 전함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이 만들어낸,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병기가 하늘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케레레렉!!
크롸롸롸---!!
호주 상공을 비행하던 비행 몬스터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리폰, 와이번, 드레이크, 가고일.
원래대로라면 한자리에 있을 수 없는 하늘의 주인들.
종을 불문한 수천만 마리의 몬스터들이 환영 인사를 시작하자. 함대에서도 축포를 쏘아 올리기 시작했다.
피 융-.
사람 팔뚝만큼 굵고 긴 선홍색 선들이 하늘을 수놓았고.
꽈 웅-!
퍼버버벙!
몬스터들이 토해내는 스킬과 전함에서 쏘아 내는 마나 레이저가 허공에서 부딪치며 폭죽처럼 터져나갔다.
인류의 독립을 위한 마지막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전함과 공중 몬스터들의 전투가 시작된 시각.
나는 개인실에 앉아 상태창을 열어 마지막 정비를 시작했다.
이름: 강현
종족: 인간
직업: 해피니스 청소부
[칭호]
하지 말라는 건 꼭 하는.
인필리언의 구원자.
레벨: 5041
[스탯]
힘:30125 민첩:30457 체력:31574
마력:33590 내구:30047 지혜:30145
[특수 스탯]
뇌기:99999(MAX)
신성:99999(MAX)
*해당 스탯은 스탯 포인트를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보유 스탯 포인트: 0
[권능]
사망 선고 → 죽음(NEW)
미약한 신성의 샘
공간 지배(NEW)
[특성]
아공간 청소부 EX(LV3)
공간시 EX (LV7)
아공간 조작 EX (LV9)
모태 솔로 EX (LV3)
공간의 미학 EX (LV3)
금강 EX (LV MAX)
[스킬]
언어의 마술사 SS (LV9)
작은 마력의 샘 SSS (LV3)
금식충 EX (LV6)
뇌신일체 EX (LV MAX)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나도 참 많이 컸네.’
5천이 넘은 레벨과 3만이 훌쩍 넘은 스탯들.
리퍼를 소멸시키고 얻은 온전한 죽음의 권능과 업적 포인트를 탈탈 털어 카탈로그에서 구매한 공간 지배의 권능.
특수 스탯인 뇌기와 신성은 99999를 찍어 더 올릴 수도 없었고 특성들도 모두 EX급을 찍었다.
그에 비해 자주 사용하지 않는 스킬을 EX급을 찍지 못한 게 아쉽긴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거고.
각성하고 1년 3개월.
그간 내가 흘린 땀과 피, 그 모든 것의 결과가 일목요연하게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아득바득 밑바닥을 굴렀는데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불과 1년 3개월 전엔 던전 청소부에 불과했던 내가 이젠 지구를 침략한 신들과의 대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것도 가장 선두에서.
‘판타지 소설도 이렇게 쓰면 욕먹겠네.’
그 짧은 시간에 이만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누가 뭐래도 시스템 덕분이었다.
‘원해서 받은 건 아니지만 인정할 건 해야지.’
지구의 관리자, 울티아가 뭣 때문에 나를 시스템 사용자로 지정했는지는 모른다.
불친절한 시스템과 개떡 같은 퀘스트 때문에 욕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다.
상태창을 보며 생각을 정리하던 나는 인벤토리에서 두 개의 아이템을 꺼냈다.
디뷰에이프와 케이돈.
하나는 신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신살 병기이며 다른 하나는 아공간 포식과 아공간 변환 스킬을 옵션으로 달고 있는 아이템이다.
‘이것들을 어떻게 한다….’
그리고 난 지금 이 두 개의 아이템을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아이템으로 사용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때 지금처럼 인벤토리에서 꺼내서 착용해야 한다면 문제가 있었다.
케이돈이야 항상 손목에 착용하고 있지만, 변형에 시간이 걸렸고 디뷰에이프는 착용하는 순간부터 신성력을 소모하는 물건이니 입고 다닐 게 아니라면 인벤토리에 넣어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정작 급한 순간에 착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어.’
반신이라지만 신은 신.
그들이 발현한 신속은 전뢰화의 권능으로 느려진 시간 속에 머물던 나와 비슷한 속도를 가진다는 사실을 이미 리퍼를 상대하며 확인했다.
‘뇌신일체로 놈을 따라잡지 못했었지.’
던전 안에서 리퍼가 도주했을 때, 본의 아니게 도주를 허용했던 건 뇌신일체로는 놈의 도주를 막을 속도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뇌신일체는 전뢰화 권능이 아니니까.
일견 비슷해 보인지만 스킬과 권능의 출력이 다른 걸 어쩌겠나.
한마디로 디뷰에이프를 입기 전에 끔살을 당할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
‘먹자.’
그래서 결정했다.
디뷰에이프와 케이돈을 금식충 스킬로 흡수하기로.
“스킬 사용. 금식충.”
-스킬: 금식충 EX (LV6)가 사용됩니다. 아이템: 디뷰에이프를 흡수합니다.
어차피 신들과의 전쟁이 끝나면 사용할 일이 없을지도 모르는 아이템.
난 이번 전쟁에 모든 걸 걸었다.
***
수천만 마리의 공중 몬스터가 앞을 막아섰지만, 함대는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갔다.
그렇게 도착한 백색의 신전.
대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찬 몬스터들 사이로 순백의 신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꿀꺽.
이해찬은 알파 원을 착용한 채 지상을 내려다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핑- 피피핑-!
퍼퍼퍼펑!
60대의 전함이 매초 수천 발의 마나 레이저를 쏘아 내며 지상을 포격했지만, 포격에 비워진 대지는 다시 몰려온 몬스터들에 의해 메꿔졌다.
수억. 어쩌면 수십억.
수백 수천 종의 몬스터들이 등급을 불문하고 전함을 노려보며 적의를 드러내며 울부짖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어느 순간 사라져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재해급 몬스터들이 있었다.
그 중심에 있는 순백의 신전.
그냥 마나 포격으로 신전을 날려버리면 될 듯했지만, 투명한 보호막으로 둘러싸인 순백의 신전은 마나 레이저를 맞고도 멀쩡했다.
지금도 포격 일부는 그쪽으로 향하고 있지만,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저기로 뛰어내려야 한단 말이지?’
그런 광경을 두 눈으로 보고 있으니 이해찬이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당장은 전함이 착륙할 수 없다.
아니, 착륙은 할 수 있지만, 저 몬스터 떼에 휩싸이면 장담컨대 두 번 다시 떠오르지 못한다.
그렇기에 정벌함대가 택한 방법은 강하 작전.
알파 원을 착용한 전투 부대가 강하해 신전까지의 통로를 뚫는다.
그리고 신전과 가장 가까운 곳에 함대가 착륙할 만한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물론 공중에서도 함대의 지원사격이 있을 테지만 위험하기 그지없는 작전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강현이 각국 영토 안에 있는 던전을 모두 정리해준 덕에 정예병력을 끌고 올 수 있었다는 것 정도다.
대한민국도 10대 길드가 모두 참여했고.
이해찬이 부 길드장으로 있는 즈믄나래 길드에서도 100명이 이번 전쟁에 참여했다.
경쟁자들이 많았지만, 강현이 길드장으로 있는 길드이기에 무리 없이 참여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이 전쟁을 독립전쟁이라 칭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성전(聖戰)이라 칭했다.
그만큼 이 전쟁에 참여하고자 하는 이들은 많았고 경쟁률은 수천 대 일을 뛰어넘었다.
승리하기만 한다면 전 세계 역사에 이름이 새겨질 테니까.
이해찬도 다르지 않았다.
물론 실제로 수십억은 될 법한 몬스터 무리를 보자 마른침이 넘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후우-. 긴장하지 말자. 잘할 수 있어.’
이해찬이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고 있을 때였다.
에엥-!
요란한 사이렌이 울리며 강하 시그널에 불이 들어왔다.
시그널을 확인한 이해찬이 뒤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모두 훈련했던 거 잊지 않으셨죠?”
““네!!!””
강현 덕분에 알파 원을 그 어떤 길드보다 먼저 지급받았고 실제 사용 기간만 해도 삼 개월이 넘었다.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상태란 뜻이었다.
몬스터 떼를 보고 긴장한 사람들이 몇몇 보이긴 했지만, 대부분은 묘한 열기를 띤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긴장하지 마시고. 강하할 때 공중 몬스터 조심하시고. 지상에서 봅시다.”
““네!!”.”
“강하!”
““강하!!!””
그 말을 끝으로 허공으로 몸을 던지는 이해찬과 길드원들.
그들 앞으론 벌써 강하를 시작해 몬스터의 바다에 몸을 던지고 있는 수만 명의 각성자가 있었다.
그렇게 훗날 최후의 전쟁이라고 불릴 전쟁이 시작됐다.
***
“시작됐네….”
다시 회의실에 모인 신계 원정대.
연우 형은 전면에 떠 있는 홀로그램 화면을 보며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
“왜요? 신경 쓰이세요?”
“조금. 솔직히 여기 있는 인원들만 있어도 신전까지 길을 뚫는 게 어려운 건 아니니까.”
연우 형의 말은 사실이었다.
여기 있는 인원 정도면 신전으로 진입하는 건 큰 문제도 아니었다.
고작 100여 명이지만 말 그대로 전 세계 각국의 내놓으라 하는 강자들이니까.
하지만 각국 정부의 수장들이 왜 이런 방식을 택했는지 이해가 됐다.
“전 그래도 이게 맞는다고 생각되네요.”
“왜? 불필요한 피가 흐를 수도 있는 일이야. 희생자가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고.”
난 잠시 생각을 정리한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때로는 피를 흘리고 얻어야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게 있죠.”
“음…?”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연우 형.
“우리나라만 봐도 그렇잖아요. 우리 힘으로 독립을 하지 못하다 보니 해방 이후에 어마어마한 피를 흘려야 했잖아요.”
1940년 우리나라는 던전과 몬스터가 나타나는 통에 얼떨결에 독립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당시 서구 열강에 식민지배를 당하고 있던 나라들은 다 그런 식으로 독립을 하게 됐다.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얼떨결에 맞이한 독립은 수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사상과 이념. 민족주의. 친일파 청산. 재한 일본인 등.
1940년부터 거의 10년은 한반도가 피로 물들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배웠다.
“아마 각국 정부 수장들은 이번 전쟁이 끝난 후를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제야 연우 형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 빌어먹을 신들을 물리친 후. 그때 흐를 피를 줄이기 위해 지금 피를 흘려야 한다는 거지?”
몬스터가 가로막고 있던 경계가 사라지고 교류가 시작됐다.
여전히 사상과 이념, 민족과 종교가 다른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트러블이 없을 수가 없다.
누군가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 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때의 원한을 갚으려 할 것이다.
제국주의와 패권주의가 부활해 세계를 전쟁의 수렁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나는 각국 정부의 수장들이 그때를 대비해 이번 전쟁을 기획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렇게 해서 나중에 흘릴 피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겠다는 생각인 것 같은데…. 그게 잘 될지는 모르겠네.’
나는 조금 회의적이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
고작 한번 같이 싸웠다고 해서 전우애 같은 게 생길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홀로그램 화면을 통해 전황을 살피길 얼마나 지났을까?
“우리도 슬슬 준비해야겠구먼.”
구 영감님을 필두로 전황을 살피던 이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강하한 전투 부대는 신전 주위에 포진해 있던 몬스터들을 밀어내 공간을 확보하고 있었다.
수십 만의 사람들이 수십억의 몬스터 한가운데에 인의 장막으로 만든 거대한 공간.
그곳을 향해 전함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것은 신전으로 돌입해 그곳에 있는 코어를 통해 신계로 건너가는 것,
남은 이들은 이곳에서 전함과 함께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원정대가 신계에서 돌아올 때까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기약 없는 기다림.
그것이 저들에게 희망이 될까? 절망이 될까?
모르겠다.
저벅.
그런 것을 신경 쓸 만한 여유가 없었다.
이젠 나의 싸움을 시작할 차례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