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195화 (194/202)

195. 복수의 계절 (1).

-레벨업.

-레벨업.

-레벨업.

-…….

눈이 따라가기 힘든 속도로 올라가는 레벨업 메시지.

-전투 보상으로 보너스 스탯 포인트 5와 랜덤 룰렛 이용권 1매가 지급됩니다.

-전투 보상으로…….

-…….

거기에 간간이 올라가는 보상 지급 메시지와.

-특별한 업적….

-경이로운 업적….

-전설적인 업적….

-신화적인 업적….

업적 메시지까지 더해지자 메시지창은 말 그대로 혼란의 도가니탕이 되었다.

‘아으. 눈 아파. 이건 나중에 확인해야겠다.’

그렇게 시스템 창을 끄고 시선을 돌리니 미루가 죽었던 자리에 떠오른 던전 코어를 살피고 있는 연우 형이 보였다.

“와…. 이거 크기가 장난 아니네. SSS급 던전 코어라 그런가?”

일반적인 던전 코어가 어린아이 머리만 한 크기라면 지금 앞에 있는 던전 코어는 거의 중형차만 한 크기를 자랑했다.

그걸 본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걱정이 됐다.

일단 던전에선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지만, 저 거대한 것을 분석할 생각을 하니 벌써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래. 시련은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고 했어. 일단 심호홉부터….’

하지만 어쩌겠는가? SSS급 던전을 포식하는 게 원래 목적이었던 것을.

-특성: 공간의 미학 SSS (LV2) 가 발현됩니다.

-특성: 공간시 SS (LV3) 가 발현 중입니다.

-공간의 미학과 공간시가 시너지를 일으킵니다.

세상이 이지러지며 수많은 점과 선 그리고 도형들이 서로 연결되어 만들어진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X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SSS급 던전이라 그런지 그 정보가 더욱 복잡하고 방대했다.

잡생각을 할 시간 따윈 없었다.

시간을 지체하면 정말 뇌가 녹아내릴 것 같았으니까.

푸확-!

주르륵.

코피를 한 바가지 쏟으며 공간을 분석을 마친 나는 재빨리 던전 포식 스킬을 사용해 SSS급 던전을 포식한 후 그대로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현아! 괜찮아?!”

리퍼와 싸우는 것보다 공간을 분석하는 게 더 힘든 걸 보면 역시 내겐 머리 쓰는 일보다 몸 쓰는 일이 적성에 맞지 싶었다.

“현아 정신 차려! 현아!”

연우 형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지만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이제, 지구상의 모든 던전은 다 내꺼다.’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SSS급 던전 공략에 성공하고 돌아온 후.

마도 위성으로 던전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각국 정부에선 즉각 우리나라에 특사를 파견해 왔다.

그들이 원하는 건 당연히 던전의 소멸이었고 덕분에 난 매우 바빠졌다.

그게 내가 원하던 것이기도 해서 난 그들의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가장 먼저 우리나라 안에 있는 던전들을 모두 포식했다.

당연히 반발이 있었고 그에 대해 정부는 대안을 제시했다.

만주, 시베리아, 전 세계에 퍼져있는 수많은 몬스터 필드.

그곳으로 향하는 워프 게이트를 설치해 적어도 헌터들의 밥줄이 끊기지 않게 만들어 준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헌터들은 대한민국 국토에서 던전을 소멸시키는 것에 찬성했다.

그들도 비 각성자인 가족이 있고 지인과 친구들이 있었으니까.

그것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이나 캐나다같이 영토 안에 몬스터 필드가 있는 나라들은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의 던전들을 우선 정리해주기를 바랐고 나는 그들의 요구사항대로 던전을 정리해줬다.

도움을 요청한 국가 중에 예외는 없었다.

욱일회의 배후로 지목돼 국제적으로 한차례 홍역을 치렀던 일본도, 우리나라로 핵미사일을 발사해 핵전쟁의 위기를 만들어냈던 중국도 예외 없이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좀 내키지 않았다.

원수와 다름없는 놈들이니, 몇쯤은 죽어도 된다는 생각도 있었고.

하지만 대통령이 나를 불러 직접 부탁하는 걸 거부할 수는 없었다.

‘강현 씨. 교단과 신이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있는 지금, 우리는 인류 화합이라는 기치를 걸고 하나가 되어야 할 때입니다. 인종과 종교, 민족과 이념적 갈등은 잠시 접어두어야 할 때이죠. 부디 인류의 생존을 위해 대승적인 결단을 내려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러면서 고개를 꾸뻑 숙이는데, 아버지뻘 되는 사람이 그렇게 저자세로 나오니 차마 매몰차게 거절할 수 없었다.

유교 보이의 DNA는 어쩔 수 없는 거겠지.

그런 대통령을 보고 조금 놀라기도 했다.

한나라의 수장이 각성자라곤 하지만 일개 개인에게 고개 숙이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알겠습니다.’

그렇게 내 세계 일주는 결정됐고, 우리 국토 안에 있는 던전을 정리한 후, 중국과 일본을 시작으로 전 세계를 누볐다.

본진을 비우고 나가는 거라 조금 걱정이 되긴 했는데 연우 형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어 줘서 조금 안심이 됐다.

SSS급 던전을 클리어한 지 3개월이 지났다.

내가 전 세계를 유랑하는 동안 각국 정부도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군사 강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을 필두로 샤이닝 세이버를 베이스로 제작된 우주 전함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전장 500m 전폭 80m 전고 30m의 거대한 우주 전함.

각 국가의 특색에 맞게 전함의 색깔은 달랐지만, 그 형태는 모두 같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우주 전함이 모두 50대. 아직 제작 중인 것까지 합하면 물경 60대의 우주 전함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원래라면 구름 가오리에 의해 장마가 시작돼야 했을 7월이 왔다.

꽃 피던 봄이 가고 뜨거운 여름 햇살이 대지를 달굴 무렵.

뜨거워진 기온만큼이나 전쟁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

“일단, 열 개의 SSS급 던전은 정리된 거네?”

연우 형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그나저나 이 양반이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

“형. 마왕 잡겠다고 바쁜 것 아니었어요?”

토플란 시스템의 최종 보스.

신급 몬스터, 마왕 이큘리스를 잡겠다고 시스템 안에서 나오지도 않던 양반이 웬일로 무거운 궁둥이를 들고 여기까지 온 건지 모르겠다.

“긍야. 니강 겅정됭서 왔징.”

아니, 와준 건 고마운데 그만 먹으라고 이 양반아. 내 동생이 나 먹으라고 싸준 도시락이 왜 형 입으로 들어가는 겁니까? 예?

탁. 타탁!

나는 다시 도시락으로 향하는 연우 형의 젓가락을 필사적으로 막으며 물었다.

“아니, 여기 도시락 먹으러 왔어요? 뭔 말을 알아듣게 해주고 드시던가.”

“에이…. 고작 도시락 가지고 쩨쩨하게…….”

‘헹-. 쩨쩨해도 어쩔 수 없네요. 부러우면 형도 동생한테 도시락 싸달라고 하던가.’

이윽고 나의 우주 방어를 뚫지 못하고 젓가락을 내려놓은 연우 형이 도시락 옆에 있던 보온병을 집어 들더니 내용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참고로 저 보온병도 내꺼다.

“아무래도 위치가 위치잖냐. 영감님들이 너 걱정된다고 가보라고 하시더라.”

“아….”

연우 형과 내가 한가하게 도시락을 까먹고 있는 이곳은.

캬우우우-!!

키에에엑. 키엑!

몬스터들의 울부짖음이 쉼 없이 울려 퍼지는 몬스터 필드.

그것도 도시국가 형태로 채 천만이 안 되는 인구가 사는 드넓은 호주 대륙의 한가운데였으니까.

심해에 자리한 두 개의 SSS급 던전을 제외하곤 마그마 터틀이 튀어나온 이곳이 마지막이었다.

태평양과 대서양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SSS급 던전 두 개는 크라켄과 씨 서펜트가 튀어나온 던전으로 당연한 얘기지만 외부로 노출된 게 아니라서 대략적인 위치만 알 뿐 정확한 위치는 아무도 몰랐다.

마도 위성도 수심 1만 미터 깊이에 있는 던전을 찾아내는 건 무리였으니까.

“교단의 본거지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별다른 일은 없는 것 같네.”

까칠한 어조로 중얼거린 연우 형은 이내 번쩍이는 빛과 함께 사라졌다.

아무래도 도시락 못 먹게 했더니 삐진 모양이다.

36살 먹은 형이 하는 행동은 잼민이가 따로 없다.

“저러니까 그 나이 먹고 아직 장가를 못 가지. 쯧쯧.”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연우 형의 행동에 혀를 차며 남은 도시락을 맛있게 먹었다.

“그나저나 아무런 반응 없지. 씨드.”

“네. 사령관님. 반경 10㎞ 이내에는 자잘한 몬스터들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씨드와 샤이닝 세이버. 거기에 씨드가 탈취한 중국의 마도 위성 200여 대를 동원해 호주 대륙 곳곳을 감시하고 있었지만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었다.

교단과 12신 녀석들의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때아닌 피크닉까지 하고 있는데 말이다.

리퍼와 미루가 소멸하고 그다음 SSS급 던전을 포식할 때만 해도 그저 갑작스러운 신의 소멸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 거로 생각했었다.

‘그렇다고 해도 석 달이 넘도록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건 조금 이상하잖아.’

뭔가 께름칙했다.

12신, 교단, 사도와 신도, 놈들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놈들이 혹할 만한 미끼를 던진 거다. 바로 나라는 미끼를.

‘그런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어.’

이건 분명 이상하다.

물론, 그동안 조용하기만 했다는 건 아니다.

나의 던전 포식을 막으려는 움직임은 아니었지만, 세계 각지에서 신도들의 테러는 끊이지 않고 일어났으니까.

다만 유일하게 우리나라를 향한 공격은 뚝 끊겼다.

마치 나와 연우 형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그러면서 호주 대륙에 생성되는 신규 던전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리고 그 던전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들의 수도.

마치 인류의 공격을 대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수십억 마리의 몬스터들이 호주 대륙을 가득 채웠다.

그런 모든 것을 고려하더라도 던전을 포식하고 다니는 나를 자유롭게 둔다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한데 그걸 모르겠네.’

지금만 봐도 그렇다.

마그마 터틀이 나온 호주 던전을 포식하기 위해 온 내가 본 건 깔끔하게 비워진 공백지였다.

반경 10㎞ 내에 몬스터 한 마리 없이 비워진 공간.

마치 잘 먹으라고 차려놓은 밥상 같았다.

그러니 이렇게 한가하게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거고.

달그락.

지아가 싸준 도시락을 다 비우는 그 순간까지 내게 접근하는 놈들은 없었다.

이제는 열로 줄어버린 신과 사도, 하다못해 잡몹조차도.

그렇게 찜찜하기 그지없는 기분을 뒤로하고 나의 던전 포식 활동은 끝났다.

후방 정리가 끝났으니 이제, 남은 건 전쟁이다.

***

대한민국 목포.

“우와아아-!”

“이게 대체 몇 대째야?”

“뉴스도 안 봤냐? 60대라잖냐.”

“엄청나네. 저런 게 60대나 여기에 모인다고?”

“여기서 출정식하고 호주로 출발한다던데?”

목포 바다 위에 떠 있는 수십 대의 우주 전함.

워프 게이트를 통해 속속들이 도착하는 전함을 구경하기 위해 수십, 수백 만의 인파가 목포의 해안 방벽을 향했다.

“워어어어-!”

허공에 만들어진 워프 게이트를 통해 전함이 한 대씩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수십만의 인파가 내지르는 탄성에 도시가 떨리는 것 같았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수많은 전함의 선두에 떠 있는 세대의 전함이었다.

풍백. 운사. 우사.

이름만 들어도 국뽕 과다복용으로 사망할 것 같은 세대의 전함.

새하얀 선체의 측면엔 커다란 태극무늬가 새겨져 있고 선수엔 붉은색 도깨비 얼굴 문양을 새겨넣어 멋스러움을 더했다.

“다른 나라들 전함도 나쁘지 않은데, 내 눈엔 우리나라 게 젤로 멋지네.”

“그치? 내 눈에만 그런 거 아니지?”

그리고 각국에서 몰려든 수십 대의 전함을 지켜보던 이들은 대다수가 국뽕을 치사량으로 복용한 이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주 전함을 최초로 만든 것도 대한민국이요 그 설계도와 제작 노하우를 공유한 것도 대한민국이니 당연했다.

물론 전함을 제작한 국가들 모두 설계도 구매비용을 지불했지만, 이들에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식민지 생활을 청산한 지 80여 년.

드디어 대한민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

그들이 그렇게 국뽕에 취해 있을 때.

먼 하늘 위로 거대한 홀로그램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각국 정상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대한민국의 대통령.

바야흐로 복수의 계절이 왔음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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