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 아낌없이 주는 나무 (4).
“아. 이게 그건가 보네….”
빛을 모두 흡수한 연우 형의 얼굴은 뭔가가 변해 있었다.
뭐랄까. 안 그래도 잘생긴 얼굴에 이젠 막 후광이 비치는 것 같은….
“신성 말씀하시는 거예요?”
“어. 신성. 그거하고 권능이라고 했던가?”
권능?!
권능을 얻었다고?
내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오르는 순간.
화아악!
연우 형의 손바닥 위에서 한 줄기 빛이 솟아올랐다.
차가운 한기와 뜨거운 열기가 공존하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요상한 기운을 뿜어내는 빛의 구체.
“어…. 이렇게 하는 게 맞나?”
그새 ‘신성’과 권능의 사용법까지 익힌 건가?
이 정도면 도연우라는 인간의 종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인간이 맞긴 한 건가?’
“미루가 그러더군. 반신이 초월자와 다른 것은 두 가지뿐이라고.”
만들어냈던 빛을 지워버린 연우 형은 멍청한 얼굴로 서 있는 리퍼를 바라봤다.
“초월자가 신성과 권능을 얻으면 그게 반신이라지? 거기에 신격(神格)을 얻으면 신이 될 수 있다던데. 맞아?”
그 물음은 받은 리퍼의 눈동자는 잘게 떨리고 있었다.
“…….”
무언의 긍정.
“그럼 이제 내가 너와 동급이 됐네? 어때? 이 하찮고 비루한 버러지와 동급이 된 기분이?”
신성과 권능을 가진 초월자가 반신이라고?
처음 듣는 말에 내 눈은 휘둥그레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이미 신성과 권능을 가지고 있는데?’
그건 내가 EX급. 초월자에 준하는 레벨만 가지게 되면 자동으로 반신의 경지에 올라선다는 뜻이었으니까.
물론 그 레벨이 몇인지는 모른다.
레벨 3000이 다되어가는 지금도 내 등급은 고작 SS급에 불과했으니까.
‘혹시 모르지 차단이 풀리면 이곳에서 잡은 몬스터들의 경험치를 한꺼번에 정산받을 수 있을지도.’
공간이 차단되고 잡은 몬스터는 수천만 마리.
하지만 레벨은 오르지 않았다.
차단이 풀리고 밀린 경험치가 한꺼번에 정산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문제는 신성 스탯인데….’
그 말은 반대로 몬스터들을 학살하기 위해 권능을 남발한 부작용도 리바운드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런데 신성을 얻을 방법이 눈앞에 있다니….
나는 얼굴 한가득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드러낸 채로 부들거리고 있는 리퍼를 쳐다봤다.
‘잘 먹겠습니다.’
잘 차려진 밥상.
이젠 숟가락으로 퍼먹는 일만 남았다.
***
신이 죽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동료는 아니었다.
전쟁에 패한 후 뜻이 맞는 이들이 모인 것일 뿐.
하지만 미루의 소멸은 리퍼의 가슴속에 커다란 파문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다.
신이 죽었다.
권능도 신성도 없던 인간에 의해.
미루의 죽음은 불멸성이 사라진 신의 마지막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였다.
저벅저벅.
리퍼가 고개를 들어 앞을 봤다.
자신의 권능과 신성을 빼앗아간 묵빛의 죽음이 걸어오고 있었다.
두 개의 다리 네 개의 팔. 관절부마다 삐쭉삐쭉 돋아있는 위협적인 가시.
차마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는 외형.
그렇기에 더욱 두려웠다.
두렵다.
그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 리퍼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두려움을 느낀다고?’
수천만 년을 살아온 죽음의 신. 모든 죽음의 아버지이자 주인.
그런 자신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제야 리퍼는 미루가 한 말의 의미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이제 신이 아니구나. 하지만……. 나는 신으로서 죽을 것이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눈을 감은 리퍼의 얼굴 위로 커다란 주먹이 내려꽂혔다.
퍼억!
디뷰에이프.
신의 권능을 무력화하는 신살 병기의 묵직한 주먹은 강렬한 통증을 리퍼에게 선물했다.
“커억!”
시커먼 피를 내뿜으며 나가떨어지는 리퍼의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네가. 나의 죽음이었구나….”
죽음을 맞이하는 리퍼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강현은 그런 리퍼의 모습이 거슬렸다.
“웃어?”
저 빌어먹을 놈들의 침공 때문에 죽어야 했던 지구인이 몇 명인가?
수천만? 수억? 어쩌면 십억이 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초탈한 듯한 웃음을 내보이며 마지막을 맞이하려는 리퍼를 보자니 강현은 배알이 꼴렸다.
“26년 전, 빅 웨이브 기억해?”
“…?”
뜬금없는 강현의 물음에 리퍼의 얼굴엔 물음표가 떠올랐다.
“전해 들은 바론 너희 강경파 신들이 지구 인류를 멸절하기 위해 벌인 일이라던데.”
강현의 머릿속에 희미한 얼굴이 떠올랐다.
부모님,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빅 웨이브에 휩쓸려 돌아가셔야만 했던 가족들. 25년 만에 재회해야 했던 동생. 지아.
빅 웨이브.
그의 모든 불행은 거기서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너도 그 일과 관련이 있었나?”
“…그래.”
강현은 차마 가족들을 잃었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왠지 리퍼가 기뻐할 것만 같아서.
그리고 강현의 예상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그래. 확실히 아깝네…. 그때 너희 인류라는 것들을 확실하게 지웠더라면 오늘 이런 꼴은 당하지 않았을 텐데.”
미안함이라곤 전혀 없는 리퍼의 얼굴엔 오히려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얼굴을 본 강현의 입에선 욕설이 튀어나왔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무엇 때문에 그리 화를 내는 거지 강현?”
“몰라서 물어? 네놈들의 같잖은 짓거리 때문에 죽음을 맞이한 이들이 수억 수십억에 달해…. 네놈들이 침략해 오지만 않았더라도 그들은 평화로운 삶을 살았을 거야. 그런데 웃는다고? 너희 신이란 것들은 미안함이란 걸 모르는 족속들인가?”
“훗.”
강현의 말에 리퍼는 실소를 흘리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너는…. 개미를 밟아 죽이며 미안함을 느끼나?”
“…뭐?”
“신에게 너희 인류란 것들은 말하는 개미에 지나지 않아. 아니, 어쩌면 더 쓸모없는 종족일지도 모르겠군. 적어도 개미는 자기가 사는 행성을 파괴하지는 않으니까.”
리퍼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투구 너머에 있는 강현의 눈을 직시하며 말을 이었다.
“신에게 인간의 가치란 딱 그 정도란 이야기다. 이 버러지야.”
리퍼는 죽음의 칼날이 목젖 앞에 드리워졌음에도 ‘신’이라는 자부심과 권위를 내려놓지 않았다.
아니, 내려놓지 못했다는 말이 맞으리라.
“난 고귀한 신으로 태어나, 신으로 살았으며 신으로서 죽음을 맞이할 거다.”
그는 그렇게 탄생했고 그렇게 살아왔으며 그렇게 죽어갈 테니.
신으로.
“비록 내 마지막을 장식하는 게 너 같은 버러지라는 게 거슬리긴 하지만 이게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지.”
리퍼는 여전히 고고한 눈으로 강현을 바라봤다.
죽음을 맞이하는 이 순간까지도 그의 눈동자에는 짙은 우월감이 묻어나왔다.
하지만 강현은 리퍼에게 그런 고귀한 죽음을 내릴 생각이 없었다.
콰직!
우악스럽게 리퍼의 양어깨를 틀어쥔 디뷰에이프가 거칠게 양팔을 뜯어냈다.
촤아악!
시커먼 핏물이 분수처럼 튀어 오르며 디뷰에이프의 투구를 적셨지만, 강현은 개의치 않고 손을 놀렸다.
“그럼 넌 오늘. 그 버러지에게 벌레처럼 짓밟혀 죽는 최초의 신이 되겠구나.”
“…….”
분노를 꾹꾹 눌러 담은 듯한 그 목소리엔 짙은 살기가 배어 나왔다.
높다랗게 들어 올렸던 다리가 뜯겨 나간 팔을 재생하고 있던 어깨에 내려꽂혔다.
퍼억!
펑!
그 무지막지한 발길질에 막 생성된 팔이 풍선처럼 터져나갔다.
“너에게 고귀한 신의 죽음 같은 건 없을 거야. 리퍼.”
이어 디뷰에이프의 네 팔이 움직여 리퍼의 사지를 결박했다.
꽈지직-!
날카로운 손톱이 리퍼의 몸을 파고들며 거친 파육음을 만들어냈다.
“클클. 그래.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면 어디 해보려무나.”
“그래…. 그럴 생각이야. 그러니까 제발 버텨줘.”
강현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꾹꾹 눌러 담에 리퍼를 짓밟았다.
이건 인류의 복수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퍼버버벅-!
콰직!
지극히 단순하고 사적인 화풀이일 뿐.
뇌신일체로 느려진 시간 속.
강현은 꽤 긴 시간, 분풀이를 이어갈 수 있었다.
비록, 리퍼의 입에서 살려달라는 말도 죽여달라는 말도 나오게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강현은 가슴속에 뭉쳐 있던 응어리를 조금은 풀어낼 수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빌어먹을 새끼….”
강현은 결박하고 있던 리퍼를 거칠게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후욱-후욱-.
거친 숨을 내쉬던 강현이 투구를 벗을 때였다.
“내…죽음에…. 너무 기뻐하지 말아라…. 너흰…곧 그를 만나게 될 테니….”
샤라락.
알아듣지 못할 마지막 말을 남기고 만신창이가 된 리퍼의 몸이 먼지처럼 분해돼 허공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소멸의 시간이 온 것이었다.
육체도 영혼도 남기지 못하는 완전한 소멸.
신의 죽음이란 그런 것이었다.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린 리퍼의 육체였던 것에서 검은색 빛이 떠올랐다.
차갑고 투명하던 미루의 것과는 그 느낌이 다른 불길한 기운을 물씬 풍기는 리퍼의 신성.
잠시 허공을 부유하던 그것은 곧 제 자리를 찾은 것처럼 강현의 가슴을 파고 들어갔다.
이윽고 강현의 몸에서 피어나오는 검은 뇌광.
천지를 집어삼킬 듯 거미줄처럼 뻗어 나가던 검은 뇌기는 찰나의 순간 강현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
그 순간 강현은 알 수 있었다.
이제 자신은 신성 스탯의 소모 없이 온전한 죽음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걸.
빠지지직.
권능을 발현하자 강현의 손바닥 위에 피어오르는 검은 뇌전.
리퍼에게서 흡수한 ‘죽음’과 원래 지니고 있던 ‘뇌기’가 하나가 되어 만들어진 죽음의 번개였다.
그것을 바라보던 강현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본격적인 전쟁을 앞두고 12신 중 둘을 소멸시켰고 거기에 더해 신들을 상대할 강력한 무기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리퍼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싸움의 결과물은 강현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와…. 현아 그게 네 권능이야?”
그런 강현을 지켜보던 도연우는 강현의 손 위에 피어오른 뇌전을 부럽다는 듯이 쳐다봤다.
아무래도 그저 뜨겁고 차갑고 번쩍거리는 게 전부인 자신의 권능보다 검은 번개가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여긴 어떻게 빠져나가죠? 몬스터도 전부 처리했는데.”
“그러게? 왜 던전 코어가 나타나지 않는 거지? 이놈들이 보스가 아니었나?”
일반적인 던전이라면 보스 몬스터를 처리하는 순간 던전 코어가 나타났을 테지만 지금 상황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SSS급 던전은 12신의 신지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던전이기에 애초에 보스 몬스터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에리아에 의해 공간이 차단된 상태였으니까.
“혹시 여기도 보스룸이 따로 있는 거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럼 한번 찾아볼까요?”
그렇게 둘은 있지도 않은 보스룸을 찾기 위해 던전을 뒤지기 시작했다.
힘들 건 없었다.
그저 권능을 발현해 빛으로, 뇌전으로 날아다니면 될 일이었으니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둘은 보스룸도 던전 코어도 찾지 못한 채 원래 자리로 돌아와야 했다.
***
멍하니 던전 하늘을 올려다보던 연우 형이 중얼거렸다.
“허어-. 설마 평생 여기에 갇혀 있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공간의 미학.
사용할 때마다 눈이 빠질 듯이 아프고 머리가 오븐에 들어간 것처럼 뜨끈해진다는 것만 빼면 장점이 많은 특성이다.
저걸 이용해 던전의 구조를 파악하면 탈출은 가능할 거다.
아마도….
문제는 이 던전이 하나의 대륙 크기로 크고 넓다는 것.
여기서 공간 정보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내 뇌는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녹아버릴지도 몰랐다.
내가 공간의 미학을 펼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음?? 현아?”
“형도 느끼셨어요?”
어떤 이질감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
-레벨업.
-레벨업.
-레벨업.
-…….
폭렙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