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 던전을 먹는 각성자 (2).
엘리멘탈 드레이크.
SS급 보스 몬스터.
중앙아시아 어딘가에 둥지를 틀었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크롸롸롸!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피어를 뿜어내는 엘리멘탈 드레이크.
녀석은 중앙아시아 쪽 도시국가 사이에서는 공포로 군림하는 존재답게 흉폭하며 강했다.
콰직!
키에에에엑!
퍼퍼펑!!
물론 지금은 아폴론의 샌드백 신세지만.
녀석 덕분에 더 헤맬 일 없이 SS급 던전을 발견해 코어를 각인하고 포식까지 마친 나는 인벤토리를 확인하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서울쯤은 문제없이 집어넣을 수 있겠는데?”
그동안 포식했던 아공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크기의 던전 수십, 수백 개를 포식하니 내 인벤토리는 이제 광활하다는 말도 부족할 정도로 거대해져 있었다.
그 여파로 뇌가 부글부글 끓는 듯한 통증에 머리가 어지럽긴 했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이제 남은 건 SSS급 던전의 던전 코어.
SSS급 던전의 위치는 굳이 찾아다닐 필요도 없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포식하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공식적으로 전 세계에 있는 SSS급 던전은 12개.
모두 재해급 몬스터들이 튀어나온 던전이다.
그중 대부분은 인적이 드문 곳에 나타났으나 던전 두 개는 도심지 한가운데서 나타나 도시 두 개를 소멸시키기도 했다.
다행히 한국 근처에선 SSS급 던전이 발생하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SSS급 던전은 시베리아에 있는 던전으로 빙호가 튀어나온 던전이었다.
‘중요한 건 그 던전이 모두 활동을 중단했다는 거지.’
그 던전들은 던전 브레이크로 재해급 몬스터들을 토해낸 이후 활동을 멈췄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인류는 그렇게 판단했다.
재해급 몬스터들이 튀어나온 이후 수십 년간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지금은 마도 위성을 통한 감시만 이루어질 뿐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던전이 12신과 관련이 있다는 게 밝혀진 이상 저 던전들도 한번 가봐야 할 필요가 있었다.
‘어떤 수작을 부려놨을지 모르니까….’
내 계획에 찬성할지 반대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의논을 해봐야겠다.
***
대체 토플란 시스템 안에 얼마나 오래 있었던 걸까?
“그래서. 시베리아로 가자고?”
땀에 흠뻑 젖은 연우 형은 이온 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켜더니 그렇게 물었다.
“네. SSS급 던전, 놈들이 꼼수를 부리기 좋잖아요. 한 번쯤 확인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 던전을 없앨 수 있으면 미리 정리해두는 게 좋겠지.”
“어…. 반대하지 않으시는 거예요?”
반대를 예상하고 있던 나에게 연우 형의 대답은 조금 의외였다.
“음? 왜 반대할 거로 생각했어?”
“아무래도…. 각성자들의 밥줄이 걸려있는 일이니까요.”
말 그대로였다.
각성자. 그중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헌터들은 던전 사냥으로 돈을 벌어 생활을 영위한다.
그런 던전을 없앤다는 건 100만이 넘는 각성자, 그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헌터들의 밥줄을 끊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풋. 설마 내가 각성자들의 밥줄이 인류의 생존보다 위에 있다고 여긴다고 생각하는 거야?”
연우 형의 물음에 나는 아무런 답을 할 수 없었고 연우 형은 그런 나를 보곤 싱긋 미소를 베어 물었다.
“네가 뭘 걱정하는지는 알겠는데. 그건 너나 내가 고민할 문제가 아니야. 인류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지.”
“인류가 함께….”
“나는 인류가 12신들에 의해 우리 속에 갇힌 가축처럼 사육되고 있다고 생각해. 함부로 태어난 국가를 벗어날 수도 없고 몬스터 필드라는 울타리에 갇혀 근근이 목숨을 연명해가는 가축.”
잠시 말을 멈춘 연우 형은 이온 음료를 벌컥 들이켜곤 다시 말을 이었다.
“12신이 던져주는 사료에 길들어져서 이 울타리 안의 삶에 만족해 버리면 언젠가는 도축돼서 그들에게 잡아 먹히겠지.”
깊은 분노가 묻어나오는 목소리.
콰직!
연우 형의 손에 들려있던 음료수병이 순간 먼지로 화에 사라졌다.
뜨겁다.
나를 바라보는 연우 형의 눈에선 새파란 불꽃이 피어올라 있었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되잖아. 현아.”
그 눈에서 이글이글 피어오르는 열기가 주변 공기를 뜨겁게 달구었다.
꿀꺽.
나도 모르게 목울대 너머로 마른침을 삼켰다.
“인간의 존엄성. 이런 건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가축이 아니니까.”
연우 형과 눈을 마주한 나는 심장 어림이 뜨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12신이 사라진 이후의 지구.
어쩌면 던전과 몬스터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마나가 사라져 마법과 과학 기술로 만들어낸, 이 찬란한 문명이 스러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각성자들 모두가 힘을 잃고 평범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모든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니까. 가자. 시베리아로.”
그리고 연우 형의 뜨거운 눈빛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이 일이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확신을 얻었다.
던전과 몬스터.
이제는 인류문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가 되어버린 증오스러운 그것들은.
“이후에 벌어질 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네. 형.”
모조리 없어져야 한다는 확신을.
***
시베리아 최북단.
차가운 바람과 드넓게 펼쳐질 설원.
한반도에는 봄이 찾아와 노크하고 있었지만, 이곳은 여전히 겨울이었다.
크롸롸롸!
키엑! 키에엑!!
인간의 발길이 끊긴 지 언 80여 년.
이 혹한의 대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무성하게 자란 나무와, 그 종류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몬스터들뿐.
원래 시베리아에 존재했어야 할 짐승들은 멸종되다시피 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콰르르르릉!
태양 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는 설원 위로 한줄기 낙뢰가 떨어져 내렸다.
번쩍!
콰과광!!
낙뢰로 인해 일어난 눈보라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두 인영.
“여기구나. 빙호가 머물던 곳이.”
도연우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다른 몬스터들이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제대로 찾아왔나 봐요.”
빙호.
시베리아에 있는 몬스터들의 머리 위에서 군림하던 우두머리.
녀석이 머물던 거처는 녀석이 죽은 지금도 다른 몬스터들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근 70년을 시베리아에서 군림했던 녀석이니 다른 몬스터들 사이에서 이곳 빙호의 영역은 금지나 다름없을 터였다.
덕분에 몬스터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귀찮음을 피할 수 있었지만 다른 문제가 있었다.
“좌표대로면 이 근처에 던전 입구가 있을 텐데….”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높이로 쌓여있는 눈 덕분에 던전 입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잠시 고민을 하던 그들은 가장 원초적인 방법으로 던전 입구를 찾기로 했다.
후우우웅-.
퍼-퍼퍼펑!!
바로 주변을 뒤덮고 있는 눈을 모두 날려버리는 것.
무식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불과 10분 만에 눈 속에 파묻혀 있던 포털을 찾아냈으니까.
검은색으로 일렁이는 익숙한 형태의 포털.
눈에 보이는 것으로 던전의 등급을 측정할 만한 수단이 없기에 강현은 던전을 향해 아공간 포식을 사용했다.
“…SSS급 맞네요.”
이윽고 출력된 스킬 사용 불가 메시지를 확인한 강현의 말에 도연우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주체할 수 없는 흥분이 그의 심장을 펌프질하고 있었다.
그것은 정복욕이었다.
“형. 일단 진정을….”
“어, 그래.”
도연우는 잠시 심호홉을 해 마음을 진정시킨 뒤 걸음을 옮겼다.
“자 그럼, 들어가 볼까?”
들어간 사람은 있지만 나온 사람은 없는 최악의 던전.
수많은 각성자들을 잡아먹은 아귀 지옥.
지난 세월 단 한 번도 클리어되지 않았으며, 단지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활동중단 판정을 받은 그곳.
그 흉명이 자자한 SSS급 던전에 강현과 도연우가 입장하는 순간이었다.
***
“우리, 던전에 들어온 거 확실하지?”
연우 형의 물음에 나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것 같은데요?”
“그런데 왜 풍경이 그대로야?”
연우 형의 의문처럼 주변 풍경 중 바뀐 것이 없었다.
푸른 하늘.
머리 위에 떠 있는 태양.
새하얀 설원.
우리가 들어온 포털이 사라지는 걸 확인하지 않았다면 던전에 들어왔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할 뻔했다.
그때, 연우 형과 나. 우리를 제외한 공간이 일렁거렸다.
“확실히 던전이 맞는 것 같네. 흐흐.”
그것을 확인한 연우 형은 나직한 웃음을 흘렸고, 나는 뇌기를 끌어올렸다.
빠지지직.
이글이글 피어오르며 방전되는 전류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그것’들.
“크아아아아-----!!!!”
우리가 설원이라고 생각했던 그것은 새하얀 눈으로 이루어진 인간형 몬스터 ‘설인’들이 뭉쳐있었던 것이었다.
“괜히 SSS급 던전이 아니구나. 입구부터 SS급 몬스터가 잡몹으로 나오는 걸 보면.”
문제는 그 ‘잡몹’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것.
‘모두 몇 마리지 씨드?’
‘총 191,567개체입니다. 현재도 증가하는 중입니다. 사령관님.’
SS급 몬스터가 20만 마리라니…실화냐?
아무리 수십 년간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도 이게 말이 되는 숫자인가?
그것도 던전 초입부터.
긴장으로 마른침을 꼴깍꼴깍 삼키고 있는 나와는 다르게 연우 형은 여유만만이었다.
“자. 그럼 나 먼저 간다!!”
빛으로 이루어진 한 자루 창을 손에 쥐고 신속을 사용해 사라져버리는 연우 형.
콰과과과광----!!
그와 동시에 설인 무리 한가운데서 거대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말보다 빠른 행동이라니….
SS급인 나에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폭음이 울려 퍼진 것처럼 느껴졌다.
이젠 연우 형이 얼마나 강해진 것인지 가늠할 수도 없게 되었다.
“대체 뭔 수련을 얼마나 했길래…. 다시 토플란 시스템을 사용해봐?”
난 토플란 시스템을 사용한 레벨업이 불가능하다 건 알고 있었다.
상위 시스템인 해피니스 시스템의 사용자인 내가 토플란 시스템을 통행 얻을 수 있는 건 고작 전투 경험뿐.
각 단계를 클리어하면 지급된다는 스탯 포인트도 내겐 지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토플란 시스템 사용 후, 물 만난 물고기처럼 쭉쭉 치고 나가는 연우 형을 보니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번-쩍! 퍼-버버벙!
어느새 저만치 멀어져 가는 폭음.
그 폭음을 따라 움직이는 20만에 달하는 설인들을 이끌고 멀어져 가는 연우 형을 뒤로하고, 나는 주섬주섬 인벤토리에서 아이템들을 꺼냈다.
아폴론과 샤이닝 세이버.
그리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버프 아이템과 스크롤들.
그 모든 것들을 사용했을 때 연우 형이 만들어내던 폭음은 이제 들리지 않을 만큼 멀어졌고.
-특성: 모태 솔로 S (LV1)가 발현됩니다.
모태 솔로 특성이 발현됐다.
S급으로 승급한 모태 솔로의 효과와 자질구레한 버프들의 시너지로 내 총 스탯은 25만이 넘어섰다.
이 정도면 끔살 당할 일은 없겠지.
“자…. 그럼 우리도 시작하자.”
내 말이 끝나자 씨드는 샤이닝 세이버를 넓게 퍼트려 정찰을 시작했고 아폴론은 앞장서서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연우 형이 향한 곳과는 정 반대쪽이었다.
던전에서 출현하는 몬스터의 종류와 공략 방법, 아무런 정보가 없는 SSS급 던전이니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던전을 공략할 수밖에.
일반적인 각성자들이라면 생각도 하지 않을 방법이지만.
연우 형은 지구 유일의 초월자, EX급 각성자이고.
나는 이레귤러라 불러도 좋은 시스템의 사용자이니 위험할 일은 없을 거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