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신살(神殺) 병기 (2).
톡. 톡.
뭉툭한 발이 규칙적으로 황금색 뇌전으로 만들어진 머리칼을 건드렸다.
파직. 파직.
방전이 일어날 때마다 움츠러드는 귀여운 발의 주인.
톡톡. 빠지직.
복슬복슬한 황금색 털로 전신이 뒤덮인 한 마리의 골든리트리버가 그 찌릿한 방전 현상에 재미를 느낀 것인지 울티아의 머리칼을 가지고 연신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 장난의 대상이 된 울티아는 얌전히 머리칼을 내어준 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응-?”
“정말 이대로 괜찮겠습니까?”
신이라는 위치에 어울리지 않는 지극히 공손한 물음.
“괜찮아아-. 걱정하지 마아--.”
듣고 있으면 절로 하품이 나올 듯한 느긋한 목소리의 주인인 골든리트리버 ‘비토’는 여전히 앞발로 울티아의 머리칼을 톡톡 건드리며 말을 이었다.
“네가-. 걱정하는 건 알겠는데에- 그래도 기회느은- 줘야지이--.”
속 터질 듯 늘어지는 그 목소리에 화를 낼 법함에도 울티아는 언짢은 기색 하나 없이 공손히 물었다.
“어떤 기회를 말씀하시는 건지….”
“인간이 인간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할 기회. 자신의 힘으로 승리를 쟁취할 기회. 그리고 ‘저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기회.”
그 물음에 들려온 목소리는 전과 달리 또렷하고 또랑또랑했다.
“네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지만, 그 걱정 때문에 저 아이의 기회를 빼앗을 수는 없어. 시스템은 인간을 포함한 지성체의 자립과 번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니까.”
“그, 그렇군요.”
갑작스러운 비토의 변화에 울티아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비토는 그의 머리에 앞발을 ‘터억’ 올리곤 헤실거리는 웃음을 토해냈다.
“실은 나도 잘 몰라-. 그냥 수호가 저렇게 말했었어-. 헤헤.”
쿨럭.
그리고 비토의 입에서 나오는 이름을 들은 울티아는 밭은기침을 토해냈다.
그제야 자신의 머리에 앞발을 올리고 있는 이 강아지의 외형을 한 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 존재인지 새삼 깨달았다.
비토가 말한 수호라는 이름은 수천억 개에 달하는 우주를 관리하는 기업 ㈜해피니스를 창립한 신이며 비토 또한 지금 울티아가 있는 이 우주를 관리하는 통합관리자다.
굳이 비유하자면 지사장이랄까?
신입사원이 지사장을 만난 꼴이니 머리 위에 올려진 발 따위 신경이 쓰일 리가 있나.
“걱정하지 마아-. 정말 위험하며언- 내가 개입할 거니까아-. 저건 나쁜 놈들 손에 넘어가면 안 되는 거거드은-.”
말을 마친 비토는 다시 울티아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장난을 치기 시작했고.
울티아는 강현과 디뷰에이프가 시작한 싸움에 집중했다.
꽝!
마침 강현의 칼과 디뷰에이프의 날카로운 손톱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힘내라.’
분명 강현의 열세다.
상대는 디뷰에이프. 신을 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저주받은 신살 병기.
권능을 부여받았다지만 아직 초월의 끝자락도 밟지 못한 강현이 승리할 확률은 0에 가깝다.
그럼에도 울티아는 마음속으로 강현을 응원했다.
지금껏 수많은 위기를 돌파하며 성장하는 강현을 지켜봐 왔기 때문이었다.
그때 울티아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왜 고양이 발이지?’
자신의 머리칼을 장난스레 툭툭 건드리는 비토의 앞발.
뭉툭한 황금색 솜뭉치는 분명 고양이 발이었다.
‘골든리트리버는 분명 개일 텐데 어째서?’
혹시 그녀가 처음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과 연관이 있는 걸까?
‘너어-. 고양이 좋아해에-??’
고양이를 좋아하냐고 묻던 비토의 목소리가 잠깐 울티아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물론 그동안에도 화면 속 강현은 디뷰에이프와 엎치락뒤치락하며 살벌하기 그지없는 전투를 진행 중이었다.
***
꽝!
카카카카칵!
욕이 절로 나올 만한 엄청난 연격이 쏟아져 나왔다.
“씨발!”
나중에 혹 인간을 만들어낸 창조주를 만날 기회가 온다면 꼭 물어볼 거다.
왜 인간의 손을 두 개로 만들었냐고.
카캉.
목과 심장을 노리고 쏘아져 온 두 손의 손톱을 케이돈으로 막아내자 남은 두 개의 손이 오른쪽 옆구리와 왼쪽 허벅지를 할퀴고 지나갔다.
카가가가각!
“컥!”
날카로운 쇠가 갈리는 소름 끼치는 소음이 귓가를 울렸다.
내 손은 두 갠데. 저놈은 손이 네 개다.
조물주 님 이거 맞아요?
괜스레 조물주를 원망해 보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카캉!
서걱. 서걱!
빌어먹게도 전뢰화 권능이 발현돼 느려진 시간 속에서도 놈은 나보다 빨랐다.
속도라도 느리면 어찌어찌 막아 낼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속도에서 미세하게 놈이 앞서다 보니 한번 합을 나눌 때마다 한두 군데씩은 놈의 공격을 고스란히 맞아야만 했다.
‘지아야 고맙다.’
새삼스럽게 금강 특성을 얻으라 강권했던 동생에게 고마움이 느껴졌다.
금강 특성과 아다만티움 바디의 시너지가 아니었다면 어디 하나 절단돼 날아갔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카각!
그렇다고 아프지 않다는 건 아니었지만.
인간은 역시 망각의 동물이 맞다.
크롤러를 상대할 때 살점이 부식돼 떨어져 나가는 그 끔찍한 고통을 몸소 겪었음에도 지금 디뷰에이프의 손톱이 더 아프다고 생각되는 걸 보면.
“끕!!”
내가 억눌린 비명을 토해내는 와중에도 놈의 공격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나는 이대로는 답이 없음을 느꼈다.
카가각! 카각!
도대체 손톱에 무슨 짓을 해놓은 것인지 한 번씩 스칠 때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이 대뇌 전두엽을 울린다.
‘이대로는 안 돼. 일단 거리를 벌리고 공격방식을 바꾼다.’
지금 상황에서 케이돈을 칼 형태로 사용하는 건 크게 이로울 게 없어 보였다.
일단 저긴 무기가 네 개인데 난 한 개뿐이잖아.
‘만뢰.’
생각과 함께 만 개의 뇌전이 중첩된 황금색 뇌구가 만들어졌다.
전뢰화가 뇌신일체보다 좋다는 게 여기서 느껴졌다.
‘뇌신일체로 만 번 중첩하려면 한세월 걸렸을 텐데. 눈 깜빡할 새에 끝나네.’
그렇게 응축된 뇌구를 디뷰에이프에게 쏘아 보낸 나는 재빨리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꽈르르릉.
천둥이 치고.
번-쩍!
한줄기 섬광과 함께 놈과의 거리가 까마득히 멀어졌다.
그래 봐야 1㎞ 안쪽이지만 조금 전까지 살 떨리는 근접전을 벌이던 내겐 먼 거리가 맞다.
‘저. 미친.’
하지만 디뷰에이프가 만뢰를 처리하는 모습을 본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빠지지지--------직!
번---쩍!
황금색 뇌구에서 만개의 벼락이 하나의 타격점을 향해 쉼 없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디뷰에이프는 그 벼락을 모조리 몸속으로 흡수했다.
이러니 놀라지 않고 배기겠는가?
‘빌어먹을. 이렇게 되면 다시 근접전으로 싸울 수밖에 없잖아.’
전뢰화로 만들어낸 만뢰를 저렇게 흡수해 버린다는 건 원거리 공격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단 소리밖에 되지 않는다.
멸천세니 풍신퇴니 날려봐야 흡수해 버리면 그만이니까.
이건 숫제 근접전을 강제하는 꼴이었다.
젠장.
‘케이돈 형태 변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근접전을 원한다니 그렇게 해주는 수밖에.
검이었던 케이돈의 형태를 변환해 전신에 둘렀다.
마치 미국판 히어로 영화에 나오는 쫄쫄이를 입은 주인공처럼.
‘아무리 통빡을 굴려봐도 이게 최선이야.’
[아이템: 케이돈]
[등급: EX]
[물리방어: 사용자의 내구 스탯 적용]
[마법방어: 사용자의 지혜 스탯 적용]
[물리공격: 사용자의 힘 스탯 적용]
[마법공격: 사용자의 마력 스탯 적용]
[내구: 사용자의 스탯 총합]
……
방어력이나 공격력은 각기 하나의 스탯이 적용되지만, 내구도는 내가 가진 모든 스탯의 총합이 적용된다.
거기에 물리방어력과 마법방어력도 적용되고.
어쩌면 금강 특성과 아다만티움 바디의 시너지보다 효율이 더 높을지도 몰랐다.
‘이걸로 놈의 직접적인 공격에 노출되는 면적은 최소한으로 줄였어.’
두 눈을 제외한 모든 곳을 케이돈으로 꼼꼼하게 틀어막은 나는 만뢰를 모조리 먹어치운 후 쇄도해 오는 디뷰에이프를 향해 몸을 날렸다.
꽝!
거대한 폭음이 울리고.
녀석과 나는 양손을 마주 잡은 채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까드드득.
어마어마한 악력이 당장이라도 내 손을 박살 낼 것처럼 옥죄었지만 다행히 케이돈은 놈의 힘을 버텨냈다.
문제는.
캉! 카카각!
놈의 팔이 네 개라는 것.
결박된 두 개의 팔을 제외하고 남은 두 개의 팔이 연신 내 몸을 두드렸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유일하게 노출된 두 눈을 향한 공격은 고개를 비틀어 피할 수 있었지만 다른 곳은 그게 불가능했다.
카가각! 카칵!
날카로운 손톱이 쇠붙이를 긁는 소음이 귓가를 울리자 오싹 소름이 돋았다.
머리를 향한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녀석이 다음 타깃으로 노린 것은.
“이 좆도 안 달린 새끼가 감히 어딜!!”
카각!
바로 남자라면 누구나 분노할 만한 그곳.
바로 나의 소중이.
30년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봉인되어 제대로 된 성능 테스트조차 못 해 본 그것이 녀석의 타깃이 되었다.
직접적인 타격은 없지만, 날카로운 디뷰에이프의 손톱이 하복부를 연신 두드리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케이돈을 둘러놓고 뭘 그런 걸 가지고 몸을 떠냐고?
방탄 팬티 입혀줄 테니 거기에 총 쏜다면 맞을래?
“죽어! 이 개새끼야!”
나의 순결과 내 아이의 미래를 위협하는 디뷰에이프의 손짓에 나는 본능 깊숙한 곳에 내재된 분노를 끌어올려 뇌기를 방출했다.
꽈르르-------릉!!!!!
거대한 천둥소리와 함께 아공간을 가득 채운 황금색 뇌전.
안다.
이대로 놈에게 벼락을 떨어트려봤자 놈의 일용할 양식이 되리란 걸.
파지지직---!
그래서 뇌기를 응축하고 응축해 뇌전으로 이루어진 채찍을 만들었다.
우우웅-.
내 몸 이곳저곳에서 돋아난 황금빛 뇌기로 이루어진 채찍 열 개가 순식간에 디뷰에이프의 몸을 옭아맸다.
그 순간 나는 봤다.
놈의 붉은색 눈이 잘게 흔들리는 것을.
싸움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디뷰에이프가 동요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런 녀석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젠 내 손이 더 많아 이 새끼야.”
네 개의 팔과 두 개의 다리, 목과 몸통을 옭아매고 있는 채찍을 모두 빼더라도 두 개가 남는다.
“너도 한번 당해봐라!!”
나는 그 두 개의 채찍을 놈이 나를 공격했던 것처럼 놈의 눈동자에 쑤셔 박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해봤자 놈을 공격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거다.
두 눈에 틀어 박은 채찍에서 전류를 방사해봤자 놈이 타격받을 것 같지도 않았다.
만뢰처럼 흡수해버리면 더 문제고.
‘어떻게 하지?’
잠깐 고민하는 사이 디뷰에이프가 몸을 옭아매고 있는 채찍을 끊어내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파직!
놈을 옭아매고 있는 채찍 일부가 터져나가며 방전이 일어났지만, 곧바로 복구되었다.
확실히 힘과 속도, 피지컬은 놈이 나를 웃돌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전뢰화 [유지시간: 08분 31초]
억겁과도 같은 일 초 일 초가 흘러갈수록 입안에 침이 마르는 것 같았다.
확실한 건 전뢰화의 권능이 끝나면 나는 디뷰에이프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
이대로 죽치고 시간만 보내면 확정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라는 거다.
‘사망 선고를 써봐?’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천마도 사망 선고에서 살아남았었는데 신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신살 병기 디뷰에이프에게 그게 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거기다 상대는 생명체가 아닌 병기다.
살아 있지도 않은 놈에게 사망 선고가 통할 리가 없지 않은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병기….’
그래 놈은 병기다.
병기(兵器). 사전적 의미로는 전투에 쓰이는 도구.
‘그렇다는 건 디뷰에이프라는 도구를 움직이는 사용자가 있다는 말이지.’
그리고 그 사용자는.
‘크롤러….’
전투 시작 전 시공의 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디뷰에이프의 몸속으로 흡수됐던 검은 어둠.
내가 상대해야 할 진짜 적은.
‘…디뷰에이프가 아니라 저 안에 들어있는 크롤러를 없애야 하는 거였어.’
크롤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