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180화 (179/202)

180. 신살(神殺) 병기 (1).

도시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그그긍.

위잉. 철컥.

푸쉬익-.

커다란 기계음을 내며 변화하는 도시.

높게 솟은 마천루들이 대지에서 분리되어 떨어져 나오더니 허공에서 하나의 형체를 만들어갔다.

‘어…. 이거 왠지 그거 같은데?’

어딘지 모르게 눈에 익숙한 그것.

새하얀 빌딩들이 합체해 만들어진 그것은 어린 시절 애니메이션에서 보던 로봇과 비슷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합체 로봇?’

크기는 약 2m 정도.

게임에 미친 연우 형이 저걸 본다면 환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들이 합체해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려한 외형.

곡선과 직선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순백의 외관은 심미안이 발바닥에 붙어있는 내가 보더라도 탄성이 나올 만큼 아름다웠다.

그렇게 합체를 마친 로봇은.

“저거. 지금 날 공격하려는 것 같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자루 검을 빼든 채 대지를 박차고 쇄도해왔다.

‘보통은 대화를 한 번쯤 시도해 보지 않냐?’

내가 도시에 위협을 가한 것도 아니고 보자마자 칼을 들이대다니 어이가 출타하는 상황이었다.

푸른색 배리어를 통과해 검 끝을 들이미는 로봇의 움직임은 빨랐다.

빠른데….

‘느려.’

…느렸다.

건물들이 로봇으로 합체를 할 때부터 사용해 놓은 뇌신일체 스킬.

느려진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로봇의 움직임은 마치 한 프레임씩 끊어지는 슬로우 무비와 같았다.

그런 로봇의 머리 위로 녀석의 정보가 떠올랐다.

[이름: 아폴론.]

[버전: 전투 AI Ver. 1.0]

[등급: SSS급]

[유형: 대(對) 검은 악마용 결전 병기.]

상대의 정보가 떠올랐다는 말은 나와 동급 혹은 나보다 약하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이 로봇은 아웃 오브 안중.’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저 검은색 적의를 풀풀 풍기는 녀석이 지키려 하는 것.

도로고 건물이고 사람이고 온통 하얀색 일색인 저 도시.

도시를 공격하면 이 싸움이 쉽게 끝날 것 같단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욱일회나 교단 놈들이 왜 그리 선빵을 쳐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지킬 것이 있는 사람의 약점은 명확하니까.

지금 검을 내게 찔러오는 저 로봇은 푸른색 보호막 안의 도시를 지키고자 하는 것이고 그것만으로 내가 공격해야 할 대상은 명확해졌다.

‘아공간 조작.’

-대상을 지정해 주십시오.

침략자의 입장이 되니 지구인들의 약점이 명확하게 보이는 아이러니.

나는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생각을 접고 조작 대상을 지정했다.

‘눈앞의 상대에게 집중해야지. 이러다 리퍼 꼴 날라.’

방심하고 있다가 얻어터지면 그것만큼 개 쪽도 없지.

쏘아져 오는 로봇의 검 끝이 내 목 앞에 드리워질 때쯤.

검은 어둠을 막아내고 있던 푸른색 보호막이 서서히 사라지며 검은 어둠이 도시 안으로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우뚝.

“$%[email protected]#%-#!!”

그러자 당혹함이 어린 목소리와 함께 찔러 들어 오던 로봇의 검 끝이 멈추고 두부(頭部)가 도시 방향을 향해 돌아갔다.

“뭐? 왜? 선빵은 너희가 먼저 쳤다.”

일말의 양심이 찔려 변명 아닌 변명을 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로봇은 몸을 돌려 도시로 돌아가기 바빴으니까.

후우웅--.

신성이라고 불러도 좋을 새하얀 마나를 뿜어내며 도시로 돌아간 로봇.

도시의 중심에 도착한 로봇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마나가 그 영역을 확장해 도시를 둘러싸고 보호했다.

왠지 가슴이 찡했다.

무언가를 지키려 노력하는 이의 처절함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으니까.

그래서 마음이 약해졌냐고?

나는 내게 칼을 들이댄 존재에게 사연이 있다고 안쓰러워할 만큼 인정 넘치는 호구가 아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왜 마음이 약해져? 내게 칼끝을 들이민 책임은 물어야지.’

츠릉.

나는 손목에 착용하고 있던 케이돈을 칼로 변환해 틀어쥐고 앞으로 나아갔다.

꽈르릉.

천둥소리가 울리고.

번-쩍!

뇌광과 함께 휘둘러진 검이 우윳빛 보호막을 잘라냈을 무렵.

우뚝.

아공간 안의 세상이 멈췄다.

재차 마나를 뿜어내 보호막을 복구하려던 아폴론이라는 이름의 로봇도.

그 보호막 안에서 공포에 떨던 플리피인들도.

그리고 뇌신일체로 로봇을 향해 쏘아져 나가던 나 또한.

‘뭐…뭐야?’

어딘가에서 뿜어져 나온 거대한 기운이 아공간 안의 모든 것을 짓눌렀다.

떨어져 내리던 낙뢰가 허공에 멈춰 선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없다면 지금 봐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지금 내 꼴이 딱 그짝이거든.

‘끄, 끄윽….’

내가 멈춰버린 세상에서 몸을 움직이려 발버둥을 치고 있을 때였다.

스륵.

음습한 어둠.

아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던 그것이 시공의 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어딘가로 사라졌다.

덕분에 활성화된 감각 영역이 확장되고, 도시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시계가 열렸다.

‘저건 뭐지?’

키는 2m 정도.

네 개의 팔과 두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지만 생기는 느껴지지 않는.

‘갑옷?’

검고 단단한 외갑을 지닌 그것이 등장하자 시스템창이 난리가 났다.

-경고. 신속히 현재 위치를 이탈하십시오.

-대상을 스캔합니다.

-마도의 신이자 절대 신인 @*#가 만들어낸 신살 병기 디뷰에이프의 존재가 확인되었습니다.

-시스템에 의해 대상의 권능이 제한됩니다.

-시스템에 의해 대상의 힘이 제한됩니다.

-시스템에 의해…….

-……

어딘가 다급해 보이는 시스템 메시지가 쉼 없이 쏟아졌다.

과거 리퍼가 지구에 강림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설마…. 저 갑옷. 그러니까 디뷰에이프라고 불리는 저것이 리퍼만큼 위협적인 물건이란 소리야?’

시스템은 연신 자리를 이탈할 것을 권하고 있지만 나는 이미 디뷰에이프가 내뿜는 위압감에 손가락 하나 꼼지락거릴 수도 없는 상황.

도망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올라온 시스템 메시지.

-관리자가 개입합니다.

그것을 읽은 나는 지금 상황이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리퍼가 지구에 강림했을 때도 개입을 하지 않았던 관리자가 개입한다고?’

영락했다곤 하지만 반신이라 불리는 리퍼가 강림했을 때도 권능 하나 넘겨주고 말았던 관리자가 직접 개입을 한단다.

그때도 지금처럼 이것저것 제약을 걸긴 했지만 관리자가 개입하겠단 말은 없었다.

‘아…. 이거 완전히 망했네?’

한마디로 저 디뷰에이프라는 놈이 반신인 리퍼보다도 위험하다는 뜻.

그 순간.

우웅.

검은 어둠을 모조리 빨아들인 디뷰에이프의 투구에서 붉은색 빛이 뿜어져 나오며 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절그럭.

어딘가 둔탁한 갑옷의 마찰음과 함께.

***

사자 갈기처럼 일렁이는 황금빛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미남이 묶고 있던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 던졌다.

“젠장! 여기서 이딴 게 왜 튀어나와?!!”

여느 때와 같이 사무실로 출근해 달달한 핫초코를 한잔 마시며 여유롭게 관리자 카메라로 강현을 지켜보던 울티아.

갑작스럽게 떠오른 경고 메시지에 놀라는 것도 잠시.

그는 디뷰에이프의 정보를 보고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템: 신살 병기 디뷰에이프 프로토타입.]

[등급: 신(神)급]

[설명: 지금은 잊힌 마도의 신 비에르가 만들어낸 신살 병기. 절대 신을 제거하기 위해 만들어진 디뷰에이프의 시제품이다. 완성품 디뷰에이프는 절대 신을 격살할 수 있는 무력을 갖추고 있지만 본 기체는 시제품이기에 무력이 매우 낮다.]

[특이사항: 신성을 적대하며 신을 잡아먹고 성장한다.]

“이런 X발. 이게 말이야 방구야?!”

절대신.

울티아는 쳐다도 볼 수 없는 까마득한 위치에 존재하는 진정한 절대자들.

‘회사’ 내의 위치를 따지자면 울티아 본인은 이제 막 입사해 겨우 항성계 하나를 관리하는 신입사원이지만 절대신이라 불리는 신들은 최소 수십에서 수백 개의 은하계를 관리하는 존재들이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프로토타입이라고 하지만 신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신살 병기.

거기에 그 등급도 신급이다.

많이 강해졌다곤 하지만 아직 초월자도 되지 못한 강현이 상대할 수 있을 리가 만무.

뭔가 조처할 필요가 있었다.

빠지지지지---!

전뢰화를 발현한 울티아는 느려진 시간 속에서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긴급 상황 매뉴얼이 뭐더라?’

잠시 버벅거리던 그는 곧 매뉴얼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일단 강현에게 메시지를 띄우고, 시스템으로 대상을 제약한 뒤 상급자에게 보고.’

여기서 말하는 상급자는 약 100여 명의 관리자를 관리하는 팀장급으로 주로 하급 신들이다.

‘관리자 개입 메시지…. 완료.’

원칙적으로 관리자의 개입은 불가하지만, 지금처럼 특이사항이 발생 시 1회에 한해서 개입할 수 있다.

그렇게 울티아가 빠르게 조처하고 강림을 준비하려 할 때였다.

쪄 적-.

그의 등 뒤에 공간이 갈라지며 거대한 존재감을 가진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인 울티아마저도 한순간에 하찮은 벌레와 같이 짓눌러버리는 압도적인 격.

사박.

그 끔찍하리만치 압도적인 격의 폭력에 울티아가 삐걱거리는 몸을 겨우 움직여 등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그것’이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물어왔다.

“너어-. 고양이 좋아해에-??”

***

관리자가 개입할 때까지 버티면 된다.

다행히도 저 괴물은 급한 것 없다는 듯 느긋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뇌신일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빠직.

넋 놓고 관리자의 개입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뭐라도 해야지.

빠지지지---.

그렇게 놈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멈췄던 시간도 다시 흐르기 시작했고 나의 발버둥이 통했는지 손가락 하나 정도의 뇌전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무렵.

띠링.

명랑한 울림과 함께 시스템이 메시지를 토해냈다.

-…시스템 오류로 인해 관리자의 개입이 취소되었습니다.

‘뭐?’

빠직?

[email protected]!#@!$지구의 관리자 뇌신(雷神) 울티아가 사용자 강현에게 권능을 부여합니다.

-권능: 전뢰화(電雷化)를 획득합니다.

[권능: 전뢰화(電雷化)]

└뇌신 울티아의 권능. 신체를 전기로 변환하는 게 가능하다.

[유지시간: 10분]

*해당 권능은 일회성 권능입니다

-본 시스템은 사용자 강현 님의 무운을 빕니다.

‘뭐라고? 이 미친 새끼야?’

빠지지지지직?!

‘무운? 무우운-?’

그러니까 딸랑 전뢰화 권능 하나 던져주고 저 빌어먹을 괴물과 싸워 이기라는 말이었다.

무려 신살 병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저것을.

그리고 다시 한번 울리는 알림은 은 부정하고 싶은 이 상황이 현실이라는 것을 자각시켰다.

띠링.

-특수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퀘스트창을 열어 확인하세요.

-권능: 전뢰화(電雷化)가 발현됩니다.

-[유지시간: 09분 59초]

빠지지직.

뇌신일체 스킬로 만들어낸 푸른색 뇌전과는 다른 찬란한 황금빛 뇌전이 피어오르며 존재감을 뽐냈지만 내 멘탈은 우주 저 멀리 날아가는 중이었다.

‘이거 뭐 몰래카메라 그런 거냐?’

‘저번에 내가 욕했다고 아직도 쫌생이처럼 삐져서 이러는 거 아니지? 아니라고 해줘 제발!’

현실을 부정하려고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권능의 발현과 함께 시간은 더욱 느리게 흘러가기 시작했고.

그 느려진 시간 속에서도 나를 향해 다가오는 디뷰에이프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다.

알 수 없는 기운으로 번들거리는 붉은 눈이 나를 직시한 채 빠르게 다가온다.

끔찍한 공포와 함께.

빌어먹을.

그제야 나는 육신과 분리돼 열반에 들려던 멘탈을 수습할 수 있었다.

상황이 어찌 됐건 살아남아야 하니까.

‘빌어먹을 관리자 두고 보자.’

나는 내게 희망을 선물했다가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관리자를 향한 원한을 곱씹으며 뇌기를 끓어 올렸다.

파지지직!

샛노란 뇌전이 불꽃처럼 피어오르고.

꽈르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나의 몸은 디뷰에이프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선빵필승!’

싸움판의 오래된 격언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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