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 멸망한 별의 조각.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짙은 어둠이 가득한 공간.
“이게 가능한 부분이냐?”
각성자 센터에 가서 등급 측정을 하진 않았지만, 현재 내 등급은 SS급이다.
그런 각성자가 앞을 볼 수 없는 어둠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
햇빛 한 점 없는 동굴형 던전 안에서도 마나 라이트 없이 시계(視界) 확보가 가능한 게 각성자인데?
그런데 그게 있었습니다.
헌터 와치도 스마트폰도 하다못해 마나 라이트조차도 눈앞으로 가져와야 그 빛이 보일 정도였다.
한마디로 이 어둠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며 일종의 검은 안개라고 보는 게 맞았다.
“씨드. 뭐 좀 걸리는 게 있어?”
감각 영역을 확장해 봤지만 도통 걸리는 게 없어. 샤이닝 에로우 몇 대를 풀어놓았다.
하지만 씨드의 대답도 영 신통치 않았다.
“레이더의 탐지 범위가 제한되었습니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마나의 흐름에 간섭해 정상적인 탐지가 불가능합니다.”
“…그 탐지 범위가 어느 정돈데?”
“현재 탐지 가능 범위는 본채를 중심으로 약 1m 내의 영역입니다.”
저 말은 본체에서 조금만 떨어져도 탐지할 수 없다는 말과 다를 게 없었다.
한마디로 현재 가시 영역 0에 수렴하는 내 눈과 다를 바 없다는 소리.
가끔 보면 이 녀석도 참 쉬운 말을 어렵게 꼬아서 하는 버릇이 있다.
‘그냥 안 보입니다. 하면 끝날 말을 길게도 한다. 쯧.’
이런 거 보면 아직 지구화가 덜 된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알다가도 모를 녀석이다.
“이게 그 뭐냐…. 우주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암흑물질 뭐 그런 건가?”
“…?”
“왜? 뭐?”
“…암흑물질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나도 안다. 암흑물질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불리긴 하지만 그게 해가 지면 찾아오는 어둠과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을.
그래도 뭐 우주는 넓으니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을 수 있는 거 아니냐?
너 우주 가봤어?
아. 우주 전함이니까 우주 가봤으려나?
실없는 생각을 뒤로하고 눈앞에 있는 어둠에 좀 더 집중했다.
“암흑물질이 아니라면 답은 하나밖에 없네.”
“네?”
“SS급 각성자의 감각 영역을 교란하고 가시 영역을 제한할 만한 무언가라면 아공간 안에서 떠오르는 건 하나밖에 없지 않아?”
“설마…. 이 어둠이 크롤러라는 말씀입니까?”
그렇다.
크롤러라면 이 모든 게 말이 된다.
넓이가 얼마나 될지 모를 이 아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것이 나노 단위 크기의 크롤러라면 가시거리가 제한되는 것도 감각 영역이 교란되는 것도 모두 납득이 됐다.
칭호와 특성들이 발현됐지만 정작 내 눈에 들어오는 공간의 정보는 물음표만 가득했다.
1000을 넘긴 레벨.
모태 솔로 특성이 발현됐음에도 정보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크롤러의 격이 나보다 높다는 의미였다.
‘SSS급 혹은 그 이상.’
물론 진다는 생각은 없었다.
나한테는 아직 아공간 조작 특성도 남아있고 포식과 변환 스킬도 남아있으니까.
‘아공간 안은 내 구역이라 이거야.’
하지만 가슴이 옹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여기가 내 구역이다! 나한테는 아공간 조작 특성이 있다! 왜 말을 못 하니?!
그야 당연히 이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까.
인필리언처럼 신이라도 있으면 암담하지 않겠는가?
그저 검은 그을음처럼 자아가 없는 놈이길 바랄 수밖에.
나는 최대한 크롤러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움직임을 자제하며 등 뒤로 마나를 뿜어내 어둠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전까지는 몸 좀 사려야지.
***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얼마나 헤맸을까?
감각 영역의 확장이 차단되자 시간의 흐름마저 뒤틀린 느낌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른 것인지 인지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헌터 와치와 인벤토리에 챙겨온 스마트폰들마저도 각기 시간이 달랐다.
“젠장. 이래서야 외부와 통신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기껏 설치하고 온 다차원 송수신기가 제 역할을 할지가 의문스러워질 무렵.
“사령관님. 전방에 미확인 물체가 나타났습니다.”
나보다 1m 앞에서 나아가던 샤이닝 에로우의 레이더에 뭔가가 걸렸다.
그렇게 어둠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자 눈앞에 펼쳐진 공간.
“와-.”
탄성이 절로 나올 만한 어마어마한 미래 도시가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대나무처럼 빼곡하게 자리한 거대한 빌딩 숲.
그 사이를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수많은 자동차와 거리를 거니는 인파들.
마치 천년쯤 지난 후 지구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발전된 세상.
그 세상이 내 눈을 가득 채웠다.
“여긴 인필리언보다 더 작은데?”
지름 100m 정도 되는 땅덩어리 위에 만들어진 세상 위에는 손톱만 한 크기의 인공 태양이 떠 있고, 그 바깥에 만들어진 푸르스름한 보호막은 어둠의 침입을 막고 있었다.
그것을 본 씨드가 탄식이 섞인 목소리로 나직이 읊조렸다.
“플리피….”
씨드가 만들어지고 지켰던 세상, 플리피였다.
플리피는 하나의 행성이니 정확히 말하자면 플리피의 파편이라고 보는 게 옳을 듯했지만.
“여기가 플리피야?”
그런 씨드의 반응에 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애초에 씨드가 끌린다고 말을 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생명체라면 누구나 갖는 고향에 대한 향수.
물론 AI인 씨드가 그런 감정을 느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나는 씨드가 ‘끌린다.’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이 아공간이 플리피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멸망한 플리피의…파편인 듯싶습니다. 사령관님.”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토록 지켜왔던 세계가 파괴된 모습에 충격을 받은 것일까?
흔들리는 목소리를 보니 감정의 동요가 상당한 듯싶었다.
좀처럼 이런 반응을 내보이지 않는 녀석인데.
“그…. 잘은 모르겠지만, 플리피 행성은 마도 과학이 극도로 발전했다며? 멸망한 게 아니라 지나가는 소행성에 도시를 건설했을 수도 있잖아.”
행성이 온전했다면 저렇게 파편이 아공간에 담겨 있다는 게 말이 되지 않기에 꺼낸 말이었다.
얼마 되지 않는 작은 땅덩이 하나 가지고 행성 파편이라고 말하는 건 조금 오버 아닌가 싶기도 했고.
잠시의 침묵 뒤에 이어진 씨드의 설명.
“플리피 행성은…….”
그 설명엔 씨드가 탄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담겨 있었다.
지구의 10분의 1 크기의 작은 행성.
그마저도 행성 대부분은 바다로 이루어져 있어 대륙이라곤 한반도보다 조금 큰 대륙이 전부이며.
몬스터는 물론 기타 동식물들과 치열한 생존경쟁을 거쳐 플리피인들이 행성의 지배종이 될 수 있었다고 했다.
최대신장이 2mm에 불과한 플리피인들이 행성의 지배종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련이 있었을까?
그 과정에서 마도 과학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며 만들어진 게 씨드였고.
그렇게 발전된 마도 과학 기술을 갖게 된 플리피인들은 좁은 행성을 벗어나 타 행성으로의 진출을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
“…행성을 테라포밍하는 데까진 성공했지만, 알 수 없는 전염병이 이주민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알 수 없는 전염병.
그것은 플리피인들이 베타라고 이름 붙인 테라포밍 행성으로 이주한 첫 이주민들을 삼 주 만에 전멸시켰단다.
“나중에 플리피인들은 플리피 땅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학자들은 이것을 신의 저주라 말하더군요.”
플리피 땅을 떠나면 살 수 없는 저주라니.
황당하기 그지없는 말이었지만 신의 저주라면 또 이해가 되는 말이기도 했다.
신이란 것들의 행태는 지금 지구인들도 충분히 겪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네 말은 저 땅덩어리가 플리피 행성의 대지가 아니라면 저들이 살아있을 수 없다는 말이네?”
“그렇습니다.”
“저들이 플리피인이 아닐 확률은?”
내 물음에 씨드는 확신 어린 목소리로 답했다.
“불행히도 플리피인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응?”
“조금 전부터 메인시스템을 통해 본 함을 통제하기 위한 접촉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사령관님.”
“어…. 그거 위험한 거 아니냐?”
“사령관님께서 저를 뽑으시는 순간부터 이미 마스터 코드가 변경되었기에 메인시스템 접속에 성공한다 해도 저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씨드의 말에 마음이 조금 안심이 되자 깊숙한 곳에서 불쾌한 감정이 솟구쳤다.
‘감히?’
누가 뭐래도 씨드는 내 것이다.
포인트도 별로 없던 시절. 무려 50번이나 되는 뽑기를 돌려 얻은 내 것.
비록 처음엔 똥망템이니 뭐니 했지만, 지금은 없어서는 안 되는 완전한 내 것.
그런데 저들은 허락도 구하지 않고 감히 내 것에 손을 뻗었다.
“이런…. X발 것들이 감히….”
플리피인.
저들이 뭣 때문에 이 아공간 안에서 문명을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궁금증은 이제 사라졌다.
단지 내 것에 함부로 손을 뻗었다는 불쾌함만이 남았을 뿐.
작디작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진보된 마도 문명.
플리피인들이 만들어낸 저 아름다운 마도 문명의 모든 것들이 탐나기 시작했다.
멸망한 세계가 남긴 마도 과학의 정수.
꿀꺽.
‘저 모든 것들을 내 주머니로 날름 집어삼킬 방법이 없을까?’
내 안에 잠재돼 있던 탐욕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
강현과 씨드가 도시 외곽에 모습을 드러낸 그 시각.
플리피 시티에서 가장 낮은 건물.
국가 대회의실에서는 퇴역 전함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비상 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퇴역해서 사라졌어야 할 우리 전함이 다시 나타났다…. 이게 검은 악마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소?”
둥근 원형의 탁자를 가운데에 두고 마주한 수십 명의 의원.
의장의 물음에 그중 한 사람이 손을 들고 조용히 발언을 시작했다.
“일단 현 상황에서 누구의 소행이냐는 그다지 중요한 것 같지 않습니다. 의장님. 중요한 것은 수백 년 전 퇴역했던 샤이닝 에로우가 등장했고 전함의 통제를 위한 마스터 코드가 막힌 이상, 샤이닝 에로우를 적으로 상정하고 대응하는 게 옳다고 생각됩니다.”
그의 발언이 끝나자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던 의원 하나가 손을 들더니 반론을 제기했다.
“아직 샤이닝 에로우의 공격 의사는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 검은 악마라는 강대한 적이 존재하는 이상, 굳이 선공해서 적을 늘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메인 채널에 접속하는 것은 실패했지만 통신 채널은 열려 있으니 공격전 마스터 코드의 주인과 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판단됩니다.”
반론을 위한 반론이 아닌 합리적 결과의 도출을 위한 토론.
아무런 감정의 흔들림 없이 토론하는 그들의 모습은 지구 인류가 꿈꾸던 가장 이상적인 토론의 모습이었다.
“흠. 그럼 마스터 코드의 주인과 대화를 하기 전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결전 병기의 출격을 준비해 놓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의장이 그렇게 결정을 내렸을 때.
우웅-.
약한 진동과 함께 대회의실 중앙에 거대한 홀로그램 화면이 떠올랐다.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검은 머리칼에 검은 눈동자. 날카로운 눈매를 악귀처럼 일그러트린 얼굴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남자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우며 그 정보가 떠오르는 순간.
이름: 알 수 없음.
신장: 검은 악마와 동급일 것으로 추정.
마나: 측정 불가.
특이사항: 미스터 코드의 주인으로 추정.
좌중에 있던 의원들은 탄식을 참지 못했다.
“허어. 어찌 저런 얼굴이….”
“다, 당장 결전 병기 아폴론을 출격시켜야 합니다!”
“결단코 저런 악귀의 형상을 한 생명체가 선의를 가지고 접근해 왔을 리가 없습니다! 검은 악마의 하수인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결전 병기 아폴론의 출격을 결의하는 플리피인들.
그것은 플리피인들에겐 너무나도 플리피인 중심적인 심미안이 가져온 대참사였고.
강현에겐 울고 싶은 놈 뺨 때리는 격이었다.
성인 평균 신장 2㎜의 초소형 외계 인류 플리피인.
그들은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완벽하게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하는 미의 종족이었다.
마치 판타지 영화에 나오는 엘프처럼.
그렇게 강현도 모르는 사이.
플리피인들이 검은 악마를 상대하기 위해 만든 결전 병기 아폴론이 강현을 상대하기 위해 출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