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인류의 배신자들 (3).
남자 셋에 여자 둘.
성물이 만들어낸 결계 안에서 신이랍시고 힘을 남발하다 끌려 나온 사도의 수는 총 다섯.
그들의 연령대는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이었다.
그들의 등급이 SSS급인 걸 생각하면 어려도 너무도 어린 나이였다.
저들이 모두 도연우 정도의 천재가 아니고서야 저 나이대에 SSS급이라니 말도 안 되는 경지였다.
스릉.
서태촌이 로브와 가면이 벗겨진 그들 앞으로 칼을 뽑아 들고 나섰다.
일체의 감정이 비치지 않는 얼굴에 서늘한 목소리.
“너희는 모두 오늘 이곳에서 죽을 거다. 지은 죄가 있으니 억울하다고 생각하지는 말거라.”
그는 인류를 배신한 배덕자들을 향한 분노를 담아 한 마디 한 마디 짓씹어 뱉었다.
어차피 그들이 알아듣지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지 않으면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80여 년이다. 던전과 함께 몬스터가 등장하고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피땀을 흘리며 노력해 왔어.”
서-걱.
톡. 데구루루.
가벼운 칼질 한 번에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 카를로스의 목이 잘려 바닥을 뒹굴었다.
푸시싯-.
순간 시뻘건 선혈이 분수처럼 치솟아 올랐지만, 서태촌은 개의치 않았다.
“그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나라이고 지켜진 평화다. 그런 감히 네까짓 것들이….”
서-걱.
다시 한번 이어진 칼질에 제슈프의 목이 잘려나갔다.
“…그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이 나라를 짓밟고 능멸해?”
서걱.
서태촌은 마치 추수를 하는 농부처럼 온 힘과 정성을 다해 놈들의 목을 베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난 80여 년간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스러져야만 했던 수많은 영혼의 원한을 달래줄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사도의 목을 거침없이 베어가던 단죄의 칼날이 마지막 남은 죄인의 목을 베어내려 할 때였다.
“사, 살려주세요!”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던 다른 사도들과 율리아는 달랐다.
흔들리는 눈동자와 떨리는 목소리.
“제, 제가 아는 모든 정보를 알려드릴게요! 그러니까 제발 살려주세요!”
“정보?”
“네. 정보요. 그, 그러니까 교단의 위치라던지. 신들이 정한 영역이라든지 남은 사도들의 위치도 제가 다 알아요. 그러니까 제발….”
“말해봐.”
서태촌의 말에 살 수 있다는 한 가닥 희망을 발견한 것일까?
율리아는 묻지도 않은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교단의 위치는…….”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마도 위성과 드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송출됐다.
***
강남 대참사.
그 일이 있고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누군가는 벌써 세 번째 일어난 국가 재난급 테러에 정부의 무능을 성토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어떤 법적인 절차 없이 사도들의 목을 잘라버린 서태촌을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여론의 뭇매를 맞고 꼬리를 말았다.
사도 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율리아.
그녀는 서태촌의 칼날 아래서 유일하게 목숨을 부지했다.
말 그대로 목숨만.
서태촌에 의해 마나홀이 파괴된 율리아는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어졌고.
이곳저곳 끌려다니며 심문을 당하며 자신이 아는 것을 모조리 말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과학기술과 온갖 스킬과 마법이 병행된 고문이 동반된 것은 당연했다.
적이었던 율리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녀를 위한 인권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세계는 교단과 12신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동안 교단의 사도와 신도들이 해왔던 일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충격! 던전은 외계 신들의 지구침략을 위한 전초기지!’
던전을 클리어할수록 지구의 마나 밀도가 높아지며 그것이 외계 신들의 강림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에 몇몇 시민단체에선 던전 클리어 반대를 외치며 들고 일어났다.
‘25년 전 빅 웨이브 외계 신들이 벌인 짓!’
하지만 던전을 클리어하지 않아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경우 더 많은 마나가 몬스터와 함께 방출된다는 사실에 시위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빅 웨이브로 가족과 친지를 잃은 이들의 원망이 외계 신들에게 향하게 됐다.
‘어느 테러리스트의 고백. 우리는 대한민국을 지워버리기 위해 왔다.’
신들이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위협국으로 판단해 지도에서 지워버리라 명령을 했다는 율리아의 고백이 이어졌을 땐 그녀를 사형시키라는 청원이 빗발쳤고.
지금도 강남 대참사의 유가족들은 청와대 앞에서 시위 중이었다.
그것 외에도 신물과 포털을 달군 기사는 수도 없이 많았다.
‘재해급 몬스터는 외계 신들의 종이었다.’
‘의문 속에 죽어간 세계 각국 비운의 천재들 그 뒤엔 사도들이 있었다!!’
‘외계 신을 경배하는 교단의 위치. 호주로 밝혀져.’
‘속보. 일본 총리는 교단의 신도?’
‘교단의 사도인 천마와 중국 국가주석 쉬샤오밍의 관계.’
‘세계의 적이 돼버린 호주. 호주 정부는 교단의 존재를 몰랐나?’
율리아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심지에 불붙은 폭탄과도 같았고, 그것은 수많은 루머를 재생산하기도 했다.
그렇게 폭풍과도 같은 시간이 흐르고 기사의 논조가 바뀌기 시작했다.
‘외계 신들의 지구 침공. 범국가적인 대응이 필요할 때.’
‘인류는 지구를 지켜낼 수 있는가?’
과연 인류는 외계 신들과 싸워 이길 수 있는가?
이 의문에 확실한 답을 내놓는 이는 없었다.
누군가는 결사 항전을 해야 한다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신의 강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저명한 학자네 전문가네 하는 이들이 쏟아낸 말 말 말.
그저 언어 쓰레기일 뿐인 그것들이 잠잠해질 무렵.
교단의 사도와 신도들은 인류의 배신자들이 되어 있었고, 각국 정부에서는 정체를 숨기고 활동 중인 그들을 찾아내기 위해 공권력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속보! 대현전자 각성자 전용 레벨업 아이템, 토플란 시스템 출시!’
‘마나의 묘약 양산 성공! 대 각성의 시대 열린다!’
‘힘의 묘약, 민첩의 묘약 판매개시! 각성과 함께 다이렉트로 D급까지 승급!’
강현이 뿌려놓았던 씨앗들이 하나둘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
토플란 시스템이 시중에 뿌려졌다.
한울 길드에 설치했던 것처럼 신성한 제단 형식이 아닌 헬멧형식으로 만들어진 다운그레이드 버전이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C급 마나석 한 개로 한 달 정도 사용이 가능하며 최대 A급까지 승급할 수 있었다.
“역시 공돌이를 갈아 넣으면 뭐든 만들어지는구나.”
대현 토털 아이템의 연구원들이 들으면 피를 토하고 쓰러질지도 모르지만 뭐 어쩌겠는가?
원래 사업가 마인드가 다 그런 거 아닌가?
토플란 시스템 복제가 완료되고 새로운 아이템 몇 개를 건네주니 연구원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뭔가 저주 섞인 비명 같기도 했지만.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는가?
음. 환호성이었을 거야. 아마도.
호주가 교단의 근거리로 밝혀진 이후.
각국 정부는 거의 모든 마도 위성을 호주 대륙을 훑는 데 투입했고, 씨드가 중국에서 탈취한 마도 위성도 그곳에 투입했다.
영감님들 이하 길드장들은 더 빠른 레벨업을 위해 토플란 시스템에 접속했고, 덕분에 나는 두 영감님이 사용할 시스템을 추가로 구매해야 했다.
‘피 같은 내 포인트.’
하지만 포인트를 아낄 수는 없었다.
인류는 지금 교단, 그리고 신과의 전쟁을 앞두고 있었고 강자는 더 많을수록 좋았으니까.
지아는 내가 해피 포인트를 얻는 것에 도움을 주고자 재단설립에 박차를 가했고 각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 전 세계적으로 복지사업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재해급 몬스터를 처분한 금액까지 포함해 초기 설립 비용만 30조가 넘는 거금이 들어갔으니 개인이 운영하는 복지 재단치고는 어마어마한 규모라고 볼 수 있었다.
‘뭐 덕분에 이제 포인트 수급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지.’
복지 재단은 물론 마나의 묘약부터 토플란 시스템까지.
나로 인해 만들어진 아이템이 팔리고 사용될수록 내가 얻는 포인트의 양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초당 백에서 천 단위로 쌓이는 포인트를 보면 안 먹어도 배가 부른 느낌이다.
‘이런 게 바로 날먹이라는 거지. 흐흐.’
물론 이게 씨뿌리는 농부의 심정으로 열심히 돈과 아이템을 뿌린 덕이다.
나 혼자 살겠다고 꽁꽁 싸매고 있었다면 이렇게 성장하지도 못했을 테지.
“자-. 난 준비 끝난 것 같은데. 마도 위성은 어때. 씨드?”
“다차원 송수신기를 이용하면 간단한 조작엔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금식충 스킬로 청동 미믹을 흡수했다.
워프 게이트는 준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
└미확인 포털(Unidentified Portal): 어디로 통하는지 알 수 없는 포털을 생성한다. (10/10)
……
위험하다 싶으면 포털 열고 튈 거다.
행여나 전용 던전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기에 스마트폰도 몇 개 챙겼다.
다차원 송수신기를 깔아두면 던전 안에서도 지구와 연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뭐 때문에 이렇게 바리바리 준비하냐고?
그동안 미뤄왔던 세 가지 아공간 공략을 시작할 참이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교단도, 그놈들이 믿는 신도 어떻게 나올지 알 수가 없다.
율리아의 말로는 강남 대참사를 일으킨 천마는 중도파이고 그녀와 함께 왔던 사도와 신도들은 온건파라고 했다.
‘갑자기 나타나 수백 명을 학살한 놈은 중도파고, 그 뒤를 따라 대한민국을 지워버리기 위해 왔다는 놈들이 온건파라니 말 같지 않은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지구상의 인간을 멸종시켜야 한다는 게 강경파의 주장이라니 저들이 왜 온건파인지 이해가 될 정도였다.
25년 전 일어났던 빅 웨이브도 강경파의 짓이었다고 하니, 온건파의 세력이 약해진 지금 강경파라는 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두렵기까지 했다.
덕분에 나는 우리 부모님의 원수를 알게 됐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부모님과 조부모님이지만 자식된 도리로 복수는 해야지.
강해져야 한다.
아공간 안에서만큼이라도 반신급 존재를 상대할 수 있을 만큼.
그래서 공략을 미뤘던 아공간들을 공략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래도 내가 강해지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는 것 같거든.
황금색. 검은색. 하얀색.
전용 던전에 들어온 후 선택 장애가 발동했다.
“씨드. 네가 골라봐. 어떤 게 생존확률이 높을까?”
황금색 아공간은 이미 한번 경험을 해봤지만 남은 아공간이 인필리언과 같은 형식이라곤 장담할 수 없었다.
검은색은 풍기는 기운이 암울한 거로 봐서 딱 봐도 난이도가 헬일 것 같았고.
하얀색은 내가 지닌 신성 스탯과 비슷한 기운이 느껴지는 게 맘에 들지 않았다.
왜냐고?
생각해봐. 지금 지구를 침략하고 있는 것들은 명색이 신이라 불렸던 것들이다.
다른 신들과의 전쟁에 패해 신격을 잃고 영락했다고 하더라마는 그래도 찜찜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씨드의 의견을 물어본 거다.
우리 만능 AI 씨드라면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지 않을까?
잠시 고민을 하던 씨드는 신중히 말했다.
“생존확률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느 게 더 끌리냐고 물으신다면 검은색. 특히 저 아공간이 끌립니다. 사령관님.”
“끌린다? 너 AI가 그런 비논리적인 말을 해도 되는 거야?”
“…….”
우리 씨드가 달라졌어요.
AI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게 아니라 인간처럼 끌린다고 말하다니.
지구 문명이 모범생 AI 하나를 타락시켰다.
요즘 드라마를 많이 보는 것 같던데 그것 때문일까?
예전에 비하면 확실히 감정이 풍부해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저기로 가자 이거지?”
“네. 사령관님.”
씨드의 화살촉이 가리키는 검은 아공간.
‘내가 보기엔 다른 아공간들과 별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
어차피 언젠가는 청소를 해야 할 아공간이었기에 고민은 짧았다.
“오케이. 가자.”
나는 씨드의 본체인 샤이닝 에로우 NO 1을 인벤토리에 수납하고 걸음을 옮겼다.
왠지 끈적하고 암울한 오라를 풀풀 풍기는 아공간을 향해.
설마 저 안에 지옥이 있기야 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