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천마 출현 (2).
숨 쉴 틈 없이 쏟아지는 파상공세.
파바바박!
실초와 허초의 구분이 모호한 교주의 움직임에 도연우는 속절없이 밀려 방어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뿌득.
‘대체 이런 놈이 어디에서 나타난 거지?’
앳돼 보이는 겉모습에 상대를 얕잡아 봤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도연우는 전력을 다했고.
상대는 허무하리만치 쉽게 그 공격을 막아냈다.
“공격이 단순하고 직선적이야. 에잉…. 허와 실도 제대로 구분 못 하는 눈이라니, 양심이 있으면 그냥 빼버리는 게 어때?”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쉴 새 없이 주절거리는 저 주둥아리.
“쯧쯧. 그릇은 대기(大器)인데 그 안에 든 것은 온통 쓰레기뿐이구나. 그릇이 아깝다 이놈아.”
알아듣진 못했지만, 그 말투나 뉘앙스로 상대가 자신을 얕잡아보고 있다는 것을 느낀 도연우는 분노가 끓어올랐지만 이렇다 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일섬. 일섬만영. 일섬만영 변환식.
그의 깨달음이 오롯이 담긴 스킬들을 교주는 너무나도 쉽게 파훼하고 역공을 취했으니까.
초반엔 승기를 잡을 듯 보였으나 도연우는 곧 수세에 몰렸다.
외양은 10대 중반의 야리야리한 소년이지만 도연우는 그 안에 들어있는 괴물을 몸소 체험하는 중이었다.
‘젠장. 저 나이에 이 정도 실력을 갖추는 게 가능한가?’
일반적인 스킬과는 다른, 어딘가 이질적인 스킬 운용법부터 자신의 스킬을 모두 꿰뚫어 보는 듯한 움직임까지.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것이 없는 아이였다.
“하. 하하.”
실소가 나왔다.
‘현이도 그렇고 이 꼬마도 그렇고. 하…. 연우야…. 도연우. 주변에서 세기의 천재니 뭐니 떠받들어 주니까 콧대가 하늘을 찌르더니 저런 핏덩이한테도 밀리고 꼴좋다 이 새끼야.’
교주의 실제 나이를 몰라서 생긴 착각이었지만 그것은 비대하고 오만했던 도연우의 자아를 깎아내리기에 충분했다.
물론 그런 자아 성찰의 와중에도 폭풍처럼 쏟아져 나오는 교주의 공격을 모조리 막아내고 있는 도연우였다.
콰아아앙!
손바닥 모양의 검은색 강기가 심장 어림을 노리고 쇄도해 오기에 만 개로 흩어졌던 빛을 한점으로 모아 막아냈더니 핏덩어리 새끼가 공격을 하다말고 손뼉을 치며 좋아한다.
“천마신장(天魔神掌)까지 막아내다니, 과연 시스템 사용자라 이건가?!”
대등한 상대라 생각했다면 보일 수 없는 반응.
뿌득.
이러니 도연우가 이를 갈지 않고 배기겠는가?
아직 10대 중후반밖에 안 된(겉으로 보기엔) 젖비린내나는 애송이에게 품평을 당하는 처지가 되었으니까.
교주는 도연우를 시스템 사용자인 강현으로, 도연우는 교주를 고작 10대 중후반인 핏덩이로.
서로의 오해가 겹친 상황이었지만 그것을 지적할 만한 이는 이곳에 없었다.
“이…. 핏덩어리 새끼가!!”
때문에, 분노한 세기의 천재 입에선 노성이 튀어나왔고 그 고함보다 빠르게 수천 줄기의 빛살이 교주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다시 시작된 인간을 벗어난 괴수들의 전투.
퍼펑!
콰과과광!
손짓 한 번에 건물이 무너져 내리고 다시 가루가 되어 증발하는 전투가 벌어지는 가운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그 전투를 지켜보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끼어들 틈이 없구만….”
“저길 기어들겠다고? 뭐 새로운 자살 방법인가? 자네가 먼저 가겠다면 내 말리지 않겠네.”
서태촌과 구정철. 그리고 10대 길드의 수장들이 전투의 여파가 미치지 않는 거리에서 도연우와 교주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 저게 말이 되오? 고작 열대여섯밖에 안 돼 보이는 꼬마가 도 길드장과 동수라니…….”
“동수는 무슨…. 도 길드장이 밀리는 것 같구만.”
“뒷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는 것도 정도가 있지. 저 나이에 저게 가능한가요?”
“…….”
“내가 엄마 뱃속부터 각성했어도 안 될 것 같은데.”
물론 이들의 대화에 끼지 못한 자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화랑 길드장인 구지석과 싸울아비 길드장인 곽영철이 그랬다.
뭐가 눈에 보여야 대화에 끼기라도 할 텐데 눈앞에서 뭔가 휙휙 움직이면 폭음이 터진다는 것 말고는 그들이 파악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뭐 좀 보입니까?”
곽영철의 나직한 물음에 구지석이 미약하게 인상을 찡그렸다.
‘이자가 나를 놀리는 건가?’
근접전투계열인 검사가 마법사에게 근접 전투가 보이냐고 묻는 건 무슨 심보인가?
“저 마법삽니다….”
“아. 죄송합니다. 제 눈엔 뭐가 안 보여서 혹시 구 길드장님은 뭐 좀 보이시나 해서…. 실례했습니다.”
잠시 실없는 대화를 나누던 그들은 이내 시선을 돌려 전장을 바라봤다.
불야성.
서울의 중심 강남이 실시간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일반인들을 이 전장에서 멀리 피신시키는 것.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그들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그러쥐었다.
“빌어먹을.”
“…정말 빌어먹을 일이네요.”
SS급의 각성자.
대한민국을 지탱해 온 10대 길드의 수장.
비록 괴물 같은 두 노인네와 세기의 천재 도연우에게 밀려 빛바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들이 대한민국 헌터계를 이끌어 왔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대한민국이 또다시 피를 흘리고 있는 상황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이 그들을 분노케 했다.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토플란 시스템의 효과는 확실했다.
비록 일반인들은 감당하기 힘든 천문학적인 금액의 마나석을 잡아먹긴 하지만 분명한 건 시스템 안에서는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경지를 직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상태창.
그리고 몬스터를 처리한 후 얻을 수 있는 스탯 포인트라는 확실한 보상.
그것은 길드장들의 향상심을 자극했고 깨달음의 문턱에 주저앉아 있던 몇몇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어렵지 않게 승급했다.
그렇게 승급을 이루고 산둥반도에서 1개 사단과 1개의 초인 병단을 쓸어버리며 강함을 증명해낸 그들이었기에 도연우와 교주의 싸움을 보며 받은 충격이 더욱 커다랄 수밖에 없었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저들이 과연 같은 인간이 맞기는 한 걸까?’
‘제기랄.’
하지만 서태촌과 구정철은 패배감에 절어가는 길드장들과 달랐다.
“서가야 보이냐?”
“음…. 저게 되놈들이 말하는 허초와 실초인 듯싶네.”
“여러 가지 잡다한 스킬을 꽤 그럴싸하게 버무려 놓은 것 말곤 별것 없어 보이는데. 도 길드장이 왜 저리 고전을 하는지 모르겠군.”
“그야 우리는 외부에서 지켜보는 제삼자고 도 길드장은 맞상대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장기도 훈수 두는 놈이 길을 더 잘 보는 법이지.”
서태촌의 말에 구정철이 ‘그런가?’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나저나 저 꼬맹이 입에서 현이 이름이 나왔다지?”
“음. 그렇다고 들었어. 산둥반도에 가서 난리를 친 건 우린데 왜 제자 놈 이름이 나온 건지 이해가 안 되는군.”
“우리가 대통령하고 면담하고 있을 때 중국에 가서 뭔 사고라도 쳤나 보지. 그게 아니면….”
“아니면?”
“저 꼬맹이가 ‘교단’의 ‘사도’일 수도 있지.”
놀랍게도 서태촌은 한 번의 추론으로 두 가지 진실을 모두 맞추는 능력을 보여줬다.
“교단의 사도라….”
“도 길드장이 만주에서 만난 사도도 외양은 2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고 하지 않던가. 신의 축복이라도 받은 모양이지.”
“아! 그렇다면 저 꼬맹이가 어린 나이에 저런 무력을 지닌 것도 이해가 되는군.”
구정철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을 때였다.
꽈르르르릉.
먼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울리며 번쩍이는 뇌전이 전장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오는 모양이군.”
“저놈도 양반은 못 되는 거지. 끌끌.”
구정철의 목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듯 그들 옆으로 떨어져 내리는 한줄기 벼락.
“이게 무슨 상황이죠?”
교주가 그토록 만나고자 했던 인기스타 강현의 등장이었다.
***
황량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강남은 그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었다.
낮보다는 밤이 더 화려했던 번화가는 온데간데없고 폭격을 맞은 듯 쓰러져가는 을씨년스러운 폐건물들이 그득했다.
‘없네.’
중요한 사실은 그 폐건물 중 하나는 분명 내 건물이었다는 것.
‘없어….’
길드사무실과 오프라인 경매장이 있던 건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름 공들여 리모델링까지 했던 건물이라 애착이 갔는데 이젠 건물이 있던 자리가 어딘지도 분간이 안 됐다.
‘연말이라 야근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인명피해는 없다는 것.
건물이야 다시 사면 되지만 인명피해는 복구가 안 된다.
그렇게 시린 마음을 위로하고 있을 때 저 아래로 길드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길드장들 앞에 서 있는 두 영감님 곁에 내려서며 물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죠?”
내 물음에 구 영감님이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도 아는 바는 없네. 그저 저 꼬마가 자네를 찾아왔다고 짐작을 하고 있을 뿐이지. 우리가 오기 전부터 지금까지 저렇게 박 터지게 싸우고 있거든.”
그때 들어오는 기습공격.
“자네 혹시 중국에 가서 뭔 짓 했나?”
서 영감님의 날카로운 질문에 움찔하긴 했지만 난 의연하게 오리발을 내밀었다.
“전혀요. 제가 중국을 갈 일이 뭐가 있다고요. 하하.”
“그렇지? 그런데 왜 저 꼬맹이가 자네를 찾지? 산둥반도에 가서 깽판 친 건 우린데 말이야.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네.”
구 영감님은 ‘그래’하며 내 말을 믿는 듯한 반응을 내보였지만 서 영감님은 여전히 의심을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양심이 찔리긴 했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욱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잘못하면 꿀꺽 삼킨 마도 위성을 모조리 토해내야 할지도 모르니까.
이럴 때 필요한 건 뭐다?
“그나저나 꼬맹이가 보통실력이 아니네요. 아직 스무 살도 안 돼 보이던데.”
“대충 보니 교단의 사도 중 하나인 것 같은데 그걸 고려하더라도 나이에 비해 너무 강해.”
그러고 보니 만주에서 만났던 율리아도 고작 20대 중반에 SSS급 이상의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대오각성한 연우 형에게 된통 깨지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지 고작 10대 중반에 불과한 꼬맹이가 연우 형과 동수를 이루고 있다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공간시에 보이는 상대정보에도 나를 향한 악의만 검은색으로 표시될 뿐 온통 물음표투성이라 답답할 따름이었다.
그나저나 이 양반들 왜 안 움직여?
“계속 이렇게 구경만 하실 겁니까?”
“그럼 저 싸움에 끼어들라고? 꿈 깨. 우리 실력에 저기 끼어드는 건 죽여달라고 목 들이미는 거하고 다를 게 없어. 도 길드장한테 방해나 안 되면 다행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죠?
지금이야 뇌신일체를 해제했기에 꼬꼬마와 연우 형이 짝짜꿍하는 게 잘 보이지 않지만.
이곳으로 날아오면서 봤을 땐 분명히 보였다.
연우 형이 꼬꼬마의 춤사위에 어울려주는 걸.
난 단순히 연우 형이 꼬꼬마를 생포하기 위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여기서 봤을 때야 저 꼬마의 허초와 실초가 어렴풋이 분간되지만, 막상 저 꼬마와 직접 마주한다면, 도 길드장처럼 막아낼 수 있다 장담할 수가 없네.”
“어디서 저런 괴물을 만들어 낸 건지. 아무리 ‘교단’의 사도라고 해도 저 어린 나이에 말도 안 되는 무력이야.”
‘저게 그렇게 위협적이라고?’
두 영감님의 말을 들은 나는 한 가지를 확신할 수 있었다.
내 눈에는 그저 그런 춤사위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허초라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춤사위 따위가 아니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