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 무력시위 (6).
“또…. 진법이냐?”
혼천미로진(混天迷路陣).
밀실에 설치된 육합귀문진을 벗어난 나를 맞이한 것은 혼천미로진이라는 새로운 진법이었다.
밀실이라는 좁은 공간에 펼쳐졌던 육합귀문진과는 다르게 창천국이라는 거대한 건물에 펼쳐진 혼천미로진은 그 크기만큼이나 많은 이들이 진 안에 들어와 있었다.
“대략 만 명이 조금 넘는 것 같은데….”
“정확히는 일만사백구십이 명입니다. 사령관님.”
“…많이도 들어왔네. 그나저나 마도 위성은 어떻게 됐어?”
내가 밀실에서 육합귀문진의 정보를 추출하는 동안 씨드도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이곳은 창천국. 중국이 발사한 모든 우주발사체를 관리하는 곳이었다.
‘메인 서버에 접속할 수만 있다면 중국이 가지고 있는 모든 마도 위성의 관리 권한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아공간 조작으로 육합귀문진에 의해 막혀있던 광케이블 하나를 연결해 주었다.
보안프로그램이 있겠지만, 적어도 이 지구상에 씨드가 뚫지 못할 보안시스템은 없을 테니 걱정 없었다.
그리고 씨드는 그런 내 믿음에 확실한 보답을 줬다.
“창천국이 관리하고 있던 지구 궤도를 돌고 있는 마도 위성 196개를 모두 확보했습니다.”
씨드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중국이 외부로 눈 돌리기가 힘들어졌겠네.”
내 목적은 원천적으로 중국과의 전쟁이 일어나는 것 막고자 하는 것이었다.
‘싸우면 진다 이긴다.’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피를 흘릴 수많은 민간인을 위해서였다.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누가 뭐래도 힘없는 민간인들이었으니까.
마도 위성이 전쟁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마도 위성은 일종의 눈이다.
어마어마한 넓이의 중국 대륙을 감시하는 눈.
던전의 발생과 던전 브레이크, 몬스터의 이동을 관찰하는 눈.
물론 통신과 GPS는 덤이다.
그리고 방금 중국은 그 눈을 잃었다.
정확히는 내가 빼앗았다.
‘그 말은 이 넓은 땅덩이에 던전을 관리하기 위해선 몇십 년 전처럼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소리지.’
땅덩이가 큰 만큼 발품을 팔아야 할 사람은 늘어날 테고 그것을 관리하기 위한 인원도 무시 못 할 거다.
‘내부가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을 일으킬 ‘미친놈’은 드물지.’
아무리 황제처럼 절대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쉬샤오밍이라 하더라도 내부가 혼란스러워지면 전쟁을 주장할 명분이 없을 거라는 게 내 판단이었다.
‘이렇게 되면 굳이 쉬샤오밍을 찾아가지 않아도 될 것 같기도 하고. 흐흐.’
내가 쉬샤오밍을 찾아 창천국에 온 후 처음 만난 적이 무려 SS급 각성자 열한 명이었다.
그것도 대역을 내세워 암살범을 잡겠다고 배치한 병력이 그 정도라는 말이다.
거기에 혼천미로진 안에 있는 이들 중 절반은 각성자였고 그중 약 500명은 S급 각성자였다.
아무리 암살자를 잡기 위해서라지만 대역에게 이 정도 경호 인력을 대동시켰다는 건.
‘쉬샤오밍 본인의 경호 인력은 더 어마어마하다는 거겠지.’
쉬샤오밍을 찾아가지 않는 게 장수의 지름길이라는 소리였다.
물론 그것도 이 혼천미로진을 벗어나고 난 다음의 얘기였지만.
‘어려울 것도 없지.’
이곳을 벗어나는 건 어려울 게 없다.
말했잖은가.
저들에겐 불행하게도 이곳은 혼천미로진이 펼쳐진 아공간이고, 아공간 안에서 나는 전능에 가까운 존재다.
‘그전에 선물을 줘야겠지?’
쓱쓱.
그런 내게 손짓 몇 번으로 미로의 구조를 바꾸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쓱쓱-쓱.
허공을 향해 휘두르는 손짓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미로는 좀 더 복잡해졌고, 마침내 적은 열 명 혹은 스무 명씩 모인 소규모 부대 단위로 고립되었다.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왜 이렇게 번거롭게 일 처리를 하느냐고.
그냥 깡그리 죽여버리면 될 일을 구태여 이렇게 번거롭게 처리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귀찮다고,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그런 학살을 자행하면 내가 핵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른 쉬샤오밍이나 각성자 센터를 테러한 욱일회랑 다를 게 없지.’
별 시답지 않은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저놈들과 같아질 수는 없는 노릇이지.’
불과 몇 달 전까지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했던 내가 조금 강한 힘을 가지게 됐다고 학살을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진짜 쳐 죽여야 할 놈은 쉬샤오밍하고 그 아래에서 물고 빨고 하는 윗대가리들이니까.’
그리고 왠지 이들을 모두 죽이는 건 시스템이 추구하는 것과 방향성이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뿌린, 선행이라 부르기엔 목적이 너무 뚜렷한 기부금이 만들어낸 해피포인트의 행렬.
고립된 피난민들에게 전달되던 구호품들이 뿜어낸 그 찬란한 황금빛을 보면 시스템이 원하는 건 명확했다.
말 그대로 모두의 행복.
시스템 이름마저 해피니스 시스템이 아니던가?
그런 내가 이들을 모두 죽인다면 관리자는 내게 시스템의 사용 권한을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
‘내가 원해서 받은 것이 아니듯이 내 의견과 상관없이 빼앗길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죽이는 건 윗대가리들만으로도 충분해. 남은 사람들은 교화를 시켜야지.’
나는 거대한 감옥을 만들었다.
그들이 직접 설치한 혼천미로진을 베이스로 한 창천국이라는 감옥을.
***
달그락.
탁자 위로 찻잔이 놓이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찻잔을 내려놓은 당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테지만 적어도 그와 마주 앉은 서효명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허허. 연락이 늦군.”
소년답지 않은 웃음과 나직한 말 한마디에 서효명의 등줄기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지금쯤이면 이미 끝났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그렇습니다.”
교주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는 것은 죽여달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으니 대답을 하긴 했지만.
정작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은 죽여달라는 말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말이었다.
“흠…. 그런데 어찌 아직 연락이 없을꼬?”
허름한 모옥 안, 낡은 다탁 위의 찻잔에선 여전히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교주의 얼굴엔 짙은 한기가 가득했다.
‘저도 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내심 외쳐보는 서효명이지만 입 밖으론 꺼낼 수 없는 말이었다.
적어도 머리가 목에 붙어있는 동안에는 말이다.
그때.
우우웅-.
마치 구세주처럼 서효명의 헌터 와치가 진동했다.
발신자는 천호단의 부단주.
창천국의 일을 총괄하고 있는 수하였다.
기회였다.
이 질식할 것만 같은 모옥을 벗어날 기회.
“통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교주님.”
하지만 그 기회는 교주의 한마디에 무참히 짓밟혔다.
“여기서 받아. 어차피 나도 알아야 할 일인데 굳이 번거로울 필요가 있겠는가?”
“아…. 예.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교주님.”
교주의 허락을 받은 서효명은 부단주와 통화를 연결했다.
“나야. 어떻게 되었나?”
낮고 묵직한 목소리.
마주 앉은 교주의 입에서 피식거리는 웃음이 새어 나왔고 서효명의 목덜미가 붉게 물들었다.
굼벵이 앞에서 주름을 잡는 것도 아니고 민망한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부단주가 전해온 소식에 그 얼굴은 금세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죄송합니다. 주군. 알 수 없는 힘이 작용해 진법이 변화했고, 내부와의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진을 설치한 제갈묘재가 파훼해 보려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허…. 뭐라?”
“죄송합니다. 주군.”
충격적인 소식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추가로 보고 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보고해.”
“창천국에서 관리 중이던 마도 위성들이 모두 제자리를 이탈했습니다.”
“뭐?”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관리 주체인 창천국에 출입이 안 되는 상황이니 통제를 할 수 없다는 건 이해가 됐다.
하지만 위성이 정해진 궤도를 이탈했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군사위성관리국은? 창천국에 문제가 생겼을 시 모든 위성의 통제는 군사위성관리국으로 이관이 될 텐데?”
한 가닥 희망은 이어진 부단주의 보고에 무참히 짓밟혔다.
“그게…. 군사위성관리국에서도 통제할 수 없다고 합니다. 관리국장의 말로는 아무래도 제어 코드를 탈취당한 것 같다고…….”
그 뒤로 무어라 부단주의 보고가 이어졌지만, 서효명에겐 그 보고를 들을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무의미한 보고가 한참 이어진 뒤 통화가 끝났고.
“쯧쯧. 실패했군.”
교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끈적한 살기가 그의 온몸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하긴….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놈이었다면 신께서 신탁을 내리시지도 않았을 테지.”
“꺽. 끄으으…….”
시뻘겋게 충혈된 눈.
주륵.
신음과 흘러나온 붉은 핏물이 떨어져 내려 모옥의 바닥을 적시는 순간.
“허억! 허어억!”
교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살기가 씻은 듯이 사라지며 서효명은 숨을 쉬는 것을 허락받았다.
“네가 아직 쓸모 있음을 감사하게 여기거라. 그게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서 목이 떨어졌을 테니.”
“가, 감사합니다. 교주님.”
위로되라고 던진 말은 아니었을 테지만, 서효명은 성은을 받은 것처럼 계속 감사하단 말을 되뇌었다.
적어도 자신을 대신할 인물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어지간한 실수는 용서를 해주겠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그런 서효명을 못마땅한 눈으로 내려다보던 교주는 이내 몸을 돌려 모옥을 벗어났다.
“쯧. 귀찮지만 직접 움직여야겠군.”
습관처럼 혀를 차며.
***
해가 지고 있었다.
높디높은 창천국의 꼭대기에서 바라본 석양은 아름다웠다.
그 말은 내가 집을 나온 지 꼬박 이틀이 다 되어가고 있다는 뜻이었고.
이젠 집에 갈 시간이라는 의미였다.
혼천미로진의 정보를 추출한 후 바로 빠져나와서인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하긴, 지난 이틀간 공간의 미학을 사용해 정보를 추출한 것만 세 번이니 정신력이 버티는 게 용하지.’
띠리링. 우웅-.
혼천미로진을 빠져나오자마자 울려대는 헌터 와치는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로 그득했다.
그중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한 것은 바로 ‘내 동생 강지아’.
처음엔 걱정과 안부로 가득했던 문자 메시지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연락 두절 상태인 오빠에 대한 깊은 빡침이 느껴졌다.
하나뿐인 가족이 이틀 동안 연락이 안 됐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난 이 일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기로 했다.
‘이건 누가 뭐래도 연우 형 잘못이지. 가기 싫다는 날 북부로 또 이곳저곳 끌고 다닌 건 누가 뭐래도 연우 형이니까.’
애초에 피난민들에게 구호품을 전달하기 위해 시작한 외출이 이렇게 길어진 것도 다 연우 형 탓이다.
음, 그렇고말고.
그렇게 지아에게 넘겨줄 재물 선택을 끝낸 나는 뇌신일체 스킬을 발현했다.
꽈르르르릉!
“천둥소리?”
“옥상에 누군가가 있다!!”
“드론! 옥상에 생문이 있을지도 모른다. 정찰 드론 띄워!”
갑작스럽게 울린 천둥소리에 창천국 주변에 포진해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지만, 그때 이미 난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아, 혼천미로진에 갇힌 이들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말했다시피 감옥을 만들어 두었다.
SSS급 각성자라도 쉽게 파훼할 수도 파괴할 수도 없는 감옥을.
‘물도, 음식도 없는 감옥에서 얼마나 버티려나?’
혼천미로진이라는 베이스가 깔려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정말 기막힌 지옥을 만들어 두었다.
혼천미로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수만 갈래의 미로를 만드느라 내 뇌가 녹는 줄 알았다.
그렇다고 탈출할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이름 그대로 미로 진이니까, 노력한다면 벗어날 수 있을 거다.
‘노오오오력을 한다면 말이지.’
원래 미로 탈출은 지능순 아니겠는가?
‘탈출을 못 한다면 자기들 머리를 원망해야지.’
인벤토리에 가진 물건들로 그 안에서 얼마나 생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이 최대한 오래 생존하기를 바랐다.
그래야 더욱 고통스러울 테니.
‘판단을 잘못한 대가리의 명령대로 움직인 손발에도 잘못은 있는 거니까.’
하나된 중국이라 했으니 고통도 분담하는 게 도리 아니겠는가.
‘뭐 아니면 말고.’
변형된 혼천미로진이 해제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2주.
하나된 중국인들이 2주 동안 그 안에서 어떤 결론을 내릴지 무척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 되어 위기를 극복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