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 무력시위 (4).
‘역시 천인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어.’
경호실장 마위현은 쉬샤오밍의 예견이 틀리지 않았음에 감탄을 토해냈다.
‘겉으로는 중화가 이미 하나된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아직 내부에 나를 노리는 자들이 있네.’
마위현은 쉬샤오밍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지만, 반론을 꺼내진 않았다.
천인께서 ‘그렇다’ 말하면 그런 것이었으니까.
‘한국과 분쟁이 시작되면 나를 노리는 자들이 움직일 걸세. 나는 그를 이용해 하나된 중국을 무너트리려는 이들을 발본색원하려 하네.’
그렇기에 쉬샤오밍의 명령에 아무런 의문을 표하지 않고 그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했다.
천인의 대역이 만들어지고 천인을 보위해야 할 자신이 대역의 곁에 붙었다.
적을 속이기 위해선 아군 또한 속여야만 했으니까.
물론 그는 천인을 해하려는 자가 중국 내에 있으리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결과는 천인의 말대로였다.
푸른색 뇌전과 함께 나타난 자객이 천인을 노리고 있지 않은가.
“입이 무거운 놈이군. 봤다시피 네가 노리는 천인은 이곳에 계시지 않는다. 이제 어찌할 셈이지?”
“…….”
혼자선 상대하기 어려울 만큼 자객이 남다른 강함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 하찮은 목숨으로 천인을 보위(保衛)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영광이리라.’
자신의 목숨이야 천인에 비하면 하찮기 그지없는 것이었으니까.
자객놈이 천인의 대역을 알아봤지만 상관없었다.
대외적으로는 자신이 천인을 호위하는 경호실장이지만 진실로 천인을 호위하는 것은 천 명의 천호단(天護團)이며.
그 중심에는 20명의 SS급 각성자들이 있었다.
‘그 절반이 이곳에 있으니 놈이 하늘을 나는 재주가 있다 해도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리라.’
천호단 절반인 10명의 SS급 각성자와 480명의 S급 각성자들이 이미 밀실과 창천국을 포위했을 터.
마위현은 자신했다.
저놈 또한 이곳에 뼈를 묻게 될 것이라고.
***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조금 놀랐다.
대역인 게 들켰다는 것만으로 머리를 부숴버릴 줄 몰랐으니까.
“배후를 말해라. 그리하면 네 하찮은 목숨만은 살려주마. 아니, 네놈의 무공이 특출나니 어쩌면 천인께서 네놈을 중히 쓰실지도 모르지.”
거기에 더해 협박과 되지도 않는 회유까지.
‘아무래도 저자의 머릿속에 내가 한국인이라는 선택지는 없는 모양이네. 쉬샤오밍이 암살위협을 받고 있어서인가?’
‘언어의 마술사’ 덕분에 중국어로 말을 했더니 당장 자객이라는 말을 하는 걸 보면 내 추측이 틀린 게 아닌 듯싶었다.
그건 아직 중국 내에 ‘반(反) 쉬샤오밍’ 세력이 남아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SS급이 열.’
눈앞에 있는 남자를 포함하면 무려 11명이나 되는 SS급 각성자가 감각 영역에 느껴졌다.
그렇다고 두려운 마음이 드냐면 또 그건 아니었다.
“…천인께 고개를 숙이고 하나된 중화에 동참해라. 자객.”
저자가 뭐 때문에 이렇게 이빨을 터는 건지 알았고, 덕분에 중국 정부 고위층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정보도 알았으니 이제는 자리를 피해야 할 차례였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11명이나 되는 SS급 각성자를 상대하는 건 ‘아직’ 무리라고 판단했으니까.
연우형이라면 학살도 가능했겠지만.
재해급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전투 보상으로 얻은 스탯을 모두 사용했지만 나는 여전히 S급에 불과했다.
‘아직 1000레벨을 찍지 못해서인가?’
분명 강해진 것은 맞지만 격을 넘어섰다는 느낌은 없었다.
“스킬 사용. 뇌신일체.”
파직- 빠지지직.
밀실을 빠져나가기 위해 스킬을 사용했을 때였다.
느려진 시간 속.
뇌전으로 변환해 움직이는 나를 쫓던 경호원의 눈이 휘며 웃음을 지었다.
‘응?’
의문이 드는 것도 잠시.
빠지지지직!
나는 밀실과 연결되어 있는 전기 배선을 타고 밖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퉁.
‘…어?’
하지만 무언가가 나를 밀어냈다.
당황한 것도 잠시, 다른 전기선으로 몸을 밀어 넣어봤지만 마찬가지.
전기선을 따라 이동하던 몸이 무언가에 막혀 퉁겨지듯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모태솔로로 인해 무려 3배나 더 강해진 나의 뇌기가 힘없이 막힌 것이었다.
그때 느려진 시간 속에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네…가….”
홀로 살아남은 사내가 나를 바라보며 큰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 스킬을 해제하자 사내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제갈세가의 육합귀문진(六合鬼門陣)은 그렇게 쉽게 파훼할 수 없다.”
제갈세가? 육합귀문진?
낯선 단어의 나열에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상대는 그런 나의 표정을 다른 쪽으로 이해했나 보다.
“왜? 제갈세가의 육합귀문진이라니 겁이 나나? 하긴 너도 육합귀문진의 악명을 들었다면 두렵지 않을 도리가 없을 테지.”
내가 겁을 먹은 것으로 말이다.
그리고 나는 사내의 그 행태가 우스웠다.
“내가 겁먹은 거로 보여?”
“뭐?”
“사냥감을 앞둔 사냥꾼이 겁을 먹는 경우가 있던가?”
정작 아까부터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는 건 내가 아닌 사내였으니까.
내가 자신을 사냥감으로 표현한 것이 그 심기를 건드린 듯 사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누가, 누가 사냥감이라는 거냐!!”
사내의 물음에 나는 손가락을 들어 그를 가리켰다.
“당연히 네가 사냥감이고 내가 사냥꾼이지. 딱 보면 몰라?”
그게 사내의 발작 버튼이었나보다.
“감히…. 황룡문의 대제자인 나 마위현을 우습게 보는 것이냐?!”
발작적으로 외친 사내가 내게 쇄도해 오며 황금색으로 물든 양손을 휘둘러왔다.
‘황룡문의 대제자? 그건 또 뭐야?’
중국의 각성자 시스템이 우리나라와 다른 것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문파니 대제자니 하는 말을 들으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내가 펼치는 스킬 또한 마찬가지였다.
쉬 쉭-!
딴에는 빠르고 위력적인 공격이라 생각하고 펼치는 듯 보였으나 내 눈에는 어지럽기 그지없는 춤사위에 불과한 그것은 속도도 느리고 그 위력도 형편없었다.
도대체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그때 던전 청소부 시절 주워들었던 정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중국의 각성자 시스템은 한국과는 다르게 특이하다는 것.
한국이 서구 문물의 영향을 받아 길드 시스템을 적용한 것에 반해 중국은 자체적인 각성자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바로 문파(門派)와 무림(武林).
82년 전 일어난 대격변 이후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환상 속에 존재하던 무림을 현실에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들은 주장했다.
스킬은 무공(武功)이며 마나는 기(氣)이고 각성자는 무림인(武林人)이라고.
중국엔 수천 년이 넘는 무림의 역사가 있으니 중국이야말로 세계에 퍼져있는 무의 종주국이라고 주장했다.
그때는 그런 억지가 어디 있냐고 농담하지 말라고 웃어넘기고 말았는데, 이제 와 보니 그 말이 진심이었나 보다.
쉬쉬 쉭!
퍼-펑!!
저 쓸데없는 춤사위 끝에 터져 나오는 스킬을 보니 이자들은 진심이었다.
‘호랑이?’
마위현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황금색 호랑이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면서 맹렬하게 짓쳐들어왔다.
마나로 이루어진 스킬이 살아있는 호랑이처럼 움직이는 것이 신기하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저 허리를 가볍게 뒤트는 것만으로도 호랑이는 나를 스쳐 지나갔고.
콰광-!
목표를 잃은 녀석은 밀실의 벽을 들이받으며 허무하게 소멸해 버렸으니까.
들인 노력에 비하면 허망하기 그지없는 결과였지만 마위현은 개의치 않는 듯 공세를 이어왔다.
허공을 어지럽게 점하며 마치 야광봉을 손에 쥔 것처럼 화려한 춤사위를 펼치던 그의 손이 가슴 앞에서 모이더니 이내 한 마리 용의 형상을 뿜어냈다.
‘이래서 황룡문인가?’
휘황찬란한 황금색 빛을 뿜어내는 용이 흉흉한 기운을 내뿜으며 날아왔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확실히 뽀대가 나네.’
하지만 실속은 좀 없었다.
스킬을 시전하기 전까지 펼치는 춤사위도 그렇고, 허공에서 이리저리 몸을 뒤틀며 날아오는 황룡도….
크롤러의 정신없는 변칙공격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었다.
위력적인 스킬이긴 하지만 너무 겉멋에 치중된 느낌이랄까?
콰과광!
“이게 다야?”
회심의 일격이었던 모양인데 그것마저 내가 어렵지 않게 피해 버리자 마위현의 눈에 놀람이 들어찼다.
“어떻게 황룡장(黃龍掌)을 그렇게 쉽게….”
“이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으드득.
“네놈. 보통 자객이 아니구나.”
마위현이 이를 악물며 원독이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마음 같아선 좀 더 놀아주고 싶지만, 시간이 없었다.
밀실 안으로 들어오진 않았지만, 밖에서 느껴지는 열 명의 기운도 그렇고.
샤아아.
슬금슬금 안개를 피워올리며 변화하기 시작한 육합귀문진이라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육합귀문진의 영향인지 내 감각 영역이 축소되고 덩달아 외부에서 느껴지던 각성자들의 기운도 희미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킬 사용. 뇌신일체.’
일단 눈앞에 있는 적부터 확실하게 처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네가 보여 줄 수 있는 게 그게 전부라면 각오해야 할 거야.”
쿠르르릉.
내 목소리에 호응하듯 좁디좁은 밀실 안에 천둥소리가 울렸다.
“내가 아까부터 조금 빡쳐 있는 상태라서 말이야.”
번쩍!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마위현을 향해 몸을 날렸다.
느려진 시간 속.
놈의 흔들리는 동공 안에 놈을 향해 짓쳐들어가는 푸른색 뇌전이 선명하게 번쩍였다.
빠지지지지-!
“끄아아아아악----!”
느려진 시간 속에서 길게 울려 퍼지는 비명이 처절하기 그지없다.
SS급 각성자라 그런지 죽일 마음으로 펼친 뇌격에도 죽지 않았다.
놀랍게도.
하지만 반전은 거기까지였다.
머릿속에서 연우 형이 사도를 상대하며 펼쳤던 공격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SS급 스킬인 만영창과 SSS급 스킬인 일섬.
그 두 가지 스킬을 합일해 만들어낸 일섬만영.
거기에 만 개의 섬광 하나하나를 자유자재로 조종해 마침내 사도의 철벽같던 방어를 뚫고 상처를 입혔던 것까지.
‘연우 형이 해낸 거라면 나도 할 수 있어.’
어쩌면 오만일지도 모른다.
EX급 각성자의 깨달음을 아직 S급에 불과한 내가 펼치겠다고 하는 거니까.
하지만 왠지 지금이라면 실패할 것 같지가 않았다.
콰르르릉.
아직 일섬은 익히지 못했기에 그것을 뇌기로 대체하고.
번쩍.
만 개의 그림자에 실린 만 개의 벼락이 서로 호응해 마위현에게 떨어져 내렸다.
쩌-저-저-저-적!!!
만뢰(萬雷).
“----!!!!”
이미 항거불능 상태인 마위현은 그렇게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잿더미가 되어 스러져버렸다.
만뢰는 만영창에 뇌기를 더해 만들어냈던 만뢰창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번개 하나하나가 내 손가락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느낌.
분명 스킬 발동이 끝났기에 사라져야 할 뇌전이건만 허공엔 사용되지 않은 뇌전이 내 부름을 기다리며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내 입가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왠지…. 질 것 같지가 않은데?’
이곳이 적진이고, 내 적은 나보다 강하며 그 수 또한 많다는 것을 나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나는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전투 보상을 획득합니다.
시스템이 전투 승리를 축하하며 보상을 지급했다.
그리고 잿더미로 변해버린 마위현이 서 있던 곳에 떠오른 초록색 인벤토리.
[각성자 마위현의 인벤토리]
그것은 전투 보상과는 별개로 주어진 또 다른 보상이었다.
“남은 SS급 각성자가 열 명이었던가?”
육합귀문진이 만들어내는 안개가 짙어지는 것과 함께 내 입꼬리에 매달린 미소 또한 짙어졌다.
아무래도 오늘은 득템하는 날인가보다.
육합귀문진 때문에 흐려졌던 감각 영역 안으로 들어서는 열 개의 기척.
밖에 있던 각성자들이 밀실 안으로 들어선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