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무력시위 (2).
산둥반도의 끝자락에 있는 군사기지.
구름 가오리 사망 후 중국군은 수십 년간 실지(失地)였던 이곳을 회복하고 군사기지를 세웠다.
“한국 반응은 어떤가?”
제2 초인 병단을 이끌고 이곳에 주둔 중인 위평천 상장은 옆에서 있던 참모에게 미사일 발사에 대한 한국 측의 반응을 물었다.
“1차 미사일 발사 이후 대통령이 비난 성명을 발표하긴 했지만, 경계 수위를 올렸을 뿐 직접적인 대응은 없었습니다.”
참모장의 보고에 위평천은 대소를 터트렸다.
“껄껄껄. 한국의 대통령이 자기네는 언제든 전쟁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다고 그랬다지? 소국의 잡배들은 입으로 전쟁을 치르는가 보고만.”
그 웃음에 두툼하게 살찐 그의 턱이 출렁이며 춤을 췄다.
“어디 하찮은 소국의 대통령 나부랭이가 감히 대국의 명령을 거역하는지. 쯧. 이게 다 그간 우리 중국이 은혜를 베푼 것임을 모르고 말이야. 안 그런가 참모장?”
“맞습니다. 지난 역사에서도 주제도 모르고 목을 뻣뻣하게 세우다가 대국의 위엄을 겪고 납작 엎드린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 않습니까. 근 80년간 조용했으니 이제 그 비루한 민족성이 나오는 것일 겁니다.”
“그래 자네 말이 맞아. 이제 한번 눌러 줄 때가 된 거지. 역시 주석께서 선견지명을 가지신 거야.”
신을 추앙하는 광신도의 모습이 이러할까?
위평천과 참모장은 알 수 없는 열기가 섞인 목소리로 쉬샤오밍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쉬 주석님이야말로 하나 된 중국을 위해 하늘이 내린 천인(天人)이시니. 그분의 말씀을 믿고 따르면 중화가 세계 위에 군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 당내에 나뉘어 있던 계파를 모두 아우르시고 진정한 주석으로 거듭나신 그분이야말로 천인임에 틀림이 없으시지.”
쉬샤오밍을 향한 믿음을 토해내는 둘의 모습은 마치 무언가에 세뇌당한 사람들처럼 맹목적이었다.
“이제 마굴(던전)에서 튀어나온 마물(몬스터)들의 정리도 모두 끝났으니 세계에 중화의 우수성을 알릴 시간이 찾아온 것이지!”
25년 전 일어났던 빅 웨이브.
중국 또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던전 브레이크에서 무사할 수 없었다.
아니, 역설적이게도 워낙 땅덩이가 거대했기에 다른 국가들보다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 옳았다.
2천만 명이 죽고 2억의 실향민이 생겼다는 말은 그저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빅 웨이브 때 튀어나온 몬스터들을 모두 정리하는 데까지 무려 25년이나 걸릴 만큼 중국의 땅덩어리는 하나의 대륙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거대했다.
“맞습니다. 소련이 해체되고 만들어진 러시아는 제 나라 땅도 온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쪼그라들었습니다. 미국은 또 어떻습니까? 아직 제 땅에 나타난 던전도 제때 처리 못 해 쩔쩔매고 있습니다. 대국(大國) 중에 온전히 대국의 풍모를 유지하는 건 우리 중화인민공화국밖에 없는 거지요.”
“그게 다-. 쉬샤오밍 주석께서 위대한 영도력으로 우리 중화를 이끌고 계시기에 가능한 일 아니겠나. 허허허.”
그렇게 두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쉬샤오밍에 대한 찬양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을 때였다.
우우웅.
눈앞의 공간이 진동하며 이지러지기 시작했다.
지이이이—잉.
일렁이던 공간 사이로 푸른색 빛줄기가 피어오르고.
쩌저적!
이내 공간이 갈라지며 푸른색 타원형 포탈이 만들어졌다.
“마. 마굴!!”
갑작스럽게 등장한 푸른색 포탈을 본 참모장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병단장님!! 피, 피하십시오!! 새로운 마굴이 나타나려나 봅니다!”
하지만 참모장과는 다르게 위평천은 태평스럽기 그지없었다.
“피해? 자네는 대체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도 그럴 것이 돼지처럼 뒤룩뒤룩 살찐 겉모습과 다르게 그는 무려 중화영웅(中華英雄)에 이름을 올린 각성자였기 때문이었다.
217명의 중화영웅.
그들은 모두 SS급의 각성자이며 13억 중국인 중 단 217명뿐인 최강자들이다.
그 사실을 떠올린 것인지 창백하게 질렸던 참모장의 얼굴이 제 색을 되찾았다.
217명의 중화 영웅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으니 중국 인민들이 신처럼 믿고 따르는 쉬샤오밍 주석의 측근들이라는 것이었다.
조금 전까지 그들이 그토록 물고 빨기 바빴던 ‘천인’ 쉬샤오밍 주석 말이다.
저벅.
인벤토리에서 커다란 대도를 꺼내든 위평천이 묵직한 걸음을 옮겨 포탈 앞에 섰다.
우우웅--.
마침 포탈이 제 형태를 완전히 갖추며 공명음을 토해내고 있을 때였다.
‘색은 다르지만, 형태는 마굴의 문과 같아. 어떤 놈이 나올지 모르지만 단칼에 베어 주마.’
이변을 느끼고 부하들이 몰려온 것인지 사무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쯧. 느려터져서는….”
위평천이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찰 때였다.
우웅-.
긴 공명음 끝에 포탈이 푸른색 빛을 뿜어내고.
꿀꺽.
던전이 생기는 것을 처음 보는 참모장이 마른침을 꿀꺽 삼킬 때였다.
“어…. 돼지?”
포탈 너머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20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내가 마나 워프 마법진을 그리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여길 통해서 중국으로 넘어간다고요? 어떻게?”
“도 길드장 말 못 들었어요? 저 북쪽에 항카 호에서 서울 한울 길드까지 통로를 연결했다잖아요.”
“에이-. 자네들은 우리 강 선생을 못 믿나? 사람들이 이리 믿음이 부족해서야….”
“아니 못 믿는다는 게 아니라 신기하다는 거잖아요. 이 길드장님은 말을 꼭 그렇게 서운하게 하시더라?”
그리고 그 시간은 각자의 길드로 돌아갔던 길드장들이 드론을 타고 한곳으로 모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모두 모이고 나니 열한 명이나 되었다.
SS급 이상의 각성자가 모두 열한 명.
그중 몇몇은 전에 없는 자신감을 내비치는 걸 보면 예상대로 SSS급에 올라선 듯싶었다.
“자네들이 서운하긴 뭐가 서운해. 우리 강 선생 하는 일에 토를 다는 자네들 때문에 강 선생이 서운하겠네.”
특히 현역 길드장들 중에 최고 연장자인 이석평 길드장은 아주 맹목적으로 내 편을 들고 있었다.
토플란 시스템 덕에 SSS급으로 승급을 한 게 확실해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영감님이 이렇게 내 편을 들 리가 없지.’
저렇게 실없이 보여도 경기도를 대표하는 화연 길드의 길드장이다.
절대 녹록한 인물이 아니란 뜻이었다.
맹목적으로 내 편을 드는 것 같지만 살살 돌아가는 눈동자를 보면 이미 머릿속에서 계산을 끝낸 거다.
“이제 스킬만 사용하면 끝인데…. 정말 가실 거예요?”
마나석 배치까지 끝낸 내가 이번 일의 주모자인 세 사람을 향해 물었다.
서 영감님이 생각할 시간도 아깝다는 듯 앞으로 나서며 단호하게 말했다.
“열게.”
스릉.
그러면서 도집에 들어 있는 환두대도를 슬쩍 밀어냈다.
햇빛을 받아 번쩍이는 칼날이 섬찟한 살기를 드러냈다.
“아. 넵!”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 살기의 대상이 내가 아니라는 것뿐이다.
“스킬 사용. 마나 워프.”
마법진이 빛을 내며 포탈을 만들어내고 워프 게이트 너머의 세상이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짧은 시간.
왁자지껄 시끄럽던 장내에 어느새 묘한 긴장과 적막이 내려앉았다.
살기와 긴장이 어우러진 기운이 주변을 뒤덮을 무렵.
우웅-.
공명음과 함께 게이트 너머의 세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 돼지?”
그리고 그곳엔 저팔계도 형님이라 부를 만큼 뒤룩뒤룩 살찐 중년인이 거대한 대도를 뽑아 들고 이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터질 듯한 군복에 매달려 있는 별이 세 개.
중국군 계급은 모르겠지만 별을 단 것으로 봐선 장성인 모양이었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상대가 무어라 외쳤다.
중국어라 제대로 알아듣진 못했지만, 썩 좋은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때 등 뒤에 서 있던 서 영감님이 내 어깨를 살며시 밀어냈다.
“자네는 잠시 비켜 있는 게 좋겠군.”
뜬금없는 말에 서 영감님을 돌아봤다.
“네?”
중국 땅에 워프 게이트까지 열었는데 이제 와서 뒤로 물러나 있으라니 안 될 말이었다.
“내 말하지 않았던가. 될 수 있으면 자네 손에 사람 피를 묻히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그래. 피를 묻히는 건 우리가 할 테니 자네 손은 사람을 살리는 데 쓰도록 해.”
뒤에 있던 구 영감님도 서 영감님을 거들며 나를 밀어냈다.
그 서슬 퍼런 기세에 밀려 내가 한걸음 옆으로 물러서자 서 영감님을 필두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1명의 각성자들이 게이트를 넘었다.
이윽고 들려 오는 비명과 폭음.
게이트 너머에선 피와 죽음을 동반한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
1시간.
A급 마나석 다섯 개로 게이트가 유지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싸움은 마나석을 교체할 필요도 없이 순식간에 끝이 났다.
무려 1개 사단 병력과 1개 초인 병단을 초토화하는 데 고작 1시간이 걸리지 않은 거다.
그렇게 싸움이 끝난 후.
서 영감님 일행은 대도를 들고 있던 별 세 개짜리 장군을 포함해 네 명의 포로를 데리고 게이트를 넘어 돌아왔다.
서 영감님은 길드장들과 포로들을 이끌고 자리를 옮겼다.
이 일은 길드만의 일로 끝날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장소를 옮긴 곳이 다름 아닌 국방부 청사였다.
포로들은 치료를 마친 후 길드장들의 삼엄한 감시에 옴짝달싹을 못 했고.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주겠나? 대통령이 물어볼 게 있다고 하는군.”
연우 형과 두 영감님은 국방위 자문 자격으로 대통령의 호출을 받아 청와대로 들어갔다.
재해급 몬스터의 부산물과 사체를 옮기는 것도 끝났고, 집에 돌아가 좀 쉴까 했는데 서 영감님이 기다려 달라니 어쩔 수 없었다.
띠릭.
할 일 없이 소파에 앉아 있는 게 무료해 TV를 켰더니 뉴스 속보가 터져 나왔다.
-속봅니다. 중국이 조금 전 서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오전에 이어 두 번째 미사일 도발을 감행한 것인데요. 중국 국무성 대변인은 산둥반도에 있던 군기지를 초토화한 범인으로 우리 군을 꼽으며 총 스무 발의 미사일을 서해 일대로 발사했습니다. 이에 우리 군은….
“허….”
아무래도 사고를 쳐도 크게 친 것 같지 싶었다.
서해 일대로 미사일 스무 발이라니.
-…군산 위성으로 관측한 결과 미사일 발사가 확인되었으며 이에 대응해 조금 전 우리 군이 요격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이어서 우리 국방부 대변인의 발표가 이어졌지만 나는 왠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중국이 우리가 요격미사일을 발사할 거라는 걸 몰랐을까?’
그럴 리가.
분명 알았을 거다.
우리나라에선 속된말로 짱깨네 뭐네 무시하지만, 중국은 세계 2위의 각성자 강국이자 미국 러시아에 이은 세계 3위의 군사 대국이다.
그런 중국이 그저 위협용 탄도미사일 스무 발 쏘고 끝낼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내 기분이 찜찜한 게 문제였다.
‘이런 기분이 들 때면 꼭 큰일이 터졌지.’
그래서 씨드에게 물었다.
“씨드. 중국 쪽 군사위성 해킹 가능해?”
마도 위성 해킹은 이미 몇 번 해본 터라 문제가 없지만, 보안이 센 군사위성은 또 달랐으니까.
“30초면 충분합니다.”
돌아온 씨드의 대답에는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군사위성이나 일반 마도 위성이나 씨드에겐 다를 게 없는 모양이었다.
“그럼 해킹해서 중국 쪽에서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 알아봐 줘.”
“네. 사령관님.”
명령을 마친 나는 접객실의 창문을 열었다.
아무래도 기분이 영 찜찜한 게 직접 가봐야 할 것 같다.
“스킬 사용. 뇌신일체.”
꽈르르릉--!
창밖으로 몸을 날린 나는 뇌신일체를 사용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발밑에 있던 국방부 청사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방향은 서쪽.
스무 개의 탄도미사일이 날아오고 있는 서해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