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무력시위 (1).
“이건 또 언제 배운 거야?”
바닥에 열심히 마법진을 그리고 있는 내 옆에서 연우 형이 중얼거렸다.
나는 바빠 죽겠는데 이 양반은 전혀 도와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뭐 도와준다 해도 내가 말렸겠지만.
“아까 형이 사도랑 싸울 때 익혔어요.”
“그 짧은 시간에 그게 돼?”
“어…. 되더라고요.”
그 짧은 시간에 자신을 한 단계 더 진화시킨 양반이 뱉는 말이라 왠지 기만당하는 기분이었다.
‘이래서 천재들이란.’
그렇게 투덜대고 있을 때 연우 형이 질문을 던졌다.
“근데 이 커다란 걸 옮기는 게 가능해? 어지간한 텔레포터는 시도도 못 할 것 같은데.”
당연한 의문이었다.
텔레포트와 마나 워프는 그 방식 자체가 다르니까.
굳이 비교하자면 텔레포트는 비어있는 공간에 억지로 나 자신을 끼워 넣는 것이었고, 마나 워프는 공간과 공간 사이에 문을 만들어 그 문을 통해 이동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텔레포트로 생명체가 움직이는 건 극도로 위험한 일이었다.
텔레포트를 사용하는 텔레포터조차도 이동한 공간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까.
반면 마나 워프는 텔레포트와 비교하면 훨씬 안정적이었다.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문을 만들어 그 문을 매개로 이동하는 방식이니까.
굳이 비유하자면 던전 포탈과 같다고 할까?
말로 설명하는 건 나도 힘드니 직접 보여주는 게 빠를 것 같았다.
사라락.
열심히 마나석 가루를 뿌려가며 2m 크기의 마법진을 그리는데 꼬박 30분이 걸렸다.
아무래도 처음 그려보는 마법진이다 보니 긴장돼서 손이 많이 떨렸다.
“사령관님 이쪽 룬문자가 2밀리 정도 틀어졌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와 마법진의 도식을 공유한 씨드가 옆에서 보조를 해줬다는 것이었다.
“어. 그래, 고마워.”
그게 아니었다면 30분 만에 마법진을 완성하기는커녕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을 거다.
씨드가 지적한 룬문자를 수정하자 마법진을 그리는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이 작은 마법진으로 저 커다란 걸 옮길 수 있다니….”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연우 형을 뒤로하고 마법진 안에 그려진 오망성의 각 꼭짓점에 A급 마나석을 하나씩 내려놓는 것으로 마나 워프를 발동시킬 준비를 마쳤다.
이제 남은 것은 마법진의 발동.
정통적인 마법사라면 영창이 필요하겠지만 나에겐 치트키가 있었다.
“스킬 사용. 마나 워프.”
-스킬: 마나 워프를 사용합니다.
-마법진을 확인합니다…. 정확도 99.87%.
바로 시스템이라는 치트키 말이다.
-좌표를 확인합니다….
-좌표확인 완료.
-워프 게이트를 오픈합니다….
이렇다 할 마법 영창이 없었음에도 마법진은 발동했고 허공에 새파란 포털을 만들어냈다.
-워프 게이트 오픈 완료.
-게이트 안정화를 시작합니다….
-게이트 안정화 완료.
시스템이 메시지가 계속되자 불안정하게 흔들리던 워프 게이트가 안정됐고.
일렁이던 아지랑이가 사라짐과 동시에 푸른색 게이트 너머의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게이트 유지시간 0시간 59분 59초.
-마나석을 모두 소모하면 게이트가 닫힙니다. 게이트 유지시간 연장을 원하시면 마나석을 교체해 주십시오.
높이 2m 폭 1.5m 크기의 타원형 게이트 너머의 세상.
“헐…. 길드장님?”
그곳엔 익숙한 얼굴이 놀란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부 길드장?”
한울 길드 부 길드장 최종혁이었다.
***
수천 명의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연우 형과 내가 이곳으로 출발하기 전부터 길드는 비상체제에 들어가 있었던 덕분에 사람들을 기다리는 수고를 덜었다.
더불어 최종혁 부 길드장은 몇 가지 소식을 전해줬다.
서 영감님이 두만강 근처 장벽에 나타난 빙호를 사냥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과 동해에 나타난 시 서펜트를 구 영감님과 경상도계 각성자들이 합심해 사냥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중국이 서해상으로 미사일을 발사했다고요?”
중국이 무력도발을 감행했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그 미사일이 우리 영해에 떨어지진 않았지만, 덕분에 서해 방면으로 방위를 맡은 우리 군은 초긴장 상태라고 했다.
“중국 쪽에선 재해급 몬스터의 사체와 자국 영토를 무단으로 침범한 두 분의 신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점은 우리 대통령이 그 요구를 단칼에 거절했단다.
“대통령이 담화문까지 발표하며 중국을 성토하고 서해 쪽 군부대에 준전시체제로 경계태세를 올리라는 명령까지 내렸습니다. 거기에 서해 방면 방위를 맡은 길드의 소집령도 떨어졌고요.”
이 양반 정권 말기라 힘이 빠진 줄 알았더니 각성자 출신 대통령이라 그런지 강단이 보통이 아니었다.
길드 소집령까지 내렸다는 건 여차하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래서 십 대 길드 길드장들도 모두 자기 길드로 돌아간 상탭니다.”
부 길드장의 보고를 받은 연우 형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이런 빌어먹을 새끼들이, 빙호가 여기에 이 주 동안이나 죽치고 있을 때는 멍하니 구경만 하다가 정작 사냥이 끝나니까 전리품을 내놓으라고?”
솔직히 이런 형의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라 살짝 쫄았다.
기껏 사냥을 마친 먹이를 하이에나가 노리고 있다는 걸 깨달은 사자가 이러할까?
드드드드드.
분노한 연우 형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에 주변의 대지가 덜덜 떨릴 정도였으니 그 기세의 흉포함은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으리라.
순간 수천 명이 분주하게 움직이던 설원 위로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EX급 각성자의 기세란 그런 것이었다.
휘이잉-.
귓가에 들리는 건 오직 바람 소리 하나뿐.
이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연우 형이 뿜어낸 기운에 짓눌려 숨조차 제대로 내쉬지 못했다.
심지어 나조차도….
아무래도 연우 형이 화가 많이 난 모양이었다.
질식할 듯한 시간이 지나가고. 연우 형이 일그러트렸던 얼굴을 펴며 내게 말했다.
“현아. 가자.”
“어. 어딜요?”
설마 당장 중국으로 쳐들어가잔 소린가 싶었다.
하지만 연우 형의 대답은 의외였다.
“응? 당연히 서 영감님한테 가야지. 영감님들도 사냥감 옮기는 데 애먹고 계실 텐데 도와드려야 하지 않겠어?”
‘휴. 분노에 눈이 돌아간 줄 알았는데 그나마 이성의 끈을 놓지는 않았나 보네.’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부 길드장에게 부탁을 마친 연우 형이 슬며시 다가와 내 옷깃을 잡았다.
“음??”
“뇌신일체. 고고.”
‘이 양반이 내가 택시인 줄 아나….’
순간 가슴속에서 뭔가가 울컥 치솟았지만, 목구멍에서 탁하고 걸렸다.
센 놈한테 굽히는 건 비겁한 거지만 센 놈의 눈에 광기가 일렁이면 굽히는 게 맞다.
지금 연우 형의 눈처럼 말이다.
“현아. 빨리 고고.”
눈동자에서 번들거리는 살기가 느껴질 정도면 사람이 얼마나 빡쳐야 하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X나게 빡치면 가능하다.
나는 살기로 번들거리는 연우 형의 눈을 보며 목소리에 힘을 줘 대답했다.
“형님. 신속, 정확,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
“호오. 이거 제법이구먼?”
워프 게이트를 본 구 영감님이 신기하다는 얼굴로 게이트 너머를 살폈다.
“헛!!”
갑작스러운 워프 게이트의 등장에 놀라 뛰어온 화랑 길드원이 구 영감님과 눈이 마주치곤 헛바람을 내뱉었다.
“허허. 안녕하신가?”
구 영감이 넉살 좋게 인사를 건네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길드원이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했다.
그때 옆에서 경악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현 씨! 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 겁니까?!”
구 영감님의 아들, 구지석 화랑 길드장이었다.
연우 형이나 두 영감님의 반응이 조금 신기해하는 정도였다면 구 길드장의 반응은 불가해한 무언가를 본 사람의 반응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양반 마법사라고 했지?’
아마 마법사이기에 더 놀란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사용한 마나 워프 스킬은 겉으로 보기엔 마법진을 이용한 공간 마법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이건 정말이지…. 공간 마법의 혁명입니다. 강현 씨. 혹시 제가 이 마법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죄송한데 당장은 좀 힘들 것 같은데요….”
부정적인 내 대답에 학구열로 불타던 구 길드장의 눈이 급격하게 어두워지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런 고급 마법을 아무에게나 전수할 수는 없는 거겠죠.”
작은 오해가 생긴 것 같아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아니라 제가 영창을 가르쳐 드릴 수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영창을 하지 않으셨군요.”
내게는 시스템이라는 치트키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저 스킬 사용만 외치면 되는 일이니. 영창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마나 워프를 가르쳐 주는 일은 불가능했다.
스스로 깨닫는다면 모를까.
“마법진의 도식과 마나 회로는 가르쳐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룬어 영창은 저도 모르는지라 어쩔 수가 없네요.”
백야투로와 붕천격 그리고 아직 제대로 익히지 못한 풍신퇴까지.
구 영감님이 내게 전수한 게 한둘이 아닌데 고작 마법진 하나를 아까워할 리가 있겠는가.
“일단 지금은 무리일 것 같고, 이번 일이 끝나면 알려드리겠습니다. 룬어 해독은 직접 하셔야 할 테지만요.”
나는 등 뒤에서 으르렁거리고 있는 짐승을 의식해 나중을 기약했다.
그러자 연우 형을 바라본 구 길드장이 나직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도 길드장은 왜 저렇게 화가 난 겁니까? 혹시 제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요?”
그 물음에 나는 최대한 빠르고 간략하게 저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등 뒤의 짐승이 폭발하기 전에 어떻게든 이 상황을 정리하고 빨리 자리를 뜨고픈 마음이 가득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내 행동은 폭탄의 심지에 불을 붙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뭐라?!”
“이런 빌어먹을 종자들이 있나!!”
으르렁거리는 짐승이 네 마리로 늘어나는 순간이었다.
“당장 중국에 쳐들어가야 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본때를 보여줘야 해요!”
특히 구지석 길드장의 반응이 더욱 격렬했는데. 침착하고 이지적으로 보이던 양반이 화를 내니 더 무서웠다.
“이건 명백한 국제 헌터법 위반입니다! 우리 쪽에서 무력 대응을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란 말입니다! 아버지 당장 중국 쪽에 항의하시죠.”
몰랐는데 국제법으로도 자국 영토 침범이니 뭐니 트집을 잡는 중국의 행위는 말도 안 되는 억지란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 속에서 나는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각성자 중 몬스터 사냥을 전문으로 하는 각성자를 헌터라 부르는 이유를.
“감히. 사냥을 끝낸 몬스터에 소유권을 주장한다고? 허허. 우리가 아주 X으로 보였나 보구먼.”
전직 대통령까지 지낸 분의 입에선 상스럽기 그지없는 단어가 뱉어졌고.
스릉.
“당장 수리를 할 필요는 없겠군.”
서 영감님은 환두대도를 뽑아 들곤 살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참 피 보기 좋은 날이야.”
이건 뭔 SSS급 각성자가 아니라 연쇄살인마를 옆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사냥물을 빼앗길 뻔했던 헌터가 뿜어내는 살기는 살벌했다.
그 옆에서 똑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연우 형을 보니 왜 지금까지 영감님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말라 했는지 이해가 됐다.
응축된 분노는 더 무서운 법이니까.
영감님들의 분노가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헌터 국제법상 사냥한 몬스터의 사체와 그 부속물의 권리는 온전히 사냥한 헌터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억지나 다름없는 협박을 한다는 건 중국이 대한민국 헌터계를 얕잡아 보지 않고선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에요.”
그리고 구지석은 그 분노에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기름을 끼얹었다.
스릉.
환두대도를 납도한 서 영감님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마나 워프라고 했던가? 그거 하나 더 설치하는 데 얼마나 걸리겠나?”
“한…. 삼십 분 정도 걸립니다.”
그 말을 들은 서 영감님의 눈이 번뜩였다.
“삼십 분?”
“…이십 분 안에 그려보겠습니다. 그런데 어딜 가시려고 그러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산둥반도. 쓰레기들이 미사일을 날리고 있다니 다시는 그런 짓 못 하게 교육을 해줘야지.”
“아…. 네….
인생의 절반 이상을 헌터로 살아온 이들의 분노는 헌터 생활을 한 지 겨우 1년도 되지 않은 내가 이해하기엔 크고 무거웠다.
‘근데 산둥반도에 초인 병단인가 하는 군부대도 있다고 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속으로 삭일뿐 입 밖으로 뱉어 질문한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