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163화 (162/202)

163. 다만 강해질 뿐.

강현이 재해급 몬스터의 사체처리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무렵.

청와대에서 대통령 주재로 열린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는 긴박한 논의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외교부 장관 말은, 도연우 길드장이 잡은 재해급 몬스터의 사체를 중국 정부에 넘겨줘야 한단 뜻입니까?”

국방부 장관의 물음에 외교부 장관이 난처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게…. 지금 중국 정부에서 자국 영토 내의 전투 행위에 대한 깊은 유감을 표명하며 자국 영토에 무단으로 침입해 전투 행위를 벌인 도연우 길드장과 그 일행의 신병은 물론 재해급 몬스터의 사체 또한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장난입니까? 지난 80년간 거주민은 물론이고 군대도 주둔하지 않은 지역을 이제 와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다니요. 아니 백번 양보해서 항카 호 부근이 중국영토라고 칩시다. 그럼 왜 중국은 지금까지 만주지역 몬스터들을 토벌하지 않고 그냥 놔둔 겁니까?! 그럴 능력이 없어서 아닙니까!”

국방부 장관의 말에 외교부 장관은 그저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우리 국민이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행한 일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이라는 사람 입에서 우리 국민과 재산을 타국에 넘겨주자는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옵니까?”

국방부 장관의 말 중 틀린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중국 정부가 노리는 것은 하나였다.

바로 재해급 몬스터의 사체.

사체 하나당 가치가 10조, 혹은 그 이상일 것으로 예상되는 재해급 몬스터의 사체를 노골적으로 원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금액적인 부분이 아닌 사체 그 자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당장 사우디아라비아만 봐도 구름 가오리의 사체 일부를 낙찰받아 인공강우 연구에 성과를 내고 있지 않은가.

재해급 괴수는 그 시체만으로도 연구 가치가 무궁무진하며 어떤 아이템을 만들 수 있을지 예측조차 되지 않는다.

중국은 그것을 노리고 있는 것이고.

그때 상석에 앉아있던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을 제지하며 질문을 던졌다.

“국방부 장관, 지금 중국군의 동태는 어떻습니까.”

“마도 위성의 관측결과 제1 기계화 사단과 제2 초인 병단을 산둥반도로 이동시켰습니다. 군 합동참모부는 곧 중국군의 무력시위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국방부 장관의 보고에 대통령의 이마에 깊은 골이 만들어졌다.

“우리 군의 준비태세는 어떻습니까?”

“합참 이하 예하 부대에 만전을 지시한 상태입니다. 중국의 공격에 대한 방어는 물론, 명령만 하시면 중국 본토 타격도 가능합니다.”

국방부 장관의 발언에 회의에 참석해있던 이들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전쟁.

그 무거운 화두가 어깨 위에서 그들을 짓눌렀다.

“전쟁이 발발하면 승산은 있습니까?”

대통령의 물음에 많은 뜻이 담겨있었다.

세계 2위의 각성자 강국이자 세계 3위의 군사 대국, 중국을 상대로 승리를 묻는다는 것은 대통령의 심중에 전쟁이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바였으니까.

그 말을 들은 외교부 장관이 놀란 눈으로 대통령을 바라봤다.

“대통령님 전쟁은 불가합니다! 상대는 일본도 아니고 중국입니다! 우리 전력으로 그들과 전쟁을 해서 승리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당장 SS급 각성자 수만 해도 스무 배가 넘게 차이가 나는 각성자 초강대국이란 말입니다!”

“그럼. 외교부 장관은 도연우 길드장의 신병과 몬스터 사체를 그대로 넘겨주자는 말입니까?”

대통령의 물음에 외교부 장관은 응당 그래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깟 몬스터 몇 마리 넘겨주고 우리 국민의 안전과 평화를 지킬 수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그럼. 그다음은요?”

“네? 그게 무슨….”

“이번엔 도 길드장과 몬스터 사체를 넘겨주고 다음엔 또 뭘 내줘야 하는 겁니까?”

외교부 장관을 노려보는 대통령의 눈엔 차가운 한기가 서려 있었다.

“우리가 중국의 속국입니까? 저들이 달라 하면 주고, 하지 말라 하면 안 하면 되는 겁니까? 각성자 초강대국이고! 군사 대국이니까! 그렇게 설설 기며 비위를 맞춰주고 평화를 유지하면 되는 겁니까?!”

그 싸늘한 일갈에 외교부 장관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렇게 유지한 평화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겁니까….”

한(恨)이 담긴 듯한 대통령의 목소리에 좌중의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우리는 자주독립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82년 전 대격변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독립은 요원했을지도 모르지요. 우리 힘으로 독립을 하지 못했기에 이 땅을 아직도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욱일회 같은 놈들이 판을 치고 친일파들이 득세하는 겁니다.”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이자 네 번째 각성자 출신 대통령.

“그런데 이젠 중국에게 무릎을 꿇고 전쟁만은 하지 말아달라 빌라는 겁니까? 그게, 장관이 말하는 외교입니까?”

“…….”

본인 또한 S급 각성자이며 국방력 강화에 힘을 쏟았던 대통령.

“아니요…. 아닙니다. 외교는 그런 식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그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이었다.

“현 시간부로 군의 경계태세를 준 전시체제로 수준으로 상향합니다. 국방부 장관.”

“네. 대통령님.”

“이 땅에 적의 미사일이 단 한발도 날아오지 못하게 하세요. 필요하다면 선제타격도 허용합니다.”

“알겠습니다.”

국군 통수권자로서 국방부 장관에게 명령을 내린 대통령의 시선이 외교부 장관에게 닿았다.

“외교부 장관.”

“네. 대통령님.”

“중국에 전하세요. 우리 군은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선 언제든 전쟁을 치를 준비가 돼 있다고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전쟁을 입에 담은 대통령의 발언에 장내의 분위기는 한없이 무거워졌다.

“회의는 이것으로 마칩시다. 나가서 일들 보세요.”

대통령의 축객령에 모두 회의장을 빠져나가고, 홀로 남게 된 대통령의 뒤로 비서실장이 다가왔다.

“대통령님 괜찮겠습니까? 정말 전쟁이 날 수도 있습니다.”

비서실장의 걱정 가득한 물음에 대통령은 피식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전쟁? 안 납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놈들이 원하는 게 명확하니까. 전쟁은 없을 겁니다.”

본인이 준전시 상태를 명령해놓고 ‘전쟁이 나지 않는다.’ 확신하는 대통령의 모습에 비서실장이 의아함을 내비치자 대통령이 싱긋 웃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각성자 초강대국. 아시아의 맹주. 그게 중국의 지위였죠. 하지만 불과 몇 달 사이에 그 지위가 많이 흔들렸죠. 우리나라에서 SSS급 각성자가 나타나면서 말입니다.”

“그럼 지금 중국이 노리는 건….”

“아시아의 맹주로서 지위를 공고히 다지는 것과 할 수 있다면 SSS급 각성자를 배출한 비밀을 알아내는 정도일 테죠.”

“아…. 중국은 재해급 몬스터에 그 비밀이 있다고 생각한 거군요?”

“두 분 자문위원께서 구름 가오리를 잡고 SSS급으로 승급을 하셨으니 그렇게 짐작한 것일 겁니다.”

두 자문위원, 서태촌과 구정철의 이야기가 나오자 비서실장은 이야기의 맥락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놈들도 눈이 있을 텐데, 저것을 보고도 전쟁을 하겠다고 한다면 제정신이 아닌 자들이겠죠.”

대통령이 가리킨 화면.

그곳을 바라본 비서실장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도 위성으로 찍힌 두 개의 화면엔 신화 속 한 장면과도 같은 전투가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

커어어엉!

거대한 괴수가 토해내는 고통 섞인 비명이 설원을 떨어 울렸다.

전투를 시작하고 1시간.

고고하고 아름다웠던 빙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거대한 몸뚱이에 새겨진 수천 개의 상처에서 녹색의 피를 흘리며 천적을 피해 도망치는 한 마리 짐승만이 있을 뿐이었다.

새하얀 설원 위로 찍히는 거대한 발자국과 핏자국.

직전의 공격에 큰 충격을 받은 빙호가 적에게 배를 보이며 뒤집어진 채 네 발을 허우적거렸다.

입가에서 시작된 피가 눈을 지나 흐르며 피눈물로 화했고.

크헝-.

마지막 힘을 쥐어짜듯 허리를 튕겨 순식간에 몸을 뒤집은 빙호는, 배가 바닥에 닿을 듯 몸을 낮게 깔았지만.

자신을 이렇게 만든 적이 거리를 좁혀오자 상처를 치료할 새도 없이 다시 몸을 움직여야만 했다.

빙호의 그 다급한 발놀림엔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게 담겨있었다.

“꼬리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도망치는 꼴이 꽤 볼만하지만 여기까지구나.”

허공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빙호가 고개를 쳐들었다.

얼굴에 새겨진 상처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순간 시야를 가렸지만 이내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한 빙호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새하얀 백발을 휘날리며 흡사 천신처럼 허공을 비행하는 노인.

차가운 눈으로 빙호를 내려다보던 서태촌의 손에 들린 환두대도가 휘둘러지고.

서-걱!

쿠구궁!

날카로운 절삭음과 함께 목이 잘린 빙호가 끝내 바닥에 몸을 뉘었다.

콰과과광!

쩌저적!

뒤이어 빙호의 목을 가르고 지나간 멸천세가 굉음과 함께 대지에 거대한 상흔을 남겼다.

그 길이만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크레바스.

가히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무력이었지만 서태촌은 의외로 담담했다.

“저놈이 약한 것인지, 내가 강해진 것인지 모르겠구먼.”

태초의 별에서 온갖 버프를 받아 펼쳤던 멸천세에 비하면 그 위력이 보잘것없었기 때문이다.

빙호 또한 쿠아르탐파에 비하면 약한 감이 없지 않았고.

물론 홀로 빙호를 상대해야 했던 서태촌의 상태도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빙호가 만들어 낸 절대 영도의 공간에서, 흐르는 피마저 얼릴 듯한 혹한을 견디며 놈을 상대해야 했으니까.

실제로 검을 휘두르던 팔이 유리장처럼 산산이 부서진 게 몇 번인지 셀 수도 없었다.

‘힐링 포션이 없었다면 필시 내가 패했을 테지.’

다행히 인벤토리 가득 챙겨온 최상급 힐링 포션과 마나 포션 덕에 승리할 수 있었지만, 입맛이 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깨달음의 끝자락을 잡을 수 있어 다행인 건가?’

서태촌은 자신의 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깨달은 것으로 마음을 위로하며 장벽 쪽으로 비행을 시작했다.

빙호의 사체를 이대로 내버려 둔 채 걸음을 물리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전투의 여파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회복하는 게 먼저였다.

‘구가 놈이 잘하고 있을지 걱정이구먼.’

한편, 서태촌과 빙호의 싸움이 끝난 그 시각.

동해에서는 말도 안 되는 현상을 목격한 이들이 멍한 눈으로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야. 나 꿈꾸고 있냐?”

“어…. 바닷물이 허공에 떠 있는 걸 말씀하시는 거면 저도 같은 걸 보고 있지 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다를 채우고 넘실거려야 할 바닷물이 모조리 허공으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바다를 채우고 있던 해양 몬스터들과 함께.

그것은 구지석이 펼친 대마법에 의해 벌어진 기적과도 같은 현상이었다.

쉬에에엑!!

퍼퍼펑! 콰광!

그때 들려온 날카로운 소성과 폭음에 병사들의 눈이 저 먼바다로 향했다.

바닷물이 사라진 공간에서 펼쳐지는 일방적인 전투.

태평양을 지배하던 재해급 몬스터 시 서펜트는 그저 거대한 샌드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퍼퍼펑!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터져 나오는 붕천격과 발길질을 할 때마다 시 서펜트 몸을 난도질하는 풍신퇴.

콰과과과곽!!

흩날리는 핏물과 살점이 바닷물이 사라진 바다를 채우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콰과과광!

거대한 체구에 맞게 엄청난 재생력으로 버텨오던 시 서펜트의 대가리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후우. 후우.”

그 모습을 본 구정철이 폭풍처럼 쏟아내던 공격을 멈췄다.

쉬시식.

기다란 혀를 내빼고 숨을 몰아쉬는 시 서펜트.

28년 전 놈에게 살해당한 아버지의 얼굴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고작. 이따위 녀석에게….”

구정철은 말을 잇지 못했다.

시 서펜트에게 목숨을 잃은 이가 어찌 자신의 아버지뿐이겠는가.

그 당시 수많은 각성자와 민간인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건 공식 기록만 뒤적여봐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도 어쩔 수 없는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말없이 시 서펜트의 사안을 바라보던 구정철은 이내 주먹을 말아쥐고 정권을 내질렀다.

후웅-.

순간 그의 손끝에 바람이 모여들고.

퍼-퍼-퍼퍼퍼펑!!

거대한 회오리가 뻗어 나가 시 서펜트를 분해했다.

후드득.

그 마지막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기는 구정철의 등 뒤로 시 서펜트였던 것의 일부가 우박처럼 쏟아져 내리고.

“우와아아악!!!”

전투를 지켜보던 병사들의 입에선 거대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2022년 12월 겨울의 어느 날.

구정철은 시 서펜트와의 싸움 끝에서 EX급으로 가는 깨달음의 실마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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