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161화 (160/202)

161. 공간의 미학.

-특성: 공간의 미학 SSS (LV1)가 발현됩니다.

‘공간의 미학’이 발현되자 눈앞의 세상이 이지러졌다.

-특성: 공간시 SS (LV1)가 발현 중입니다.

-공간의 미학과 공간시가 시너지를 일으킵니다.

-공간의 정보가 시각화됩니다.

이지러진 세상은 이내 점과 선 그리고 수많은 도형으로 채워졌다.

점과 점이 만나 선을 이루고 선과 선이 만나 면을 이루며 다시, 면과 면이 만나 하나의 도형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수많은 도형은 서로 연결되어 이내 하나의 공간을 이뤘다.

“윽!”

갑자기 시각을 통해 밀려드는 무지막지한 양의 정보에 머리가 뜨끈해져 나도 모르게 신음을 토해냈다.

이미 전용 던전에서 아공간을 청소하며 셀 수 없이 겪은 통증이지만 이 두통은 좀체 익숙해지지 않았다.

마치 뇌를 통째로 오븐에 넣고 달구는 느낌이랄까?

잠시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후….”

눈을 통해 전달되던 정보가 차단되자 달아올랐던 뇌가 서서히 식는 게 느껴졌다.

‘최대한 빠르게 끝낸다.’

사용방법은 이미 익숙하다.

시각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 중 내가 원하는 정보를 집중해서 바라보는 것.

그렇게 하면 공간의 미학 특성이 해당 정보를 분석해 머릿속에 마나 회로를 그려줬다.

예를 들면 아공간을 직시할 경우 정보를 분석해 아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마나 회로와 재료들을 머릿속에 각인시켜주는 원리였다.

물론, 내게는 별로 쓸모없는 정보였다.

나는 이미 아공간 조작 특성을 가지고 있고, 케이돈이 가지고 있는 아공간 변환 스킬을 사용하면 내가 가진 인벤토리 일부를 떼어내는 방식으로 별도의 아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마나 회로가 전혀 쓸모없냐면 그건 또 아니지.’

내게는 필요 없지만 다른 각성자들에겐 필요한 정보.

알다시피 모든 각성자들은 각자의 인벤토리를 갖는다.

하지만 그 한계는 명확하다.

한계 중량 100㎏과 100칸.

이건 F급 각성자나 SSS급 각성자나 같으며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마나 회로와 재료만 가지고 있다면 고정되어 있던 인벤토리를 키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인벤토리가 커진다는 건.

더 많은 장비와 포션을 챙길 수 있다는 의미였고.

더욱 안전한 사냥이 가능해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헌터들의 사냥 방식이 바뀔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아직 이 마나 회로와 재료를 풀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공개할 참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공짜는 아니다.

이처럼 내게는 필요하지 않더라도 다른 이들에겐 필요한 정보도 있다.

공간이동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가 공간의 정보를 통해 놈들의 이동방식을 파악할 수만 있다면.

‘그동안 막혀있던 국가 간 이동의 장벽이 사라진다.’

새로운 물류 혁명이 시작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육지와 바다, 그리고 하늘에 존재하는 수많은 몬스터들에 의해 막혀 있었던 인적 교류가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고.

그동안 텔레포터 협회와 콜팡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던 세계물류에 새로운 대안이 생기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내 목적은 그로 인해 얻게 될 해피 포인트와 선업 포인트였지만.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그렇게 다가올 고통을 대비해 마음을 다독인 나는 폐부 깊이 공기를 들이마시곤 감았던 눈을 떴다.

휘청.

준비는 했지만, 갑자기 몰려드는 정보의 파도에 다리가 풀려 몸이 휘청였다.

‘끄으윽….’

몸속에 존재하는 모든 피가 머리로 집중된 듯 머릿속이 뜨끈해졌다.

‘집중…해야 해.’

나는 당장이라도 녹아내릴 듯 욱신거리는 두통을 무시하고 눈동자를 움직였다.

‘공간 분리…. 이건 아니고.’

공간에 존재하는 수많은 정보가 ‘나를 기억해!’라고 말하는 것처럼 시야를 어지럽히며 달려들었지만 그중 대부분은 내가 원하는 정보가 아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마나 터널을 이용한 이동. 마나 워프(mana warp)? 이거다!’

드디어 찾았다.

그리고.

-마나 워프의 정보를 추출합니다.

-마나 워프 정보 추출 중…. 1%…….

지옥과도 같은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

‘초월자가 확실해.’

강현이 공간의 정보를 추출하기 위해 뇌를 찜기에 넣은 듯한 고통을 감내하고 있을 그 시각.

피이이잉-!

율리아는 비처럼 쏘아져 오는 수천 개의 빛살을 방어하느라 진땀을 쏟고 있었다.

피칭-!

섬광에 소리가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율리아의 귀엔 저 끔찍한 열기를 품은 빛줄기가 공기를 증발시키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피칭- 피피핑-!!

처음엔 한두 줄기로 시작되었던 일섬.

하지만 도연우는 율리아를 상대하면서도 성장하고 있었다.

일격필살의 느낌이 강했던 일섬과 다대일의 싸움에 특화되었다고 평가되는 만영창.

도연우는 두 스킬을 합쳐 하나의 스킬을 만들어냈다.

일섬만영(一閃萬影).

한줄기 섬광이 만들어낸 만개의 그림자.

싸움하는 와중에 새로운 스킬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완숙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도연우의 재능은 경악을 넘어 괴이(怪異)에 가까웠다.

‘괴물…. 이자는 내가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야. 도망쳐서 리퍼의 계략을 신께 보고해야 해.’

율리아가 어떻게든 전장에서 몸을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뭔가 아쉬운데.’

도연우는 자신이 만들어낸 일섬만영을 보며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분명 위력적인 스킬이다.

한 개의 빛살이 만 개로 분화되어 전방위적인 공격을 상대에게 쏟아붓는 광경을 본다면 누구나 경탄해 마지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도연우는 일섬만영 스킬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화려하기만 하지 속 알맹이가 없어….’

그것은 상대를 압도할 만한 힘의 부재.

이제 SSS급을 넘어서 EX급 혹은 반신급의 적이 나타날 걸 생각하면 강력한 한 방의 부재는 그에게 뼈아프게 다가왔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율리아가 공간계열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 도연우와 상성이 좋지 않은 것이었다.

‘상대가 나보다 강하더라도 방심할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스킬이 필요해.’

도연우가 EX급 스킬 창안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을 때 율리아는 공간 왜곡과 굴절을 이용해 쉼 없이 쏟아지는 공격을 막아내며 전장에서 몸을 빼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강현, 리퍼의 사도가 뭐 때문에 저렇게 멍하니 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없을 거야.’

단지 말 한마디로 신수 세 마리를 끔살해 버린 강현이 전투에 참여한다면 도주는 꿈도 못 꿀 테니까.

그러려면 일단 사방에서 쏘아져 오는 도연우의 공격부터 처리해야 했다.

그렇게 율리아가 도주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을 무렵.

도연우의 머릿속에 한 가지 화두가 떠올랐다.

‘굳이 창일 필요가 있나?’

그가 창을 잡은 지 30년.

신창을 계승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창술을 익혔다.

그에게 창술을 익히고 발전시키는 것은 숨을 쉬고 밥을 먹는 것처럼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것은 창술이라는 틀 안에 도연우라는 천재를 가두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가 서태촌의 검을 익혔다면.

혹은 구정철의 박투술을 익혔다면 어땠을까?

누군가는 그랬다면 도연우가 SSS급을 뛰어넘어 EX급에 다다르는 게 불가능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언컨대 도연우라는 천재의 재능은 그런 무기 따위에 얽매일 만큼 하찮은 것이 아니었다.

세기(世紀)의 천재(天才).

도연우를 칭할 때 신창이나 창왕이라는 별칭보다도 많이 사용되는 수식어였다.

‘한번…. 해볼까?’

지난 30년.

너무나도 당연했기에 품지 않았던 의문.

하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화두는 지금껏 도연우를 가두고 있던 창술이라는 껍질에 금이 가게 했고.

피-칭.

도연우는 손가락 끝에서 한줄기 섬광을 뿜어내는 것으로 다시 한번 자신의 천재성을 증명했다.

창을 사용하진 않았지만 분명 그것은 SSS급 스킬 일섬이었다.

‘되네?’

손가락이 용광로에 집어넣어다가 꺼낸 것처럼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그것은 도연우에겐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었다.

‘그럼 굳이 창을 고집할 필요가 없잖아.’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도연우의 눈빛은 샛별처럼 반짝였다.

***

주룩.

콧속에서 뜨끈한 무언가가 흘러내려 입술을 적셨다.

‘끄으….’

하지만 나는 눈을 감지도 손을 움직여 코피를 닦아내지도 않았다.

‘…집중하자. 행여 눈이라도 깜빡이는 날엔 이 미친 짓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해.’

-마나 워프 정보 추출 중. 98%….

뇌가 삶아지는 것과 같은 고통 속에서 내가 마나 워프 정보에 눈을 떼지 않고 집중하는 이유였다.

전뢰화를 사용했을 때 느꼈던 시간의 흐름이 나를 제외한 모든 세상이 느려진 것이었다면.

-마나 워프 정보 추출 중. 99%….

지금은 홀로 세상에서 유리된 듯 내 시간만 느리게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지옥 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거다.

누가 그랬던가,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고.

주르륵. 주룩.

코뿐만 아니라 눈과 귀에서 피를 흘리며 버티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마나 워프 정보 추출 중. 100%.

드디어 정보 추출이 끝나고 나는 눈을 감을 자유를 얻게 됐다.

-마나 워프 정보가 각인됩니다.

-이제 마나 워프의 마나 회로와 마나 워프 구축에 필요한 재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끄으…. 공간의 미학 중지.”

-특성: 공간의 미학 SSS (LV1)의 발현이 중지됩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다른 특성들과 달리 공간의 미학은 내 의지로 ON/OFF를 조작할 수 있다는 것.

그렇지 않았다면 넘쳐나는 정보에 뇌가 타서 죽었거나, 미쳐버렸을 거다.

“후…. 정말 지랄 맞네.”

한숨을 내쉰 나는 곧장 인벤토리를 열어 힐링 포션과 마나 포션을 꺼내 마셨다.

마나 워프의 정보량이 얼마나 방대했던지 마나홀을 가득 채우고 있던 마나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나홀이 조금만 작았어도 까딱했으면 마나 역류로 골로 갈 뻔했다.

물론 정말 위험했다면 정보 추출을 중단했겠지만, 그랬다면 완료 직전까지 추출했던 정보가 아까워 잠을 못 잤을 거다.

이렇게 정보를 추출할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그나저나 저쪽은 어떻게 돼가고 있는 거지?”

정보 추출을 완료하고 한숨을 돌린 나는 연우 형과 율리아가 싸우고 있는 전장으로 눈을 돌렸다.

여전히 소음 하나 없이 수많은 빛무리가 요란하게 춤을 추는 전장에서 달라진 점은 단 하나였다.

‘연우 형이 창을…안 쓰네?’

창술사인 연우 형이 창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

놀라운 것은 그런데도 만영창이나 일섬 같은 스킬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순간,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거야?’

창왕이라 불리는 연우 형이 창 없이 스킬을 사용하는 모습은 일견 마법사 같아 보이기까지 했으니까.

‘창이든 손가락이든 스킬을 사용하는 데 차이가 없다는 건가?’

이건 성장이라는 말로 표현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가진 한계를 부숴버린 진화.

그렇게 내가 연우 형의 천재성에 다시 한번 놀라고 있을 때 전장에 변화가 생겼다.

레이저 빔처럼 직선으로 뻗어 나가던 허공에서 자유자재로 방향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변화.

방어하고 있던 율리아가 당황한 것이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날 정도로 그 변화는 급작스러웠다.

그리고 그 싸움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직선으로 날아오던 빛줄기도 겨우겨우 방어해내던 율리아는 결국 허공에서 방향을 전환하는 수천 개의 빛줄기를 막는 데 실패했다.

“꺄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이 울리고.

털썩.

그녀는 온몸에 뚫린 수백 개의 크고 작은 구멍에서 새빨간 핏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죽을 만한 상처는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네.’

적의 부상을 걱정하고 있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그녀는 살아 돌아가야 했다.

하나로 단결된 적보다는 내부에 균열이 있는 적이 더 상대하기 편한 것은 말하면 입 아픈 사실이지 않은가.

문제는.

‘어떤 식으로 틈을 만들어줘야 티가 안 날까?’

티 안 나게 율리아를 살려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