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재해급 몬스터 (2).
“사, 사람?”
벼락이 떨어져 내리고 허리 높이까지 쌓여있던 눈더미가 포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터져 나간 이후.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분명 사람이었다.
그것도 세 명이나 되는.
벼락과 함께 떨어져 내린 사람이라니….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기사(奇事)에 모두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을 때.
“저분들이 그, 의약품이랑 가지고 오신다는 각성자 분들이신가 보네…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공무원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강당의 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끼익.
그가 문을 열어주자 금세 어깨와 머리에 쌓인 눈을 털어내며 들어서는 세 사람.
바로 강현과 한울 길드 소속 화염계열 마법사들이었다.
“안녕하세요. 청문 시청에서 파견 나온 이기성 주임이라고 합니다. 한울 길드에서 오신다는 각성자 분들 맞으시죠?”
춘섭과 대화를 했던 이기성은 반가운 마음으로 그들을 맞이했지만 다른 이들은 강현 일행을 보며 알게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저들이 뭘 하러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그들은 고작 세 명이고 이곳엔 수백 명의 피난민이 있다는 것이었다.
‘각성자 세 명이라고 해봐야 인벤토리에 담을 수 있는 한계 중량이 300㎏밖에 안 되잖아.’
고작 세 명이 인벤토리에 담아올 수 있는 생필품과 의약품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기엔 턱없이 부족할 테니 말이다.
‘빌어먹을….’
차마 도움을 주러 온 각성자들 앞에서 욕을 할 수는 없기에 속으로 삼켰지만, 춘섭의 얼굴은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피난민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거야말로 보여주기식 행정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으니까.
***
함께 온 마법사들이 이기성의 안내를 받아 마법진을 설치하러 이동하고 혼자 남게 된 나는 조용히 강당을 둘러봤다.
수백 명이 모여있는 강당에 난로는 고작 열대 남짓.
쿨럭쿨럭.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기침 소리와 얇은 모포 한 장으로 몸을 감싸고 있는 피난민들.
전쟁터가 될지도 모를 고향을 떠나온 그들의 얼굴에는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거기다 눈까지 내리고 고립된 상황이니 얼굴이 밝으면 그게 더 이상하긴 하겠네….’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예정조차 할 수 없는 피난 생활이니 얼굴이 어두운 것은 어쩔 수 없으리라.
‘그나저나 구호품들은 어디에 꺼내놔야 하는 거지? 이곳에 오면 도와줄 사람이 있을 거라고 했는데.’
혹여나 도와줄 사람이 있을까 주변을 둘러봤지만, 왠지 눈을 마주치는 사람마다 나를 외면하고 있었다.
‘흠…. 어쩐다. 그냥 아무 데나 꺼내두면 되나?’
내가 난감한 상황에 머리를 긁적이고 있을 때였다.
“아저씨. 아저씨도 마법사예요?”
이제야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법해 보이는 아이 하나가 다가와 눈을 반짝이며 나를 올려다봤다.
“어? 아니. 아저씨는 마법사 아니야. 아까 저쪽으로 간 아저씨들 있지? 그 아저씨들이 마법사야.”
“그 나비 옷 입은 아저씨들이요?”
마법사들이 입은 로브가 아이의 눈엔 나비 날개처럼 보였나 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조잘조잘 입을 놀렸다.
“어 우리 아빠는요. 마법사였대요. 어 막 손에서 번개도 나오고요. 어 나쁜 괴물들하고 싸우는 착한 마법사요.”
“와- 멋지다.”
“우리 아빠는 군인인데요. 어 지금도 나쁜 괴물들이랑 싸우고 있대요.”
“우와-! 정말 대단하신 분이네.”
그렇게 내가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을 때였다.
“경준아 아저씨 귀찮게 하지 말고 할머니한테 가 있어.”
4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다가와 내게서 꼬마를 떼어냈다.
“어. 전 마법사 아저씨랑 더 얘기하고 시픈데….”
마법사 아니라고 얘기했는데 꼬마는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들었나 보다.
“쓰읍.”
나를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꼬마를 향해 사내가 작게 인상을 쓰자 꼬마는 입술을 삐쭉 내밀고 작게 투덜거리며 걸음을 움직였다.
“춘섭이 삼촌은 맨날 나한테만 뭐라고 해. 아빠 오면 다 이를 거야.”
그런 꼬마가 귀여워 쳐다보고 있는데 사내가 말을 걸어왔다.
“그 듣기론 구호품도 가져오신다고 들은 것 같은데….”
어딘가 무뚝뚝한 사내였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아. 네. 어디에 내려드리면 될까요?”
“여기다가 내려주세요. 얼마 되지도 않을 것 같은데.”
수백 명이 사용할 생필품을 강당 한복판에 꺼내놓으라는 말에 조금 당황했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많으니 옮기는 게 그리 어려운 건 아닐 테니까.
쿵. 텅. 터 턱.
그렇게 내가 인벤토리에 들어있던 물건을 하나씩 꺼내놓을수록 춘섭이란 사내의 눈은 점점 그 크기를 키워갔다.
혹시나 마법사들이 펼친 온도조절 마법진이 깨질 것을 대비해 준비해온 난로와 전기히터가 40대.
식수로 사용할 20ℓ 생수 200통과 대형 마트에서 통째로 털어온 레트로트 식품들, 그리고 의약품 및 생필품이 강당 입구 앞에 산더미처럼 쌓였다.
거기에 매트리스와 이불 베게 등 침구류들을 꺼내 놓자 강당 한쪽으론 말 그대로 작은 동산 하나가 만들어져 있었다.
“어…. 이게 대체 어떻게….”
놀란 나머지 입을 떠벌린 채 말을 잇지 못하는 춘섭이란 사내의 뒤로 하나둘 모여든 피난민들이 저마다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난로가 몇 개야 이게? 설마 이게 한 사람 인벤토리에서 나온 거야?”
“이 친구는 방금 봐놓고선 뭘 물어. 저분 인벤토리에서 다 나오더구먼.”
“눈으로 봤는데도 믿기지 않으니까 하는 소리 아니야-. 원래 각성자 인벤토리는 한계 중량이 100㎏ 아니었어? 난 그렇게 배웠는데.”
“특이한 스킬 가진 각성자들이 한둘인가? 저분은 인벤토리 늘리는 스킬 같은 게 있나 보지.”
산더미처럼 쌓인 구호품이 한 사람의 인벤토리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들과.
“저 총각 덕분에 며칠은 배곯을 걱정 없겠네.”
“며칠이 뭐야. 한 달도 거뜬히 버티겠구먼. 아이고 여기 고기도 있네.”
늘어난 식료품에 안도하는 사람들.
“엄마 이거 봐봐. 이 이불 정말 따뜻해!”
이불을 망토처럼 걸친 채 즐거워하는 아이들까지.
어느새 내 주위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그들이 한마디씩 꺼내는 말소리에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사람들 얼굴 가득 내려 앉아있던 그늘이 어느 정도는 가신 것처럼 느껴졌다.
덕분에 내 얼굴에도 미소가 걸렸다.
-김말숙 님이 행복해합니다. 0.1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이경준 님이 따뜻한 이불을 덮고 포근함을 느낍니다. 0.1포인트가 지급됩니다.
-강석찬 님이….
-최순재 님이….
-…….
쉼 없이 올라가는 포인트 획득 메시지가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시켜 줬으니까.
포인트 수급이 조금 더디긴 하지만 확실히 기부하는 게 아이템을 구매해 시스템 상점창에 판매하는 것보다 효율이 높다.
덤으로 내 기분도 좋아지고.
싸늘한 공기로 가득했던 강당 안에 보기만 해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황금색 빛이 일렁거리며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가만히 스며들기를 반복했다.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
137곳.
오늘 온종일 내가 구호품을 전달한 대피소다.
그나마 다른 곳은 육로로 접근할 수 있었지만, 이 137곳의 대피소는 차도 드론도 접근할 수 없어 완전히 고립되어 버린 대피소들이었다.
그 많은 사람을 모두 안전한 곳으로 옮길 능력은 내게도 없으니 그저 구호품을 건네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시 서울로 돌아왔을 때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두 영감님과 연우 형이었다.
“…정부에서는 이 폭설이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네.”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면…. 빙호의 능력이라는 말씀입니까?”
자문 자격으로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여했던 세 사람은 회의 결과에 대해 내게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정부 쪽에서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네. 빙호가 항카 호에 자리 잡은 이후로 함경도에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으니까.”
“거기에 폭설이 내린 이후로 눈구름 때문에 빙호의 위치를 포착하기 힘들어졌다는 것도 한몫했지.”
“그럼 지금 빙호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소린가요?”
“마도 위성으로 놈의 위치를 파악하려고 해봤지만, 아무리 마도 위성이라 하더라도 두꺼운 눈구름을 뚫고 지상을 촬영하는 건 힘들다고 하더군.”
순간 어이가 없었다.
이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위기대응 능력인가?
재해급 몬스터라 불리는 괴물이 국경에서 불과 300㎞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자취를 감췄는데 행방을 찾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덩치가 작다면 모르겠지만 몸길이만 500m가 넘는 거대한 녀석을.
내 얼굴에서 황당함을 읽은 걸까?
연우 형이 설명을 덧붙였다.
“어제 수색대를 파견했는데 연락이 끊긴 모양이더라. 오늘 아침엔 수호 길드에서 A급 각성자들로 이루어진 팀을 하나 보냈다는데 그 사람들도 연락 끊어졌고.”
“아….”
“그래서 결론은 우리가 가기로 했어.”
연우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그 묘한 뉘앙스에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라면 누굴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러자 생긋 미소지은 연우 형이 손가락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어…. 저요?”
“응. 너랑 나 둘이 가기로 했어.”
“…….”
어쩐지, 그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면 비밀엄수를 해야 할 내용이었을 텐데 술술 말해준다 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관계자가 돼 있었던 셈이다.
“하하. 재미있겠지?”
해맑은 웃음을 터트리는 연우 형의 얼굴을 보자니 가슴 깊숙한 곳에서 빡침이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하·하·하. 정말. 으득. 재미있겠네요.”
내가 웃고 있지만 이건 웃는 게 아니다.
25년 만에 만난 동생을 놔두고 사지로 끌려가게 생겼으니까.
***
꽈르르릉!
번쩍.
퍼퍼펑!
흩날리는 눈발을 뚫고 내리친 벼락이 새하얀 설원 위에 구덩이를 만들어냈다.
사람 키를 넘길 만큼 높게 쌓인 눈이 흩어지며 얼어붙은 대지가 잠시 드러났다가 자취를 감췄다.
“와-! 이거 겁나 재미있네!”
그 눈밭을 해치고 모습을 드러낸 도연우는 강현을 바라보며 두 눈을 반짝였다.
“이거 어떻게 쓰는 거야? 마나 회로 가르쳐 줄 수 있어?”
주변 상황에 상관없다는 듯 천진난만하기 그지없는 그 물음에 강현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형도 아시잖아요. 태초의 별에서 형 스마트폰 충전할 때 사용했던 뇌신일체 스킬이에요. 가르쳐드릴 순 있는데 어차피 형은 못 써요. 뇌기라는 특수 스탯이 필요해서.”
“아. 그래? 아쉽네…. 이런 이동 스킬 있으면 아주 편할 것 같은데.”
강현은 그런 도연우의 말을 한쪽 귀로 흘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빙호(氷虎).
몸길이 500m 체고 200m가 넘는 괴수.
아무리 눈이 많이 내렸다 해도 그만한 크기의 몬스터라면 발견을 했어야 맞는데, 이곳으로 오는 와중에 살펴봤지만, 놈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씨드. 주변 탐색 부탁해.”
“네. 사령관님.”
문제는 감각 영역을 확장했음에도 분명 느껴져야 할 놈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단 샤이닝 에로우를 풀어 주변 탐색을 맡긴 강현은 도연우를 돌아봤다.
“형. 뭐 느껴지는 거 없으세요?”
그때 뭔가를 느낀 듯 고개를 갸웃거리던 도연우가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느껴지는 게 있긴 한데…. 이게 빙호는 아닌 것 같은데?”
그 말에 질문을 던지려던 강현도 곧 입을 다물었다.
드드드드드.
그의 감각 영역에도 딛고 있던 대지의 떨림이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빠지지직-.
“형! 이거 함정!”
함정임을 간파한 강현이 뇌전일체 스킬을 사용하며 도연우를 향해 손을 내밀 때.
“%@#@$%^.”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들림과 동시에 거대한 반구가 그들을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