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 재해급 몬스터 (1).
빙호의 남하가 시작되고 이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시베리아의 최북단에서 시작된 놈의 횡단은 우리 영토의 동북쪽 끝인 함경도 근방의 두만강 너머 항카라는 거대한 호수에서 멈췄다.
우리 국경에서 불과 300㎞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놈은 마치 뭔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틀 전 그곳에서 걸음을 멈춘 채 움직이지 않았다.
마도 위성으로 촬영한 것을 보면 놈이 내뿜는 한기에 그 거대한 항카호가 그대로 얼어 불어 버렸다.
재해급 몬스터에 강경한 대응을 예고했던 정부로선 놈을 공격하기에 적기나 다름없는 상황.
하지만 문제는.
‘쉬샤오밍 중국 주석. 자국 영토 내에 단 한발의 총탄이라도 발사한다면 선전포고로 받아들일 것. 엄포.’
‘선제타격 발언한 함이수 국방부 차관. 경질.’
미친 중국 새끼들이 아주 극단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고 덕분에 선제타격을 주창했던 국방부 차관은 경질당했다.
사람이 살지 않아 몬스터 천국이나 다름없는 만주를 여전히 자신들의 영토라 주장하는 놈들답게 말이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는 시베리아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와 소유권을 포기한 데 반해.
중국은 북경을 버리고 수도를 남경으로 이전한 주제에 여전히 만주와 그 이북지역을 자신들의 땅이라 주장하고 있었다.
실효적 지배는커녕 그 땅을 차지하고 있는 몬스터를 토벌하지도 못하고 있으면서 말이다.
심지어 최근엔 시베리아마저도 원래 자신들의 땅이라 주장하고 있으니 욕심과 우기는 것 하나는 정말 세계 최고라고 볼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억지가 지금 우리나라를 향하고 있다는 거지.’
나라 간의 거리가 멀면 무시하고 말 텐데 그것도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산둥반도에서 미사일을 날리면 한반도 전체가 놈들의 미사일 타격권 안에 들어가니까.
‘정부도 미칠 노릇이겠네. 그냥 말뿐이라면 모를까 저 미친놈들은 정말 미사일을 날리고도 남을 놈들이니까.’
몬스터들에 의해 나라가 풍비박산이 나는 와중에도 대만을 점령하고 있던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바다를 건넌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 당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죽은 군인보다 바다에서 해양 몬스터에 의해 죽은 군인이 더 많다는 것은 농담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21세기 동아시아의 깡패국가.
세계가 중국을 부르는 별명이었다.
압도적인 인구수에서 나오는 각성자 전력은 세계제일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남쪽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같은 나라에선 중국에 대한 원성이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가끔 중국의 각성자들이 그 나라들의 국경을 무단으로 침범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그래 놓고 대국의 위엄을 보여줬다느니 하면서 사과 한마디 없었다고 했지.’
그런 중국이 선전포고를 언급했으니 정부로선 빙호를 선제타격하는 카드는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자고로 미친놈은 건드리는 게 아니니까.
‘이렇게 되면 군대의 지원 없이 각성자들만으로 빙호를 상대해야 한다는 소린데….’
첫 번째 문제는 이 미친놈들이 그것마저도 영토침범으로 물고 늘어질 수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 문제는 다른 재해급 몬스터가 언제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특성상 시 서펜트나 크라켄 같은 재해급 몬스터가 오늘 당장 바다에서 튀어나온다고 해도 이상할 일이 아니었으니까.
따라서 당장 전투를 벌여도 이상하지 않을 빙호가 항카 호(浩) 근처에서 걸음을 멈춘 것은 아무리 봐도 미끼라고 생각될 수밖에 없었다.
‘국경과 맞닿은 함경도 북쪽 지방엔 난리가 났다고 했지?’
정부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함경도 동북부 주민들을 대피시켰고 예비군 10만 명을 소집해 그곳에 배치했다.
덕분에 TV에선 온종일 피난민들에 대한 뉴스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국가 재난 상황에 집과 생활 터전을 버리고 피난을 내려와야 했던 이들의 사연은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었다.
당장 지낼 곳도 마땅치 않아 정부에서 제공해준 학교 체육관에서 머물며 구호 물품으로 생활을 해야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 생활 환경은 열악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였다.
12월의 함경도의 차가운 바람은 히터를 켜고 난방을 한다고 해서 해결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고.
당장 마실 물도 아껴야 하는 마당에 샤워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상황이었으니까.
뉴스를 보던 나는 지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오빠.”
요즘 무역회사 설립 건으로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쁘게 보내고 있는 지아였지만 어쩌겠는가? 당장 믿고 맡길 사람이 지아밖에 떠오르지 않는 것을.
“어 지아야 바빠?”
“아니 괜찮아. 잠깐 시간 낼 순 있어. 왜?”
“뭐 좀 물어볼까 해서. 저번에 경매장 매출이 얼마라고 했지?”
“11조 2800억. 2주 동안 매출이 늘어서 어제 확인한 바론 11조 5천억 정도 되는 거로 알고 있어. 근데 그건 왜?”
“그거 이대로 가면 연말에 세금폭탄 맞는다고 했지?”
“어. 경매장이 매출에 비하면 지출은 없다고 봐도 될 정도라 이대로 두면 세금폭탄 확정이지. 무역회사를 만든 것도 세금폭탄을 좀 줄여 볼까 하는 이유도 있고.”
지아의 대답에 나는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럼…. 기부 좀 하는 건 어때? 기부하면 세금 많이 줄어든다고 하던데.”
“기부도 나쁘지 않지. 근데 워낙 순이익이 커서. 어지간한 금액으론 턱도 없을걸? 얼마나 기부할 건데?”
“경매장과 길드 그리고 무역회사 운영에 필요한 자금 빼고 전부.”
내 말에 충격을 받은 걸까?
지아는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지아야?”
“어, 미안 잠깐 계산 좀 하느라고, 넉넉하게 2년 치 운영자금을 회사 유보금으로 빼놓으면 11조 정도가 남는데 정말 다 기부할 생각이야? 그럴 거면 차라리 재단을 설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맞는 말이다. 11조나 되는 돈을 기부할 거라면 재단을 설립하는 게 낫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게는 그 재단을 관리할 능력도 시간도 없다.
지아에게 맡겨 볼까 생각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지금도 바쁜 아이에게 그것까지 맡기면 얼굴 볼 시간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만난 동생인데 그럴 순 없지.’
그렇게 재단설립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지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지금 피난 온 사람들 때문에 기부하려는 거지? 그럼 일단 그쪽으로 기부를 하고 함께 재단설립도 진행해 보는 건 어떨까? 내가 괜찮은 행정사 사무실 찾아서 의뢰해 볼게.”
11조나 되는 돈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맡기는 것보단 그게 나을 것 같아 그렇게 진행해 달라는 말로 통화를 마무리했다.
‘하도 재단 비리가 많으니 믿을 수가 있어야지. 쩝….’
몇 년 전엔 300억이 넘는 기부금을 받아 280억을 ‘인 마이 포켓’ 하신 재단 대표가 뉴스에 얼굴을 비추기도 했었다.
참 믿을 놈 찾기 힘든 세상이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겠다.’
지금 함경도엔 폭설이 내리고 있다고 하니 분명 상황이 매우 좋지 않을 테니까.
***
다다다.
이제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 하나가 생수병 하나를 들고 잰걸음으로 달려갔다.
“할머니 여기 물.”
“콜록콜록. 아이고 우리 강아지. 할미한테 물 가지고 왔어?”
“응. 할머니 빨리 마셔.”
김순복은 손자가 내미는 생수통을 받아들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밤톨처럼 깎은 머리에 그녀의 손이 닿자 손자 경준이 유치가 빠져 비어있는 앞니를 드러내며 배시시 웃었다.
“헤헤.”
강당을 매운 차가운 공기에 빨갛게 얼어 있는 볼을 보자니 안쓰럽기 그지없다.
그런 경준을 가슴에 끌어안은 김순복이 주위를 둘러봤다.
삼삼오오 모여 열띤 토론을 벌이는 이들.
누군가는 빙호라는 몬스터에 대한 욕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강제 피난 명령을 내린 대통령을 욕했다.
김순복은 저들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낡고 허름하지만, 찬바람 안 들어오고 맘 편하게 다리 뻗고 누울 수 있는 집이 그립기는 그녀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때 어디선가 고함이 들려왔다.
“뭐요? 이게 전부라고요?!”
고개를 돌려보니 마을 이장인 안춘섭이 공무원으로 보이는 젊은 사내를 붙잡고 언성을 높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봐요. 이주 전부터 빙호가 이동하는 걸 알았다면서 준비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게 말이 돼요?!”
“죄송합니다. 피난민의 수가 정부예측보다 많아서요….”
“에이 춘섭아 그만해. 이 양반이 뭔 죄가 있냐. 이게 다 윗대가리 놈들이 책상머리에 앉아서 일을 처리하니까 이 모양인 거지. 저 양반도 그냥 말단 공무원 아니냐. 그만해.”
하지만 춘섭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형님.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요. 이 넓은 강당에 난로가 고작 10개밖에 안 되는 게 말이 되냐고요.”
그렇게 화를 내는 그의 입에선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허연 김이 폴폴 뿜어져 나왔다.
“공무원 양반한테 화낸 건 정말 미안한데. 사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지금 외부온도가 영하 15도인데 난로 열 개에 한 사람당 모포 한 장으로 이 추위를 어떻게 버팁니까.”
“죄송합니다. 난방장치가 있긴 한데 눈이 많이 와서 연료 수급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다시 한번 깊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하는 공무원의 태도에 춘섭도 더는 화를 내지 못하고 몸을 돌렸다.
“화 풀어. 눈이 많이 내린 걸 어쩌겠냐. 눈 내린 게 공무원 양반 잘못도 아니고.”
“아니 형님. 우리야 그냥 옷 좀 껴입고 버틴다고 해도 어르신들하고 애들은 이 추위를 어떻게 버텨요. 벌써 감기 걸리신 분들이 한둘이 아니에요.”
그는 창밖으로 펑펑 쏟아져 내리는 눈을 확인하곤 말을 이었다.
“이틀 전 우리가 여기 왔을 때 우리 요구대로 해줬으면 이럴 일도 없었는데. 계속 기다리라고 차일피일 미루더니 결국엔 눈이 내려서 못 온다고 말하는데 어떻게 복장이 안 터져요. 형님.”
어제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이미 무릎을 넘어 허리께까지 쌓이고 있었다.
이미 이곳에 고립되어 정말 막막하기 그지없는 상황인 것이다.
당장 눈이 그친다고 해도 앞일이 막막한 것은 변함이 없었고 말이다.
그때.
“네? 뭐라고요?!”
춘섭과 대화하던 공무원이 무언가에 놀란 듯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귓가에 들려왔다.
“예? 정말입니까. 계장님? 그분들이 어째서…. 네. 알겠습니다.”
통화할수록 뭔가 좋은 소식을 들은 것처럼 점점 밝아지는 얼굴에 강당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될 무렵.
“됐습니다! 이장님 됐어요!”
통화를 끝내고 후다닥 춘섭에게 달려온 그가 춘섭의 손을 붙잡고 아래위로 흔들며 기뻐하는 것이 아닌가.
“뭐. 뭐가 됐다는 겁니까?”
영문도 모른 채 손을 붙잡힌 춘섭이 그의 손을 뿌리치려 할 때 공무원의 입에선 놀라운 말이 터져 나왔다.
“마법사들. 그러니까 화염 마법 계열 각성자들이 지금 이쪽으로 오고 있답니다. 거기에 침낭이랑 식료품도 함께요!”
“에…. 네?”
믿기 힘든 소식에 춘섭의 눈이 창밖으로 향했다.
창밖엔 여전히 큼지막한 눈송이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지금요?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데…. 어떻게요?”
그제야 창밖에 내리는 눈을 확인한 공무원의 얼굴이 급속도로 굳어갔다.
“그, 그러게요….”
“이런 날은 드론도 뜨기 힘들 텐데 어떻게 온다는 건지…. 설마 이번에도 약 파는 겁니까?”
“아니…. 분명 계장님이 의약품도 함께 보낸다고 받을 준비 하고 있으라고….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창밖을 보고 당황한 공무원이 말끝을 흐릴 때였다.
꽈르릉!
번쩍!
저 먼 하늘에서 거대한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곧이어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벼락이 내려꽂혔다.
그것도 강당 정문 앞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