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155화 (154/202)

155. 여동생은 무섭다 (2).

“허….”

도연우는 마치 손안의 장난감처럼 신유빈을 어르고 달래는 강지아를 보며 나직하게 탄성을 뱉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카드를 보여 준 것도 아니고 단지 이런 카드를 쥐고 있다는 것을 내비치는 것만으로 신유빈을 쥐락펴락하는 걸 보니 보통이 아닌 듯싶었다.

“현아….”

“네.”

“네 동생 무섭네….”

“…네.”

“재벌들은 원래 다 저러나?”

“제 동생이 똑똑한 거죠. 신유빈이 모자란 거고요.”

그런데도 강현의 눈에 강지아는 여전히 이쁘기만 한 동생일 뿐이었다.

“…이게 뭔 줄 알아? 마나의 묘약이야. 이거면 네 부서진 마나홀도 다시 만들 수 있을걸?”

마나의 묘약을 달라길래 주긴 했는데 저런 식으로 써먹을 줄은 몰랐다.

확실하지도 않은 정보를 가지고 당근을 제시하는 강지아.

“이거. 돈이 있어도 구하기 어려운 거 알지? 풀린 물량도 얼마 안 되고.”

하지만 그런 강지아의 손에 들린 마나의 묘약을 바라보는 신유빈의 눈엔 절박함이 가득했다.

신성 그룹의 오너인 신가의 가법은 각성자가 아닌 자는 후계자가 될 수 없다.

“그걸로 부서진 마나홀을 고칠 수 있다고? 약을 팔려면 제대로 팔아! 어디서 되지도 않는 수작질이야?”

하지만 그런 확인되지도 않은 미끼를 물 만큼 신유빈도 미련하진 않았다.

강지아는 신유빈의 옆에 무릎을 꿇고 있는 이 실장을 가리켰다.

“불치병이라 불리던 마나 중독까지 치료하는 포션인데 고작 부서진 마나홀을 치료 못 할 것 같아? 못 믿겠으면 저 사람한테 테스트해 봐도 되고.”

“…….”

아무런 말 없이 멍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이 실장.

S급에 올랐던 그였기에 마나홀을 잃은 상실감은 신유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그런 이 실장을 곁눈질로 확인한 신유빈이 인상을 찡그렸다.

‘제 주인도 지키지 못한 머슴 새끼….’

그 순간 들려온 강지아의 목소리는 신유빈의 인상을 와락 일그러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거 저 사람한테 사용하는 순간 너한테 사용할 마나의 묘약을 없을 거야.”

“내가, 우리 신성 그룹이 그깟 포션 하나 못 구할 것 같아?”

효과만 확인된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풀린 물량이 얼마 안 된다고 했지만, 분명히 있었고 그렇다면 구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게 재벌이니까.

“응. 못 구해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쿡. 네가? 무슨 재주로?”

확신에 가까운 강지아의 대답에 신유빈이 비웃음을 베어 물을 때.

“인사해. 아까 네가 몬스터 밥으로 던져주겠다던 우리 ‘오빠’.”

강지아가 한걸음 옆으로 비켜서며 강현을 소개했다.

“마나의 묘약 개발자이자 각성한 지 5개월 만에 S급으로 승급한 천재. 서태촌, 구정철, 도연우의 제자이자 대현 토털 아이템 사외이사인 강현.”

“뭐…라고?”

강지아 앞에서도 오만하고 독기 어린 표정을 유지했던 신유빈이었지만 강현 앞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저자가 그 강현이라고?’

그 이름 앞에 붙는 수많은 수식어가 증명하듯 강현의 이름은 자신이 쳐다볼 수 없을 만큼 까마득한 높이에 있었으니까.

거기에 강현의 등 뒤에서 살짝 고개를 내밀어 방긋 웃는 도연우의 얼굴은 강지아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에 힘을 실어 주고 있었다.

***

결국, 신유빈은 마나의 묘약을 선택했고 마나홀을 회복했다.

원래 지니고 있던 C급 각성자의 마나홀이 아닌 이제 막 각성한 F급 각성자의 마나홀을 지니게 되었지만.

신가의 가법인 각성자만이 후계자가 될 수 있다는 조건엔 부합한 셈.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강현과 도연우는 눈을 반짝였다.

‘부서진 마나홀을 회복시킬 수 있다.’라는 마나의 묘약의 셀링 포인트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니까.

강지아는 마나홀을 회복한 신유빈에게 두 가지를 요구했다.

하나는 신성 철강의 모태인 신성 대장간 시절부터 내려온 신가의 비전 마나 심법.

다른 하나는 신성 그룹의 그림자인 신화의 수장. 이 실장이었다.

“굳이 이걸 왜?”

물론 강현이나 도연우는 강지아가 왜 그것을 요구한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신유빈이 떠나고 이유를 묻는 강현에게 강지아는 이렇게 대답했다.

“신가 비전의 마나 심법은 마나철을 연성하는 연금술의 레시피 같은 거니까요.”

마나철.

아다만티움보다 무르고 오리하루콘보다는 마나 전도율이 떨어지지만, 아이템을 제작하는 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금속.

신성 그룹의 초대회장은 그 마나철을 제련하는 방법을 깨달아 부를 쌓았고 신성 그룹을 만들었다.

지금도 전 세계 마나철의 30%는 신성 그룹이 공급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그 비전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

던전 광산에서 채굴되는 것이 아닌 인위적인 제련을 통해 만들어지는 마나철은 신성 그룹의 것이 유일했으니까.

강지아는 그 마나철의 제련방법이 신가의 비전 심법에 담겨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요구한 것이었다.

멋모르는 신유빈은 흔쾌히 응했고 말이다.

강현은….

“오빠가 하시는 일에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라는 강지아의 말에 그저 헤벌쭉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저 이 실장이라는 사람은?”

“S급 각성자잖아요. 마나홀 회복시키면 금세 본래 등급까지 회복하지 않을까요? 거기에 신화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고…. 지금 신화에서 그림자로 활동 중인 이들이 모두 이 실장님의 제자거든요.”

이어서 큰 눈을 깜빡이며 덧붙인.

“오빠도 이제 큰일을 하실 건데 자기만의 세력이 필요할 거로 생각했어요. 혹시 제가 너무 주제넘었나요?”

라는 말에 강현은 여전히 ‘오구 오구 내 새끼 잘했어’라는 표정이었고 도연우는 스릴러 영화라도 본 것처럼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요약하면.

강지아는 고작 마나의 묘약 하나와 적절한 회유 플러스 협박으로 신성 그룹의 기둥뿌리를 두 개나 뽑아온 셈이었으니까.

그리고 이어진 말에 더욱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오빠. 마나의 묘약 그 시스템 상점이라는 곳에서 더 구매할 수 있다고 하셨죠?”

“어? 응.”

“그럼 다섯 개만 더 주실 수 있을까요?”

“어디에 쓰려고?”

“당장은 아니고 신유빈에게 비전 넘겨받으면 선물 좀 할까 하고요.”

“신유빈에게?”

‘하긴, 마나의 묘약 하나로 퉁치기엔 너무 많은 걸 얻어오는 거지. 한 개나 여섯 개나 큰 차이는 없겠지만.’

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주억거리던 도연우는 이어진 강지아의 말에 절대로 강지아에게 밉보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요. 신유빈 친동생들하고 사촌들한테 주려고요. 그 사람들도 후계자 경쟁에 참여할 기회 정도는 가져봐야 하지 않겠어요?”

강지아는 처음부터 신유빈이 후계자 자리를 지키게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

이 주일이 흘렀다.

신유빈은 약속대로 비전 마나 심법을 지아에게 알려줬고, 마나홀이 부서진 이 실장은 신성 그룹에 사표를 쓰고 우리에게 찾아왔다.

여기에서도 ‘이왕 월급을 받고 일하는 거면 복지가 좋은 곳에서 일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너무나도 현실적인 지아의 설득이 주효했다.

마나홀이 부서진 자신을 쓸모없어진 도구처럼 버려버린 신씨 일가에게 배신감을 느낀 게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았지만 말이다.

그것 말고도 꽤 많은 일이 있었다.

이미 25년 전 후계자 경쟁에서 탈락했던 신영수가 신성 철강의 임시주총을 열었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주식과 방계의 주식을 그러모은 그는, 신성 그룹 지주회사 신성 철강의 대표이사인 신경철의 해임안을 가결시키며 화려하게 재계로의 복귀를 알렸다.

이른바 신성 그룹 왕자의 난이 시작된 것이었다.

신영수는 우리 남매를 찾아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사죄를 했다.

그게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솔직한 내 입장은 더는 신성 그룹과 엮이고 싶지 않은 게 더 컸다.

지아가 더 상처받는 걸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후 변호사를 고용해 지아의 신원을 복원하는 절차를 진행 중이었다.

변호사 말로는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다고 했으니 기대해도 되리라.

그리고 욱일회의 테러로 인한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열기가 서서히 식어갈 때쯤.

대한민국은 또 다른 이슈로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시베리아 최북단에 머물던 재해급 몬스터 빙호(氷虎). 보금자리를 떠나 남하 중.’

‘마도 위성으로 관측한 빙호의 이동 경로 정확히 한반도로 향해.’

‘국방부 차관 曰, 빙호가 대한민국 영토에 발을 들이기 전 선제타격 하겠다 발언.’

바로 시베리아 최북단에 머물던 빙호가 남하를 시작했다는 소식이었다.

“오빠 말대로 재해급 몬스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네. 아직도 정부 쪽에선 연락이 없어?”

그래도 2주의 시간을 함께 보내서인지 우리 남매는 처음 만났을 때의 서먹함과 어색함을 많이 덜어낸 상태였다.

“어. 일단 움직이기 시작한 게 빙호 한 마리뿐이니까. 아직 반신반의하나 보더라. 그나저나 이 실장님은 어때?”

“함께 온 제자들하고 같이 사냥 중이셔. 해찬이가 잘 챙겨주는 것 같던데?”

신성 그룹의 그림자인 신화의 수장이었던 이 실장, 이제는 이길현 팀장님이라고 불러야 할 그분은 제자들과 함께 즈믄나래 길드에 가입했다.

그렇게 함께 온 제자가 무려 스무 명.

그중 A급 각성자가 5명이나 있어, 덕분에 길드 규모도 커지고 수준도 높아졌다.

물론 C급 부 길드장 밑에 A급 길드원이 있는 기형적인 구조가 되긴 했지만, 그것도 조만간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일 토플란 시스템 시제품 나온다니까 해찬이랑 같이 테스터로 참여하라고 전해줘.”

“응. 오빠.”

멸망급 재앙이 다가온다는 것을 안 강산호 회장이 대현 토털 아이템의 연구진들을 닦달했고.

왕회장의 버프를 받은 연구진들은 불과 이주 만에 토플란 시스템의 시제품을 만들어 내는 기염을 토해냈다.

공돌이를 갈아 넣으면 안 되는 게 없다더니 그게 사실로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경매장 쪽은 어때?”

“이기적 대표님이 잘 진행 중이셔. 저번 주에 묘약 레시피 여섯 개 모두 경매 끝났고 총 낙찰가는 11조 2천800억 원이야.”

지아는 비서 모드로 경매 진행 상황과 결과를 내게 보고했다.

“다행히 마나의 묘약 레시피는 우리나라 태화 제약에서 가져갔어. 낙찰가는 2조 8천억이고. 나머지는 여기저기 흩어지긴 했는데 그 사람들도 곧 깨닫게 되겠지. 우리를 통하지 않으면 묘약을 만들 수 없다는걸.”

나를 돕고 싶다는 말에 시키긴 했는데 똑 부러지게 일 처리 하는 걸 보면 전문 비서가 따로 없었다.

“무역회사 설립은 얼추 마무리 단계고 오빠가 재료들 입고해 주면 레시피 낙찰받은 회사들에 이메일을 보낼 거야. 묘약을 만들 열쇠가 우리에게 있다고.”

내가 묘약 레시피들을 경매에 올린 이유.

그건 묘약을 만들 때 필요한 재료 중 하나가 지구에서는 자라지 않는 식물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새우 버섯이라는 버섯인데 마나석 가루라든지 하는 다른 재료들보다 중요도는 떨어졌지만 모든 묘약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재료였다.

묘약의 원산지인 랑데르칸이라는 행성에선 흔하디흔한 버섯이지만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렇기에 내가 독점적으로 공급이 가능한 물건이었다.

한마디로 거액을 들여 레시피를 낙찰받아간 이들의 목줄을 내가 틀어쥔 셈이었다.

나는 이걸로 묘약의 시장가를 조절할 생각이었다.

‘나중에 자체재배가 가능해지면 모르겠지만, 그전까지는 울며 겨자 먹기로 내 말에 따를 수밖에 없겠지.’

이렇게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열두 신이라는 놈들과 대적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문제라면 이게 너무 느리다는 건데….’

토플란 시스템도 묘약도 시간이 필요하기에 걱정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벌써 시베리아의 빙호가 움직이는 상황이었고 사도라는 놈들은 이미 국내에 들어와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뭔가…. 획기적으로 전력을 끌어올릴 방법이 없을까?’

그렇게 내가 근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톡.

내 어깨 위로 손가락이 곧게 뻗어 예쁜 손 하나가 올라왔다.

“오빠. 너무 혼자서 모든 걸 짊어지려고 하지 마.”

지아였다.

“아직 오빠 말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이잖아. 그 사람들도 겪어보면 오빠 말이 옳았다는 걸 깨닫게 될 거야. 우린 그 이후를 준비하고 있는 거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준비하자.”

진심으로 나를 위로해 주는 지아의 말에 복잡했던 머릿속이 조금은 정리되는 걸 느꼈다.

“그래.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이래서 가족이 좋은 거다.

똑같은 말이라도 가슴에 와닿는 무게가 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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